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11월, 남한에 도착해 올해 남한 생활 5년 차를 맞고 있습니다. 2012년 아들을 데려와 혼자서 키우는 열혈 '워킹맘' 그러니까 일하는 엄마입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엔 남한 정착 10년차, 자강도 출신 탈북 기자 문성휘 씨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 영화 보면 총 쏘는 장면도 없고 부모, 형제 갈라지는 장면도 없는데 너무 마음이 울먹했습니다. 북한처럼 혁명적인 표현으로 시를 짓는 시인도 아니고 그냥 사람의 마음을 담는 서정적인 시입니다. 별 하나의 사랑과 추억과...
큰 예산을 들여 유명 배우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대작 영화들을 제치고 요즘 남쪽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보는 영화는 '동주'입니다. 일제 강점기 일본의 형무소에서 생체 실험으로 사망한 시인 윤동주의 28년 짧은 생애를 담은 영화입니다.
남한 사람 누구나 알고 있는 시인 윤동주 그리고 그의 시가 영화로 만들어진다고 했을 때 이 영화가 흥행을 할 것이라고 기대한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겁니다. 의외의 흥행은 분명 해답이 있을텐데요. 많은 사람들이 답을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그의 시에서 찾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 <세상 밖으로> 윤동주 그리고 시대를 온몸으로 느끼며 살았던 남북의 작가들에 대한 얘기 해봅니다.
진행자 : 임화와 지하련이라는 작가의 사랑 얘기도 남쪽에선 유명합니다.
박소연 : 저희는 오히려 전혀 몰랐습니다. 첫소리네요.
문성휘 : 저는 임화에 대해 알게 된 것이 뜻밖에도 보위부 소설을 통해 알게 됐습니다.
진행자 : 보위부 소설이 뭡니까?
박소연 : 절대 내가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문성휘 : 북한은 도서가 정해져 있어서 정탐 소설(추리소설) 같은 건 보위부만 볼 수 있게 정해져있습니다. 세계 정탐 실화, 반탐 실화 이런 것이죠. 안전부 소설도 따로 있고요. 한국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작가인데요. 보위부 출판사에서 출판한 책인데 그때 인기가 높아서 일반 사람들도 그걸 빌려보질 못해서 난리였어요. 참, 한국에 오니까 보위부 소설이고 그런 거 없더라고요. 다 그냥 출판이 되요. 북한에서는 외국 소설을 출판할 때 머리말을 통해 뭔가 비판적인 토를 답니다. 그때 소설 머리말에서 임화의 이름이 살짝 언급됐습니다. 저는 작가들이 약간 의도를 가지고 그런 것을 흘리지 않나 생각하는데요. 말하자면 약간씩 북한 주민들에게 이런 사실을 알려주며 힌트를 주는 것이죠. 아마 마츠모토 세이초 소설의 머리말을 쓴 작가도 뭔가를 알려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머리말에는 이 작가가 쇼와사 일기 같은 작품도 쓰고 북한 시인 임화를 주인공으로 북의 시인이라는 장편소설도 썼다. 이 소설엔 임화가 결핵으로 고통을 받았고 아주 연약하게 그리면서 동정심을 보인 치명적인 결함을 보였다.... 이렇게 써있었습니다.
진행자 : 그래서 임화가 누구인가 궁금하셨겠군요.
문성휘 : 네, 그래서 임화가 누구인지 그리고 북한에 왜 체포됐고 어떻게 사망했는지 알게 됐습니다. 솔직히 임화가 제일 처음 알려진 것은 1982년도입니다. 북한이 노동당 제7차 대회를 한 이후 인민의 지도자라고 김정일에 대한 책, 두 권으로 된 책을 출판하고 대대적으로 읽혔습니다. 김정일의 전기 비슷하게 쓴 것이죠. 거기에 참 거짓말이 많았는데... (웃음) 1952년에 첫 백두산 답사를 지휘하고 이끌었다... 사진을 보면 우리가 굉장히 웃었어요. 그래서 초기에 넣었다가 나중에 사진을 내보내지 않았습니다.
진행자 : 사진이 어떻게요?
문성휘 : 백두산 답사를 할 때 김정일이 조직 지휘 했다고 하는데 왼쪽 어느 끝에 가서 얼굴이 보일락 말락 하거든요. 그리고 오른쪽에 깃발을 든 사람들은 맨 앞쪽에 섰는데. 야야 이게 뭐냐? 김정일이 지휘했다는데 왜 구석에 가서 박혔어? 이런 얘기들을 많이 하니까 처음으로 김정일이 백두의 행군길을 개척했다고 올렸던 사진을 다 제거했어요. 그런 희한한 일도 있었습니다. (웃음) 어쨌든 그러면서 임화를 신날하게 비판했다. 6.25때 교정에서 울려나오는 시를 들었는데 그게 임화의 '너 어디에 있느냐'였고 김정일이 그걸 듣고 임화는 반동 시인이라고 하면서 우리의 정의로운 전쟁을 이렇게 가슴 아프게 만들었다고 굉장히 비판했다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사실 저는 이 임화의 시를 한국에 와서야 읽어봤습니다. 그런 시가 있다는 것만 알려졌지 임화가 누구며 어떤 작품을 썼는지 전혀 몰랐거든요. 북에 있을 때 조기천의 시를 읽어보면서 임화의 시 '너 어디에 있느냐'에 대항하여 '조선의 어머니'라는 시를 썼다고 나오더라고요. 그런 걸 보면 북한에서도 임화의 시가 작가들 속에서 많이 읽혔던 것 같습니다.
진행자 : 임화는 카프의 서기장이었다고 하고 좋은 작품을 남긴 시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도 남한에서 올라간 카프 작가들 중에서 높은 자리까지 올라가지 않았나요? 나중에 숙청되기는 했지만.
문성휘 : 박헌영과 이승엽을 숙청할 때 임화를 함께 숙청했습니다. 남로당 당원들은 아직도 박헌영 사건을 거짓이라고 주장합니다. 근데 박헌영 사건에 대해서는 북한도 크게 떠들지 않아요. 6.25 전쟁 때 미제의 고용 간첩이었던 박헌영, 이승엽 도당을 숙청했다고 혁명역사에서 배워주는데 그 외에 다른 언급은 없습니다. 그리고 남로당 당원들은 박헌영이 간첩이아니었다고 아직도 반발심을 갖고 주장합니다.
진행자 : 남쪽에선 김일성이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박헌영을 간첩으로 몰았다고 분석합니다.
문성휘 : 저도 동의합니다. 북한도 사실 박헌영보다는 이승엽이 한강이라는 대호를 가진 미제의 고용 간첩이라고 크게 떠들죠. 결국 사회주의 계파 싸움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거기서 이승엽이 진 것이죠.
진행자 : 얘기가 역시 여기까지 흘러오는 군요. (웃음)
박소연 : 저는 문 기자의 얘기를 들으면서 죽 생각한 것이 작가라는 것이 글을 쓰는 사람인데 왜 우리 남북의 작가들이 다 정치에 얽매여 있었을까? 영화의 주인공 윤동주는 사실 나라를 잃었던 때라서 정치에 자유롭지는 못 했을 것 같아요. 그리고 해방 이후에는 남북으로 갈라졌기 때문에 글 쓰는 작가들도 정치에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었구나 생각합니다.
진행자 : 시대에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이라고 봐야겠는데요. 일제 강점기에 서정시를 쓰면서 윤동주도 고민하지 않습니까? 이런 시대에 문학도 어떤 도구로써 효용성이 강조됐고 다시 이념으로 갈라지기도 하고... 이런 시대의 운명이 작가들의 운명이 되기도 했고요. 박소연 : 북한에선 사실 김일성하고 연결이 되는 글을 잘 써야 살아남았죠. 제가 제일 좋아했던 작품은 총서불멸의 역사... 이 작품은 4.15 창작단 작가들이 많이 망라됐고 천세봉, 석윤기라는 작가들이 참여했는데 그 생생한 글을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용을 당한 것이죠...
진행자 : 저는 잘 모르는 작가들입니다.
문성휘 : 근데 보면 북한은 시인들에 대해서도 남한에 오지 않고 북한에 남아 있다가 발전한 시인들을 쳐줍니다. 조기천, 김원균이나 그런 사람들을 일러주고요. 한국에선 정지용 시인을 굉장히 일러주지만 북한은 김소월을 일러줍니다. 김소월은 구성 사람이고요. 아쉽게도 왜정 때 사망했습니다. 그러니까 북한 연대기에 남지 않는다는 거죠. 그래서 많이 쓰고 일러주고.
진행자 : 사실 정지용 같은 경우엔 행적이 불분명해서 남한에서는 납북이다, 북쪽에서는 아니다... 이렇게 얘기하지 않습니까?
문성휘 : 정지용이 북한에 올라가긴 했어요. 중간에 사망한 것은 아니고요. 평안북도 숙천에 자리를 마련해서 머물러 있었는데 미국 비행기가 한국 군대를 상륙 시켜서 소멸시켰는데 그 와중에 사망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정지용 시인 같은 건 북한에서 전혀 시인으로 알려지지 않다가 1992년에 김정일이 주체 문학론을 내놓으면서 해방 전 작가들의 작품도 읽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시집들이 막 나왔는데 그때 정지용 시도 나왔습니다. 그때 정지용 시인에 대해서는 왜정 때 이념적인 단체에 가담하지 않고 주로 서성적인 시를 썼다, 김소월에 버금가는 작가라고 설명했습니다.
진행자 : 정지용의 향수... 남쪽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시입니다.
문성휘 : 그런데 정말 우스운 것은 1920년, '30년 시선'을 내놓으면서 월북 작가들의 시는 단 한편도 포함이 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웃음) 다 이미 죽은 사람들의 시가 많습니다.
진행자 : 해방 전에 사망한 작가들의 시가 많다는 말씀이죠? 그런데 윤동주의 시는 왜 안 들어 갔을까요?
문성휘 : 윤동주는 시도 없고 이름도 없어요. 잘 모르지만 윤동주는 민족주의 계열이 아니었겠느냐... 이런 짐작을 해봅니다. 강경애의 시선도 나왔는데 강경애는 사회주의 계열이었거든요.
진행자 : 참... 그러고 보면 남과 북으로 나뉘고 사회주의, 민족주의로 나누고...
아직도
이마를 가려
귀밑머리를 땋기
수줍어 얼굴 붉히던
너는 지금 이
바람찬 눈보라 속에
무엇을 생각하여
어느 곳에 있느냐
머리가 절반 흰
아버지를 생각하여
바람 부는 산정에 있느냐
가슴이 종이처럼 얇아
항상 마음 아프던
엄마를 생각하여
해 저무는 들길에 섰느냐
그렇지 않으면
아침마다 손길 잡고 문을 나서던
너의 어린 동생과
모란꽃 향그럽던
우리 고향집과
이야기 소리 귀에 쟁쟁한
그리운 동무들을 생각하여
어느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느냐
.
.
.
한밤중 어느
먼 하늘에 바람이 울어
새도록 잦지 않거든
머리가 절반 흰 아버지와
가슴이 종이처럼 얇아
항상 마음 아프던
너의 엄마와
어린 동생이
너를 생각하여
잠 못 이루는 줄 알아라
사랑하는 나의 아이야 너 지금 어느 곳에 있느냐
인민군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염세적인 시로 비판 받았던 임화의 시 '너 어느 곳에 있느냐' 중 일부였습니다. '사랑하는 딸 혜란에게'라는 부제가 붙어있습니다.
임화는 나이 마흔 다섯, 1953년 8월 총살당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만주로 가있던 그의 부인 지하련은 남편의 처형 소식을 듣고 정신이 나간 채 평양으로 왔고 남편의 행방을 묻다가 평안북도 희천의 수용소에서 병사했다고 전해집니다.
슬픈 작가들의 얘기, 다음 시간에도 이어집니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지금까지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0:00 / 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