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을 말해봐 (2)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11월, 남한에 도착해 올해 남한 생활 5년 차를 맞고 있습니다. 2012년 아들을 데려와 혼자서 키우는 열혈 '워킹맘' 그러니까 일하는 엄마입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엔 남한 정착 10년차, 자강도 출신 탈북 기자 문성휘 씨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 한국에 처음 와서 하나원에 나오면 하나 센터에 다니지 않습니까? 제가 거기에서 단체로 소양댐, 소양 저주지에 간 적이 있어요. 그때는 정말 아들을 고향에 두고 온 때라서 앉으나 서나 아들 생각밖에 없을 때였습니다. 동전을 얻어서 저희 아들이 무사히 들어오게 해주세요 하면서 동전을 딱 던졌는데 들어간 겁니다! 그때 다리에 동그랗게 섰던 사람들이 우와... 박수를 쳐주고요. 그 다음에 별나케 위안이 간다는 정도가 아니라 아, 우리 아들은 오겠구나. (웃음)

수많은 사람들의 수많은 소원들... 그 소원을 비는 방법도 참 갖가지인데요. 터무니없는 방법들도 많지만 그만큼 사람들이 간절하다는 얘기겠죠? 소연 씨는 자물쇠도 걸어보고 동전도 던져보고 소원 댕기도 써보고 성당에 가서 기도도 하는데요. 항상 똑같은 소원을 빕니다.

아들의 건강과 북쪽 가족들의 건강, 그리고 꼭 다시 만날 수 있기를.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지난 시간에 이어서 소원 얘깁니다.

박소연 : 제가 데이트를 할 때 경기도에 남양주라는 곳을 갔었는데요. 제가 정말 놀란 것이 큰 길 옆 무슨 담벼락에 사랑한다, 우리 결혼한다... 이런 글씨를 크게 써놓았더라고요. 북한에서라면 딱 당과 수령의 위하여 이런 것이 써 있었을텐데요. 한국에 와서 얼마 안 됐을 때인데 저게 법이 걸리지 않을까 신기하기도 하고....

진행자 : 그게 뭡니까?

박소연 : 남양주 가보셨어요?

진행자 : 아니요...

문성휘 : 아... 참 이 기자, 가보신 데는 있습니까! (웃음)

진행자 : 원래 서울 사람이 남산 못 올라가보는 겁니다. (웃음)

문성휘 : 남양주에 있는 소원의 벽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막 아무데나 낙서하면 자연 경관이 훼손되니까... 북한 같으면 바위 같은 데 위대한 장군님 이런 글자를 막 새기지만 남쪽은 사람들에게 자연이 훼손된다고 그런 거 못하게 하지 않습니까? 대신 이곳에 낙서를 하라면서 일부러 만들어 놓은 낙서벽입니다. 정말 가보면 사람들이 끊임없이 글씨를 써놓았어요....

박소연 : 와... 진짜 많습니다.

진행자 : 참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쓴다고 이뤄지는 것도 아닐텐데...

문성휘 : 그러게 말입니다. 그러나 세계에 그런 유명한 장소들이 꽤 있더라고요. 프랑스 파리에 가면 센느 강가에 서울의 남산처럼 자물쇠를 걸게 해놓은 곳이 있는데 자물쇠가 너무 많이 걸려서 다리 기둥 보강 공사까지 했답니다. 자물쇠 무게 때문에 다리가 허물에 질까봐... (웃음) 그리고 미국에는 껌을 붙이는 벽도 있답니다. 북한 영화를 보면 미국 사람들은 항상 껌을 씹지 않습니까?

박소연 : 맞아요. 미국 사람들은 껌을 씹어야 정상이었습니다. (웃음)

문성휘 : 영화든 뭐든 다 그렇거든요. 미국엔 아닌 게 아니라 껌을 붙이는 벽이 있답니다. 비위생적이다, 비문화적이다 그런 비판도 있어서 벽의 존치를 놓고 어느 주에서 찬반 논쟁이 벌어졌답니다. 찬성하는 사람들은 사람들이 소원을 빌며, 무엇을 희망하며 껌을 붙인 건데 왜 없애느냐 그런 걸로 사람들이 만족한다면 그냥 두면 어떤가 그런 논쟁이었는데....

박소연 : 사람들이 원하면 그대로 둬야죠.

문성휘 : 보면, 사람들은 뭔가 의지하고 싶어하고요. 남한에는 사실 그렇게 의지할 수 있는 곳이 많습니다.

진행자 : 소원 비는 곳 굉장히 많죠. (웃음)

문성휘 : 소원을 비는 장소뿐이 아니죠... 진짜 소녀시대라는 가수가 그런 노래를 부르지 않았습니까? 소원을 말해봐. 소원을 말해보는 방법도 많습니다. 동전을 던지고, 자물쇠를 잠그고 낙서의 벽도 있고... 아, 저희들 하나원 동기들이 모여서 대구에 놀라갔는데요. 팔공산이라는 곳에 올랐습니다.

진행자 : 거기 소원 비는 바위가 있죠?

문성휘 : 아, 네! 큰 바위도 있고 절도 있고요. 다들 소원을 빈다고 해서 저희도 해봤는데 방법은 별 것이 없었습니다. 바윗돌에 손을 얹고 눈을 감고 뭐라고 하는 겁니다. 아침 시간인데도 사람이 많았는데 중얼 중얼 하는 사람도 비는 사람도 있고... 저도 바위를 짚고 빌었습니다.

진행자 : 뭐라고 비셨습니까?

문성휘 : 올해는 정말 평화 통일 해달라. (웃음)

진행자 : 이뤄질 것 같습니까?

문성휘 : 모르죠. 하지만 내 힘으로는 어쩔 수 없으니까 빌어본 겁니다. (웃음) 그저 간절하게 가족들을 만날 수 있게 통일이 좀 되라 빌어보는 거죠.

진행자 : 문 기자님, 그 바위 뭣 때문에 유명한지 아십니까? 대학 입시 때문에 유명합니다.

문성휘 : 아, 맞아요. 수험생 부모들이 엄청나게 온다고 들었습니다.

진행자 : 남쪽은 고등학교 졸업한 뒤에 대학 진학들을 거의 다 하지 않습니까? 대학 진학을 앞두고 시험을 치는 학생의 부모들이 시험을 앞두고 와서 합격을 비는 바위랍니다. 대학 입학시험 날에 뉴스에 단골로 나오죠.

문성휘 : 아, 그게 그 바위입니까? 참... 가지자기 방법이 있네요.

진행자 : 사람들이 참 소원도 많고 하고 싶은 얘기도 많기도 하고요.

문성휘 : 저는 그래도 남산이 높아서 그런지, 서울의 한 가운데 있어서 그런지 저는 남산에 올라가서 소원을 비는 게 제일 좋습니다. 뭔가... 탁 트이고 내 울림이 멀리 전해지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요.

박소연 : 그런 기운이 느껴지죠.

문성휘 : 맞습니다. 어디까지 전해질 것 같은 그런 느낌... 그런데 저도 보면 참 저도 남의 하는 흉내는 다 내네요. 껌 붙이는데 가서 껌도 붙이고 싶고 자물쇠 거는 데 가면 자물쇠도 걸고...(웃음)

박소연 : 북한에서 우리 하던 말 중에 그런 거 있지 않습니까? 사람은 지랄과 도둑질 빼고는 다 해봐야한다고요.

문성휘 : 뭐... 일본 소설 중에 그런 제목 있어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뭔가 내가 세상의 중심에서 팔을 쫙 벌리고 있는 느낌! 그래서 제일 소원을 자주 빌고 그러는 곳이 남산! 북한에는 남산이라는 곳이 굉장히 흉하게 알려졌어요.

진행자 : 그 얘기 많이 하시더라고요. 남산하면 바로 떠올리는 것이 안기부라고...

박소연 : 안기부 지하실, 서서 들어가서 누워서 나온다고. (웃음) 남한에선 거기서 사람이 죽으면 철 지하문이 딱 열려서 한강으로 던져 버린다는 얘기도 돌았어요.

문성휘 : 전 북한이라는 남산이라고 하던 소리를 남한에서 와서 다 까먹고 있었는데요. 누가 남산에 가잔 소리를 하니까 갑자기 머리카락이 서더라고요. (웃음)

진행자 : 남한 사람들은 남산 하면 남산타워 생각합니다. (웃음) 지금 말씀하신 안기부 조사실은 일부 존재했고 지금은 그런 공간을 역사 공간으로 시민들에게 공개한다고 합니다.

박소연 : 구경을 시킨다?

진행자 : 무슨 관광, 구경의 의미라기보다는 우리 역사의 어두운 면도 잘 알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반성의 의미가 담긴 장소로 공개를 하는 거죠. 근데 저는 참... 남산을 얘기하면 탈북자분들 100이면 100 다 그 얘기하시는 게 웃음이 나더라고요. 심각한 곳이긴 하지만...(웃음)

박소연 : 저도 한국에 금방 와서 하나원에서 나온 달에 생일이었는데 집에서 혼자 라면을 끓여 먹고 있으니까 서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나는 게 하나원에서 만났던 신부님이었어요. 그 분께 전화를 했는데, 아마 그 분은 제가 누군지도 모르셨을 겁니다. 신부님 안녕하세요. 저 오늘 생일입니다... 그러니까 어디까지 오라고 하세요. 그때 신부님이 저를 데려가 준 곳이 남산인데요. 올라가니까 사람이 북적북적한 것이 안기부 지하실에 대한 생각은 벌써 옛날에 갔고 제일 기억이 나는 건 그곳에서 팔던 바닐라 아이스크림. 그때 저를 사주셨어요. 아무리 북한에서 오랜 시간 교양을 받았어도 그 기억은 확 사라지고 지금 저에게 남산은 안기부보다는 바닐라 아이스크림...

진행자 : 다행이네요. 좋은 기억으로 남으셔서... 미신일지도 모르지만 남쪽에는 산에 어떤 기운이 있는 산들이 있고 사람들은 그 산에 좋은 기운을 받으러 가기도 하죠.

박소연 : 그런데... 저는 참 이상한 게 하나 있는데 남한은 왜 어디 특정한 장소에 꼭 가서 소원을 빌고 그럽니까? 우리는 탈북할 때도 길이 길어진다고 국수도 안 먹고 소금을 사서 잘 닦아서 빨간 천에 빨간 실로 바느질을 해서 몸에 품고 강을 건넙니다. 그게 액운을 물리쳐 달라고 소원을 비는 거죠. 위험한 일이 있고 경비대가 저쪽에서 오면 빨간 주머니를 손으로 꼭 쥐죠. 그러니까 항상 내 마음 속에 교회가 있는 것 같고요...

실체가 없는 하나님보다 사진 속 장군님보다 내게 의지가 되는 건 그 흔한 소금일 때가 많죠. 생각해보면 사람은 어떤 것에 기대고 싶은 나약한 존재라는 생각도 듭니다...

몇 개 나라의 국경을 넘고 생사의 길목에서 살아온 분들이 전해주는 소원을 이루는 방법은 두 가집니다.

간절함과 기다림.

성경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구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다.

다음 시간에 남은 얘기 이어갑니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