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2) - 남한에서 친구 사귀기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11월, 남한에 도착해 올해 남한 생활 4년 차를 맞고 있습니다. 2012년 아들을 데려와 혼자서 키우는 열혈 '워킹맘' 그러니까 일하는 엄마입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에는 남한 정착 9년 차 자강도 출신 문성휘 기자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 저는 승강기에서 모르는 사람들이 알은척을 하면 돌아서요. 그러니까 아들이 '엄마는 착하지 않다'고. 그런데 우리 아들은 저를 안 닮았는지 보는 사람마다 '안녕하세요!' 인사해요. 동네에서 아줌마들이 '네가 엄마보다 낫다'고 한대요.

남한에서도 속 깊은 친구를 사귀고 싶은 소연 씨.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문화가 달라서 그런지, 남한에서는 친구 사귀기가 쉽지 않다고 합니다. 게다가 낯가림이 있는 소연 씨는 승강기나 동네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북한에서처럼 행동했다 도리어 아들로부터 핀잔을 들었다고 하네요. 소연 씨 얘기, 지난 시간에 이어 들어보시죠.

박소연 : 며칠 전에 아들이 저한테 그런 말을 했어요. 엄마는 왜 다른 사람한테 알은척을 안 하고 인사하면 받지를 않느냐고. '모르는 사람이 인사하는데 어떻게 받아?'

우리 아파트에는 탈북자들이 많아 살아요. 기초수급자들이 사는 임대아파트에 젊은 여자가 산다는 건 탈북자라는 거예요. 그런데 저는 승강기에서 모르는 사람들이 알은척을 하면 돌아서요. 우리 아들이 그런 걸 몇 번 봤어요. 그러니까 아들이 '엄마는 착하지 않다'고. 북한에서는 마음이 곱다고 하는데 남한에서는 착하다고 하더라고요. 아들이 지나가면서 한 얘기인데 저는 좀 맺혔어요. 왜냐면 저의 본질적인 결함을 꼭 짚었거든요.

문성휘 : 나도 알은체를 잘 안 했어요. 갑자기 승강기에서 만난 사람들, 같은 아파트에 산다고 해도 인사를 하면 무슨 얘기부터 해야 할지. 예전 아파트에서는 옆집 사람하고도 인사를 안 했어요. 괜히 그 사람이 나한테 인사할까봐 부담이 되더라고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특별한 이유도 없이 내가 달라지는 걸 느꼈어요.

진행자 : 소연 씨는 아직 그게 자연스럽게 안 되나 봐요.

박소연 : 저는 앞으로도 안 될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들었던 지적이에요. 나한테 가까운 사람한테는 쓸개까지 뽑아줘요. 그런데 사람이 친구를 사귀는 것도 열성이 필요한 것 같아요. 자주 유대를 만들고. 그게 싫은 거예요. 마음이 내키지 않아요. 그러니까 아들이 진단을 잘 한 것 같아요. 정곡을 찔려서 마음이 불편한 거예요.

진행자 : 약간 낯가리는 거죠? 그런 성격이면 친구 사귀기가 쉽지 않잖아요.

박소연 : 그러니까 지금까지도 남한에서는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친구가 없는데, 문 기자님은 어떠세요?

문성휘 : 처음에는 남한의 친구라는 게 정말 복잡했어요. 왜냐하면 탈북자들은 남한에서 제일 불편한 게 정치적인 환경에 휩쓸린다는 거예요. 사실 귀찮아요. 북한 생활에 대한 설문조사. 물론 북한을 연구한다는 건 좋아요. 그런데 북한에 있을 때는 솔직히 정치적 충돌이라는 게 거의 없잖아요. 그런데 남한에 오니까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이 혼란스러웠어요. 좌익, 우익, 진보, 보수로 나뉘어서 모두 북한을 연구하려고 들어요. 그렇게 만난 사람들과는 자주 말다툼을 하게 되고 친구가 안 되는 거예요.

진행자 : 사실 남한에서 친구 사귈 때 정치적인 얘기는 전혀 개입이 안 되는데, 탈북해서 오게 되니까 처음 남한에서 접하는 사람들이 정치적 관련이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나 봅니다.

문성휘 : 처음에는 그 과정이 굉장히 힘들었어요. 그런데 조금 지나고 보니까 연한이 선생을 만든다고, 논쟁도 깊어지면 재밌더라고요. 북한에서는 그렇게 파고들 수도 없었고, 그럴만한 능력도 없었잖아요. 그리고 그런 논쟁을 잘못했다가는 큰일이 나죠.

진행자 : 문 기자는 연한이 오래 됐으니까 '남한에서 친구를 사귀기 위해 이런 걸 해보니 좋더라, 이렇게 친구를 사귀었다' 이런 거 있을까요?

문성휘 : 우리 스스로 동호회 같은 걸 찾아가야 해요. 자전거동호회, 낚시동호회 등을 찾아가서 자연스레 휩쓸리는 과정에 점차적으로 '아, 이 사람은 북한에서 왔구나.' 이렇게 느끼게 만들어야지 처음에 우리 손목을 잡고 '이 사람 북한에서 왔습니다. 엄청 고생하며 왔어요.' 이렇게 하는 곳은 절대로 가지 말라.
사실 남한은 다 사조직이 아니에요. 이런 사조직이 사회를 건전하게 만들어요. 각 단체, 일반 동호회들이 어찌 보면 이 사회를 건전하게 만드는 면역체인데, 북한에는 그런 면역체가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꾸 병들고. 우리 스스로 찾아 나서라. 자연스레 찾아 나서면 돼요. 그리고 그 '끼리끼리'에 속해야 내가 사회 안에서 사는 거예요.

진행자 : 사실 남한에서 친구를 사귀려 노력하면 통로는 정말 많죠. 문 기자 표현을 빌리면 남한에는 사조직이 굉장히 많잖아요. 각 학교 동창회도 있고, 고향이 같은 사람들은 향우회도 만들고, 성이 같은 사람들은 종친회도 만들고, 취미가 같은 사람이 모이기도 하고, 자원봉사로 모이기도 하고요. 생각해 보면 소연 씨가 성당도 다니고, 자원봉사도 하고, 회사도 다니고, 대학도 다니시니까 끼리끼리 모일 수 있는 기회는 굉장히 많은데요.

박소연 : 저도 천주교지만 같이 공부했던 사람들은 지금도 서로 왕래를 한대요. 저만 빠져요.

진행자 : 왜 빠지세요?

박소연 : 우선 시간도 없고, 뭐랄까? 아직은 용기가 없어요. 그분들이 남한 정세에 대해 얘기하는데 저는 어울려서 할 얘기가 없는 거예요. 그리고 자꾸 북한을 물어봐요. 북한에서 정말 사람 죽이나, 배급 안 주나... 그게 남한에 와서 백 번도 넘게 말한 거라서 이제 말하기가 싫어요.

문성휘 : 그러니까 남한 친구들과 있을 때 어려움이 있어요. 우리 같은 사람들 별로 특별하지 않지만, 남한 인구가 5천만 명인데, 탈북자 수는 어른 아이 다 합쳐서 3만 명밖에 안돼요. 그러니까 남한 사람들한테는 우리가 희귀해요, 굉장히 궁금하고.

진행자 : 그만큼 북한이라는 나라가 국제사회에서 단절된 곳이잖아요. 알 수가 없으니까요.

문성휘 : 그렇죠, 그래도 그렇게 말하는 순간 그 사람과 멀어져요.

박소연 : 그럼 어떻게 하면 친구를 만들 수 있어요?

문성휘 : 다가서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도 있고, '대화의 기법', '10분 안에 친구 만들기' 같은 책들 굉장히 많아요. 나도 그런 책들을 읽고 많이 배우는데, 사람을 끌어들이는 방법은 먼저 질문을 하라는 거예요.

박소연 : 내가 먼저? 저는 살면서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어요.

문성휘 : 그게 아주 잘못된 행동이에요.

박소연 : 상대가 먼저 다가오기를 기다려요. 그게 북한에서는 자존심이거든요. '네가 볼 일 있으면 나한테 오겠지!' 아직도 그런 나쁜 잔재가 있는 것 같아요.

문성휘 : 일반적으로 북한에서는 사회에 나가서 남한테 절대로 속을 안 보이잖아요. 상대가 보위부 직원인지 간첩인지도 모르고. 북한에서는 늘 말은 세 마디를 넘기지 말라고 해요.

박소연 : 좋은 인사말도 세 번 이상 하지 말라는 거예요. 항상 경계심이 있어서 그런가 봐요. 그런데 남한에서는 친구 사이에도 상대에게 좋은 말만 해주더라고요. '너 진짜 열심히 사는 거야. 정말 잘 하는 거야.' 이런 말을 해주는 거예요.

그런데 이게 맞는 게, 언젠가 7층에 사는 어머님하고 승강기를 같이 탔어요. 몇 번을 마주쳤는데도 알은척을 안 하고 1층까지 턱을 치켜들고 그냥 가니까 무안했는지 저한테 '몇 층에 살아? 피부 정말 좋다, 예쁘다, 연예인인줄 알았어.' 그러시는 거예요. 그 다음부터는 그 할머니 보면 꼭꼭 인사해요(웃음). 칭찬은 앉은뱅이도 춤추게 만든다더니, 할머니와 제가 친구는 아니지만 그게 다 친구가 될 수 있는 관계잖아요.

진행자 : 이웃사촌이라고 하잖아요.

박소연 : 그 할머니가 저한테 칭찬을 하기 전까지는 그냥 눈인사만 했는데, 그 뒤로는 할머니가 의자에 앉아 있으면 '할머니 안녕하세요. 오늘 날씨 추웠죠?' 그러는 거예요.

진행자 : 문 기자가 하신 말이네요. 대화를 트는 거잖아요. 그리고 승강기나 복도에서 인사했는데 모른척하고 그냥 지나치면 상대방이 너무 무안할 것 같아요. 같이 인사를 한다고 해서 그게 자존심이 상하는 일은 아니잖아요. 서로 그냥 반갑게 인사하는 거죠.

박소연 : 고치려고 노력하는데, 저는 그게 진짜 힘드네요. 방법은 있어요. 그분들이 저를 칭찬해주면 돼요(웃음).

문성휘 : 아들이 잘 봤지. 아들은 대한민국 3학년이고, 엄마는 4학년이니까 아들하고 종잇장 한 장 차이잖아요.

박소연 : 동네에서 아줌마들이 '네가 엄마보다 낫다'고 한대요. 그런데 우리 아들은 저를 안 닮았는지, 저하고 팔짱 끼고 나가면 보는 사람마다 '안녕하세요!' 인사해요. '미쳤냐? 저 사람 아냐?' 물으니까 '우리 아파트 사람이잖아' 그러는 거예요.

진행자 : 외국어를 배울 때 11살 전에 배우면 효과가 훨씬 좋대요. 보니까 소연 씨 아드님은 나이가 어리지만 남한에서 훨씬 더 빨리 적응을 하는 거고, 소연 씨는 북한에서 오래 생활하셨으니까 잔재가 있어서 계속 충돌하는 면이 있는 것 같아요.

문성휘 : 인사를 하고 자연스레 질문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마음이 깊게 통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그렇게 친구가 탄생하는 거예요. 친구는 그런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이지, 친구도 노력이 필요해요.

진행자 : 소연 씨가 정말 다양한 모임에 많이 가입은 돼 있잖아요. 그러니까 이제 조금 더 마음을 열고 더 긴밀한 관계를 만들어 가면 될 것 같아요. 그러면 남한에서도 좋은 친구를 사귈 수 있지 않을까요?

박소연 : 노력할게요. 제가 일요일마다 강원도 춘천으로 자원봉사를 가요. 남한에서도 다른 봉사자들이 많이 오는데 저는 그 틈에 끼지를 못했어요. 그러다 어느 날 새로 두 언니가 왔어요. 점심 먹을 때 제 맞은편에 앉았는데, 그 언니들이 너무 재미있어서 가까워졌어요. 제가 춘천에 간다고 떡갈비도 사주고, 크지는 않지만, 남한에 나를 위해 마음을 써주는 언니들이 있다는 게. 그러니까 그 언니들하고는 제가 노력을 하는 거예요. 노력을 하니까 유지가 되더라고요. 큰언니가 그러는 거예요. '강원도에 애 데리고 놀려와!' 그 말을 듣는데 찡했어요. 나도 아들 데리고 언니네 집에 가서 아래 구들에 앉아서 '나 북한에서 어떻게 살았고, 두만강 어떻게 건넜고...' 이걸 터놓고 얘기 좀 했으면. 그리고 실컷 울어봤으면 하는 생각에. 내가 이 남한 땅에 사는 한 언니들이 내민 손을 놓지 말아야겠다. 자주 뵙지는 못해도 안부라도 전해야겠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진행자 :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게 관계라고 해요. 그런데 상대방이 나에게 다가와주기만을 기다리면 관계가 형성되기 힘든 것 같아요. 친구도 어차피 상호관계잖아요. 소연 씨도 어느 정도 마음을 열었기 때문에 두 언니들과 조금 더 속을 터놓고 지내게 된 게 아닐까요.

박소연 : 이번에는 노력한 것 같아요. 그런데 남한 문화를 모르고 북한식으로 친구에 대한 우정을 과시하면 그게 실례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아직은 염려되기도 해요.

문성휘 : 힘든 것 같은데 하다 보면 정말 쉬워요. 한두 번이 힘들지 세 번째부터는 쉬워요. 그런데 나도 말은 잘 하는데 실제 행동은 잘 못해요.

진행자 : 남한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웃음). 지금부터라도 친구 만들어가는 과정을 좀 즐기셨으면 좋겠고요. 저희 모두 좋은 친구 만들어 봐요.

문성휘, 박소연 : 알겠습니다(웃음).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친구는 제2의 자신, 두 몸에 깃든 하나의 영혼'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얘기하고,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눌 친구가 필요하죠? 하지만 진정한 친구를 사귀는 건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입니다. 소연 씨는 남북이라는 문화 차이 때문에 더욱 어려울 텐데요. 그 해법은 가까운 곳, 바로 아들을 보면서 찾아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반가운 인사, 밝은 미소가 친구를 만들기 위한 첫 단계가 아닐까요?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윤하정이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