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이 시간 진행에 이현줍니다.
박소연 씨는 지난해 11월 남한에 도착한 햇내기입니다. 무산 출신으로 선전대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30대 중반의 여성인데요. 하나원 교육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남한 생활을 시작한지 이제 5개월...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에는 남한 정착 7년차, 자강도 출신 문성휘 기자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 선배님도 비행기에서 내려서 우셨어요? 저는 눈물이 그렇게 나더라고요.
오늘 얘기 시작합니다.
진행자 : 안녕하세요.
문성휘, 박소연 : 안녕하세요.
진행자 : 저희가 지난주에 첫 방송이 나갔습니다. 소연 씨 한 주 동안 잘 지내셨어요?
박소연 : 잘 지냈습니다. 추석도 지나고 일이 많았네요. 추석날에는 임진각에 다녀왔어요. 망원경으로 북한도 봤습니다. 빨리 통일이 돼서 고향 땅에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멍하니 바라봤습니다.
진행자 : 실향민이나 북쪽이 고향인 탈북자분들이 이런 명절날에는 임진각 같은 곳에서 합동 차례를 지내는데요. 혹시 보셨어요?
박소연 : 제가 간 날엔 못 봤어요. 대신 끊어진 철교하고 녹슨 기관차가 있더라고요. 그거 보면서 야... 진짜 이 기차가 그대로 달렸으면 좋았을 걸, 그럼 이렇게 말고 남한 땅을 그냥 다니러 올 수도 있었을텐데... 안타까운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진행자 : 녹슨 기차 앞에 그런 말 써있지 않았나요? 철마는 달리고 싶다... (웃음) 소연 씨의 심정이었을 것 같네요.
문성휘: 처음 임진각에 갔을 때 저는 별 감흥이 없었어요. 망원경을 들여다봐도 그냥 북한이로구나... 이런 생각만 났는데 언젠가 한번 아침 일찍 간 적이 있어요. 아침에 일찍 가면 음력 설 같은 때는 제사를 지내는 사람들이 많아요. 탈북자들도 일렬로 서서 상을 차리고 절을 하는데 별 생각이 없이 서 있다가 이렇게 보니까 웬 늙은 노부부가 상까지 가져와서 제사상을 차리더라고요. 차에서 이렇게 작은 밥상을 내리고... 아, 이 얘기 하면 지금도 눈물이 나는데요. 무슨 사연인지 모르겠는데 상을 놓고 거기에 음식이랑 과일을 올리는데 올리는 내내 눈물을 흘리는 거예요. 아주 나이가 많은 분들이었는데 그걸 보니까 나도 저 나이 될 때까지 고향으로 못 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또 그 분들도 너무 안 돼서 막 눈물이 났습니다.
진행자 : 그 분들은 거기에 이제 수십 년을 오셨을 텐데 그래도 눈물이 마르질 않았네요. 이런 추석 같은 명절에 제일 많이 눈물이 나죠? 또 다들 얘기하는 게 처음 공항에 도착했을 때 그렇게 눈물이 난다고 하시던데요. 소연 씨는 어떠셨어요?
박소연 :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새벽이었어요. 어두운데서 도착해서 남한에 도착했는지 어쨌는지 별로 실감이 안 났어요. 또 비행기에서 지치고... 여기 선배님도 잘 아시겠지만 우리 북한 사람들이 비행기 탈 일이 별로 없잖습니까? 그래서 비행기를 타면서 정말 보라색 꿈을 갖고 탔어요. 내가 태어나서 비행기를 타보네... 이러면서요. 땅이 착륙할 때 막 흔들리고 그러니까 너무 지쳐버린 거예요.
문성휘 : 생각보다 무섭죠?
박소연 : 네! 우리끼리 비행기가 좋은 게 아니다, 굉장히 피곤한 거다... 막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웃음) 그 때 도착해서 밖으로 나오니까 가을비가 부슬 부슬 오는데 어떤 한국 분이 오셔요. 그 분이 웃으면서 인사를 하는데 첫 마디가 '여기는 대한민국 인천 공항입니다. 대한민국에 오신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 이러니까 막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문 기자님도 그러셨나요?
문성휘 : 저도 울었죠. (웃음) 근데 도착할 때보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 비행기에 타서 땅하고 점점 멀어질 때, 바로 그때 진짜 눈물이 나더라고요. 진짜 가는구나. 앞으로 나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슬픈 생각도 나고 기쁜 생각도 나고요. 아마 저 말고도 여기 온 모든 탈북자들이 다 그랬을 겁니다. 비행기 안에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내 대한민국에 가서 지나간 과거를 다 보상받을래. 진짜 열심히 노력해서 정말 잘 되겠다! 두고 보자! 막 눈물을 흘리며 맹세를 하는데 정작 몇 달이 지나면 그 맹세가 다 어디로 갔는지 모릅니다. (웃음) 그때는 맹세가 정말 불 같았습니다. 도착해서도 소연 씨가 말한 것처럼 '여기가 대한민국 땅입니다. 환영합니다' 이러면 그 순간에 눈물이 왈칵 나와요.
진행자 : 그 분들은 의례적으로 하는 말일 수도 있는데 탈북자들에게는 그 의미가 정말 다르겠어요.
문성휘 : 아마 탈북자들을 고정 마중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예요. 매번 하는 말이지만 듣는 사람들이 그게 새롭게 안겨오니까...
진행자 : 소연 씨는 비행기 안에서 '남한에 가면 이렇게 살아보겠다...' 이런 결심 좀 하셨습니까?
박소연 : 그럼요. 선배님과 똑같아요. 태국에 있을 때만 해도 불안했어요. 거기다가 북한에서 태국 이민국 수용소에 대한 소문이 많았습니다. 특공대들이 와서 뭘 어쩐다, 사람을 잡아 간다는 등의 소문이 있었어요. 그랬는데 비행기에 일단 타니까 옆에 탑승객들이 막 한국말을 하는 거예요. 그때서야 실감이 나더라고요. 솔직히 여기 우리 선배님이나 나나 다른 탈북자들도 누가 한국에서 오라해서 온 것도 아니고 의지하고자 왔는데 이 분이 환하게 웃으면서 우리를 환영한다잖아요! 또 우리가 중국에서 제 3국을 거쳐서 오면서 솔직히 인간 대접을 못 받았습니다. 불법 체류자, 죄 아닌 죄로 수용소에 들어가 있고...
문성휘 : 맞아요. 북한에서 늘 그러잖아요? 나라를 잃으면 개보다 못 한 취급을 받는다... 중국에서 쫓겨 다닐 때는 진짜 내 운명이 개보다 못 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더욱이 그래서 우리 남한으로 오고 싶었던 것이죠.
박소연 : 맞습니다.
문성휘 : 우리를 품어줄 곳, 내가 의지할 조국이 있어야 한다... 중국에서 단속을 안 하면 이런 생각을 안 할 수도 있어요. 물론 남한은 잘 사는 국가니까 오고 싶은 마음도 있겠지만 가족들에게 피해가 갈까봐 그냥 중국에 있는 사람도 많을 겁니다. 그러나 중국에 있으면 저희는 사람대접을 못 받습니다. 그래서 기댈 곳을 찾아오는 게 바로 여기, 남한입니다.
진행자 : 이런 얘길 들으면 정말 우리 남한 사람들이 탈북자 분들 진심으로 환영해드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살다보면 정반대의 느낌을 받으실 때가 있다는 거죠.
문성휘 : 그렇죠. 그게 살다보면 상당히 이질감이 느껴지고 남한 사람들을 상대하기가 무서워지는 그런 순간이 있습니다. 그 순간이 다 지나면 정착이 되는 거예요. 소연 씨가 느껴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장에 가서도 물건을 사고 싶어도 뭘 물어보질 못해요.
박소연 : 정말 맞아요! (웃음)
문성휘 : 뭘 물어보면 얼굴을 이렇게 한참 쳐다봐요. 그리고 연길에서 왔어요? 중국에서 왔어요? 그럽니다. 이거 뭐라고 답을 하나 얼마나 당황스러운지... 중국에서 왔다고 해야 하는지, 북한에 왔다고 해야 할지. 중국 사람들이 일 하러 남한에 많이 와있지 않아요? 북한 사람이라고 하면 모두 이상한 사람으로 보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요. 그래서 북한 사람이라고 선뜻 말이 안 나옵니다.
진행자 : 그리고 북한에서 왔다고 하면 그 뒤에 이어지는 질문이 한두 개가 아니죠. (웃음)
박소연 : 네, 알고 싶어 하는 게 너무 많으세요.
문성휘 : 한국 사람들이 북한에 대해 얼마나 모르냐면 북한에서 왔다고 하면 북한에서는 여권을 어떻게 떼냐고(발급 받냐고) 물어봐요. (웃음)
박소연 : 여기랑 똑같은 줄 알아요.
문성휘 : 아... 이러니 통일이 어떻게 될까요.(웃음) 북한에 대해서 너무 관심이 없어요.
진행자 : 소연 씨도 이런 거 많이 느껴요?
박소연 : 이게 피할 수 없는 단계인 것 같아요. 여기 선배님이 걸어온 길을 우리가 고대로 따라가는 거죠. 대신 남자들은 여자들보다 더 안 바뀌죠. 여자들은 남자들보다는 조금 빠른 것 같아요. 여기 선배님도 남한에 오신지 오래됐는데 아직도 고향 말투가 그대로세요.(웃음)
진행자 : 무슨 말씀이세요. 아무도 모른다고... (웃음) 사람들이 들으면 북한에서 온 지 아무도 모른다고 주장하십니다.
문성휘 : 진짜라니까요. (웃음) 물론 조금만 길게 말하면 다 알리죠. 그러니까 말도 그래, 남한 분들하고 상대를 하다보면 그럴 때가 있어요. 인터넷을 보다보면 외국인들하고 탈북자들을 싸잡아 욕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남한에 너무 외국인이 많아서 일자리가 더 없다...그런데 탈북자도 외국인으로 포함시켜요. 그런 글을 보면 몸이 딱 굳어지죠.
진행자 : 탈북자도 외국인으로 취급받는 현실이 안타깝다는 말씀이네요.
박소연 : 맞아요. 다문화 가정 취급받아요. 누가 조선족이냐 물어보면 사실 저는 기분 없습니다. 전 한국인이에요... 그럽니다. 왜냐면 우리는 주민등록증이 있잖아요. 우리는 죽음의 고비를 넘어왔다는 자존심이 있습니다. 남한 생활을 몇달 했지만 당황했던 일들도 꽤 있죠….
소연 씨 처음 만나고 남쪽 생활 괜찮냐고 물었더니 왜 한국에 조선족이 그렇게 많으냐고, 자기보고 다 조선족이냐고 물어본다며 얼굴이 빨개지도록 화를 냈는데요. 소연 씨는 남한에 올 때 중국 사람이 남한에 많이 일하러 온다는 사실도 또 탈북자들이 2만 명 넘게 왔다는 사실도 몰랐다고 합니다.
지금은 머릿속에 생각했던 남한을 실제로 배워가는 단계인데요. 현실이 확실히 더 힘들고 좋지 않은 면들도 있죠. 그러나 다행히도 좋은 점이 많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좋은 점 중에 하나가 바로 '사람'이라고 말했는데요. 문 기자는 이런 소연 씨에게 남한에서 얻어야할 가장 큰 재산이 '사람'이라고 조언 합니다.
이 얘기 다음 시간에 이어갈게요. 지금까지 진행에 이현주 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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