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11월, 남한에 도착해 올해 남한 생활 5년 차를 맞고 있습니다. 2012년 아들을 데려와 혼자서 키우는 열혈 '워킹맘' 그러니까 일하는 엄마입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엔 남한 정착 10년차, 자강도 출신 탈북 기자 문성휘 씨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 길이 완전 데꼬보꼬 였습니다. 남조선 사람들은 막 소리를 지르고. 차를 세웠는데 진짜 별이 보이더라고요...
소연 씨가 놀러갔다 왔습니다. 1박 2일 짧은 여행이지만 얘기 꺼리는 2박 3일이 모자라네요. 하늘에서 별이 쏟아지는 것 같았던 그 밤... 주책없이 눈물이 나더랍니다. <세상 밖으로> 오늘 소연 씨의 봄나들이 얘깁니다.
진행자 : 안녕하세요. 잘들 지내셨습니까?
박소연 : 잘 지냈죠.
문성휘 : 운동을 못해서 살만 많이 찌죠...(웃음) 운동을 못 해 정말 야단이에요.
박소연 : 한국엔 왜 살이 찐다 합니까? 우리는 토끼나 닭을 찐다하지 사람에게는 그런 말을 쓰지 않았어요.
진행자 : 글쎄요... 저도 그 이유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렇게들 씁니다. 이제 몸이 난다 하셔도 돼요. 다들 이해합니다. 하도 말씀들 하셔서요. (웃음) 이제 정말 날씨가 거의 여름 같습니다. 반팔 입고 다니는 사람들도 눈에 띄고요. 혹시 북쪽에서 이런 표현 사용하십니까? 코에 바람 넣고 싶다.
문성휘 : 전혀요. 무슨 뜻입니까?
진행자 : 날씨 좋은 때 어디 좀 야외, 좋은 곳에 놀러 가고 싶다는 얘기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박소연 : 북쪽에는 봄이면 여자들이 피고, 가을이면 남자가 핀다 그럽니다. 북한은 반년이 겨울이잖아요? 그러니까 겨울 내 여자들이 머리에 수건을 싸고 다니죠. 그러다가 봄이 돼서 날이 따뜻해지면 여자들이 수건을 풀고 새까만 머리를 내놓습니다. 그러면 남자들이 봄날이면 여자들이 머리 핀다... 그러죠. (웃음) 콧바람 그런 얘기는 없고요. 행복한 소리죠....
진행자 : 왜요? 나들이들 가시잖아요?
문성휘 : 아마 가장 다른 것이 나들이, 여행, 관광 이런 개념일 겁니다. 북한에선 이웃집이나 친척집 같은 곳에 대사 같은 용무가 있어 갈 때 나들이라는 말을 많이 쓰지 여기서처럼 관광, 놀이를 위해 오가는 것을 나들이라고 표현하지 않습니다. 북한에서는 관광이라는 것도 몇 년에 한 번씩 겨우 차려지는 답사라는 게 있죠. 단체, 개별적으로 일 잘 하는 사람들에게 상 준다고 답사 보내주잖아요? 묘향산 답사.
진행자 : 남쪽에선 나들이라는 것은 북쪽의 원족간다는 의미와 비슷해요. 들판, 산, 강가 이런 곳에 가서 하루 반나절 정도 놀고 온다는 의미인데 지금이 딱 사람이 나들이 가고 싶은, 코에 바람 넣고 싶어 하는 때죠. (웃음)
박소연 : 사실 이맘때는 딱 야유회죠. 5월 1일이면 전 세계 노동자 명절이잖아요? 저희는 직장 다닐 때 그날이면 기업소 마당에서 야유회, 운동회 했어요. 작업반 별로 돈을 모아서 속도전 가루로 떡도 만들고 옥수수 국수도 말고. 한국에 와서 그렇게 맛있게 먹어본 음식이 없었던 것 같아요. 배에 기름도 없었을 때 한바탕 운동하고 음식을 먹는데 얼마나 맛있었는지 손에 묻은 국수 오래기도 입으로 막 떼어먹고... 그 기억이 나네요.
문성휘 : 저도 야유회 소리를 하니까 정말 속에 딱 맺히는 게 있네요. 1997년... 6월 단오 날이었습니다. 북한이 분위기가 너무 죽으니까 김정일이 분위기를 좀 살려라... 단오 날에 야유회도 좀 하고 쑥떡이라도 해놓고 모두 다 같이 먹으면서 즐겨라 그랬답니다. 그런데 이걸 또 방침 전달이라고 해서 다 알려졌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얼마나 격분했는지...
진행자 : 97년이면 고난의 행군으로 한참 힘들 때잖아요?
문성휘 : 쑥떡이 있으면 사람이 굶어 죽지 않아요! 야... 우리 그때 그 말을 듣고 엄청 충격을 받았어요. 그래서 97년 6월 학교 운동장에 모여서 야유회라는 걸 하긴 했어요.
진행자 : 방침이 내려오면 꼭 해야 하는 군요.
문성휘 : 그럼요. 무조건 해야죠. 대신 먹을 거랑 없으니까 사람들이 나와서 억지로 하는 흉내를 냈어요. 그리고 밥을 싸올 사람도 없으니까... 쑥떡을 어디서 사와요? 오전에 하는 흉내만 내다가 헤어졌어요. 아! 그때 그 씁쓸하던 마음이라니. 아, 내 참... 쑥떡이라니요.
진행자 : 97년이면 사람도 많이 죽을 때 였는데 그렇게도 사정을 몰랐을까요? 근데 야유회하면 좋은 기억도 많을텐데 왜 하필 그게 생각나셨습니까?
문성휘 : 그래요. 야유회하면 80년대랑 즐거운 기억도 많은데 왜 그런지 잊혀지지 않는 건 그런 기억입니다. 그런데 아닌 게 아니라... 이런 날씨에 저도 관광이나 떠나서 며칠 좀 푹 쉬고 싶네요.
진행자 :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 소연 씨는 정말, 얼마 전에 코에 바람 넣고 오셨다고... (웃음)
박소연 : 그랬습니다. 허파에 바람 들어서... 아, 북쪽에서는 여자들이 자꾸 어디 놀러가고 그러면 허파에 바람 들어갔다 소리를 하네요. (웃음) 이번에는 차를 국도로 달려서 다녀왔네요. 북한에는 1호 도로와 일반 도로가 있습니다. 북한 같은 경우엔 1호 도로로 들어가고 싶어도 우리가 김 씨네하고 맹물에 뜬 물 탄 사이도 아니니... 저희는 못 가지 않습니까?
진행자 : 그 1호 도로가 남쪽으로 치면 고속도로죠?
박소연 : 맞아요. 남쪽으로 말하면 1호 도로가 고속도로이고 일반 도로가 국도인데요. 북쪽에서는 길을 조금만 가면 초소가 있고 또 초소가 있고... 그래서 저는 남쪽에 와선 빠른 속도로 쓩 달려가는 고속도로가 좋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한국 분이 운전을 하셨는데 국도로만 가시더라고요! 왜 국도로만 가십니까? 물었더니 경치를 보면서 가자고요...
진행자 : 그렇죠. 고속도로는 속도 제한이 있어서 빨리 달려야 하고요. 방음벽이 높아서 경치가 안 보이죠.
박소연 : 정말 남한 국도는 만든지 오래여서 산이랑 가깝고 주변에 지짐 집도 있고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어요. 그렇게 산꼭대기를 계속 가는데... 내가 창밖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어요.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될까?
진행자 : 뭘요?
박소연 : 시집갈 때 겨우 타는 승용차를 타고... (웃음) 그 순간이 너무 좋아서 손을 자꾸 창밖으로 내놨어요.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내 팔자에 맞는 걸까? 제가 왜 자꾸 이런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자꾸 과거의 생각을 하고 비교를 합니다. 내가 이런 차는 결혼할 때 타봤고 맨날 그 커다란 화물차 꼭대기에서 얼굴이 꽝꽝 얼면서 장사를 다녔는데 과연 내가 승용차에 앉아서 꽃을 보면서 노래를 부르며 갈 수 있다는 게 현실이 믿어 안지고 꿈만 같고... 이렇게 살아도 되나 근심도 했습니다.
그 좋은 순간을 온전히 즐기고 기뻐해도 되건만 왜 굳이 내 절로 제동을 걸게 될까요? 과거의 그림자는 우리 생각하는 것보다 더 짙게 현재에 드리워져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좋은 봄날, 쏟아지는 햇살을 누릴 자격... 우리 모두에게 분명히 있고요.
소연 씨의 나들이 얘기는 다음 시간에 또 이어가겠습니다.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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