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11월, 남한에 도착해 올해 남한 생활 3년 차를 맞고 있습니다. 2012년 아들을 데려와 혼자서 키우는 열혈 '워킹맘' 그러니까 일하는 엄마입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엔 남한 정착 8년차, 자강도 출신 탈북 기자 문성휘 씨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 저번에 약국에 가서 눈약을 달라고 했어요. 내 돈 내고 사는데 의사 처방전이 없다고 안 판다는 겁니다! 아니, 저기 약이 있고 내 돈 내는데 그냥 주면 안 되냐 했더니 안 된대요...
남쪽에선 약 사는 거 하나도 왜 이렇게 복잡한지, 약 상자에는 또 무슨 설명이 그리 장황한지, 소연 씨 불평이 끝이 없네요. 그래도 여기는요, 밀가루 약은 없습니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오늘은 약 얘기 해보겠습니다.
진행자 : 안녕하세요.
문성휘, 박소연 : 안녕하세요.
진행자 : 소연 씨도 그렇고 저도 문 기자도 모두 감기가 잔뜩 왔습니다. (웃음)
박소연 : 다들 약골들이에요. (웃음)
문성휘 : 감기는 대한민국이 더 많이 걸리는 것 같아요. 북쪽은 겨울에 날씨가 차서 감기 균이 잘 전파 안 되고 또 북한 사람들 면역력이 강하죠. 매일 산에 가서 나무를 하고 나무를 패기도 하고, 장마당에 나가 앉았기도 하고 매일 운동을 하는 셈입니다. 근데 여기는 저만해도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있을 때가 많아요.
진행자 : 그리고 다들 막힌 실내에서 생활하니까 아무래도 감기가 쉽게 걸립니다.
문성휘 : 한 번 걸리면 잘 낫지도 않고요. (웃음) 이제 북한하고 살 때랑 달라져서 저도 한국 사람이 다 됐습니다. 근데 병원들이 하도 좋으니까...
박소연 : 저도 감기 앓고 있는데요. 온 지 얼마 안 됐는데 벌써 그러네요. 저도 이제 남한 사람 다 된 건가요? (웃음) 북한에서는 겨울에 감기 걸렸던 기억이 별로 없어요. 그리고 열이 좀 날만하면 정통편을 밥 먹듯이 먹으니까...
진행자 : 정통편이요? 약 이름입니까?
박소연 : 네, 중국 약인데요. 그걸 집에 100알-200알 씩 사놓고 감기다 싶으면 한 번에 두알 씩 뜯어먹죠. 그러면 반나절까지는 머리가 거뜬해요. 그걸 한주일 먹다나면 감기가 절로 떨어지고 돈도 적게 들고 했는데 남한에 오니까 감기가 잘 안 떨어지네요.
문성휘 : 정통편이라는 게 중국에서 나오는 약인데 한국에는 수입이 안 됩니다. 수입을 못하게 막았죠. 그리고 중국 사람들도 감기 걸렸을 때 정통편 절대로 안 먹습니다. (웃음) 오직 북한에만 들어가는 약이죠.
진행자 : 한국에 수입도 안 되고 중국 사람들도 안 먹는다... 수상한데요?
문성휘 : 마약에 중독된 사람들이 당장 마약이 없으면 정통편을 30알정도 태워서 먹기도 합니다. 아편 태워 먹는 거랑 같죠. 그러니까 마약 성분이 들어있다는 얘기죠. 사실 이걸 계속 먹으면 굉장히 안 좋을 거예요. 실제로도 정통편을 계속 먹으면 중독되고요. 진행자 : 굉장히 독한 진통제 같네요. 그런데 어차피 감기약을 중국에서 수입해다 먹을 거면 중국 사람들 먹는 감기약을 수입하면 안 되나요?
박소연 : 그 약은 비싸죠... 북한은 제일 싸구려를 들여오잖아요? 약도, 음식도 제일 싸구려만 들어오고. 어쩔 수 없죠 뭐...
진행자 : 그래도 이건 건강, 생명에 영향이 있는 건데요.
문성휘 : 그렇다고 해도 한두 번은 괜찮은 거고 그리고 뭐요? 북한 사람들에게 건강? 장기적 영향? (웃음) 제가 항상 말하지 않습니까? 북한 사람들은 길고 가늘게 사는 것보다 짧고 뚝하게 사는 걸 원합니다. 약 같은 건 정말 믿을 것이 하나도 없어요. (웃음) 그래도 우리 어릴 때는 아스피린, 신토미찐 이런 약들이 있었는데 야... 그 약 포장을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우스워요. 6알씩 껌 딱지처럼 포장이 돼있었어요. 근데 한국 약은 약을 사면 웬 사용설명서가 어쩜 그리 길어요?
박소연 : 그건 좀 짜증납니다. 너무 길어요.
문성휘 : 북한은 약을 먹는 게 단순하고 무서운 게 없어요. 설사, 감기 이렇게만 써 있고요. 여기는 이걸 먹고 과민반응을 일으킬 수 있고 어쩌고... 그런 거 없어도 약을 먹고 죽는 일은 거의 없던데요? (웃음)
진행자 : 북쪽은 딱 정해진 약만 팔리고 종류도 얼마 안 되잖아요? 여긴 약국에 들어가면 사방이 다 약으로 꽉 차있는데요.
문성휘 : 하긴 그래요. 근데 지금은 북한도 유엔 약품도 많이 팔리고 있고요. P500 같은 철 비타민도 있고... 그게 아마 유엔에서 노약자들에게 공짜로 나눠주는 약일 텐데 다 장마당에서 팔리고 있습니다.
진행자 : 대표적인 게 결핵약이죠?
문성휘 : 맞습니다. 그게 유엔에서 나오는 결핵약 중에 '도쯔'라는 게 있어요. 그걸 왜 '도쯔'라고 하는지 모르겠는데 '도쯔', '도쯔'해요. 이 결핵약 6개월 분이 한 세트거든요.
진행자 : 아, 제가 여기 찾아보니까요. 결핵 치료 요법 중에 도쯔 DOTS 요법이라는 게 있답니다. 그걸 따서 도쯔 약이라고 하나 봅니다.
문성휘 : 아... 그렇군요. 근데 그 약은 유엔에서 결핵 환자들에게 무료로 주는 거잖아요? 그 약이 장마당에서 팔리고 게다가 값도 엄청 비쌉니다. 한 세트, 6개월분에 북한 돈으로 30만원입니다.
박소연 : 지금 쌀값이 한 킬로에 5천원이라고 하니까 쌀 60킬로 값입니다. 장난 아닌 거죠...
문성휘 : 그리고 솔직히 결핵약을 장마당에서 사 먹는 사람들일수록 가난한 사람들이죠. 힘 있는 사람들은 그걸 빼서 장마당에 파는 놈들이니 사먹을 필요가 없겠죠. 진짜 결핵 환자들은 그 약의 혜택을 전혀 못 보고 있습니다.
진행자 : 자료를 보니까 북한 인구의 5% 정도를 결핵 환자라고 하던데요.
박소연 : 그렇게 많을까요?
문성휘 : 북한 당국이 지원을 받으려고 부풀렸을 수도 있고요. 뭐, 그렇게 까진 아니더라도 엄청 많은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장마당에서 제대로 된 약이면 또 괜찮죠? (웃음) 요즘은 유엔에서 나온 약을 똑같이 모방해서 집에서 밀가루로 약 모양을 똑같이 타진기에 찍어내 팝니다. 그걸 찍어서 찹쌀가루에 담갔다 꺼내면 반짝 반짝 정말 진짜 같거든요? 특히 결핵약 중 하나인 이소(이소니아지드) 같은 건 이건 그냥 하얗고 약에서 쓴 맛이 나니까 사람들이 꿀떡 삼켜요. 그러니까 밀가루로 그냥 막 팡팡팡팡 찍어서 장마당에 내다 파는 거죠. (웃음)
진행자 : 그럼 진짜 약과 가짜 약은 어찌 구분합니까? 약 먹고 차도가 있으면 진짜고 아니면 가짜인건가요? (웃음)
문성휘 : 그러니까 감기약을 먹다가 사람들이 그래요. 이거 가짜인 모양이다... 일주일 넘게 먹었는데 아무 효과도 없다. (웃음)
박소연 : 솔직히 지금 문 기자가 얘기한 이소니아지드는 결핵에만 먹는 게 아니라 밥맛이 없을 때도 먹어요. 저는 그걸 많이 먹었어요. 위병이 있거든요. 이걸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아내는 방법이 있는데 바늘을 갖고 가서 약 가운데 꼽고 라이터로 불을 붙여놔요. 파랗게 불이 일어나면 그거 진짜고요. 그냥 꺼지면 그건 가짭니다.
진행자 : 약 사러 가면서 바늘하고 라이터도 가져 가야한다... (웃음)
박소연 : 그렇죠. 내가 진짜를 사겠다면 그래야죠. 이소는요, 남한 식으로 말하면 가정상비약입니다. 이소와 아까 얘기한 정통편, 졸론, 대장염에 먹는 아편꽃현초알약. 그리고 아편도 비상약입니다. 이건 꼭 있어야 해요.
문성휘 : 얼음도 비상약으로 갖고 있는 사람 많습니다. 밤중에 급하게 아프거나 뇌출혈이 있어서 쓰러졌다거나 하는 경우를 대비해서 아편과 얼음을 조금씩 다 가지고 있습니다.
진행자 : 아편꽃현초알약이요? 이건 뭔가요?
문성휘 : 아편대를 달여서 만든 약인데 설사에 좋죠.
박소연 : 졸론은 먼 길을 걸어 다리가 아프고 각이 막 쏘고 그럴 때 아주 좋아요.
진행자 : 근육통 치료제네요.
문성휘 : 그렇죠. 제가 어렸을 때 그 졸론을 많이 먹었어요.
진행자 : 어렸을 때 근육통 치료제를 많이 드셨다고요?
문성휘 : 보약처럼 생각하는 겁니다. 몸에 좋다니까. 아버지가 이걸 백 알 짜리를 어디서 얻어갖고 오셨는데 아주 좋은 약이라고 어머니가 저한테 하루에 한 알씩 먹으라고...(웃음) 저 강짜로 그거 한통 다 먹었습니다.
진행자 : 몸이 좋아지셨어요?
문성휘 : 좋아지긴요. 간만 망가졌겠죠...(웃음) 그리고 한국에 와서 정말 너무 놀랐는데 영사가루라는 게 있어요. 어릴 때 제가 심장이 좋지 않다고 영사 가루를 먹었습니다. 이것도 먹는 방법이 있는데 계란 노른자에 가루를 넣어 쪄서 주거든요? 정말 맛없어요... 근데 여기 와서 보니까 그게 산화수은으로 만든 것이고 병원에서 함부로 처방을 안 해주더라고요. 우리 어릴 때는 그 영사 가루를 마구 팔았어요. 한국은 의사의 처방이 있으면 팔아주고 없으면 안 팔잖아요? 북한은 그게 없습니다.
박소연 : 저는 그게 너무 싫습니다. 제가 진단하고 경험이 있으니까 약도 알아서 사먹고 했는데요. 체기가 있으면 식초에 소다를 풀어먹으면 죽 내려가곤 했는데 여기서는 제가 소화제를 그렇게 먹는다하면 저 여자 되게 무식하다 할 겁니다.
진행자 : 남쪽에서 청소할 때 사용하는 유한락스 아십니까? 소독약이에요. 그런데 그거 옛날에는 감기약으로 물에 희석해서 썼답니다.
문성휘 : 네? 그 냄새나는 걸요?
진행자 : 남쪽도 약에 대해서 지금은 조심하지만 예전엔 그렇게 민감하지 않았다는 얘기죠. (웃음) 소연 씨가 소다를 식초에 타 마신다고 이상하게 보진 않을 거예요. 근데 북쪽에서 오신 분들은 제가 처음 들어보는 각 종 민간요법들을 너무 많이 아시더라고요.
박소연 : 그리고 또 한 가지 싫은 게 있는데요. 제가 저번에 약국에 가서 눈약을 달라고 했는데 내 돈 내고 사겠다는데도 의사 처방전이 없다고 안 판다는 겁니다! 아니, 저기 약이 있고 내 돈 내는데 그냥 주면 안 되냐 했더니 안 된대요. 그래서 그 약국에선 그냥 나오고 다른 약국 가니 똑같은 소릴해서 결국 병원에 가서 처방전을 떼어왔어요. (웃음) 그랬더니 공짜로 안약을 주긴 했는데... 솔직히 북한은 병원 안에 약국이 있는데 여기는 왜 병원으로 갔다가, 약국에 다시 가고...
이게 바로 의약 분업. 그러니까 의사가 환자를 진료해 약을 처방하고 그렇게 처방된 약을 약사가 제조하는 분업 체제로 남쪽도 2천년부터 시작됐습니다. 소연 씨뿐 아니라 당시 남한 사람도 굉장히 불편해했는데요. 약을 쉽게 살 수 있으면 아무래도 더 많이 먹을 테니 약의 오남용을 줄이기 위한 결정이었습니다.
항상 넘쳐서 문제인 남쪽, 항상 모자라서 문제가 되는 북쪽. 이게 제일 극명하게 보이는 게 이 '약' 문제 같은데요. 어쨌든 약 얘기를 하면서 생각나는 속담 하나, '모르는 게 약이다!'
약 얘기, 다음 이 시간에 이어갑니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지금까지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다음 주 이 시간 다시 인사드릴게요.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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