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 방황 중입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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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박소연 씨는 2011년 11월 남한에 도착한 햇내기 입니다. 무산 출신으로 선전대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30대 중반의 여성인데요. 하나원 교육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남한 생활을 시작한지 이제 근 일 년...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에는 남한 정착 7년차, 자강도 출신 탈북 기자 문성휘 씨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 아르바이트 시작했어요. 커피숍에서 주말에 일하는데요. 절로 만들어서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그럼 너무 기분 좋아요. (웃음)

오늘 얘기 시작합니다.

진행자 : 남쪽에서는 아르바이트... 아르바이트... 하는 말은 독일에서 왔습니다. 일하다... 라는 뜻이고요. 독일은 2차 세계대전 이후에 학생들이 공부는 해야 하는데 학비는 없고 전쟁 이후 가정에서도 도와줄 여력이 없으니까 정책적으로 국가와 학교에서 시간제 일을 만들어서 학생들이 일하며 공부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여기서 나온 말이고 남쪽에서도 '아르바이트' 하면 학생들이 잠시 경험 삼아 하는 일이라는 인식이 강해요. 학생들은 아르바이트를 통해 내가 어떤 일에 잘 맞고 어떤 것을 잘 하나 찾아가는 거죠. 소현 씨도 지금 아르바이트... 세 번째 하고 있는 거죠?

박소연 : 네, 그래요. 제일 처음은 식당에서 음식 나르는 일을 했고요. 두 번째는 아픈 사람을 전문적으로 간호하는 간병인 일 했고 지금 커피숍에서 일하는 게 세 번째입니다.

문성휘 : 지금 소연 씨가 일한 바로 이 과정이 보통 여성 탈북자들이 남한에 들어와서 거치는 과정이에요. 맨 처음에 와서 일자리를 못 얻을 땐 맨 흔한 식당일을 하고요. 사실 식당일은 누구나 한 번씩 다 거치는 것 같고요. 그 담에 간병일 같은 건 몸이 조금 힘들어도 돈이 되니까 택하는 것이고요.

진행자 : 일단 쉽게 잡히는 일을 하고 나중엔 좀 경험이 될 수 있는 일을 찾아하고... 그런 과정을 거치는 것 같네요. 소연 씨는 지금 커피 집에서 커피 만들어 파는 아르바이트를 그 전에 했던 일보다 즐기는 것 같은데요. 앞으로 직업으로는 어떨 것 같습니까?

박소연 : 바리스타라고 하죠. 커피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사람이요... 여자 직업으로는 괜찮을 것 같긴 한데 잘 모르겠어요. 좋은 직업이라는 거? 저는 좋아하는 일이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사실 저는 아직 방황 중입니다. 저뿐 아니라 저랑 같이 온 동기생들도 다 지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방황을 하고 있어요.

문성휘 : 방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박소연 : 그래요. 온지 일 년이 안 되니까 자꾸 우리는 세상만사를 책상 위에 글로 배운 것이랑 같죠. 책에선 직업을 자기 좋은 것을 선택해라, 자기가 선호하는 일을 하라... 그러는데 현실은 내가 좋은 직장을 다니고 싶어도 학력이 안 따르고 또 학력이 따르면 나이가 맞지 않고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습니다. 이미 남한은 최대로 발전된 국가니깐 북한에서 금방 온, 특히 저처럼 30대 중반을 넘긴 여성이 내가 갖고 싶은 직업을 가진다는 건 힘든 상황이고요. 그래서 저는 지금 방황을 해요. 누가 이거하라면 그것도 하고 싶고 누가 이거 또 하라면 이것도 하고 싶고... 어디까지 방황할지는 모르겠는데 저는 이 방황도 살아가면서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성휘 : 맞는 말씀입니다. 내 경험을 통해 소연 씨에게 얘기해주라면 저는 '대한민국에 도착하는 순간 꿈을 포기해라' 이렇게 말해주고 싶어요. 내가 북한에서 노래를 잘 불렀는데 한국에 오면 노래를 불러서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내가 북한에서 작가였는데 글을 써서 작가로 소문나지 않을까...? 이런 꿈을 버려라, 꿈을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라 그리고 나중에 그 꿈을 다시 살려라...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지금 저기 강원도 나가서 고사리랑 키우는 분이 있거든요. 굉장히 성공했습니다. 비닐하우스에서 고사리를 키워서 돈도 많이 벌었고요. 이분이 처음에 북한에서도 시를 썼다고 남한에서도 시인이 되겠다고 시를 써가지고 작가를 찾아갔는데 안 됐답니다. 그래서 포기하고 다시 찾은 게 고사리 재배인데 이제 성공했잖아요? 돈도 벌고 여유도 생겼고, 남한 사회도 잘 아니까 이 분은 이제 다시 시를 얼마든지 쓸 수 있습니다.

진행자 : 시인이 어렵나요? 요즘은 자기 돈으로 책을 출판하는 시대니까 자기가 본인의 시집을 내고 되고요...

문성휘 : 얼마든지 되죠. 이자 소현 씨처럼 커피가 내 마음에 없고 이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해도 해야 해요. 웃으면서 해야 합니다. 일은 내가 지금 당장 먹고 사는데 도움도 되고 사람들과 인맥을 만드는데 도움도 되고요. 노래를 잘 해서 가수가 되고 싶어도 남한 사회에 정착한 다음에 해도 늦지 않아요. 정착을 한 뒤에 기획사를 찾아가 가수가 될 수 있는지 좀 봐달라고 해도 되고 자기가 기타치고 노래해서 인터넷에 올려도 유명해지면 가수 되는 길이 열립니다. 그러니까 너무 우직하게 꿈을 향해 돌진하지 말라... 이게 저의 충고입니다. 사실 제가 경험자이고요.

진행자 : 문 기자는 처음 남한에 와서 무슨 일을 하고 싶었는데요?

문성휘 : 한국에 와서 소설을 쓰고 싶었어요. (웃음) 그 당치도 않는 시를 몇 개 써가지고 작가들을 찾아가 본 경험이 있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면 얼굴 뜨거워! (웃음)

진행자 : 제가 듣기엔 지금 문 기자의 충고가 상당히 일리가 있는 것 같은데요. 소연 씨 생각은 또 다를 수 있죠... 어떻게 생각하세요?

박소연 : 저 말이 맞죠. 내가 지금 남한에 와서 바리스타가 되겠다고 커피를 하는 게 아니잖아요? 내 상황에 맞게 살아가야 되니까 이런 아르바이트를 택했는데요. 제가 지금 하는 일은 앞으로 꼭 계속 하지 않는다고 해도 좋은 경험이 된다고 생각해요. 남한에서는 커피가 진짜 컴퓨터처럼 필수인 것 같습니다. 이제 온지 조금 되니까 아는 분들하고 가서 밖에서 만나서 커피를 마실 때가 있는데 식당에서 나눌 대화하고 커피 집에서 나누는 대화가 정말 틀리더라고요. 무엇인가 의논하고 생각을 나누는 게 너무 좋고 서로의 마음을 듣고 아픈 마음을 위로해 주고... 이제 내가 커피를 배우는 게 앞으로 대한민국에서 4-50년은 살겠죠? 100세 시대니까 저 가능하면 오래 살려고요. (웃음) 지금 배운 커피 지식을 계속 써먹을 일이 있을 것 같아요.

진행자 : 그럼 소연 씨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은 뭐에요?

박소연 : 아까도 말씀 드렸잖아요. 방황한다... (웃음) 제가 처음에는 진짜 글을 쓰고 싶었어요. 밤에 자다가 딱 뭐가 생각난다면 일어나서 손으로 막 적어놓고요. 그런데 지금 작가가 될 순 없고 아직 방황 중이죠.

문성휘 : 그러고 보면 저도 아직 방황중이에요. 근데요, 언젠가는 난 쓸 수 있다, 뭐 내가 결심하기 탓이거든요. 늘 할 수 있다... 이런 배짱을 갖고 있어요. (웃음)

박소연 : 에이, 문 기자님은 행복한 방황이에요. 기자라는 안정적인 직업이 있잖아요. 북한에서는 기자라는 직업이 얼마나 대단해요? 저도 기자를 하고 싶었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직업은 아니고요.

문성휘 : 기자가 하고 싶다... 애초에 할 능력이 있습니다. 부지런히 일 하다나면 예기치 않은 기회가 올 수 있어요. 요즘은 동아일보이든 조선일보든 한겨레신문이든 다 기사 제보라는 게 있어요.

진행자 : 아, 시민기자라는 게 있죠?

문성휘 : 맞아요. 거기에다 글을 잘 써서 뽑히면 신문사에서 써달라고 요청을 할 수도 있고 아니면 머 탈북자 단체들이 가지고 있는 언론이 있잖아요. 거기 글을 잘 써서 몇 번 선을 보이고 나면 어떤 길이든 열릴 겁니다.

진행자 : 소연 씨랑 문 기자랑 남한 정착이 6년 차이 나죠. 두 분의 지금 상황은 그 차이인 것 같고요. 문 기자가 지금은 결과가 좋지만 그 중간의 6년의 방황이 어땠을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우리는 모르잖아요.

문성휘 : 그렇습니다. 소연 씨도 죽어라 6년은 노력해보겠다 이런 마음을 갖고 하면 뭐든 할 수 있을 겁니다.

진행자 : 문 기자가 꿈을 버리라는 말, 저는 참 와 닿는데요. 근데 정착을 잘 하고 성공한 탈북자 분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꿈은 버렸지만 희망은 버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문성휘 : 그렇죠. 희망은, 할 수 있다, 가능하다... 이런 마음은 놓지 마세요.

박소연 : 제가 마지막으로 꼭 할 말이 있는데 저처럼 이 방송을 듣고 계시는 분들은 남한에 오고 싶어 하는 분이 많을 거예요. 또 남한에 갔다가 살 수 있는 사회가 못 돼서 조국으로 왔다는 사람들을 보고 도대체 어떤 사회인지 궁금하실 건데요. 전 중국에서도 별로 오래 안 살았어요. 남한 분들이 항상 그래요. 열심히 살아라... 이 말의 뜻이 저는 그냥 우리가 북한에서 보던 그런 보고서의 문구인줄 알았어요. 근데 제가 경험해본 열심이란 그 말이 남한에선 달라요. 북한은 열심히 살아도 못 살지만 여기선 진짜 내가 열심히 하면 돈 몇 만 원이라도 쥐게 되고 돈을 벌만한 공간이 있거든요. 솔직히 이 방송에서 '나는 벌써 제 꿈을 선택했다'... 이렇게도 말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한국은 간단치 않은 세상이고 힘든 일도 많고 진짜 생각지 못한 일도 부딪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열심히만 하면 내가 방황을 하다가도 목표에 닿을 수 있는 사회가 이 곳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열심히 살아라, 희망을 가져라, 긍정적으로 살아라, 노력해라... 이런 말은 사실 책에 있는 말 맞습니다. 이게 현실에서 실천이 되려면 진짜 어려운 일이죠. 그렇지만 인생의 어느 한 때, 사람이 죽을힘을 다해 노력해야할 때가 있고 새로운 땅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소연 씨에겐 바로 지금이 그 때인 것 같은데요. 이 노력의 대가로 소연 씨도 그리고 탈북자들의 방황도 좋은 끝을 맺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오늘 여기까집니다. 진행에 이현주 였고요. 다음 주 이 시간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