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11월, 남한에 도착해 올해 남한 생활 5년 차를 맞고 있습니다. 2012년 아들을 데려와 혼자서 키우는 열혈 '워킹맘' 그러니까 일하는 엄마입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엔 남한 정착 10년차, 자강도 출신 탈북 기자 문성휘 씨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 저희 동기 중에서 가장 빨리 간 친구가 하나원 나와서 1달 있다가 결혼했습니다. 1년 뒤에 돌잔치를 갔는데 그게 남한에서 처음 가본 돌잔치였어요. 감동 받았어요. 영화관처럼 큰 화면에 주변을 어둑어둑하게 해놓고 영상을 틀어주는데 아이를 임신하면서부터 배가 불러오고 아이를 낳고. 그리고 아이가 성장하는 1년 간의 모습 모두를 DVD로 잡아서 화면에 틀어주고... 그래도 지금이 되다보니 북쪽의 돌 생일이 그립고 ...
성장 동영상, 성장 앨범, 모바일 초대장, 돌잡이 이벤트, 포토테이블, 답례품... 인터넷에 올라있는 돌잔치 준비물에 올라있는 품목들입니다.
남한에 한 때 유행했던 유행가 중에 '세상은 요지경'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세상은 요지경, 요지경 속이다... 이런 노래인데요. 청취자 여러분이 남쪽 돌잔치 얘기를 들으면 딱 그렇게 생각할 것 같습니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지난 시간에 이어 돌잔치 얘깁니다.
박소연 : 전 한국에 와서 제일 좋았던 게 영상이 좋았고요. 그리고 갈 때면 소정의 선물을 주는데 세수수건이 제일 많았습니다. 그냥 주는 게 아니라 세수수건 밑에 아이 이름이 똘똘이라면 '우리 똘똘이의 첫 생일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문구와 함께 날짜를 새겨서 줍니다. 사람들이 이 세수수건을 쓰면서 똘똘이 돌 생일에 받아왔지 할 것이고. 우리 아이 이름이 박힌 수건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엄마는 행복하네요.
진행자 : 집에 가면 그런 글씨가 안 박힌 수건이 없죠. (웃음) 남쪽은 돌잔치, 결혼식 같은 각종 대사뿐 아니라 체육대회 같은 때도 이런 행사 수건을 만듭니다.
문성휘 : 훗날의 두고두고 볼 수 있는 영상 그리고 사진도 얼마나 잘 찍습니다.
박소연 : 너무 잘 찍어서 실물을 보고 실망하죠.
문성휘 : 맞아요. 사진발이라고 하죠? (웃음) 그리고 이런 선물을 준다는 건 좋습니다. 처음에 돌잔치에 갔는데 동그란 상자 같은 걸 선물로 주더라고요. 저도 하나 더 챙기고 우리 집사람도 뒤로 나오면서 하나 더 가져나왔습니다....
박소연 : 잘 한다. (웃음)
문성휘 : 보니까 넉넉히 준비된 것 같았어요... 집에 와서 풀어보니 우산, 꽃 양산이었는데 기분 좋더라고요.
진행자 : 기분 좋으셨겠죠... 세 개나 들고오셨는데요. (웃음) 문성휘 : 우리 북한 사람들 잘 그래요. 티스푼도 받아보고 컵도 받아보고 차나 커피를 타 먹는 숟가락...
진행자 : 그런 걸 답례품이라고 하는데요. 답례품 전문점에 가보면 그 종류가 2백 가지가 넘습니다.
박소연 : 그런데 제가 돌 생일을 많이 가보지 않았습니까? 급이 다른 곳도 가봤습니다. 서울에 유명한 무슨 호텔에서 했는데 아들 데리고 갔었어요. 음악이 쫙 흐르매... 답례품도 이태리 짬(잼)을 주는데 솔직히 정성은 없어보였습니다. 포장지도 멋있고 들고 다니기도 있어 보였지만... 최근에 갔던 집은 세수수건을 줬는데 저는 그 집이 더 좋았습니다. 정성이 있어 보이더라고요.
문성휘 : 저도 그런 데 한번 가봤는데 정말 당황했습니다. 다 탁상에 앉아서 했는데 돌잔치라는 걸. 그 앞에 그 뭐이... 숟가락, 나이프 같은 걸 세어 보니까 일곱 개나 주더라고요. 빵을 손으로 뜯어먹어야 하는지 칼로 썰어 먹어야 하는지 모르겠고. (웃음)
박소연 : 우리 탈북자들은 그런 게 진짜 어색하고 싫어요.
진행자 : 남한 사람도 그런 문화에 익숙한 사람 많지 않습니다. (웃음)
문성휘 : 그러니까 옆에 사람들 슬쩍 눈치 보고요.
박소연 : 입 안에 들어가는 데 뭘로 먹으면 어떻고... 우아하게 먹을 필요 없지 않아요? 불편해요.
문성휘 : 역시 북한도 같아요. 잘 산다고 해서 그 집 돌잔치가 잘 됐다... 이러지 않아요. 우선은 음식이 잘 돼야해...
진행자 : 우리가 앞에서 남북의 돌잔치들을 얘기해봤는데요. 우리가 사는 모습이 달라진 것처럼 돌잔치 문화도 많이 달라졌는데 그래도 부모들의 마음... 건강하게 일 년 잘 자라줘서 고맙고 앞으로도 잘 돼라 바라는 마음은 똑같을 것 같습니다.
문성휘 : 그래서 남이나 북이나 변함없이 돌잔치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하나 궁금한 게 외국에서도 이런 돌 생일을 하나요?
박소연 : 그래요. 저도 궁금합니다.
진행자 : 첫 번째 생일이라는 데 의미는 두긴 하지만 우리처럼 이런 잔치를 하는 국가는 중국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돌잔치를 하는 이유가... 환갑이 거의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박소연 : 그렇죠. 60이면 청춘이라고 하는데요.
진행자 : 돌 생일은 아이가 1년을 넘기기가 힘들었던 시절, 돌을 넘기면 아이가 어느 정도 병에 대한 면역력도 갖게 되고 또 무사히 아이가 한 돌을 넘겼다는 건 아이나 엄마에게 큰 의미가 있었죠.
박소연 : 그래요. 중국도 돌에 폭죽을 다는데 이게 아이에게 들어오는 병마와 온갖 악귀를 없애준다고 했어요. 우리는 그래도 폭죽이나 안 터뜨리죠. 중국은 더 다사한 사람들입니다. (웃음)
진행자 : 우리도 비슷한 풍습이 있습니다. 북쪽은 지금은 안 하시는데 남쪽엔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붉은 색이 악귀를 쫓아준다고 해서 붉은 수수나 팥으로 떡을 만들죠.
박소연 : 들어는 봤지만 우리는 팥이 들어가면 쉽게 쉰다고 해서 돌이나 결혼식에 팥을 떡에 넣지 않습니다.
진행자 : 어쨌든 아이가 태어나 무사히 한 해를 넘겼다는 그 의미가 큰 것인데요. 그래서 돌잔치에 대한 얘기가 많아요. 돌잔치가 너무 화려하다... 신문기사를 봤더니, 이건 좀 특수한 경우이긴 한데 돌잔치에 855만원의 비용이 들었다. 8천 달라가 넘게 썼다는 얘기죠.
박소연 : 보통 그 정도 들지 않습니까?
진행자 : 그렇지 않습니다. 3-4천 달러 안팎이 되죠. 그래도 많은 돈 아닙니까?
문성휘 : 그렇죠. 많은 돈이죠.
진행자 : 그러니까 이런 문화를 남들이 한다고 다 따라가야 하느냐? 가족끼리 의미 있는 시간을 갖고 나머지 돈은 얘를 위해 사용하거나 돌잔치를 못하는 가정을 돕거나...
박소연 : 사실 서로의 경쟁 심리가 큰 것 같습니다.
진행자 : 그런 면이 큰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남에게 보이는 식의 허례허식 말고 좀 실속 있게 바뀌어 보자는 얘기도 많이 합니다.
박소연 : 그게 가능할까요?
문성휘 : 가능합니다. 그냥 가족 끼리 동그란 상에 둘러 앉아 아이의 첫 생일을 축하하는 정도의 시간을 가지면 되지 않나, 저 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랬든 저랬든 옛날 풍습은 아쉽지만, 옛날 풍습으로 사라질 것 같습니다.
박소연 : 그렇지만 이건 남자들의 생각이죠. 저는... 제가 지금 아이를 낳으면 남보다 잘 해줄 것 같습니다. 어쨌든 일생에 태어나 첫돌은 한번이지 않습니까?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저 하나 뿐이겠어요? 그러니까 경쟁적으로 이렇게 되는 것이죠.
진행자 : 그게 마법의 단어랍니다. 일생의 한번...
박소연 : 저부터 고쳐야 하는데 저는 못 고칠 것 같습니다. (웃음)
진행자 : 엄마의 마음이라는 게 또 그렇죠. 최고로 해주고 싶고요.
박소연 : 제가 북쪽에서 진짜 못 살다오지 않았습니까? 막 아이를 먹여 살리겠다고 감자 배낭을 메고 다니고 그랬던 저도 한국에 온지 3년 만에 이렇게 변했는데 여기서 태어난 사람들은 더 안 변하지 않겠습니까?
문성휘 : 요즘은 또 아이를 하나만 낳는 추세니까요. 그렇게 생각을 했다가도 정작 아이 돌 생일 때면 뭔가 남보다 더 잘하고 싶고 그렇게 되는 거죠...
진행자 : 그런데 어떤 게 끝까지 올라오면 내려가기 마련이잖습니까? 화려해지기만 하던 돌 생일도 그렇게 약간 씩 실속형으로, 필요한 것만 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고 하네요.
박소연 : 저부터 바뀌어야겠습니다. (웃음)
문성휘 : 요즘 젊은 애들 보면요. 결혼식을 꼭 올려야 하나, 그럴 바에는 그 돈으로 너랑 나랑 그냥 자동차 하나 사자. 집 얻는데 보태자 이런 추세가 되잖아요?
박소연 : 사실 말도 못하고 이빨도 없는 애가 무슨 돌 생일을 그렇게 차려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부모 만족인 면도 있는 거죠.
문성휘 : 아휴... 어쨌든 허례허식이라고 하지만 돌잔치 얘기하다 보니까 좀 찡한 면도 있어요.
진행자 : 저는 사람 돌잔치 얘기하면 남쪽 욕도 좀 많이 나오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웃음) 굉장히 자본주의적이지 않습니까? 돌잔치에 관련된 것들도 모든 게 다 산업이고 모든 게 다 돈이고요. 저도 남쪽의 돌잔치 문화에 비판적이었는데요. 그런데 두 분과 얘기를 나누다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자기가 자기 자식한테 해주고 싶은 만큼 해주는 거지, 그게 제일 좋은 돌잔치다...
박소연 : 그래요. 우리 자유를 찾아 여기를 왔는데 무슨 말씀이세요! (웃음) 사실 돌잔치 얘기뿐만 아니라 북한 얘기는 뭐든지 다 짠하고요. 그런데 짠한 것 뿐 아니라 좋습니다. 막 그때가 생각나고 코끝에 그 콩나물 데치던 냄새가 막 돌고요...
문성휘 : 저는 이런 얘기를 한번 씩 하면 머리를 순환 시켜주고 요즘 말로 힐링 해주는 것 같습니다.
진행자 : 저희가 이 녹음은 2015년에 시작했지만 방송은 아마 2016년 새해에 하게 될 것 같습니다. 2016년 태어나는 모든 아이들의 건강을 바라면서 오늘 시간 마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박소연 : 고맙습니다.
문성휘 : 안녕히 계세요.
진행자 : 2016년 여러분 가정에 자유와 평화를 빕니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오늘 시간 여기서 마칩니다. 다음 주 이 시간 다시 찾아옵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0:00 / 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