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11월, 남한에 도착해 올해 남한 생활 3년 차를 맞고 있습니다. 2012년 아들을 데려와 혼자서 키우는 열혈 '워킹맘' 그러니까 일하는 엄마입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엔 남한 정착 8년차, 자강도 출신 탈북 기자 문성휘 씨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 마지막에 우리 선수가 먼저 들어왔잖습니까? 제가 숟가락 던지고 만세 부르고 그랬더니 옆에서 앉았던 우리 아들이 엄마, 왜 그러냐고. 뭐가 그렇게 좋냐고... 그래요. (웃음) 아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저는 너무 좋아서 밥맛도 달아났습니다...
소연 씨가 남한 사회에 나와 텔레비전 방송으로 올림픽 경기를 지켜본 게 이번 로씨아 쏘치 동계 올림픽이 처음이라는데요. 선수들의 경기에 흥분하고 열렬히 응원하고 이겼을 땐 날아갈 듯 기쁘고 지면 분했던... 그 여운은 올림픽이 끝나고도 한참을 가고 있습니다.
오늘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그녀의 첫 올림픽 관람기, 들어보겠습니다.
진행자 : 안녕하세요. 주말들 잘 보내셨어요?
문성휘 : 중국 스모그 때문에 밖에 나가기 답답해서 안타까웠습니다.
진행자 : 그러게요. 근데 황사도 문제지만 서울도 자동차가 많고 그렇잖아요? 그래서 더 미세먼지가 심하다고 하네요. 그래도 이렇게 답답한 와중에 가슴을 뻥 뚫어 주는 소식은 동계 올림픽 때 많았습니다.
문성휘 : 감동적인 것도 있었고 섭섭하고 아쉬운 일도 많았어요.
진행자 : 사건이 많았지만 무사히 끝났네요. 끝나고 나니까 밤에 할 일이 없습니다. (웃음) 소연 씨, 어떻게 재밌게 보셨나요?
박소연 : 잠도 않자고 정말 열심히 봤어요. 김연아 선수 경기, 경기 두 번하고 그걸 합산했잖아요? 그 중에 첫 번째, 1등한 경기를 새벽에 자지 않고 봤는데 정말 입을 다물지 못했어요. 남쪽에서는 '피겨' 그러죠? 북한말로 '휘거'라고 하는데요. 체육을 어떻게 저렇게 예술적으로 하나... 우리는 북한에서 볼 때 참 불편해 보인다, 다리가 안 올라 간다... 막 뒷얘기를 하면서 봤는데 김연아 선수 경기는 너무도 완벽하더라고요. 가보입니다. 정말... (웃음)
문성휘 : 저는 이번 소치 올림픽, 그 중에서도 김연아 선수 경기는 북쪽에 공개됐는지 궁금했어요.
진행자 : 공개했습니다. 지어는 올림픽 기간 중 이산가족 상봉 행사 열렸잖아요? 북쪽 기자단이 김연아 선수 경기 다음날, 은메달도 아주 잘 한 거라고 얘기했다는 보도도 있었잖아요?
문성휘 : 아... 저는 김연아 선수 경기 많이 봤는데 볼 때마다 새롭고 특히 이번엔 동계 올림픽이니까 손에 땀을 쥐고 봤어요.
진행자 : 게다가 이번 경기가 김연아 선수의 마지막 경기라서 잘 마무리되길 바랐죠.
문성휘 : 경기는 잘 했는데 판정이 좀 편파적이라는 논란이 있어서 정말 아쉬웠습니다.
박소연 : 저는 쇼트 트랙 계주? 북쪽에선 스케이트 이어달리기라고 하는데 그 경기 할 때 밥을 먹었는데 씹은 밥을 넘기지를 못하겠더라고요. 숟가락을 쥔 채로 같이 소리를 쳤어요. 아아아아... 마지막에 우리 선수가 먼저 들어왔잖습니까? 제가 숟가락 던지고 만세 부르고 그랬더니 옆에서 앉았던 우리 아들이 엄마, 왜 그러냐고. 뭐가 그렇게 좋냐고... 그래요. (웃음) 아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저는 너무 좋아서 밥맛도 달아났습니다. 마지막에 감독이 막 주먹을 쥐매 좋아하는데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저 사람 지금 얼마나 좋을까, 내가 저 사람이면 좋겠다... (웃음)
문성휘 : 단순히 소연 씨 뿐 아니에요.
진행자 : 저도 그랬습니다. (웃음)
문성휘 : 누군가 대한민국 선수가 1등으로 들어왔다 그러면 사람들이 먹던 밥, 하던 일 다 집어 치우고 막 응원하고 소리 지르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도 과거에 계순희, 정성옥 선수가 1등 했었죠? 그때는 그냥 멍해있었어요. 금메달 땄대도 그냥 멍하니 텔레비전을 쳐다보고 있었는데요...
진행자 : 북쪽에서도 응원하고 그러시잖아요?
문성휘 : 에이... 그건 그렇게 하라고 조직을 한 거지요. 그 선수가 일등을 하던 나랑 상관없는 거예요.
박소연 : 지금처럼 이 정도는 아니었어요. 감정이 달라요.
문성휘 : 그런 걸 보면 남한과 북한의 애국심이 큰 차이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저는 늘 그래요. 여기 관중들도 그러잖아요? 선수가 일등을 하고 그래서 대한민국의 국가 울릴 때 다 일어서 보는 사람들도 눈물을 흘리고...
진행자 : 눈물까진 아니라도 찡하긴 하죠.
문성휘 : 선수들 응원하는 모습 참 재밌습니다. 이제 저는 늘 보면서 그러는데, 나도 좀 젊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얼굴에 그림도 그리고... (웃음)
박소연 : 대.한.민.국. 하매 난리잖아요. (웃음)
진행자 : 모여서 하는 응원이 경기를 더 재밌게 해주긴 해요. 이번 동계 올림픽 같은 경우엔 시차가 애매해서 경기를 새벽에 하니까 집에서 봤지만 밤에 하면 어디 친구끼리 동네 맥주 집에라도 모이죠. 근데 저는 참 의외네요. 북쪽이 훨씬 더 할 줄 알았어요. 일등하면 영웅 칭호까지 주잖아요?
박소연 : 아니, 그건 그 사람이 타지 우리가 타나요?
진행자 : 남한도 같죠. 그 사람이 메달 딴 거지 우리가 딴 건가요? (웃음)
박소연 : 아니, 그런 면에서 보면 같은데 강제냐 내 마음이 우러나는 것이냐가 다른 것 같습니다. 북쪽에선 박수채라는 게 있어요. 조직해서는 앞에서 시키는 대로 박수채를 치고 져서 화가 난데도 에이... 막 그러면서 소리도 치고 그러고 싶어도 못 하죠. 경기에 지면 눈치 보며 박수채 들고 가만히 있고 이기면 앞에서 시키는 대로 박수를 계속 치고요. 이게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근데 제가 남한에 와서 월드컵 경기를 봤거든요? 붉은 악마? 저 너무 놀랐어요. 누가 오라는 사람이 없는데 우리가 볼을 넣으니까 함성이라는 게... 강요보다 자발적으로 나오는 게 더 진한 것 같습니다.
문성휘 : 축구 응원단을 붉은 악마라고 부르죠. 근데 생각해보면 여기선 응원할 때 대한민국! 여기 응원은 다 대한민국인데 북한은 좀 다릅니다. 선수들이 국제경기에 나가서 이겨도 우리 선수들이 이겼다... 이 정도이지 우리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선수들이, 우리 조선 선수들이 이겼다고 말하지 않아요. 거기엔 다른 수사가 붙습니다. 위대한 장군님... 이런 말이 붙으니까 그 공이 다 장군님께 가는 거죠. 이 선수가 승리한 게 조국이라는 이미지와 함께 확 와 닿아야 사람이 감동하겠는데 그게 전혀 없는 겁니다. 조국과 완전히 분리된 셈입니다. 선수의 공, 그 노력이 어떤 한 개인에 집중되니 그저 덤덤해요...
진행자 : 남쪽을 보면 1등을 해도, 예를 들어서 이번에 메달 딴 선수들, 여자 선수들이 많죠? 이 선수들 크게 대접을 받아도 국민 여동생이거든요. 근데 북쪽은 크게 가면 공화국 영웅이란 말이죠. 이거 이렇게 차이가 나니 북쪽이 더 열렬할 것이라고 짐작했던 거죠.
문성휘 : 그러니까 이자 말마따나 인민이라는 호칭과 붙어서 인민들의 가슴에 와 닿아야겠는데 그게 결여가 됐으니 응원을 못 받는 거고요. 사실 북한 사람들도 남쪽과 다 같은 민족인데 우리 민족이 워낙 열정적이지 않습니까? 남쪽처럼 자유롭다면 정말 열렬히 응원할 겁니다.
진행자 : 그러기 위해선 반드시 선결돼야하는 조건이 있네요. 일단 가정들에 전기가 다 와야 경기를 보죠... (웃음)
문성휘 : 그래요. 맞습니다.
진행자 : 그런데 이번 동계올림픽, 북쪽이 아예 선수단을 못 보냈어요.
박소연 : 근데 왜 안 나갔대요? 자격이 안 됐나요?
문성휘 : 국제 대회에 참가 기준이 있는 데 능력이 안 돼서 다 탈락한 거죠. 아쉬웠습니다.
진행자 : 4년 뒤 동계 올림픽은 남한에서 하니까 꼭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이런 국제 경기에 북쪽 선수들이 참가를 하면 응원을 하는 탈북자들의 심정이 참 묘하다... 그런 얘길 들었어요.
문성휘 : 우리 탈북자들, 몹시 혼란스럽죠. 4년 전 토리노 올림픽 때도 탈북자들, 인터넷에서 양쪽으로 나눠져서 논란이 많았습니다. 응원해야 한다, 우리는 같은 민족이다... 실제 응원하는 사람도 많았고요. 다른 한 쪽에선 그 사람들을 응원해봐야, 그 공은 정권에 돌아간다, 최고 지도자의 공으로 다 돌아가기 때문에 왜 응원을 해야 하나... 할 수 없다. 그랬는데 결국에는 서로가 다 같이 응원을 했습니다.
진행자 : 남쪽 사람들이 오히려 별 생각이 없이 응원하는데 탈북자들은 참 여러 가지 생각이 드는 것 같더라고요. 소연 씨는 아직 그런 경험이 없으실 것 같은데 만약에 그렇다면 어느 쪽이십니까?
박소연 : 제가 작년에 남북 여자 축구 경기를 갔었습니다. 선수들이 공화국 깃발 들고 나오는데 감정이 이상하더라고요 화면에 공화국 기가 뜨는 게 참 만감이 교차되고요. 내가 3년 전만 해도 저걸 보고 살았는데... 경기가 시작됐는데 사람들이 북한 선수들이 남한 골문에 가도 와... 하고 다 일어나서 응원을 하고, 누구 편을 응원하는지 분간이 안 됐어요. 경기는 북한이 이겼지만 저는 아쉬웠습니다. 그냥 누가 이기지도 지지도 말고 비겼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경기를 끝내고 관중들에게 오늘 경기 어떻게 봤냐고 물었더니 70대 어르신은 그러시더라고요. 누가 이긴들 상관있는가, 우리가 다 같은 동포인데 그리고 40대 관중은 좀 아쉽다, 열 몇 살 정도 되는 아이는 분하대요, 왜 북한을 못 이겼냐고... (웃음) 이렇게 세대 별로 또 차이가 있더라고요.
문성휘 : 사실 누구를 응원한다는 것보다 그냥 비겼으면 좋겠다... 이런 입장이죠. 지금 북한 통일전선부에 소속돼 있는 장해명 씨가 쓴 시가 있습니다. 통일된 다음 우리 다 축구를 하자, 그때는 골대를 향해 공이 와도 막지 말자 그대로 내버려두자... 저도 항상 그 생각을 하면서 남북 경기를 주의 깊게 지켜봅니다.
박소연 : 그런데 문 기자님 그거 보셨어요? 금메달 딴 이상화 선수가 경기 끝나고 소감 얘기하는 거요.
문성휘 : 못 봤습니다.
박소연 : 이 기자님은요.
진행자 : 들었는데 기억이 남지 않는데...
박소연 : 이상화 선수가 5백 미터 속도 빙상에서 신기록을 세우지 않았어요? 소감을 말해달라니까 아, 이렇게 신기록을 세울 줄 몰랐다, 황당하고 하여튼 기분이 좋다... 그러는 겁니다. 아니, 북쪽에서는 나가서 신기록은 무슨, 동메달만 따도 난리에요. 북한에선 말투가 딱 그렇죠. 위대한 장군님과 당이 준 담력으로... 말도 많죠. 근데 이 사람은 너무 덤덤한 거예요. 그렇지 않습니까? 자기 신기록을 세울지 몰랐겠죠. 알았으면 자기 죽을 날을 알게요? 북한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나가는 것처럼 말하거든요.
문성휘 : 사실 정성옥 선수가 1등을 하고 들어와서...
소감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정성옥 선수 얘기죠. 말 한 마디에 천 냥 빚 갚는 정도가 아니라 공화국 영웅이 돼버린 정 선수. 청취자 여러분들은 다 아시는 얘긴지 모르겠지만 그녀의 소감을 국제 사회에 통역한 건 남한 기자였다고 하고요. 또 그녀의 마음속엔 장군님이 아니라 감옥에 있는 아버지가 있었다... 이런 소문도 파다했다고요?
체육은 순수해야 하지만 인간세상에서 일어나는 일, 정치와 경제 논리 또한 빼놓고 얘기할 수 없습니다.
올림픽 그 뒷얘기, 다음 시간에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이 시간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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