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연 씨는 지난해 11월 남한에 도착한 햇내기 입니다. 무산 출신으로 선전대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30대 중반의 여성인데요. 하나원 교육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남한 생활을 시작한지 이제 7개월...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에는 남한 정착 7년차, 자강도 출신 탈북 기자 문성휘 씨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 근데 남쪽 집들은 왜 이렇게 울바자가 낮아요?
오늘 얘기 시작합니다.
진행자 : 안녕하세요.
문성휘, 박소연 : 안녕하세요.
진행자 : 새해를 축하드립니다... 북쪽에서는 이렇게 인사하시죠? 남쪽에서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합니다. 새해가 시작해서 벌써 2주나 지났습니다. 어떤 소망들을 갖고 새해 시작하셨어요?
문성휘 : 올해는 좀 어떻게 하든지 통일에 대한 밝은 전망이 열려서 고향에 가도 가족, 형제들도 만날 수 있는 길이 열렸으면 좋겠습니다. 김정일 시대처럼 정말 꽉 닫아놓지 않고 김정은 시대에는 조금 열어 주지 않을까....
진행자 : 매년 그런 소망을 갖고 시작하시지 않나요?
문성휘 : 그렇죠. 그러나 올해는 좀 다릅니다. 뭔가 북한도 개혁하는 기미가 있다는 소식이 들리고요. 약간이라도 열리면 가능하지 않을까? 사실 실낱같은 희망이죠.
박소연 : 문 기자와 비슷한 소망이죠 뭐... 우리들의 소망은 다 비슷한 것 같죠? 통일은 못 되도 경제라도 좀 열려서 주민들 사는 게 나아졌으면 하고 바랍니다.
진행자 : 기대로 그치지 말았으면 좋겠는데요... 아까 소연 씨랑 얘기하다 알았는데요. 북한에서는 집 담벼락을 울바자, 울배재? 이렇게 부르네요.
문성휘 : 담이란 말도 쓰긴 합니다. 전혀 안 쓰는 건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울바자, 울배재 그럽니다. 판자로 세운 울타리라고 해서 울바자라고 많이 했었죠. 이제 남쪽은 그런 울타리를 찾아볼 수도 없죠?
진행자 : 남쪽 집은 대나 갈대, 싸리로 만든 울바자는 이제 없고 대신 시멘트나 벽돌로 담벼락을 쌓죠. 땅집들엔 울타리가 없는 집도 많고 아파트에는 낮은 철망이나 나무를 심어 놓습니다.
문성휘 : 남한은 집에 울타리가 있어도 낮고 예뻐요. 다 공장에서 만들어서 나오니 깨끗하고 좋아요. 한국에서 놀라운 것 중 하나가 아파트를 건설할 때 공사장 주변에다 높게 천이나 판자로 울타리를 쳐서 막아 놓은 겁니다. 요새는 그 울타리 앞에 좋은 그림이나 사진을 인쇄해서 붙여 놓더라고요. 보기 좋습니다.
진행자 : 도시 미관도 그렇지만 안전상의 문제 때문에 그렇게 하기도 합니다.
문성휘 : 북한에서는 건설장에 울타리를 친다는 건 상상도 못하고요. 개인들이 자기네 집에 제절로 고정대를 세우고 판자를 잘라 못을 박아 높게 울배재를 붙입니다. 근데 이 울바자를 지키는 게 진짜 전쟁이었어요. 밤에 와지끈 소리가 나서 달려 나가보면 판자가 떨어져 있습니다. 땔감으로 쓸려고 훔쳐가지 않으면 자기 집 창고를 수리하자고 남의 집 울바자를 뜯는 거죠. 그래서 울바자도 단순히 못을 박는 게 아니라 그 위에 철판으로 띠는 두르고... 진짜 가지가지 방법을 동원합니다. 제가 있을 때는 김정일의 지시라고 해서 흙벽을 쌓기도 했어요. 힘 있는 공장들은 벽돌로 쌓고 개인들은 진흙으로 '코피'라고 블로크를 찍어서 담을 쌓았습니다. 정말 복잡했는데 지금은 어때요 소연 씨?
박소연 : 지금도 비슷하죠. 문 기자님 기억하는지 모르겠는데 왜 김일성 사망 전에는 땅 집엔 바자가 없었잖아요? 저희 집도 1동 4세대 땅 집이었는데 (4채의 주택이 나란히 지어진 상태) 양 옆을 1미터 정도를 짬을 띠어서 회칠을 곱게 해서 세웠습니다. 그런데 사는 게 바쁘고 도적이 성하니까 네 집이 분리되는 거예요. 집 앞의 면적을 4 등분으로 나눠서 배재를 높게 세우기 시작했는데 보통 2미터가 넘었죠.
문성휘 : 네, 맞아요! 저희들 어렸을 때도 울타리가 없었어요. 집 앞에 쪼르르 창고가 있었고...
박소연 : 어렸을 때 친구들하고 뜀뛰기를 하고 5-6미터 되는 줄을 갖고 '뛰어라'라는 것도 하고 했는데 공간이 좁아지니까 아이들이 놀 곳도 없네요.
문성휘 : 기억나네... 제가 올 때도 거의 울배재 높게 쌓기 경쟁을 했거든요. 될수록 높이 쌓아요.
진행자 : 도둑 때문인가요?
문성휘 : 그렇죠. 그리고 힘이 있거나 잘 사는 사람들은 승냥이 같은 개를 기릅니다. 도적을 막아야 하니까요. 옛날 사회주의가 붕괴할 때 로마니아 상공으로 비행기가 지나가도 양말짝이 이러진다... 이런 농담이 있지 않습니까?
진행자 : 그게 무슨 뜻입니까?
문성휘 : 도적들이 너무 성해서 비행기가 뜨면 비행기 꼭대기에 있던 도적들이 땅바닥의 양말을 훔쳐간다는 얘깁니다. 그러니까 지나가는 건 다 도적이란 말이죠. 북한이 지금 그것과 같습니다. 북한 사람들, 저건 전문적인 도적이다 이건 아니다... 이렇게 평가를 할 수 없습니다. 북한 주민들이 협동농장 밭에 지키는 사람이 없으면 누구나 다 콩 싸개질, 콩을 불을 태워서 먹는 콩청대를 자연스럽게 해먹습니다. 또 주인이 없으면 마음대로 감자를 파서 구워 먹고 그러는데 그것도 따지고 보면 다 도둑질이죠. 사실 누구 도둑이라는 게 없어요. 전체 인민이 다 도둑이죠.
진행자 : 그렇게 안 하면 살 수 없다는 거네요.
문성휘 : 그렇죠.
박소연 : 이제 곧 설날이잖아요? 저 고등학교 다닐 때만해도 설날 아침이면 일찍 엄마가 떡을 해서 사발에 담아줘요. 눈이 한 뼘도 넘어온 마당 앞을 발자국 소리를 일부러 크게 내면서 옆집으로 가서 "큰어머니 새해를 축하합니다" 하면서 떡을 드리곤 했어요. 그런데 울바자를 하고 나서부터는 그 풍습이 자연히 없어졌습니다. 남한에서 설을 쇠다보니 갑자기 그런 고향 생각이 나면서 울바자 생각도 났습니다. 우리가 옛날에는 집에서 신는 슬리퍼(쓰레빠)를 달달 끌고 옆집에 가서 떡도 주고 그 집에서 맛있는 반찬도 가져다 먹고 그랬는데 (울)배자가 그 모든 인간과 인간 사이의 정을 갈라놓은 것 같아요.
문성휘 : 맞아, 우리 때도 진짜 그랬네요.
박소연 : 도적이 너무 성하고 살기 힘드니까 그 다음부터 사람들이 야박해지고 배자를 높이 세우기 시작한 거죠. 그 (울)배자도 언젠가 김정일이 현지 지도를 온다고 동사무장이랑 도당에서 선전 일꾼들이 나와서 배자를 40미터로 무조건 낮추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온 인민반 사람들이 동원 되서 생돈을 써서 만든 배자를 낮췄는데 그 다음부터는 도적이 더 성해졌어요. 오죽했으면 우리 고향엔 도적들이 동사무장보고 친누나라고 한다는 농담도 돌았습니다. (웃음) 그래서 사람들의 원성을 사긴 했는데 동사무장의 요구는 당의 요구지 개인의 목소리가 아니에요. 그러니 사람들이 어쩔 수가 없는 거죠.
진행자 : 그런데 당에서 왜 낮추라고 하는 거죠? 도둑이 많아서 높인 것이잖아요.
문성휘 : 사회주의라는 게 다 그래요. 수령이 한번 보고 지시하면 그대로 다 따라야 하니까요. 남한은 대통령이 울타리를 낮추라고 하면 모두 대통령이 별 걸 다 신경 쓴다며 난리 날 거예요. 그런데 북한은 그렇지 않아요. 김정일이나 김정은이 현지시찰을 하다가 제각각인 울배재가 보기 싫다고 낮추라 하면 전국의 울타리가 쫙 다 낮아집니다. 그게 북한이라는 사회죠.
진행자 : 시키면 일단 하긴 하는데 주민들도 시키는 이유와 타당성을 모르니 당에서 도대체 왜 이러는지 불만이 많겠어요.
문성휘 : 생각해보면 옛날에도 울타리 높이 친 사람들이 있었어요. 제가 어릴 때 보면 남한 출신들, 의용군 출신, 남로당 출신은 그때 차별을 많이 당했어요. 그리고 귀화한 재일동포, 귀국동포라고 했는데 그 사람들이 사는 단층집은 꼭 울타리를 높이 쳤어요. 그 사람들은 굉장히 격리된 생활을 하고 일반 북한 주민들하고 거의 휩쓸리지 않았어요.
진행자 : 얼마나 감시하는 눈이 많았겠어요. 그런 눈을 피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나요? 생각해보면 제가 어릴 때 동네에 담이 높은 집들이 있었어요. 동네에서 담에 가장 높은 집은 사실 제일 잘 사는 집이죠. (웃음) 그런 집들은 담장 위에 쇠로 창살 같은 거 삐쭉하게 하고....
박소연 : 어머 딱 똑같아요. (웃음)
문성휘 : 저희들 나올 때도 그랬거든요. 집이나 공장도 시멘트로 울타리를 높게 쌓으면 사기유리, 사발 깨서 담벼락을 했어요.
진행자 : 사람 사는 거 다 같죠 뭐... 근데 이렇게 남쪽에서는 담벼락을 높이는 이유는 지킬 재산이 있으니까 도둑이 들어오면 안 되기 때문인데 북한에서는 사는 사정이 다 비슷하지 않습니까?
문성휘 : 남한의 재산이라는 의미는 집, 은행에 저축한 통장, 가지고 있는 귀금속 그 외에 자동차 이런 거죠. 북한에서 도적질 할 건 자전거, 오토바이 그 다음에 텔레비전, 재봉기 대가리, 선풍기... 그런 게 훔쳐갈 만한 거죠.
박소연 : 변압기요!
문성휘 : 아 마자요. 변압기!
진행자 : 변압기 무거운 걸 어떻게 들고 뛰어요?
박소연 : 도둑은 100킬로라도 매고 뛸걸요. (웃음)
문성휘 : 그리고 훔칠 것이 또 있다... 돼지우리에 있는 돼지요. 우리 옛날엔 돼지를 키워도 돼지우리에서 냄새 난다고 집에서 아주 멀리 지었거든요. 그것도 나무로 돼지우리를 만들었는데 도둑이 성하니 그걸 다 부시고 집 앞쪽으로 옮기면서 땅굴을 파서 그 아래로 넣었습니다. 그 위에 든든한 문을 만들어 덮고 자물쇠를 걸었어요. 이젠 그것도 여의치 않으니까 낮엔 쇠말뚝을 박아 밖에서 키우고 낮엔 집 안으로 데리고 들어갑니다.
진행자 : 돼지도 들고 뛰는 군요. (웃음)
문성휘 : 그럼요. 한 때 북한에 이런 농담이 있었습니다. 늙은 부부가 염소를 키웠는데 밤에 염소 우는 소리가 나서 나가보니까 쪽지를 남겨 놓았답니다... 할아버지, 인민군대 아저씨들을 따라가요... (웃음)
정말 북쪽에는 별별 농담이 다 있네요... 남쪽에서도 울바자라는 말을 씁니다. 싸리나 대, 수수깡 등으로 만든 울타리를 가리키는 말인데요. 요즘 그런 울타리가 사라지면서 '울바자'라는 말도 거의 들을 수가 없습니다.
북한의 높은 울바자... 도둑으로부터 집을 지키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당국의 감시로부터 내 생활을 지키기 위한 목적도 있습니다. 해외로 전화를 하는 건 물론이고 외국 방송이라도 보다가 걸리면 큰일이니 장막을 높이는 것이죠. 이 높은 울바자가 당과 인민 간 인식의 차이를 잘 보여주는 듯 합니다.
다음 시간에 이 얘기 이어갑니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다음 주 이 시간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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