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11월, 남한에 도착해 올해 남한 생활 4년 차를 맞고 있습니다. 2012년 아들을 데려와 혼자서 키우는 열혈 '워킹맘' 그러니까 일하는 엄마입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엔 남한 정착 9년차, 자강도 출신 탈북 기자 문성휘 씨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 근데 제 아들이 이번에 개학했잖아요?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내일이 개학인데 친구들이랑 놀다가 늦게 들어왔어요. 북한에서 저희는 볼만 하잖습니까? 치마 주름 세우고 난리치고 책을 싸고 교과서를 책뚜껑을 씌우고... 근데 애는 그냥 다음날 학교 가면 된대요. 진짜 그냥 갔어요...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6개월 만에 다시 인사드리네요. 이 시간 진행에 이현줍니다.
3월입니다! 소연 씨 아들뿐 아니라, 남쪽은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모두... 3월 새 학기가 시작됩니다. 북쪽은 4월에 학기가 시작하니까 북쪽보단 남쪽의 시간표가 한 달이 빠르네요.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오늘은 남북한의 3월 얘기를 좀 해볼까합니다. 우선 남한과 북한의 영 다른 학기 초, 입학식 얘기로 시작합니다.
진행자 : 안녕하세요.
문성휘 : 박소연 : 안녕하세요.
진행자 :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문성휘 : 정말 오랜만이네요.
진행자 : 자리 지켜주셔서 감사드리고요. 다시 돌아올 수 있어서 또 감사합니다. (웃음) 3월이에요. 저는 회사에 복귀한 첫 주라서 정신없이 바쁘지만 저뿐 아니라 남한에선 3월이 참 바쁜 달입니다.
박소연 : 그렇죠. 제가 지금 사이버 대학 다니고 있잖습니까? 이제 3학년인데요. 3월 2일부터 강의가 시작되었습니다. 첫 주부터 난리가 아니네요. 사이버 대학은 북한처럼 시간표가 정해진 것이 아니라 학점에 맞춰 제가 신청을 해야 해요.
진행자 : 그건 사이버 대학 뿐 아니라 남한의 모든 대학이 그렇습니다.
박소연 : 제가 신청한 과목 중에 실용영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영어를 ABC도 모르니까 신청해서 공부해야지 했는데 아니... 엄청나게 잘 하는 겁니다. (웃음) 그날 바로 대학에 전화해서 바꿀 수 있냐고 물었더니 개학을 해서 한 주일이면 다른 과목으로 바꿀 수 있는 자격이 된대요. 그래서 이번 주에 다른 과목으로 바로 바뀌었네요.
진행자 : 대학들은 수강신청 시간이라고 해서 개학하기 전에 수강할 과목을 신청해요. 그리고 3월 2일 개학하면 일주일 동안 수업을 들어보고 그걸 다른 과목으로 바꿀 수 있는 수강 신청 변경 기간이 있습니다.
박소연 : 아, 다른 대학들도 다 그렇군요...
문성휘 : 저는 하여튼 한국에 와서 이 교육 계통이 제일 힘들어요! 우리 북한에서는 강의 시간표가 계속 나오고 그리고 합동 강의 외에는 학생들이 자기 학급이 정해져있어서 거기서 수업을 들어요. 근데 한국은 한 학기 동안 학생이 쟁취해야할 점수를 정해주고 그 점수 안에서 수업을 골라서 신청해야하는데 저는 그게 너무 어려웠습니다. 아니... 이런 대학 수업 같은 건 북한이 잘 만들지 않았는가? (웃음)
진행자 : 그러니까 대학 수업보다 수강 신청이 어려웠다?
문성휘 : 맞아요. 맞아... (웃음)
진행자 : 너무 많은 선택권이 힘드셨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남쪽도 초, 중, 고등학교 학생한테는 시간표가 정해져서 나와요. 이런 선택권은 대학생에게만 허용됩니다. 대학생이면 성인이니까 그 정도 자율권은 보장해주는 차원인 거죠.
문성휘 : 근데 중학교 학생들은 다릅니까?
진행자 : 네, 북한이랑 같아요. 정해진 시간표 나옵니다.
박소연 : 아까 문 기자가 말한 것처럼 이런 건 북한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냥 끼워진 틀 안에서 움직이기 좋아 하거든요. 근데 여기는 개인한테 선택을 하라고 하는데다가 초등학교도 학년이 바뀔 때마다 친구들이 다 변해요. 담임선생도 바뀌고 학급도 바뀝니다.
문성휘 : 아, 진짜 그거 정말 싫더라! 진짜 왜 그러죠?
박소연 : 저도 억수로 싫습니다. (웃음)
문성휘 : 북한 같았으면 초등학교 때 선생님과 학생들이 끝날 때까지 같은 학급이고 중학교 올라가도 크게 흩어 안 져요. 그러니까 우리 인민학교 동창은 영원한 동창이 되는 겁니다.
진행자 : 두 분은 그게 억수로 싫다고 하지만 저는 북쪽식이 이상한 것 같습니다. (웃음) 남쪽은 말씀하신 것처럼 시끄럽겠지만 매년 바뀌는데요. 어떤 쪽이 좋은지는 잘 판단이 안 섭니다...
박소연 : 아니, 여기가 더 안 좋아요.
문성휘 : 여기가 나쁘죠...
진행자 : 두 분이 북쪽식이 익숙해서 그런 거죠? (웃음)
박소연 : 아니에요. 왜냐면 제 아들이 친구가 많아져서... 친구 많은 건 좋죠. 근데 내 돈이 나갑니다. (웃음) 애들 생일에 1만원 내지는 1만 오천 원은 나가는데 지난주에 생일 갔었는데 또 간답니다. 지난주엔 3학년 때 친구, 이번에 4학년 때 친구... 월급 타서 걔한테 다 바치게 생겼습니다...
진행자 : 북쪽식이 같은 친구를 오래 사귈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면 남쪽식은 여러 친구들과 섞이면서 여러 사람들을 겪어 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 좋지 않나요?
문성휘 : 아니죠... 그게 나쁜 거죠! 그 여러 사람을 만난다는 건 반대로 말하면 너하고 나하고 죽자, 사자하는 친구가 없다는 거랑 같죠. 매번 바뀌는데...
박소연 : 그래요. 저도 동감입니다.
진행자 : 친한 친구를 만드는 게 꼭 같은 학급일 필요가 있을까요?
문성휘 : 그러니까 남쪽이 사춘기요, 청소년들 무슨 문제요... 뭔가 복잡해지는 겁니다. 내가 아무래도 교육부에 편지를 좀 써야겠어요. 좀 단순화 시켜달라고.
진행자 : 이건 각 사회에 특성에 맞게 정해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쪽도 나름의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고 있고 북쪽도 이유가 있을 것이고...
문성휘 : 북쪽은 아주 간단하죠! 통제를 쉽게 하려고. 모여라, 헤쳐라 할 때 비상 연락망이 필요한데 지금은 좀 괜찮지만 옛날엔 집에 전화도 없으니까 한번 해놓은 비상 연락망을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 사용하면 편하지 않습니까?
진행자 : 그건 그렇겠습니다.
문성휘 : 근데 남한처럼 학급을 자꾸 바꾸면 장군님을 보위하는데 무척 어려움이 생기죠. (웃음) 그러니 졸업할 때까지 바뀌지 않게 한 겁니다.
진행자 : 그렇군요. 저는 사실 매년 학급을 바꾸는 게 너무 자연스러워서 그 이유에 대해서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네요...
박소연 : 내가 말하면서 퍼뜩 떠오르는 게 남한 사람들은 북한 사람들보다 사교성이 좋은데 왜 그런지 알았어요.
문성휘 : 아... 진짜 그러네요. 이자보니까... 사교성은 진짜 좋아질 수 있겠네요.
진행자 : 그런데 소연 씨가 해석을 아주 좋은 방향으로 해주신 것 같고요...
문성휘 : 그러게요. 제가 보기에도 엄청 나쁜데요. (웃음)
진행자 : 그건 아니고요! 저는 그 생각이 먼저 들었는데요. 같은 선생님이 계속 담임을 맡으면 학생들에 대한 편견을 갖게 되지 않을까요? 애는 공부 잘 하고 애는 못 하는 아이... 그렇지만 1학년 때 못한 친구가 잘 할 수도 있고 다른 것에도 재능을 보일 수 있고요. 매년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복잡하고 나쁜 일만은 아닌 것 같은데요... 박소연 : 그래요. 우리는 인민학교 들어가면 반 학기 만에 딱 구분이 납니다. 최우등생, 우등, 보통, 낙제생... 우리 때는 인민학교가 4년제였는데 1학년 때 최우등생이 끝까지 최우등으로 갑니다. 선생님이 자꾸 공부 잘 한다 하고... 여기는요, 반전이라는 게 있잖습니까? 꼴등하던 게 일등을 하고. 북한은 반전이라는 게 거의 없는 사회입니다. 천리 갈 말은 발통을 보면 알린다... 북한엔 이런 비슷한 말이 많습니다. 실지 그런 아이들이 최우등 하는 일은 없고요.
문성휘 : 그리고 그 학급이 고등중학교까지 올라가니까 한번 밀린 애들이 올라설 방법이 없는 거죠. 저는 이런 반전은 북한에서는 경험을 한번 해봤는데 우리가 중학교 2-3학년 때 김일성이 갑자기 체육을 강조하면서 체육반을 늘렸습니다. 그러면서 담임선생이 바뀌니까 엄청 공부 못한다 생각했던 아이가 일등으로 나가는 겁니다. 우리가 깜짝 놀랐어요...
진행자 : 이거 보세요. 남한 학급을 바꾸는 게 이유가 있는 거거든요. (웃음)
박소연 : 근데 너무 바꾸니까 그러죠...(웃음)
진행자 : 어떻게 남북한의 학급 편성 얘기부터 시작하게 됐네요. (웃음) 남한은 이렇게 새 학기가 시작하면 새 선생님과 새로운 학급 친구들을 만나는데 그게 바로 3월입니다!
박소연 : 기대감이 있겠네요.
진행자 : 그렇죠. 그리고 그런 낯선 것들, 새로운 것에 적응해야하는 부담감도 있고요.
박소연 : 부담감? 제 아들도 이번에 개학했어요.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내일이 개학인데 친구들이랑 놀다가 늦게 들어왔어요. 아, 넌 내일이 개학 아니야? 응... 아주 그냥 대답이 쉬워요. (웃음) 문 기자님, 북한에서 저희는 볼만 하잖습니까? 치마 주름 세우고 난리치고 책을 싸고 교과서에 책뚜껑을 씌우고... 근데 애는 그냥 다음날 학교 가면 된대요. 진짜 그냥 갔어요. 쟤는 뭐 나보러 연필... 이런 거 준비해달라는 얘기도 안 하고? 지금까지 다 있다고 별말 없어요.
진행자 : 지금 얘기 들으면서 생각나네요. 저도 새로운 교과서 받아오면 책 싸느라고... 어떤 때는 달력으로 싸고 어떤 때는 비닐로도 쌌다... 난리였는데 요즘 애들은 그거 안 하죠?
박소연 : 요즘은 공책도 필요 없어요. 교과서가 학습장이에요.
진행자 : 종이 질이 좋아져서 책뚜껑도 할 필요가 없더라고요.
박소연 : 아니, 우리 아들이 4학년 때 쓰던 학습장을 가져왔는데 그래, 내가 그랬어요. 이거 대한민국 밑 빠진 항아리 되는 거 아니냐...? 너무 아까워요. 애들이 몇 번 볼 학습장을 북한으로 말하면 모도지, 사진 종이... 김일성 초상화도 이런 종이에 못 새겼어요. 그렇게 질이 좋은 종이로 만듭니다. 그리고 또 좀 재밌는 게 우리 아들이 4학년 때 반장을 했습니다. 북한에선 입학하는 날 학급 반장이면 두 줄에 두 알이에요.
문성휘 : 군대들 연장처럼 학급 간부 표식인 거죠.
박소연 : 이번에 학급 반장할 때 애들이 뽑아줘도 싫다고 했답니다. 선생님이 자꾸 심부름 시키는 게 싫대요. (웃음) 그래, 야... 북한에선 개학식 날 일부러라도 학급반장 표식 달면 그걸 보이고 싶어서 그 추운 4월에 동복도 안 입고 손에 쥐고 들어가는데... 이것도 남북이 다른 가? 그랬습니다. (웃음)
남북이 학교 교육도 생각보다 참 많이 다르죠?
개학 첫날 교복 바지 주름, 치마 주름 잡던 일... 청취자 여러분도 기억나십니까?
저는 초등학교 입학식 때 가슴에 달던 손수건 생각나네요. 콧물 같은 거 닦으라는 이유에서 달아줬던 것 같은데... 하여튼 그 때는 초등학교 입학생들 모두 오른쪽 가슴에 옷핀으로 손수건을 반으로 접어서 달고 가는 게 법이었습니다. 지금은 이런 입학식 풍경도 많이 바뀌었죠.
북쪽은 4월, 입학식보다 더 중요한 행사가 있죠? 소연 씨와 문 기자는 그 때를 떠올리면 참 알짜 바보였다는 생각이 든다는데요. 바로 소년단 입단식 얘깁니다.
남한 사람인 제가 보기엔 북쪽은 학교 행사도 참 정치적으로 풀어가는구나 싶은데요. 이 얘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가겠습니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오늘은 여기까집니다. 다음 시간에 뵙죠. 지금까지 진행에 이현주 였습니다.
0:00 / 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