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1)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11월, 남한에 도착해 올해 남한 생활 3년 차를 맞고 있습니다. 2012년 아들을 데려와 혼자서 키우는 열혈 '워킹맘' 그러니까 일하는 엄마입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엔 남한 정착 8년차, 자강도 출신 탈북 기자 문성휘 씨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 우리 회사가 높은 층이라서 이사하기 전날 선배한테 그랬어요. 나는 이사하는 날, 아프다고 안 나올까.... 북한처럼 생각한 거죠.

소연 씨가 다니는 직장이 얼마 전 이사를 했습니다. 화물차를 빌리고 휘발유를 사고 운전수를 대접하고 그릇 몇 개, 심하면 장까지 버려야하는 이사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수월했답니다. 물론 이게 공짜는 아닙니다.

오늘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이사 얘깁니다.

진행자 :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습니까? 소연 씨 얼굴이 핼쑥해 졌어요. 지난주 이사한다고 고생하셨나 봐요.

박소연 : 어우 아니에요. 이사하느라 그런 것 아니고요. 오히려 이사는 돈도 적게 주고 아주 편하게 했습니다. 포장이사라는 게 있더라고요. 저는 남한에 와서 처음 알았는데 거기 분들이 와서 다 알아서 해주고 우리는 솔직히 차 마시다가 거의 다 끝났는지 정찰해보고 끝난 다음에 차타고 온 것 밖에 없습니다. (웃음)

진행자 : 그럼 이사할 때는 아무 일도 안 하신 거네요. (웃음) 포장 이사는 말 그대로 전문 이사 업체에서 나와서 짐을 다 포장해 이사를 해주는 거죠.

박소연 : 이사하기 전에 인터넷에서 이삿짐센터를 검색했더니 엄청나게 많이 나오더라고요. 그 중에 골라서 열군데도 더 전화를 했는데 어떤 데는 60만원도 부르고 어떤 데는 40만원도 부르고... 그 중 제일 싼 곳에 했어요. 하루 일당을 4명이 나눌 걸 2명이 나누고 대신에 사람은 2명만 와서 시간은 더 걸렸지만 저희는 그래도 편하게 잘 했습니다.

진행자 : 근데 소연 씨, 포장 이사는 직장에서만 하는 건 아니고요. 가정집 이사도 그렇게 해요.

박소연 : 저는 아직 집 이사를 못 해봤어요. 아, 문 기자님 해보시지 않았나요?

문성휘 : 저는 새로 지은 집에 이사를 갔어요.

진행자 : 어우... 새 집이면 기분 좋았겠네요? (웃음)

문성휘 : 기분이 좋긴요! 엄청난 실수를 많이 했습니다... 솔직히 이사 가기 하루 전에 그 집에 가서 잠까지 잤습니다. 일부러 어떤지 느낌을 보려고...(웃음) 아마 포장 이사가 뭔지 알았으면 애초에 그런 고생은 안 했을 거예요. 이사할 보따리들을 다 싸놨지 집을 다 청소해놨지. 그런데 보니까 그 분들이 짐만 날라주는 게 아니라 싹 다 정리를 해주고 지어는 텔레비전, 냉장고를 다 연결해주고 밤에 그저 딱 이불 펴놓고 잘 수 있도록 청소까지 말끔히 해주는데 저 정말 깜짝 놀랐어요. 우리 냉장고랑 먼지 묻은 거, 기름때가 있는 거 다 닦아주고 정말 이런 분들 한 달에 한 번 씩 불러다가 청소를 시켰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웃음)

진행자 : 열심히 일하시고 모으십시오. 가능한 일입니다. (웃음)

문성휘 : 근데 생각보다 그리 비싸지 않더라고요. 이사를 하는 건 거리에 따라 다르지만 저희는 40만원... 그리 많이 준 거 아니고요. 청소하는 건 5만원이면 된답니다.

진행자 : 이사 비용이 400 달러 정도, 청소는 50달러... 남쪽 물가 생각하면 비싼 건 아니죠?

문성휘 : 그리고 이사라는 게 그 사람들 하는 걸 보니까 쉬워요. 우리 같은 게 짐을 꾸리면 꼬박 하루도 더 걸리는데 그 사람들은 한 시간 정도면 짐을 다 포장하고 포장재가 따로 있어서 딱딱 붙여서 파손되지 않게 하고요. 아, 저렇게 하면 괜찮겠다... 안심이 되더라고요.

진행자 : 그게 저희가 보기에 쉽죠.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또 이사 해주는 곳도 점점 많아지니까 업체 간의 경쟁 때문에 아주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 써주고요.

문성휘 : 서비스의 질이 높아진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이삿짐센터를 운영하는 탈북자들도 있습니다. 지금은 한 세 개 정도 되는데 그 분들도 만날 때마다 전화번호랑 알려줍니다. 왜 그런지 탈북자들은 대개 자기들에게 많이 부탁한다고... 같은 탈북자끼리니까 믿음이 가고 돈 계산하기도 쉽고 말이 붙이기가 쉽다는 거죠. 특히 금방 온 탈북자들 같은 경우 이사할 일이 있으면 좀 남한 사람들이랑 억양도 틀리고 말이 잘 통하지 않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데 탈북자들은 투박한 함경북도 말이나 양강도, 자강도 말을 써도 다 알아들으니까 그게 참 편하게 느끼는 것 같다고요.

진행자 : 이삿짐센터를 운영하시는 분도 계시군요... 탈북자들이 이제는 곳곳에서 다양한 직업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근데 이삿짐 나르는 일은 남한에서는 굉장히 힘든 일에 속하는데 북쪽에는 혹시...

박소연 : 이런 직업 없죠.

진행자 : 남쪽에서도 이삿짐센터라는 게 80년대부터 많이 생겼어요. 그 전엔 리어카.

박소연 : 북쪽에선 딸딸이 또는 구루마라고 합니다.

진행자 : 네, 그걸로 짐을 옮기다가 그 다음은 화물차 빌려서 하다, 지금은 이런 포장 이사죠. 이런 이사만 해도 북쪽과 많이 다른데 소연 씨, 이번에 좋은 경험 했네요.

박소연 : 그러지 않아도 제가 이번에 우리 회사가 높은 층이라서 이사하기 전날 선배한테 그랬어요. 나는 이사하는 날, 아프다고 안 나올까.... 북한처럼 생각한 거죠. 아니 포장이사 전혀 힘들지 않다고 그냥 옆에 서있기만 하면 된대요. 근데 높은 층에서 짐을 어떻게 다 내려와요 그랬더니 사방 한 메타로 바퀴가 달린 게 있는 데 거기에 짐을 척척 실어서 복도까지 옮기고 그리고 아래로 내리더라고요.

진행자 : 높은 층은 아래까지는 엘리베이터, 승강기를 이용하죠. 집에서 이사할 때는 사다리차를 써요. 문성휘 : 그렇죠. 그리고 집 이사가 사무실 이사보다 힘들어요. 사무실에 큰 물건이라 봤자 책상, 컴퓨터인데 집은 텔레비전, 냉장고, 소파... 엄청 힘이 들고 전 처음 사다리차 봤을 때는 떨어지지 않을까 조마조마했어요.

진행자 : 혹시 떨어지지는 않을까...

문성휘 : 사다리가 차에서 죽 올라가는 걸 보면 사다리의 마지막 부분은 정말 가늘거든요. 냉장고랑 실을 때 아... 저거 금방 산 건데 마사지면 큰일이데.. 여기 실어도 되냐고 물었더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세요. 혹시 파손되면 우리가 새 걸로 사드릴게요... 그러더라고요. (웃음) 그런 보험이 있대요. 이사짐 센터가 이사하다가 물건이 파손되면 보상해주는...

진행자 : 소연 씨는 사다리차 보신 적 있어요?

박소연 : 지나다니면서 먼발치에서 봤어요.

진행자 : 자동차에 사다리가 붙어있어서 사다리가 높은 층까지 죽 올라가고 중간에 있는 사방 1미터 정도 되는 판에 짐을 싣습니다.

박소연 : 근데 거기 사람이 올라가는 거 아니죠?

진행자 : 사람도 올라가요... 원래 안 되는데 그 분들은 담도 큰 게.. 물건이 좀 흔들리고 그러면 올라타서 짐과 함께 올라갑니다. 물론 4층 이하였을 때 얘기죠.

문성휘 : 근데 그게 경찰에 걸리면 잡힌데요. 나는 정말, 여기 좋다는 게 이건데요. 북한 같았으면 상관없습니다. 그 사람 생명이지 내 생명이 아니잖아요? 그러니 그러든지 말든지 별 상관없다 이건데 여기는 내 생명을 법과 제도가 함께 지켜줍니다. 그리고 제가 이사하는 날 진짜 민망한 일이 하나 있었는데 가스레인지에 기름때가 많았는데 그걸 미처 청소를 못했는데 그걸 그 분들이 다 닦아 줬어요. 그땐 막 창피하기도 하고...

진행자 : 지저분하다고 얼마나 욕을 했을까 싶고요...

문성휘 : 그러니까요. 그리고 이사라는 건 짐만 날라주는 줄 알았는데 그것까지 다 해주니까 미안하고 내가 이 사람들을 너무 착취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근데 생각해보니까 내가 회사에서 일하는 거랑 그 사람들이 일하는 거랑 같다고 생각하니까 좀 괜찮더라고요.

진행자 : 근데 아무리 돈을 주고 시키는 일이라도 너무 내 짐이 더러우면 일하시는 분들에게 미안해요... (웃음) 그리고 이삿짐을 싼 걸 보면 그 집이 어떻게 사는 지가 나온 답니다. 그러니까 이사도 좀 다녀야할 필요는 있어요. 아니면 주구장창 짐이 쌓이기만 하죠. 소연 씨도 곧 이사하는 날이 올 텐데 그 날은 좋은 날일 것 같네요.

박소연 : 그렇죠. 17평으로 이사하는 날이니까요.

진행자 : 그리고 아마 지금 소연 씨. 계속, 착실히 짐을 늘리고 계실 것 같은데...

박소연 : 맞아요. 짐이 많습니다. 처음에 집에 들어올 때 하나원에서 준 트렁크 1개, 국정원에서 준 트렁크 1개 이렇게 2개 들고 들어왔어요. 그리고 제 아들도 역시 저와 짐이 똑같았어요. 근데 지금은 베란다까지 꽉 찼어요. 뭐가 그렇게 많은지 모르겠어요. 일단 나온 지 오래지 않으니까 이탈 주민 지원 재단에서도 뭘 주고 하나원에서 타 온 큰 이불은 덮지 않으니까 쌓이고 봉사자들도 갖다 주고, 경찰서에서도 뭘 갖다 주고... 그러니까 그게 다 쌓이는 거예요. 세수수건부터 시작해서 다 포장 떼지 않은 걸 주는데 북한에서부터 한두 개 쓰던 습관이 있어서 열 개, 스무 개 장져 놓고 안 써요. 그건 포장을 떼지 않은 채로 베란다에 다 쌓여 있어요. 이제 새집에 가게 되면 쌓아놓고 쓰리라... (웃음)

진행자 : 남한에 이런 말 있습니다. 아끼다가 뭐 된다...(웃음) 이사하려고 어느 집이든 짐을 빼면 수건이나 이런 것이 한 상자씩 나오거든요. 그냥 버리게 되는 경우도 많아요. 그 수건, 나중에 쓸 일 없습니다. 지금 쓰십시오. (웃음)

문성휘 : 이사할 때 보니까 나도 어디 있는지 다 몰랐어요. 금방 하나원에서 나왔을 때부터 자꾸 걷어 넣는 거죠. 처음엔 포장한 채 그러다가 쌓이면 포장을 뜯어 버려요. 그런데 이사할 때 보니까 칫솔만 이렇게 한 묶음 나왔고 치약만 이렇게 나왔는데 겉포장을 버렸으니까 유통 기한이 언제인지 알 수가 없어요.

진행자 : 아... 들으시는 분들이 욕하실 거예요. 치약에 무슨 유통 기한이 있어서 쓰면 되지요...

문성휘 : 그런데 다 버렸어요.

박소연 : 아까워라...

문성휘 : 2-3년 전에 들어온 것들도 있고 더 오래된 것들도 막 있는데 막 섞여서 어떤 게 언제 받은 건지 알 수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그냥 뭐...

진행자 : 이런 식이 되니까 소연 씨, 그냥 곧장 쓰세요. (웃음) 17평 이사 가서 써야지... 이거 안 돼요. 그런데 늘어나는 게 이런 치약, 칫솔, 비누 같은 소모품 뿐 아니죠.

박소연 : 텔레비 단, 컴퓨터 단, 전자레인지 올려놓는 단 책장, 소파... 그런 건 꼭 있어야 하니까요. 제일 많이 늘어난 게 빨래 비누, 세수 비누... (웃음) 그것만 해도... 하나원에서도 정말 아껴 썼거든요. 북한처럼 생각해서 양말 빨 때도 두 번 비누칠 할 걸 한번 했어요. 거품이 조금만 일면 손으로 막 비벼서 빨래를 하고 내 이거 아껴 써야지 내 나가서 돈을 벌겠다... 이렇게 생각했는데 그 비누가 그냥 있어요. 쓸 일이 없습니다. (웃음) 양말도 벗어서 세탁기에 넣고 돌리면 끝인데요. 그냥 그게 박스 채 그대로 있습니다. 버리자니까 마음이 허락 치 않아요. 그걸 60살 될 때까지도 안 버릴 것 같아요. 쓰겠는지 모르겠지만... (웃음)

문성휘 : 버립니다. 꼭 버리게 되요. (웃음) 저희들도 이사를 하면서 옷을 싸면서 이렇게 옷이 많았던가 생각도 못했고요. 이사를 가고 나니까 그 현장에 소파, 텔레비전도 버려요... 이걸 보니까 이게 뭐하는 짓들이냐...

네, 욕 할 만하죠. 남쪽 사람들도 이사하면서 반성도 하고 다짐하고 하지만 또 어느새 집에는 물건이 가득합니다.

근데요. 남쪽에서 살다보면 그런 생각이 듭니다. 버리고 비우기 위해서는 언제든지 그 물건을 다시 살 수 있는 여유, 경제적 여유가 필요하다는 사실을요. 때문에 또 오늘도 버리지 못하고 열심히 쌓아 놓고 있네요. 그러나 이 많은 물건 중에 이사할 때 먼저 챙기는 귀한 물건은 한 가지, 두 가지 정도입니다. 초상화를 빼고, 청취자 여러분은 어떤 물건을 가장 먼저 챙기시겠습니까?

이 얘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가겠습니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오늘은 여기까집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