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게 약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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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11월, 남한에 도착해 올해 남한 생활 3년 차를 맞고 있습니다. 2012년 아들을 데려와 혼자서 키우는 열혈 '워킹맘' 그러니까 일하는 엄마입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엔 남한 정착 8년차, 자강도 출신 탈북 기자 문성휘 씨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 저번에 약국에 가서 눈약을 달라고 했어요. 내 돈 내고 사는데 의사 처방전이 없다고 안 파는 겁니다! 아니, 저기 약이 있고 내 돈 내는데 그냥 주면 안 되냐 했더니 안 된대요...

남쪽에선 약 사는 거 하나도 왜 이렇게 복잡한지, 약 상자에는 또 무슨 설명이 그리 장황한지, 소연 씨 불평이 끝이 없네요. 그래도 여기는요, 밀가루 약은 없습니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지난 시간에 이어 약 얘기 해보겠습니다.

박소연 : 약국에 가서 안약 말고 눈물길 수술해서 넣는 약을 달라고 하니까 처방전을 가져오래요. 그래서 제가 저기 눈약이 있는데 내가 내 돈 내고 산다하니 그냥 주면 되지 않냐고 했더니 처방전이 있어야 한답니다. 그래서 이 약국 다시 안 온다고 나가서 다른 약국을 갔는데 거기서도 또 안주겠대요. 그래서 할 수 없이 병원에 가서 처방전을 받고 약국에 갔죠. 북한은 병원 안에 약국이 있는데 여기는 병원 맞은편에 있는 개인 약국에 가서 처방전을 냈더니 약을 주는데 돈은 안 내더라고요. 공짜니까 좋아서 내가 괜히 욱 했구나 후회했습니다. (웃음)

진행자 :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의사한테 진료를 보고 처방전을 받아서 약사한테 약을 사는 것, 이걸 '의약분업'이라고 합니다.

남쪽에서도 2천년에 시작했는데요. 시작된 이유가 약을 너무 오남용해서였어요. 사람들이 약을 쉽게 살 수 있으니까 너무 사고 또 많이 먹으니 그걸 막자는 거죠.

문성휘 : 약을 쓰레기장에 함부로 버리지 말라고 한국에서 늘 그래요. 약은 병에 따라 다른 사람이 먹으면 안 되는 물질이 있어서 그걸 음식물 쓰레기통에 넣으면 안 되는 거예요.

진행자 : 약은 꼭 모아서 약국에 가져다 버리셔야 해요. 약국에 가서 물어보세요. 약 버리는 쓰레기통이 따로 있습니다.

문성휘 : 아, 그래요? 지금 처음 알았어요.

박소연 : 저는 쓰레기통에 다 버렸어요.

진행자 : 그러면 절대 안 된답니다.

박소연 : 북한에 있을 땐 약이 비싸고 귀하니 버리는 일이 없었어요. 그런데 남한에 와서 약도 많이 버리게 되네요...

진행자 : 그러니까요. 그래서 의학 분업이 시작된 건데 예전보다는 좀 덜한 것 같고요. 제일 중요한건 페니실린 같은 항생제를 너무 많이 처방하는 관행을 좀 바꾸자는 건데 항생제를 많이 처방받으면 나중에 정말 큰 병이 생겼을 때 내성이 생겨서 항생제가 잘 안 듣는데요. 이런 약의 오용이나 남용 때문에 생기는 문제를 방지하고자 의학 분업을 실시하고 있는데 불편하다고 말씀하시는 것도 이해가 되요. 늘 하는 말이지만 북한은 항상 모자라서 문제고 여기는 남아서 문제입니다.... (웃음)

박소연 : 그리고 북한은 전 주민이 의사예요. 자체로 진단하잖습니까?

진행자 :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박소연 : 만약 시장에 나가서 누가 콜록콜록하면 야, 이번 감기는 정통편보다 아스피린에 뭘 섞어먹으면 좋다더라... 이럽니다. 중국에서 대대적으로 약을 가져와서 개인들이 집에서 약장사를 해요. 그 사람들은 과거에 의사 자격을 지닌 사람이 많은데 집에 CT를 할 기구도, 실험 기구도 없죠. 그냥 환자의 소견을 듣고 진단합니다. 배가 어디가 아프냐... 맹장 같다, 회충배 같다. 이제 우리가 들은 게 있으니까 누가 아랫배가 쌀쌀하다 하면 야, 너 회충있다... 그러죠. 이런 상황이니 북한 전 주민이 의사인거죠. 남한은 그렇지 않잖습니까? 모든지 과학적으로 엑스레이, MRI를 찍으니까 과학적으로 나온 걸 갖고 진단하죠.

문성휘 : 근데 소연 씨처럼 좀 넓은 군에서 살았다면 모르겠는데 제가 살던 시골은 정말 약이 급해요. 3살짜리 애가 설사를 해도 약이 없어서 아편을 놓을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설사에 좋은 황경피 나무껍질 같은 걸 항시 갖고 있는 거예요.

진행자 : 시골은 전부 동의사 되시겠어요. (웃음)

문성휘 : 그렇죠. 상처가 났을 땐 고약을 발라야 하자나요? 그러니까 다 자체적으로 고약을 만드는 거예요.

진행자 : 송진으로요?

문성휘 : 그렇죠. 파라티푸스, 장티푸스 같은 전염병이 돌면 인민 반에서 미리 미리 선전해줍니다. 식초를 물에 타서 희석시켜 마셔라, 꼭 물을 끓여서 마셔라. (웃음) 겨울에 땔감도 없는데 무슨 물을 데워 먹어요? 그러니 웬만히 속이 쓸쓸하다, 설사날 것 같다하면 식초 물을 마시죠. 아주 간단하죠.

진행자 : 안 그래도 문 기자님, 요즘 누가 아프다고 하면 식초 물 마시면 다 낳는다고 그러죠. (웃음)

문성휘 : 진짜라니깐요.

박소연 : 제가 병원에 군병원에 입원했을 때 문 기자님처럼 시골에서 사시던 여자가 왔어요. 일류스(창자꼬임)라고 배가 꼬이는 병이에요. 농촌에 차가 없으니까 작업반 뜨락또르를 타고 왔어요.

근데 퉁퉁퉁, 뜨락또르가 얼마나 들쳤는지 병원까지 오면서 일루수가 풀린 겁니다. 그 환자, 아침에 밥 먹고 갔다니까요. 길이 험한 덕에 살았다고 그때 무산군 병원에서 소문이 자자했었습니다. (웃음)

문성휘 : 아...진짜 그럴 수도 있겠네...

진행자 : 근데 진짜 북쪽에는 어떻게 아편이 이렇게 흔합니까?

문성휘 : 옛날에 백도라지라고 하면서 아편을 많이 심었어요. 중국을 통해서 외국으로 많이 판매되면서 북한이 마약 범죄국으로 낙인찍히지 않았어요? 그리고 아편 밭이 위성에 찍히니까 다 없앴는데 약이 없으니까 집 강냉이 밭 사이에도 심고 아편 씨를 가지고 몰래몰래 심는 거죠.

박소연 : 제가 아는 이모님이 산 밑에 땅을 몇 백 평을 온 집안 식구가 4년을 일궜는데 몇 년 뒤에 진짜 살림이 폈습니다. 저랑 워낙 허물이 없어서 얘길 하는데 농사를 해서 (산림)보호원들 주고 군대에 도둑맞고 뭐가 남느냐고, 아편을 해서 돈을 뽑으니 이렇게 살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정말 강냉이 밭 사이에 아편을 심으면 그 누구도 못 찾습니다. 2007, 2008년도 당시에 아편 1그램이면 북한 돈 5천원이었어요. 이렇게 값이 싸요, 그러니까 사람들 너도나도 하고... 전 한 번도 아편이 마약이라고 생각해본 적 없습니다.

문성휘 : 저는 아편동원을 많이 나갔거든요. 직접 아편 밭 김매고 가을엔 아편 진을 따요. 학생들이 아편 진을 딸 때 조금씩 몰래 갖고 들어와서 유리판 위에 말려요. 그래, 올 때는 한 사람 앞에 2, 3그램 정도는 모아서 가져가죠.

진행자 : 저는 북쪽에서 오신 분들이 아편을 너무 아무렇지 않게 말씀하셔서 놀랐어요. 아시겠지만 남쪽에선 굉장한 마약으로 취급합니다.

박소연 : 아편이 그렇게 위험한 가요? 전혀 아무렇지도 않은데...

문성휘 : 전 시골에 살았으니까 아편 중독자들 정말 많이 봤습니다. 그 사람들 대게 3년 정도 되니까 다 죽더라고요.

진행자 : 굉장히 위험하고 독한 마약입니다.

박소연 : 저는 이런 약이 있어서 감사하다 그랬지 전혀 마약이다, 중독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문성휘 : 중고등학생들도 휴식시간이면 다 나가서 빙두라는 걸 합니다. 마약이 너무 보편적이죠.

진행자 : 마약에 대한 그런 인식은 남쪽에 오면 많이 다르죠. 사고파는 것 모두 굉장히 엄하게 처벌됩니다. 그래서 탈북자들, 정착 초기에 마약 밀매로 많이 처벌 되고 그랬습니다. 당시엔 탈북자 범죄 하면 마약 범죄가 많았고 이게 남한 사회에 들어 온 탈북자들이 치는 가장 큰 사고였죠.

박소연 : 근데 사람들은 이렇게 만든 건 정부죠. 사람들의 인식을 다 그렇게 만들어 놓고 그리고 간부들도 얼음을 밥 먹듯이 하는데 그걸 어떻게 단속을 하겠어요.

진행자 : 어떤 얘기를 들으면 북쪽이 정말 저럴까 싶은데 이 마약 얘기가 그렇습니다.

문성휘 : 정말 그렇습니다. 간부들도 회의를 하다가 물을 자주 마시고 막 주변을 살피고 불안해보이고 그러면, 저 자식, 얼음빨 빠졌구나... 그럽니다.

진행자 : 근데 소연 씨처럼 애 키우면서 장사하던 그냥 평범한 아주머니가 이런 말 하는 거보면 이거 정말 문제인데요.

박소연 : 여기 기본이라는 말이 있죠? 북한은 아편은 기본입니다.

문성휘 : 3살짜리 아기도 설사 나가면 진짜 무서워요. 그러면 농촌 사람들 아편 이외에 아무런 방법이 없어요. 북한 가정에서 가장 기초적으로 갖춰야하는 약품은 진짜 마약입니다...

박소연 : 값도 안 비싸고... 얼음이 한 그람에 중국 돈 백 원이에요. 솔직히 북한 내에서 생산되니까 이렇게 싸고 광범위하게 이용할 수 있는 거죠.

문성휘 : 통일이 되어도 참 이 마약 문제 큰일입니다.

진행자 : 이것도 문제네요. 그런데서 이런 북쪽에서 살다가 약도 맘대로 못 사고 효과도 마약보단 천천히 나타나니 얼마나 답답하시겠습니까? (웃음) 근데요. 이런 것들이 계속 쌓여서 그런지 탈북자들 남한에 오면 많이 아픕니다.

문성휘 : 제가 살아보니까 면역력이 갑자기 확 떨어지는 때가 있습니다. 보통 1년에서 3년 사이에 꼭 세게 앓아요. 그게 북한에서 면역력을 유지하다가 여기 와서 뭔가 편안해지고 위생적이 되면서 면역력이 확 떨어져서 그때 앓는 것 같아요. 북한에 이런 말이 있어요. '전쟁이 일어나면 앉은뱅이가 없다' 그리고 고난의 행군을 겪으며 위병 환자가 다 없어졌습니다.

진행자 : 그런데 결핍으로 모든 게 해결될 수는 없는 거잖아요.

문성휘 : 해결되지 않았죠. 다만 너무 배가 고프니까 언제 배가 아픈지, 쓰린지 모르는 거예요.

박소연 : 안 아픈 게 아니라 아픈 걸 느낄 새가 없죠.

문성휘 : 그리고 내가 아파도 때대끼, 그러니까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사람들은 아파도 나가야해요. 그렇지 않으면 먹을 것이 없으니까요. 이렇게 살던 사람들이 이제 갑자기 편안해보세요! 아마 몽땅 병원에 들어가 있을 거예요... (웃음)

진행자 : 진짜 북한 주민들, 정말 용감하십니다. 좀 나쁘게 얘기하자면 무식하면 용감하다라는 말이 있는데 진짜 용감하게들 사셨어요.

문성휘 : 그래요. 그래서 저는 여기서 어떤 때 밸이 꼴리면 저 사람들이랑 나랑 다 같이 무인도에 한 석 달쯤 데려다 놓았으면 좋겠다, 그럼 내 본때를 보여줄 수 있는데 생각합니다. 우린 알거든요. 어떤 걸 먹으면 되고 어떤 건 먹으면 안 되는지...

진행자 : 글쎄요. 근데 요즘 그런 방송이 있잖습니까? '정글의 법칙' 같은...

문성휘 : 아, 맞아요. 저도 봤어요. 정글 한 가운데 사람을 떨어뜨려 놓고 생활하는 걸 관찰하는 방송이죠. 오줌 물을 어떻게 정수해서 먹는가... 뭐 이런 것도 나오고. 아이, 생각해보니 그런 것 땜에 안 되겠네요. (웃음)

박소연 : 저도 '정글의 법칙' 보면서 쳇, 나도 저렇게 할 수 있는데 우린 그것보다 더 고생을 한 사람들이니까. 저런 건 내가 더 잘 하는데 생각할 때 있어요. 거기 출연하는 김병만이 연말에 연예 대상을 탔다죠? 그 사람이 연예 대상이면 북한 사람들은 연예 대대대상을 타야할 겁니다. (웃음)

진행자 : 이런 정글의 법칙 같은 걸 생존 프로그램,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라고 하는데요. 생존, 살아남는다라는 얘기죠. 따지고 보면 다들 북한이라는 절박한 상황에서 서바이벌 하신 거네요.

문성휘 : 그렇죠. 그래서 토끼와 사슴은 다 죽었다. 남은 건 여우와 승냥이라는 얘기를 하잖습니까?

박소연 : 제가 여우고 문 기자님은 승냥이입니다.

진행자 : 그중에 남쪽으로 오신 분들은 뭐에요?

남쪽으로 뛴 탈북자들은 노루에 비유되네요.

토끼와 사슴은 죽고 노루는 뛰고 승냥이와 여우만 남았다...

약하면 죽고, 빠르고 강하고 약삭빨라야 살아남는 북쪽은 진짜 정글처럼 느껴집니다.

또 눈을 감고 귀를 닫고 아무 것도 몰라서 용감해야 살아남고 아는 게 힘이 되기보단, 모르는 게 차라리 약이 되는 북쪽, 승냥이와 여우님들, 부디 아프지 말고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밖으로> 오늘 얘기는 여기까집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