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3) - 이런 점은 유의하세요!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11월, 남한에 도착해 올해 남한 생활 4년 차를 맞고 있습니다. 2012년 아들을 데려와 혼자서 키우는 열혈 '워킹맘' 그러니까 일하는 엄마입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에는 남한 정착 9년 차 자강도 출신 문성휘 기자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 어떡하느냐고, 그걸 다 잊어버렸으니 카드의 돈도 다 빠져나가는 게 아니냐고. 저는 그때 너무도 마음이 바빴어요. 나 때문에 이 모든 불행이 시작된 것 같고. 너무 미안하다고 했더니, 그러지 말라고. 카드야 다시 만들면 되고 (사용을)정지했다는 거예요.

지난 시간부터 최근 소연 씨가 만든 신용카드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데요. 신용카드는 일종의 전자화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한을 비롯한 세계 대다수 국가에서 현금 대신 많이들 사용하죠. 고객의 신분과 은행 통장을 확인해 주는 손바닥만 한 플라스틱 조각이 있으면 현금 거래 없이 상품을 사거나 병원 진료, 대중교통 등을 먼저 이용하고, 나중에 그 값을 통장에서 자동으로 빼가게 하는 형식인데요. 그래서 신용카드를 잃어버리면 마치 현금을 잃어버린 것처럼 당황할 때가 많습니다. 사실 편리한 만큼 복잡하기도 하고, 유의할 점이 많은 게 신용카드기도 한데요. 자세한 얘기는 직접 들어보시죠.

박소연 : 저는 남한에서 절대로 카드를 안 만들겠다고 결심했는데 석 달도 안 돼서 은행 광고의 유혹에 못 이겨서 체크카드를 만들었어요. 그리고 3년이 되니까 화장품의 유혹에 빠져서 신용카드를 만들었어요(웃음). 신용카드를 쓰면 그걸(돈을) 10개월 동안 나눠 낼 수 있는 환경이 되더라고요.

진행자 : 신용카드는 3개월, 5개월, 12개월 이런 식으로 수수료 없이 할부를 해주니까 그런 이유 때문에도 많이들 신용카드를 사용합니다.

문성휘 : 북한 사람들 할부라는 개념을 잘 모르는데, 한마디로 말해 외상, 그런데 한꺼번에 돈을 갚는 게 아니라 조금씩 돈을 갚는 형태죠.

박소연 : 내가 고객으로서 당당하게 신용카드를 만들면 10개월 동안 기계가 자동적으로 뽑아가잖아요. 그게 정말 좋은 거예요.

진행자 : 그런데 그게 병폐가 있는 게 아무 개념 없이, 내가 돈이 얼마나 있는지도 모르고 계속 뭔가를 사게 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빚더미에 앉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박소연 : 북한에는 외상이 무상인지 알고 정신없이 쓰다 마지막에는 집을 날린다는 말이 있어요.

문성휘 : 신용카드가 잘못하면 그렇죠.

진행자 : 그러니까 신용카드를 만들 때는 본인이 잘 관리할 수 있는 지혜와 힘이 필요한 것 같아요.

문성휘 : 다행스러운 건 은행에 가서 계약을 체결하면 돈을 쓴 순간에 휴대전화 문자로 날아와요. 내가 어딘가에서 신용카드를 잃어버렸을 때는 정말 유용하죠. 누군가 카드를 사용하면 내 휴대전화로 알려오잖아요. 그럼 어디서 누가 썼는지 잡아낼 수 있고요.

진행자 : 혹시 그 문자가 문 기자께만 가나요? 아니면 아내한테도 가나요?

문성휘 : 그렇게는 안 해요. 집사람한테 문자가 가면 제가 돈을 감춰놓고 못 쓰니까(웃음).

진행자 : 그러게요. 가족카드라고 해서 안사람이 사용한 결과를 남편이 문자로 받더라고요. 그러면 만약 아내가 백화점에서 카드를 사용하면 남편이 바로 전화를 하는 거죠. '또 뭘 이렇게 많이 샀어?'

박소연 : 아, 눈으로 보는 것처럼.

진행자 : 바로바로 얼마나 썼는지 알 수 있는 거죠.

박소연 : 제가 카드 때문에 황당했던 게 작년인가 선을 봤어요. 안양천에 앉아서 얘기를 하는데, 길옆에 차를 세우고 과일을 팔더라고요. '저기서 과일을 파는구나!' 했더니 이분은 제가 그 과일이 먹고 싶은지 알고 과일을 사러갔다 가방을 차에 놓고 온 거예요. 그 안에 휴대전화고 신용카드고 다 있는데, 차는 가고 없고. 휴대전화 좀 빌려줄 수 있느냐고 묻더라고요. 북한에서 와서 저는 잘 모르잖아요. 어떡하느냐고, 그걸 다 잊어버렸으니 카드의 돈도 다 빠져나가는 게 아니냐고.
그런데 그분이 너무 여유가 작작한 거예요. 물론 선 본 여자 앞에서 잘 보이고 싶은 마음도 있겠지만. 저는 그때 너무도 마음이 바빴어요. 나 때문에 이 모든 불행이 시작된 것 같고. 너무 미안하다고 했더니, 그러지 말라고. 카드야 다시 만들면 되고 (사용을)정지했다는 거예요.

진행자 : 정말이지 카드를 잃어버릴 경우가 있잖아요. 지갑을 잃어버릴 수도 있고.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문 기자님?

문성휘 : 저도 지금은 아주 여유작작한데, 처음 카드를 만들었다 잃어버린 적이 있어요. 정신이 정말 아찔하더라고요. 그래서 카드사에 전화를 했는데, '어떤 거는 1번을 누르고, 어떤 거는 2번을 누르고' 계속 기계음이 나오잖아요. 사람 미치겠는 거예요. 내 돈이 다 빠져나가는데. 겨우 상담사와 연결이 됐는데 카드 비밀번호를 대라는 거예요. 개인 신상을 확인해야 한다고. 그런데 이건 그동안 집사람이 계속 사용해서 비밀번호가 생각나지 않는 거예요. 그러면 해지할 수 없대요. 너무 화가 나서 경찰 부르겠다고, 내 돈이 다 빠져나가는데. 그쪽에서는 죄송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거예요. 사람 미치겠더라고요. 끝내 해지 못했어요.
다음 날 새벽부터 은행 문 앞에서 기다렸더니 철문이 열리더라고요. 잔뜩 화가 나서 들어가는데, 전 직원이 일어나서 '고객님, 안녕하십니까!' 하고 인사하는 거예요. 얼마나 놀랐는지, 이 사람들 나를 간부로 착각하지 않았나. 그런데 첫 고객에게 그렇게 인사하는 게 은행의 관행이래요.
한참 뭔가 작업을 하더니 그 사이 카드를 다른 사람이 쓴 적은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정지하고 나니까 한시름 놓이더라고요. 그걸 정지 못하고 온밤을 얼마나 떨었겠어요. 돈이 빠져나갈까봐. 더 황당한 건 집사람이 전화해서 카드를 찾았다는 거예요. 서랍 안에 있었대요. 그런데 나중에 카드를 사용하려고 하니 이제 은행에서 다 막아놔서 쓸래야 쓸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은행에 가서 잔뜩 문서를 만들었어요(웃음).

진행자 : 분실신고나 도난신고를 하면 그 시점 이후 사용 금액에 대해서는 은행에서 보상해주는 제도가 있는데, 요즘은 또 법이 바뀌어서 신용카드 뒤에 보면 본인 서명을 하게 돼 있거든요. 그런데 그 서명을 하지 않고 다니는 사람이 많거든요. 그래서 서명을 안 했을 경우에는 반만 보상을 해준다는 것도 있고.
카드가 도착하면 굉장히 규칙이 많을 겁니다. 그걸 꼼꼼히 읽어보시고, 일단 하라는 대로 해야 나중에 일이 생겼을 때 보상이나 어떤 혜택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박소연 : 그리고 탈북한 동생들이 그런 말을 해요. '저번에 은행 갔다 비밀번호 잊어버려서 돈을 못 찾았다'고. 그런데 저는 비밀번호에 사연이 있거든요. 제가 남한에 와서 광고의 유혹에 빠져 한 은행에 들어가서 카드를 만드는데 비밀번호를 만들라는 거예요. "예?" 저는 그게 뭔지 모르잖아요. 그랬더니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로 만들래요. 계속 생각하고 있으니까 직원이 쳐다보는 거예요. 빨리 눌러야 카드가 나오든지 하는데.
내가 좋아하는 숫자? 제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아버지거든요. 그래서 아버지가 태어난 해를 눌렀어요. 제 집 출입문 비밀번호도 다 아버지 태어나신 해예요. 그래서 저는 비밀번호를 잊어버린 적이 없고, 그 비밀번호를 누를 때마다 아버지 생각이 나요. 사람들이 집 비밀번호를 그렇게 단순하게 하면 안 된다고 바꾸라는데 우리 집에 도적이 들어와서 뭘 훔쳐가더라도 저는 아버지를 잊고 싶지 않다...

진행자 : 신용카드 만들 때도 비밀번호 만들잖아요.

박소연 : 또 같은 번호예요(웃음). 저는 다 통일했어요. 그러니까 누가 알게 되면 제 신상이 다 털릴 수는 있지만, 신상이 털리더라도 지금은 강구책이 잘 됐으니까 저는 죽을 때까지 그렇게 하려고요.

문성휘 : 그게 편리하기는 한데 사회가 발전할수록 범죄도 지능화되잖아요. 그러니까 범죄에 노출되면 상당히 위험하죠.

박소연 : 위험하죠. 그런데 제일 좋은 것, 귀중한 것, 비밀처럼 소중한 게 아버지밖에 없으니까. 앞으로 어떻게 할지는 여기서 답이 안 나올 것 같아요.

진행자 : 그래도 소연 씨는 비밀번호 까먹지는 않겠어요. 남한도 상점마다 다른데 물건을 구입하고 그냥 카드를 긁기만 하는 곳이 있는가하면 비밀번호를 누르라는 곳도 있더라고요.

문성휘 : 그런 곳도 있어요?

진행자 : 네, 제가 서울역에서 한참 줄을 섰다 카드로 결제하는데 비밀번호를 누르라는 거예요. 세 번 눌렀는데 결국 다 틀려서 기차표도 못 구한 적이 있는데, 해외여행 할 때도 일부 국가에서는 비밀번호를 꼭 누르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정말 생각이 안 나는 거예요. '이걸 텐데'라는 걸 눌러도 계속 틀리니까 사람들이 저를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죠.

문성휘 : 아닌 게 아니라 신용카드는 세 번만 비밀번호를 잘못 누르면 그 다음에는 사용이 중지되잖아요.

박소연 : 저는 그거 몰라요. 한 번도 잘못 누른 적이 없으니까.

문성휘 : 비밀번호 세 번만 오류가 나면 그 카드를 못 써요. 자동적으로 차단이 됩니다.

진행자 : 이걸 다른 사람이 사용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원래 주인이 아니라.

문성휘 : 그러면 은행에 가서 문서들을 한참 만들어서 다시 비밀번호를 정해야 하거든요. 많은 사람들이 대게 비밀번호를 통일시켜요. 인터넷이나 휴대전화나 집 출입문 등을 다 번호가 다르면 자꾸 번호를 까먹으니까. 비밀번호를 가장 많이 까먹는 사람은 저예요. 그런데 보안을 생각하는 것도 저인 것 같아요. 그래서 매번 까먹으면서도 모든 비밀번호를 다 다르게 만들어놔요.

박소연 : 그걸 어떻게 다 기억하세요?

문성휘 : 기억을 못하죠. 그래서 아닌 게 아니라 살면서 그렇게 잊어버린 비밀번호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진행자 : 요즘 신용카드, 은행 전자거래도 그렇지만 모두 비밀번호가 필요하잖아요. 비밀번호가 굉장히 많은데, 소연 씨가 말씀하신 것처럼 어떤 의미 있는 번호, 잊지 않기 위해서 하나의 번호로 통일하다 보면 편리함만큼 악용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신용카드도 복사해서 다른 사람이 사용하기도 하고, 인터넷 은행 같은 경우도 내 전자통장으로 무단 침입해서 돈을 몽땅 가져가는 사례들도 있잖아요. 그런데 내 비밀번호가 모두 같을 경우에 연쇄적으로 털릴 수 있는 거죠. 그래서 비밀번호를 자꾸 바꾸라고도 하고, 또 예전에는 단순히 4개의 숫자만으로 만들었다면 요즘은 영문도 넣고 특수문자도 넣고 점점 복잡해지는 거예요. 그런데 문제는 복잡하게 만들기는 하는데 다음 순간에 까먹는다는 거죠(웃음).

문성휘 : 정말 그게 문제예요.

박소연 : 아휴, 세상이 복잡해. 저는 단순하게 살고 싶은데.

진행자 : 복잡합니다. 단순하게 남한에서 살기는 좀 힘들지 않을까요? 그런데 소연 씨도 이제 신용카드 사용하기 시작했으니까 점점 한 장 한 장 늘리지 않을까요? 저희 시간이 지나서 소연 씨 카드가 몇 개로 늘어났는지 한 번 확인해 볼까요(웃음)?

문성휘 : 정말 두고 봐야죠.

박소연 : 이러다 대한민국 신용카드는 다 만들어서 주머니에 넣고 다니겠어요(웃음). 나도 이제 대한민국 사람이니까 복잡함 속에 끼어들어 단련돼야겠죠?

아마 지금쯤이면 소연 씨가 새로 만든 신용카드를 사용하고 있을 것 같은데요. 이 시간을 통해서 함께 얘기 나눴던 신용카드를 이용할 때 편리한 점과 유의할 점들 잘 기억하셔서 탈 없이 유익하게 사용하시면 좋겠네요. 그리고 앞으로 소연 씨의 신용카드가 몇 개로 늘어날지는 저는 방송을 통해 확인해야 할 것 같습니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다음 주부터는 이현주 기자가 이 시간 다시 진행을 맡게 됐거든요. 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 앞으로도 귀 기울여 들어주시고요. 저는 여기서 인사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윤하정이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