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올림픽 (1)

'피겨여왕' 김연아가 지난달 23일 러시아 소치 해안클러스터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2014 소치 동계올림픽 피겨 갈라쇼에서 '이매진(Imagine)에 맞춰 열연하고 있다.
'피겨여왕' 김연아가 지난달 23일 러시아 소치 해안클러스터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2014 소치 동계올림픽 피겨 갈라쇼에서 '이매진(Imagine)에 맞춰 열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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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11월, 남한에 도착해 올해 남한 생활 3년 차를 맞고 있습니다. 2012년 아들을 데려와 혼자서 키우는 열혈 '워킹맘' 그러니까 일하는 엄마입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엔 남한 정착 8년차, 자강도 출신 탈북 기자 문성휘 씨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 마지막에 우리 선수가 먼저 들어왔잖습니까? 제가 숟가락 던지고 만세 부르고 그랬더니 옆에서 앉았던 우리 아들이 엄마, 왜 그러냐고. 뭐가 그렇게 좋냐고... 그래요. (웃음) 아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저는 너무 좋아서 밥맛도 달아났습니다...

소연 씨가 남한 사회에 나와 텔레비전 방송으로 올림픽 경기를 지켜본 게 이번 로씨아 쏘치 동계 올림픽이 처음이라는데요. 선수들의 경기에 흥분하고 열렬히 응원하고 이겼을 땐 날아갈 듯 기쁘고 지면 분했던... 그 여운은 올림픽이 끝나고도 한참을 가고 있습니다.

오늘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그녀의 첫 올림픽 관람기, 들어보겠습니다.

진행자 : 안녕하세요. 주말들 잘 보내셨어요?

문성휘 : 중국 스모그 때문에 밖에 나가기 답답해서 안타까웠습니다.

진행자 : 그러게요. 근데 황사도 문제지만 서울도 자동차가 많고 그렇잖아요? 그래서 더 미세먼지가 심하다고 하네요. 그래도 이렇게 답답한 와중에 가슴을 뻥 뚫어 주는 소식은 동계 올림픽 때 많았습니다.

문성휘 : 감동적인 것도 있었고 섭섭하고 아쉬운 일도 많았어요.

진행자 : 사건이 많았지만 무사히 끝났네요. 끝나고 나니까 밤에 할 일이 없습니다. (웃음) 소연 씨, 어떻게 재밌게 보셨나요?

박소연 : 잠도 않자고 정말 열심히 봤어요. 김연아 선수 경기, 경기 두 번하고 그걸 합산했잖아요? 그 중에 첫 번째, 1등한 경기를 새벽에 자지 않고 봤는데 정말 입을 다물지 못했어요. 남쪽에서는 '피겨' 그러죠? 북한말로 '휘거'라고 하는데요. 체육을 어떻게 저렇게 예술적으로 하나... 우리는 북한에서 볼 때 참 불편해 보인다, 다리가 안 올라 간다... 막 뒷얘기를 하면서 봤는데 김연아 선수 경기는 너무도 완벽하더라고요. 가보입니다. 정말... (웃음)

문성휘 : 저는 이번 소치 올림픽, 그 중에서도 김연아 선수 경기는 북쪽에 공개됐는지 궁금했어요.

진행자 : 공개했습니다. 지어는 올림픽 기간 중 이산가족 상봉 행사 열렸잖아요? 북쪽 기자단이 김연아 선수 경기 다음날, 은메달도 아주 잘 한 거라고 얘기했다는 보도도 있었잖아요?

문성휘 : 아... 저는 김연아 선수 경기 많이 봤는데 볼 때마다 새롭고 특히 이번엔 동계 올림픽이니까 손에 땀을 쥐고 봤어요.

진행자 : 게다가 이번 경기가 김연아 선수의 마지막 경기라서 잘 마무리되길 바랐죠.

문성휘 : 경기는 잘 했는데 판정이 좀 편파적이라는 논란이 있어서 정말 아쉬웠습니다.

박소연 : 저는 쇼트 트랙 계주? 북쪽에선 스케이트 이어달리기라고 하는데 그 경기 할 때 밥을 먹었는데 씹은 밥을 넘기지를 못하겠더라고요. 숟가락을 쥔 채로 같이 소리를 쳤어요. 아아아아... 마지막에 우리 선수가 먼저 들어왔잖습니까? 제가 숟가락 던지고 만세 부르고 그랬더니 옆에서 앉았던 우리 아들이 엄마, 왜 그러냐고. 뭐가 그렇게 좋냐고... 그래요. (웃음) 아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저는 너무 좋아서 밥맛도 달아났습니다. 마지막에 감독이 막 주먹을 쥐매 좋아하는데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저 사람 지금 얼마나 좋을까, 내가 저 사람이면 좋겠다... (웃음)

문성휘 : 단순히 소연 씨 뿐 아니에요.

진행자 : 저도 그랬습니다. (웃음)

문성휘 : 누군가 대한민국 선수가 1등으로 들어왔다 그러면 사람들이 먹던 밥, 하던 일 다 집어 치우고 막 응원하고 소리 지르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도 과거에 계순희, 정성옥 선수가 1등 했었죠? 그때는 그냥 멍해있었어요. 금메달 땄대도 그냥 멍하니 텔레비전을 쳐다보고 있었는데요...

진행자 : 북쪽에서도 응원하고 그러시잖아요?

문성휘 : 에이... 그건 그렇게 하라고 조직을 한 거지요. 그 선수가 일등을 하던 나랑 상관없는 거예요.

박소연 : 지금처럼 이 정도는 아니었어요. 감정이 달라요.

문성휘 : 그런 걸 보면 남한과 북한의 애국심이 큰 차이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저는 늘 그래요. 여기 관중들도 그러잖아요? 선수가 일등을 하고 그래서 대한민국의 국가 울릴 때 다 일어서 보는 사람들도 눈물을 흘리고...

진행자 : 눈물까진 아니라도 찡하긴 하죠.

문성휘 : 선수들 응원하는 모습 참 재밌습니다. 이제 저는 늘 보면서 그러는데, 나도 좀 젊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얼굴에 그림도 그리고... (웃음)

박소연 : 대.한.민.국. 하매 난리잖아요. (웃음)

진행자 : 모여서 하는 응원이 경기를 더 재밌게 해주긴 해요. 이번 동계 올림픽 같은 경우엔 시차가 애매해서 경기를 새벽에 하니까 집에서 봤지만 밤에 하면 어디 친구끼리 동네 맥주 집에라도 모이죠. 근데 저는 참 의외네요. 북쪽이 훨씬 더 할 줄 알았어요. 일등하면 영웅 칭호까지 주잖아요?

박소연 : 아니, 그건 그 사람이 타지 우리가 타나요?

진행자 : 남한도 같죠. 그 사람이 메달 딴 거지 우리가 딴 건가요? (웃음)

박소연 : 아니, 그런 면에서 보면 같은데 강제냐 내 마음이 우러나는 것이냐가 다른 것 같습니다. 북쪽에선 박수채라는 게 있어요. 조직해서는 앞에서 시키는 대로 박수채를 치고 져서 화가 난데도 에이... 막 그러면서 소리도 치고 그러고 싶어도 못 하죠. 경기에 지면 눈치 보며 박수채 들고 가만히 있고 이기면 앞에서 시키는 대로 박수를 계속 치고요. 이게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근데 제가 남한에 와서 월드컵 경기를 봤거든요? 붉은 악마? 저 너무 놀랐어요. 누가 오라는 사람이 없는데 우리가 볼을 넣으니까 함성이라는 게... 강요보다 자발적으로 나오는 게 더 진한 것 같습니다.

문성휘 : 축구 응원단을 붉은 악마라고 부르죠. 근데 생각해보면 여기선 응원할 때 대한민국! 여기 응원은 다 대한민국인데 북한은 좀 다릅니다. 선수들이 국제경기에 나가서 이겨도 우리 선수들이 이겼다... 이 정도이지 우리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선수들이, 우리 조선 선수들이 이겼다고 말하지 않아요. 거기엔 다른 수사가 붙습니다. 위대한 장군님... 이런 말이 붙으니까 그 공이 다 장군님께 가는 거죠. 이 선수가 승리한 게 조국이라는 이미지와 함께 확 와 닿아야 사람이 감동하겠는데 그게 전혀 없는 겁니다. 조국과 완전히 분리된 셈입니다. 선수의 공, 그 노력이 어떤 한 개인에 집중되니 그저 덤덤해요...

진행자 : 남쪽을 보면 1등을 해도, 예를 들어서 이번에 메달 딴 선수들, 여자 선수들이 많죠? 이 선수들 크게 대접을 받아도 국민 여동생이거든요. 근데 북쪽은 크게 가면 공화국 영웅이란 말이죠. 이거 이렇게 차이가 나니 북쪽이 더 열렬할 것이라고 짐작했던 거죠.

문성휘 : 그러니까 이자 말마따나 인민이라는 호칭과 붙어서 인민들의 가슴에 와 닿아야겠는데 그게 결여가 됐으니 응원을 못 받는 거고요. 사실 북한 사람들도 남쪽과 다 같은 민족인데 우리 민족이 워낙 열정적이지 않습니까? 남쪽처럼 자유롭다면 정말 열렬히 응원할 겁니다.

진행자 : 그러기 위해선 반드시 선결돼야하는 조건이 있네요. 일단 가정들에 전기가 다 와야 경기를 보죠... (웃음)

문성휘 : 그래요. 맞습니다.

진행자 : 그런데 이번 동계올림픽, 북쪽이 아예 선수단을 못 보냈어요.

박소연 : 근데 왜 안 나갔대요? 자격이 안 됐나요?

문성휘 : 국제 대회에 참가 기준이 있는 데 능력이 안 돼서 다 탈락한 거죠. 아쉬웠습니다.

진행자 : 4년 뒤 동계 올림픽은 남한에서 하니까 꼭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이런 국제 경기에 북쪽 선수들이 참가를 하면 응원을 하는 탈북자들의 심정이 참 묘하다... 그런 얘길 들었어요.

문성휘 : 우리 탈북자들, 몹시 혼란스럽죠. 4년 전 토리노 올림픽 때도 탈북자들, 인터넷에서 양쪽으로 나눠져서 논란이 많았습니다. 응원해야 한다, 우리는 같은 민족이다... 실제 응원하는 사람도 많았고요. 다른 한 쪽에선 그 사람들을 응원해봐야, 그 공은 정권에 돌아간다, 최고 지도자의 공으로 다 돌아가기 때문에 왜 응원을 해야 하나... 할 수 없다. 그랬는데 결국에는 서로가 다 같이 응원을 했습니다.

진행자 : 남쪽 사람들이 오히려 별 생각이 없이 응원하는데 탈북자들은 참 여러 가지 생각이 드는 것 같더라고요. 소연 씨는 아직 그런 경험이 없으실 것 같은데 만약에 그렇다면 어느 쪽이십니까?

박소연 : 제가 작년에 남북 여자 축구 경기를 갔었습니다. 선수들이 공화국 깃발 들고 나오는데 감정이 이상하더라고요 화면에 공화국 기가 뜨는 게 참 만감이 교차되고요. 내가 3년 전만 해도 저걸 보고 살았는데... 경기가 시작됐는데 사람들이 북한 선수들이 남한 골문에 가도 와... 하고 다 일어나서 응원을 하고, 누구 편을 응원하는지 분간이 안 됐어요. 경기는 북한이 이겼지만 저는 아쉬웠습니다. 그냥 누가 이기지도 지지도 말고 비겼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경기를 끝내고 관중들에게 오늘 경기 어떻게 봤냐고 물었더니 70대 어르신은 그러시더라고요. 누가 이긴들 상관있는가, 우리가 다 같은 동포인데 그리고 40대 관중은 좀 아쉽다, 열 몇 살 정도 되는 아이는 분하대요, 왜 북한을 못 이겼냐고... (웃음) 이렇게 세대 별로 또 차이가 있더라고요.

문성휘 : 사실 누구를 응원한다는 것보다 그냥 비겼으면 좋겠다... 이런 입장이죠. 지금 북한 통일전선부에 소속돼 있는 장해명 씨가 쓴 시가 있습니다. 통일된 다음 우리 다 축구를 하자, 그때는 골대를 향해 공이 와도 막지 말자 그대로 내버려두자... 저도 항상 그 생각을 하면서 남북 경기를 주의 깊게 지켜봅니다.

박소연 : 그런데 문 기자님 그거 보셨어요? 금메달 딴 이상화 선수가 경기 끝나고 소감 얘기하는 거요.

문성휘 : 못 봤습니다.

박소연 : 이 기자님은요.

진행자 : 들었는데 기억이 남지 않는데...

박소연 : 이상화 선수가 5백 미터 속도 빙상에서 신기록을 세우지 않았어요? 소감을 말해달라니까 아, 이렇게 신기록을 세울 줄 몰랐다, 황당하고 하여튼 기분이 좋다... 그러는 겁니다. 아니, 북쪽에서는 나가서 신기록은 무슨, 동메달만 따도 난리에요. 북한에선 말투가 딱 그렇죠. 위대한 장군님과 당이 준 담력으로... 말도 많죠. 근데 이 사람은 너무 덤덤한 거예요. 그렇지 않습니까? 자기 신기록을 세울지 몰랐겠죠. 알았으면 자기 죽을 날을 알게요? 북한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나가는 것처럼 말하거든요.

문성휘 : 사실 정성옥 선수가 1등을 하고 들어와서...

소감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정성옥 선수 얘기죠. 말 한 마디에 천 냥 빚 갚는 정도가 아니라 공화국 영웅이 돼버린 정 선수. 청취자 여러분들은 다 아시는 얘긴지 모르겠지만 그녀의 소감을 국제 사회에 통역한 건 남한 기자였다고 하고요. 또 그녀의 마음속엔 장군님이 아니라 감옥에 있는 아버지가 있었다... 이런 소문도 파다했다고요?

체육은 순수해야 하지만 인간세상에서 일어나는 일, 정치와 경제 논리 또한 빼놓고 얘기할 수 없습니다.

올림픽 그 뒷얘기, 다음 시간에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이 시간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