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입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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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11월, 남한에 도착해 올해 남한 생활 5년 차를 맞고 있습니다. 2012년 아들을 데려와 혼자서 키우는 열혈 '워킹맘' 그러니까 일하는 엄마입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엔 남한 정착 10년차, 자강도 출신 탈북 기자 문성휘 씨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 1월 1일에 그 분이 저에게 연락을 주셨고 방송을 듣고 팬이 됐고 아들을 도와주고 싶다며 저에게 200달러를 보내주셨습니다...

소연 씨가 2016의 시작이 좋았습니다. 한 라디오 방송에서 소연 씨가 축구 선수를 꿈꾸는 아들에 대한 얘길 했는데 그 방송을 듣고 연락을 해온 사람이 있습니다.

힘든 과정을 겪고 온 탈북자들은 모두 스타며 본인은 그런 사람들의 팬 그러니까 지지자임을 자처했다는데요. 얼떨떨하지만 기분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게다가 멀리 호주에서 연락을 해왔다니 졸지에 소연 씨는 국제적으로 팬을 거느리게 됐습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서 남쪽의 팬 문화와 여기에 얽힌 두 사람의 얘기 들어보겠습니다.

박소연 : 그런데 한국에 금방 와서는 가수나 영화배우들이 가면 애들이 막 따라가면서 소리를 치고 그래서 제가 이 방송에 나와서 많이 욕을 했습니다. 정신병자가 아니냐...

진행자 : 저도 소연 씨에게 그 얘기 들은 것이 기억나네요. 한강 공원에 놀러가서 공연을 봤는데 가수가 나오니까 환호성을 질렀다고, 아무래도 정신이 나간 것 간다고요. (웃음)

박소연 : 맞아요. 그래서 남한 사람들 똑똑한 줄 알았더니 이렇게 멍한 데도 있구나 생각했었습니다. 아니! 그 사람을 팬이라며 따라가면 그 사람이 떡이 줍니까, 돈을 줍니까? 하나도 혁명에 이익이 없는데 왜 저렇게 좋아할까?

문성휘 : 혁명에 이익이 없다? (웃음)

박소연 : 네, 없잖아요? 그런데 작년 가을 즈음부터 제가 그 사람들 못 지 않게... 인터네트를 뒤져서 그 사람이 지금 어디 가 있나, 뭘 하나 추적을 하더라고요.

진행자 : 그게 누굽니까?

박소연 : 기성룡이라고 스완지 시티라는 영국 축구단에서 뛰는 선수입니다. 저 완전한 팬입니다. 팬 카페에도 등록하고 거기서 한국에 언제 들어오는지 일정도 알려준대요. 한국 들어온다고 그러면 어느 날 회사도 하루 접고 공항에 쫓아가렵니다. (웃음)

진행자 : 네? (웃음)

문성휘 : 미쳤다...(웃음) 그런 얘기하는 게 부끄럽지 않아요!

박소연 : 진짭니다. 왜 부끄럽습니까? 이제는 그 사람들 흉보지 못 하겠습니다. 그 마음을 알겠어요.

진행자 : 어디가 그렇게 좋습니까?

박소연 : 인성 때문인 것 같습니다.

진행자 : 잘 모르는 사람이잖아요?

박소연 : 압니다. 좋아하게 된 이유가 이 사람이 20대 중반인데 자기보다 8살 이상인 여배우를 사랑하게 됐어요. 사람들은 그 여성의 나이, 두 사람의 나이 차이에 초점을 맞췄어요. 뭐가 모자라서 저렇게 연상인 여성을 만나느냐... 반대를 많이 했고 결국 헤어지기로 결심하고 얘기를 했답니다. 그 때 그 여성이 니 날 놀리니? 이렇게 나온 게 아니라 그래, 나는 너를 이해하고 노엽게 생각하지 않으니까 행복해라... 그랬다고 해요. 그 말을 듣는 순간에 이 여성을 놓쳐서는 안 되겠다, 남이 무슨 상관이냐? 그래서 결혼을 하게 됐고요.

이 여성분이 나는 앞으로 너보다 빨리 늙고 주름살도 많이 생길텐데 걱정을 하면 나만 너를 사랑하면 되지 않나, 마음 놓고 늙어라...

저는 정말 그 말을 텔레비전 방송으로 듣고 펑펑 울었습니다. 그 다음부터 이 사람의 팬이 됐습니다.

문성휘 : 아... 잘 모르겠다... (웃음)

박소연 : 이해가 안 될지도 모르겠어요. (웃음) 어쨌든 저는 그렇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계기가 있는데요. 축구 경기를 보면 참 공 넣을 때 패스도 잘 하고 도움도 잘 줍니다. 아들도 인정했어요.

진행자 : 그래서 실물도 보고 싶고 어디 뭘 하는지 찾아보고...

박소연 : 애기랑 낳았다는데 그 아내 분에게 꽃다발도 사주고 싶고. 그런 마음이 진짜 든다는데요? 저도 사실 왜 이런 마음까지 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진행자 : 누군가에 팬이 되면 소연 씨의 지금 심정과 비슷해지는 것 같습니다. 청취자들, 그리고 문 기자도 전혀 이해 못 하시겠지만 좋아하는 그 사람 집 앞에서 얼굴 한번 보고 싶고. 가수라면 공연장, 배우라면 촬영장에 직접 가기도 하고 손 한번 잡아보고 싶고 나를 모른다고 해도 선물도 주고 싶고...

박소연 : 맞습니다. 그런 심정이요.

문성휘 :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 수표 받는 것이요. 수첩을 가슴에 품고 다니면 며칠을 따라다니다가 어쩌다 수표 한번 받으면 너무 기분이 좋아서 심장이 터질 것 같고, 대대손손 물릴 것처럼 흥분하고.

진행자 : 그런데 이게 참... 안 해본 사람이 들으면 정신 나간 짓이란 말이죠. 이해를 못해요. 지금 문 기자님도 표정이 영 표정이 안 좋습니다.

문성휘 : 아니! 인터네트에 찾아보고 경기도 다 찾아가며 보고 나중에 공항도 나가겠다... 뭔 짓입니까?

진행자 : 처음 한류라는 것이 시작됐을 때 그걸 추세로 만든 배우가 있어요. 배용준...

문성휘 : 그렇죠. 북한도 다 알아요. 다음 인생에 제가 태어나자면 꼭 그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은 바로 그 배우!

진행자 : 맞죠. 그 배용준. 북쪽에서도 아마 안 보신 분 거의 없을텐데 '겨울 연가'라는 드라마에 출연했었죠. 일본에 이 배우의 팬들이 많은데요. 주로 50대 아주머니들이 많습니다. 그 분들이 하시는 행동이 참 놀랍습니다. 아무리 가까워도 일본에서 남한까지 비행기 표가 몇 백 달러는 하는데 드라마 촬영 하는 걸 비행기 타고 와서 보고 가고. 영화 개봉하면 그걸 또 보러 오고.

문성휘 : 그것 뿐 아니죠. 겨울 연가 촬영지가 강원도 강릉이랑 춘천에서 많이 찍지 않았습니까? 거기에 가면 촬영지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데 일본 사람들이 많이 방문했다고 합니다. 춘천에 배용준이 걸었던 그 가로수 길은 한국 팬보다 일본 팬들이 거의 다 왔다고 하고 말입니다.

진행자 : 지금은 겨울연가가 방영된 시간이 지나서 별 인기가 없지만 당시엔 정말 대단했습니다. 그런데 그 40대 후반, 50대의 평범한 주부들이...

문성휘 : 그러니까요. 그 사람들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 도통 이해가 안 됩니다.

진행자 : 그 분들의 남편들은 더 이해할 수 없겠죠. 문 기자님처럼. (웃음) 아이들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왜 그럴까? 이 현상에 대한 조사나 분석도 많이 나왔었습니다. 결론은 대리만족. 50대 주부들을 한번 생각해보세요. 남편은 직장에서 자리를 잡았을 것이고 아이들도 다 크고 바쁘고. 엄마의 자리, 역할은 점점 줄어드는 시점이고요. 다 큰 자녀들 그리고 남편들이 따뜻한 말을 해줄까요? 그런데, 영화배우 배용준은? 따뜻하게 웃어주는 그 사람에게 유일하게 위안 받았다는 얘기를 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문성휘 : 맞아요. 이해됩니다.

박소연 : 공감됩니다. 제가 기성용을 좋아하는 게 그런 부분이 있습니다. 나는 그렇게 사랑해줄 사람이 없으니까 여성분이 참 부럽더라고요. 대리만족이 되는 것 같고요.

문성휘 : 저도 '봄날은 간다'라는 영화를 좋아하는데요. 정말 큰 사건이 없는 그냥 잔잔한 사랑에 대한 영화인데 저는 참 좋아하고 또 자주 봅니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내가 젊은 시절이라면 한번쯤 꿈꿨을 법한 사랑의 이야기를 그 영화를 통해 보는 겁니다. 이자 말마따나 대리만족이죠. 정말 이 영화를 왜 좋아지? 항상 보면서도 이상했는데 지금 답을 찾았습니다.

진행자 : 모든 사람이 같은 이유를 대비할 수는 없겠지만 배용준 현상은 그런 식으로 분석되는 게 상당히 공감을 얻었습니다.

문성휘 : 그러고 보니까 현주 씨는 누구 팬인지 말을 안 했네요. 누구 좋아합니까?

진행자 : 저는... 지금 딱히 누구의 팬이라고 얘기할 건 없지만 열심히 챙겨보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응답하라 1988'이라고 줄여서 응팔 그러죠.

박소연 : 맞아요! 저도 말하자면 광팬입니다. 좋아합니다.

진행자 : 응답하라는 1994도 있고 1997도 있고 이렇게 연속으로 나오는 텔레비전 연속극인데 최근에 방영되고 있는 것은 1988입니다.

문성휘 : 그 때 그 시절을 잘 보여줘서 저도 좋아합니다. '응답하라 1994' 같은 건 김일성 사망 당시의 남한,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 당시 남한이 어땠나 이런 것을 보여줘서 저도 좋아했었습니다. 1994에 보면 바나나를 놓고 부부가 막 싸우다가 텔레비전에서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몇 날, 몇 시에 사망했다는 소식이 나오니까 둘 다 멍해서 하는 말이 김일성이도 죽긴 죽네... (웃음) 그리고 지각하는 학생들도 모두 김일성 사망에 놀라 그랬다고 핑계를 대고.

진행자 : 당시 북한과 연관이 있거나 북쪽에서 궁금하셨던 사건들이 일어났을 당시 어땠나 이런 부분을 재밌게 보시더라고요. 남한 사람들이랑 같은 드라마를 보면서도 재밌어 하는 부분은 약간 다른데요. 1988에서는 남한의 올림픽 당시 사정을 보실 수 있죠.

박소연 : 맞아요. 그게 1988년이었죠. 저는 또 그 드라마에서 나오는 노래가 좋습니다. 가수 김광석의 팬인데요. 얼굴을 못 본 가수였지만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를 좋아했었어요.

문성휘 : 김광석은 북쪽 분들도 다 아시는 노래가 있죠. 이등병의 편지.

박소연 : 중국에서 살면서 힘들면 이어폰으로 이 노래를 많이 들었는데 사망한 지도 몰랐네요. 지금도 머리 아프고 힘들면 김광석 노래를 찾아듣는데 슬프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가라앉습니다.

진행자 : 아마 지금 말씀하신 김광석 노래를 포함해서 '응답하라 1988'에 나오는 대부분의 노래는 북쪽 청취자들이 다 들어보신 알고 있는 노래일 겁니다. 저는 그 노래를 들으면서 옛날 생각도 나고... 팬입니다. (웃음)

박소연 : 어떻게 보면 우리 40대들을 위한 드라마 같습니다.

진행자 : 남한의 당시 모습을 그린 드라마인데요?

박소연 : 그래도 비슷한 구석이 많습니다. 펄럭 펄럭한 바지로 온 동네를 쓸고 다니는 것도 그렇고 당시엔 우리도 정말 이웃하고 사이가 너무 좋았어요. 옆집에 음식을 나르라고 해서 떡 그릇 쥐고 나르다가 엎어서 엄마한테 욕먹고... 어머 세상에, 세상에 이러면서 봅니다. 비슷하더라고요. (웃음)

문성휘 : 그 말이 맞습니다. 남한은 그 당시 민주화를 떠들고 사람들이 막 끓어오르던 그런 시기가 아닙니까? 그런데 그 시절에 우리 또래들은 끼리끼리 몰려다니면서 패싸움이라는 굉장히 많이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우리들도 사회에 대한 불만과 저항을 표현할 길을 그런 식으로 찾았던 것 같습니다. 딱 보면... 뭔가 마주 못 본 사람 사이에서도 공감할만한 흐름이 있었다는 것. 참 이상하죠?

'응답하라 1988' 드라마를 보면 그 당시 팬들의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가수나 배우를 좋아하는 일도 많지만 또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라디오입니다. 방송 시작을 알리는 시그널 송에 마음이 설레고 거의 매일 엽서나 편지를 써서 사연을 보내는 열성 팬들도 많았는데요. 저희들 입장에서는 상당히 부러운 일이기도 하죠.

응답하라 드라마는 항상 이렇게 끝납니다. '들리는가, 들린다면 응답하라... 나의 1980년대여'

들리는가 들린다면 응답하라... 청취자 여러분께 되돌려 드리고 싶은 말이네요. 어딘가 있을 RFA 팬들이여 들린다면 응답하라!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오늘 얘기는 여기까집니다.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함께 해주신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