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연 씨는 2011년 11월 남한에 도착한 햇내기 입니다. 무산 출신으로 선전대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30대 중반의 여성인데요. 하나원 교육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남한 생활을 시작한지 이제 근 일 년...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에는 남한 정착 7년차, 자강도 출신 탈북 기자 문성휘 씨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 저번에 KTX 고속 열차를 타고 전라도까지 갔는데 우리 집에서 전라도 거리가 아마 우리 고향부터 해주까지 거리일 겁니다. 근데 타고 다가보니까 열차 자리가 절반 이상 비었어요! ( 맞아요. 열차가 왜 뛰는지 모르겠어요... )
지난 시간에 이어 남북의 대중교통, 두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 얘기 시작합니다.
박소연 : 양강도 백암에 볼일이 있어서 다녀오는데 그 때도 기차에 사람이 엄청 많았습니다. 안 됐지만 아마 그 아주머니는 죽었을 거예요. 저는 좌석에 앉아있었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안전원한테 딸귀어(쫓겨서) 우리 칸으로 들어왔어요. 거기 저밖에 여자가 없어서 제가 나아 보였는지 내 앞에 서서 뭘 좀 숨겨 달래요. 등을 보여주는데 애를 업었어요. 저는 아이를 보고 너무 놀라서... 아이가 머리가 이만하고 팔십 먹은 할머니를 작게 압축해 놓은 인상이었습니다. 동을 내놓으며 숨겨달라기에, 한 다섯 킬로 정도 돼 보이는 동이었는데 그래서 얼른 내가 엉덩이에 깔고 앉고 아줌마는 저리 갔다가 나중에 오랬죠. 조금 있다가 안전원이 들어와서 이 간나, 어디갔어? 소리치는데 속으로는 아줌마, 제발 잡히지 말라고 얼마나 빌었는지 몰라요. 얼마쯤 뒤에 돌아와서 너무 고맙다고... 그래서 옆에 앉혀 아이 젖을 물리는데 글쎄, 아이를 업고 기관차 꼭대기에 이틀 동안 달려왔다는 거예요. 근데 이 여자분 한 명만 그런 게 아니었고요. 고난의 행군 시기엔 기관차 위에 사람이 얼마나 많이 탔는지 기차가 이중 차 같이 보였어요.
문성휘 : 그러고 보면 남북한 모두 교통지옥이다... 솔직히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근데 완전히 극과 극이에요. 남한은 너무 자동차가 많아 교통지옥입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데 보통 4시간 걸리는데 추석 같은 때가 되면 11시간, 14시간 걸리지 않습니까? 북한은 반대로 차가 너무 없어 교통지옥이고요. 우리도 보도했지만 올 1월에도 양강도에서 이 추운 겨울에 화물차에 28명이 올라탔다가 차가 굴러서 몽땅 사망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남한에서는 화물차 위에 사람 실었다가 당장 경찰에게 붙잡히죠. 그리고 북한 시내버스에는 남자들이 그 비좁은 데서도 담배를 핍니다...
박소연 : 아, 맞아요...
진행자 : 너무 하네요. 그 속에서 담배까지 피우는 건...
문성휘 : 여자들이 거기서 항의했다가는 주먹이 날라 가고요. 노인들은 애초에 시내버스는 탈 엄두도 못 내죠. 늙은이들이라도 젊은 애들 담배 피는 걸 뭐라고 했다가는 주먹이 날라 갑니다. 그러니까 북한도 교통지옥, 그것도 아주 이상한 교통지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행자 : 여자 분들은 담배 연기 진짜 싫었겠는데 말도 못하고 지옥은 지옥이었겠습니다.
박소연 : 제가 한국에 와서는 차도 타지만 걸어도 많이 다닙니다. 근데 여기는 정말 제가 고향에서 봤던 모습들이 거의 없습니다. 특히 차가 지나가면 길거리 가득 그 먼지... 한국은 도로에 먼지가 거의 없어요. 북한에선 김장철에 6톤짜리 해방호, 동풍호에 배추를 가득 싣고 포장 안 된 도로를 가자니 속도를 못 내거든요. 뒤뚱뒤뚱 가는 화물차 뒤에 10살부터 15살 정도 먹은 쏠쏠이 (그만그만한) 아이들이 매달려서 배추를 다 부립니다. (웃음) 그런 풍경을 항상 보죠... 단속도 안 해요. 그냥 보고, 떨어지지만 말아라 하고 웃습니다.
문성휘 : 맞다... 승리 58은 지금도 다니지 않습니까? 58년도에 만들어서 그렇게 이름이 붙었는데...
진행자 : 어우, 오래된 차네요.
문성휘 : 그렇죠. 근데 그 차는 지금도 뜁니다. 그 차가 거리에 가면 아이들이 도로 바닥에서 놀다가 야, 승리차 온다... 하면서 미리 손에 침을 탁탁 뱉고 준비를 하죠. 그리고 차가 싹 지나가면 운전기사 모르게 뒤에서 갑자기 속력을 내서 뛰어 올라탑니다. 자동차 타는 재미에 얼마쯤 매달려 가는 거죠... 차가 얼마나 속도가 느렸으면 중학교 애들이 매달리겠습니까? (웃음)
박소연 : 저도 한국 오기 직전에 시내버스를 탔는데 내려서 보니까 웃옷의 단추가 다 뜯어졌더라고요. 한국에 와서도 버스에 사람이 너무 많을 때가 있는데 그래도 그 때에 비하면 꽃이에요. 아직은 여기 생활이 황홀하고 꿈같고 버스에서 서서가도 행복해요. (웃음)
진행자 : 사실 지금 남한의 지하철, 버스 같은 교통수단은 몇 년에 걸쳐서 굉장히 좋아진 상태입니다. (웃음) 혹시 소연 씨, 문 기자님 '푸시맨'이라는 거 들어보셨어요? 밀어주는 사람이란 뜻인데 출퇴근 시간에 지하철 열차 안으로 사람들이 더 많이 탈 수 있도록 밀어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정도로 출퇴근 시간엔 사람이 많았는데요. 지하철이 9호선까지 건설되면서 인원이 분산돼, 요즘 상황은 많이 좋아졌죠.
문성휘 : 그러니까 여긴 발전이라는 게 있다는 얘기죠. 대한민국 사람들,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휴대폰을 컴퓨터처럼 쓸 수 있으리라 상상도 안 했을 겁니다. 2017년이 되면 초고속 열차가 나온다지 않습니까? 지금 KTX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3시간 20분 걸리는데 초고속 열차는 1시간 20분이면 간 답니다. 강계에서 해주까지 1시간 20분이면 간다는 얘깁니다.
진행자 : 그런 변화가 참 많아서 소연 씨만 해도 문 기자가 정착할 때와 차이가 많이 나죠? 두 분이 5년 차이인데요. 지어는 문 기자가 여기 정착해서도 많이 바뀌었죠? 사회가 어느 정도 기반이 있다면 발전은 일순간일 수 있어요. 북한도 시작이 반인데 그 시작이 어렵네요.
문성휘 : 그러자면 좀 열린 마음으로 사회를 좀 열어놔야겠는데...
박소연 : 경제가 해결이 안 되고는 힘들겠죠. 제가 여기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임신부 좌석이라든가 노약자 석을 비워놓는 걸 봤거든요. 이 자리는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그냥 비워둡니다. 북한도 영예군인 좌석이라는 게 있지만 비워놓을게 뭡니까... 이걸 보면서 사람들이라는 게 경제생활에서 새로운 변화가 있기 전에는 마음이 나빠서가 아니라, 모든 것이 힘들어서 그럴 여유가 없는 겁니다. 여기서 공부하면서도 저는 제가 문제를 못 풀면 다음 시간에 못 쫓아간다는 생각으로 막 악으로 풀어요. 누가 물어봐도 대답도 안 하죠. 근데 옆에 사람들은 자기가 잘 못해도 누가 물어보면 막 성의껏 알려주더라고요. (웃음) 그래도 저도 약간 변했어요. 거기보다는 여유가 있으니까요. 북한도 생활적 여유가 생겨야 사람들이 마음의 여유도 생기고 할 것 같아요.
문성휘 : 그런데 그렇게 되자면 개혁, 개방이라도 해야 한다는 건데...
박소연 : 답이 없어요.
진행자 : 답이 있는데 그 정답을 피해가자니 답을 찾기 참 힘든 거 아닐까요? 자, 거의 마무리할 시간입니다. 소연 씨! 정착 잘 해서 운전면허도 따고 자가용도 사서 손수 운전하시길 빌게요.
박소연 : 5년이나 10년 후에는 여건이 되면요.(웃음)
문성휘 : 저도 남한에 온 다음 5년이 돼서 차를 샀으니까요. 너무 조급해 하지 마세요. 천천히 타도 정말 싫증이 나서 못 탈 정도로 타게 됩니다... (웃음)
북쪽과 비교할 건 못되지만 남쪽 지하철, 버스도 출퇴근 시간엔 어지간히 붐빕니다. 오죽하면 지옥철, 콩나물시루라는 별칭도 있습니다. 직장인들은 지긋지긋해 하지만 학교 졸업하고 직장을 미처 못 잡은 사람들은 출퇴근 시간 콩나물시루 같은 버스가 그렇게 부러워 보인다고 합니다. 요즘 같이 시국이 소란한 시기에도 빽빽한 버스타고 직장 나갈 때가 좋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텐데요. 아무쪼록 이 과정을 거쳐 우리의 삶이 조금 더 나아졌으면 합니다. 소연 씨가 3개월을 걸려 지하철 타는 걸 배우고 5년 만에 문 기자가 자기 차를 산 것처럼 차근차근 조금씩이라도 더 나아지길 바래봅니다.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오늘 여기까집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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