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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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박소연 씨는 2011년 11월 남한에 도착한 햇내기 입니다. 무산 출신으로 선전대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30대 중반의 여성인데요. 하나원 교육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남한 생활을 시작한지 이제 근 일 년...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에는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 하나원에서 이제 5월 22일이면 나와요. 내년 어린이날은 잠실 롯데 공원도 가보고...

오늘 얘기 시작합니다.

진행자 : 소연 씨, 안녕하세요.

박소연 : 안녕하세요!

진행자 : 오늘 시간은 문성휘 기자가 사정상 함께 못했습니다. 소연 씨와 저, 여자 둘이서 오붓하게 얘기 나눠 보겠습니다. (웃음)

박소연 : 안 계시니 서운하네요. 있을 때는 몰랐는데요...(웃음)

진행자 : 남쪽은 5월에 참 행사가 많아요. 특히 5월 5일이 어린이 날인데요. 소연 씨 혹시 알고 계셨습니까?

박소연 : 몰랐어요.

진행자 : 북쪽에서는 어린이날이 있나요?

박소연 : 굳이 뽑자면 6월 1일이랑 6월 6일 소년단 창립절이 있겠어요. 딱 어린이날이라곤 없죠.

진행자 : 어린이날은 진짜 아이들을 위한 날입니다. 갖고 싶은 선물 사주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유희장이나 동물원 같은 곳에 놀러 가고요...

박소연 : 북한은 그런 날은 아닙니다. 북한 학생들은 모두 소년단이 입단을 하는데요. 2월 16일엔 학급에서 2-3명, 힘 있는 집 아이들이 입단을 하고 4월 15일엔 절반 인원. 그리고 6.6절에는 나머지가 입단 합니다.

북한에는 인민학교 때부터 꼬마 계획이라는 게 있어서 토끼 가죽을 내라고 하는데요. 토끼 가죽을 못 내면 내가 공부를 잘 해도 소년단 입단이 6.6 절로 밀립니다. 북한에서도 우리 세대들은 자녀가 기껏해야 1-2명이기 때문에 못살고 못 입어도 이건 엄청 신경을 쓰죠. 밥은 굶어도 시장에서 토끼 가죽은 삽니다.

진행자 : 부모들의 교육열 또 아이들에게 유난한 건 남북이 똑같습니다. 그러니 여기 어린이날 얼마나 난리일지 상상해보세요...(웃음) 지난해는 못 겪어 보셨어요?

박소연 : 4월에 하나원에서 막 나와서 어디가 동쪽이고 서쪽인지 모를 때인데요. (웃음) 그저 애들이랑 막 놀고 그러는 건 남한에서는 항상 보는 모습이니까요. 올해는 좀 유심히 봐야겠어요.

진행자 : 소연 씨도 아이 하나 있죠? 아들이죠?

박소연 : 네, 있어요. 근데 저희 아이는 8살 되는 해 3월에 강을 건너서 학교를 안 갔는데요. 아마 아이가 학교 갔으면 저는 빚을 내서라도 학급 위원장이라도 했을 겁니다. (웃음)

진행자 : 진짜 소연 씨 성격도 간단치 않습니다. (웃음) 특히 남한에 온지 일 년 만에 중국에 있는 아들을 한국에 데려오는 게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지금 아드님이 하나원에 있죠?

박소연 : 예, 잘 지내는데 갑갑하데요. (웃음) 빨리 나오고 싶다고 전화할 때마다 그래요... (웃음) 근데 기자님이 지금 얘기하셔서 제가 생각이 났는데요. 한국에는 어린이날에 아이들이 갖고 싶은 것 사주고 가고 싶은 곳 가고 그러는데 제가 기억하는 아동절은 그런 모습이 아니네요. 그 어린 아이들이 행사에 시달립니다. 사열 훈련하면 저녁에 자려고 누우면 다리가 너무 아프게 쐈고요. 북한 사열은 다리를 높이 들어야 하잖아요? 다리를 좀 덜 들면 선생님 회초리가 당장 날라왔어요.

진행자 : 이날은 간식 선물은 없나요?

박소연 : 선물 보따리는 2월 16일, 4월 15일이나 나오죠. 사탕, 과자를 합해서 1킬로인데 북쪽은 2월에는 진눈깨비가 와요. 그걸 받겠다고 날이 밝기도 전부터 치마를 입고 걸게 바지 여기로 말하는 스타킹이죠. 동복도 못 입고 입술이 파래서 행사 내내 덜덜 떱니다. 그러면 간부, 교장 다 내려와서 무슨 연설을 그렇게 오래하는지.... 그게 다 끝나면 학생들 이름을 부르고 학생들이 나가서 선물 봉지를 받아오는데 막 추위에 손을 바들바들 떨면서 받았던 기억이 나네요. 그렇게 손을 떨면서도 선물 봉지를 받고 코가 땅에 닿도록 인사를 했어요. 근데 여기 와서 생각해보면 그 과자, 사탕 1 킬로가 뭐기에... 다른 집 엄마들은 몫을 나눠주는데 저는 그냥 니가 니 이름으로 탄 거니까... 싶어서 그냥 두면 그 일 킬로를 앉은 자리에서 다 먹어요.

진행자 : 그거 꽤 많던데...

박소연 : 그렇죠? 그 봉지를 쥐고 밖에 나가 들어오질 않아요. 나중에 보면 사탕을 입 옆으로 다 이렇게 다 묻혀서 좋다고 입이 찢어져서 들어오죠. (웃음) 근데 장마당에 가보면 그 선물봉지가 벌써 나와 있어요...

진행자 : 그거 파는 엄마들 마음은 어떻겠어요.

박소연 : 제 아들이 곡절 많게 엄마 따라 중국으로 나왔어요. 중국에서 한국으로 엄마랑 같이 가자니까 자긴 안 가겠대요. 왜 안 가려고 하느냐 물었더니 중국에선 사과도 마대채로 사먹고 사탕도 많고 과자도 많고... 죽어도 안 가겠대서 할 수 없이 놓아두고 왔어요. 그리고 내가 오는 길에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제가 한국 오는 길에 죽어도 아이는 어떻게든 살 수 있잖아요. 근데 내가 무사히 도착을 했고 이번에 데리러 갔습니다. 가자니까 그래도 중국이 좋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애가 첫마디 물어보는 게 엄마, 한국에 가면 집이 있어? 우유는? 사탕은?... 그 소리를 들으니까 속이 무엇인가 뚝 맺혀 올라오더라고요. 이 아이는 엄마랑 살았던 북한에서의 힘든 시절보다 중국에서 있었던 그 일 년이 황금 같은 시절이었던 거죠... 가슴 아팠어요. 그래도 우리 애는 괜찮은 팔자죠. 북한의 간이 매대에서 막대기 사탕이 백 원인데 그거 사달라고 장사 나가는 엄마 바짓가랑이 붙들고 울다가 매 맞고... 그게 보편적인 일입니다. 아이가 진짜 이제 나오게 되면 최선을 다 하고 싶어요. 이제 5월 22일 날, 나오는데 나오면 잠실 롯데 공원도 가보고요... (웃음)

진행자 : 하나원에 얼마나 있었나요?

박소연 : 이제 2달 됐어요. 갑갑할 때가 됐죠. (웃음)

진행자 : 소연 씨 아들처럼 아이들이 혼자 온 경우에는 하나원 생활을 어떻게 합니까?

박소연 : 아이가 어리니까 여자분들 하고 함께 생활합니다. 제가 있을 때도 엄마 없는 아이들이 있었어요. 하나원에서 호실에 한 명씩 나눠 맡기는데 자기애도 아닌 남의 아이니까 좀 부담스러워들 하죠. 근데 선생님들이 더 잘 해주더라고요. 아이가 아프지 않나 확인하고 아이가 열이 올라 의무실에 갔더니 열을 재보고 약 먹이고 또 재보고... 한 선생은 아이 옷이 안 맞는다고 세 번을 바꿔 입혔어요. 참 자기 부모도 그렇게 까진 안 해줄 것 같은데... 사실 제가 국정원에서 나오고 하나원에서 생활하면서 남한에 잘 왔나 고민이 많았는데 그걸 보고 잘 왔다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가 거기 있어도 큰 걱정은 안 합니다. 지금 북쪽에서 오신 30살 된 여자 분이 잘 돌봐준다는데요. 그 분은 아이가 북한에 있대요. 그래서 자기 아들 생각하면 잘 해준다고 하시더라고요. 나오시면 정말 크게 인사를 해야죠.

진행자 : 진짜 얼마 안 남았습니다... (웃음) 우리 지난번 시간에 아궁이 얘기하면서 소연 씨가 그 얘길 했어요. 아궁이 앞에서 불 때놓고 아들이랑 그 앞에 앉아서 불 쬐던 이런 시절이 다시 올 수 있을까... 그런 얘기요.

박소연 : 네, 기억나요. 불은 땠는데 가마는 아직 안 끓으면 아들이 제 다리 짬 사이에 앉아요. 둘이서 손을 녹이다 가마 끓는 소리가 솔솔솔 나게 되면 ' 리 구들에 올라가서 이불 쓰고 누워...' 그랬죠. 솔직히 아이를 못 데리고 오니까 그 얘랑 다시 만나 그렇게 웃을 날이 안 보이더라고요. 제가 한국에 발을 들여놓는 그 순간 후회했어요. 죽이 되면 밥이 되든 오다 잡혀서 같이 죽는 한이 있어도 같이 떠날걸... 솔직히 얘기하면요. 아이를 데리러 가야죠, 가야죠 얘기 하면서도 너무 무섭고 떨었습니다. 아이가 그 먼 길을 올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서요... 중국으로 가서 라오스 국경에 아이를 넘겨주고 쿤밍 비행장에서 비행기를 타고나서야 잠이 오더라고요. 이제는 아궁이 앞에서 아이와 오순도순... 그렇게 살 수 있겠다... 근데 이제는 아들이 많이 커서 엄마가 오래도 안 오죠. (웃음)

진행자 : 지금 전화하면 엄마 보고 싶다는 얘기는 안 하나요?

박소연 : 안 해요. 엄마! 이럼 끝입니다...(웃음)

[남한에서는요. 아이의 이름을 안 부르고 아들~ 아들~ 이렇게 부르는 어머니들이 꽤 있습니다. 소연 씨는 지하철에서 누군가 전화로 아들, 밥 먹었어?, 아들, 어딨어..? 이렇게 얘기하는 소릴 들으면 그렇게 부러웠답니다. 이제 소연 씨도 그 아들을 실컷 불러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박소연 : 니가 오면서 감방에도 앉아봤고 강에 빠져 죽을 뻔도 하고 태국 감옥에서 알랑미 밥도 먹으면 고생했지만 그걸 고생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왜냐면 너보다 더 어린아이도 다 그 길 따라 왔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결정이었고 우리 여기서 열심히 잘 살아보자 아들!

진행자 : 소연 씨 아들에게 사랑해... 이런 말 해보셨어요?

박소연 : 아니요. 엄마가 미쳤다 할 겁니다. (웃음) 근데 저는 많이 해줄려고요. 아들아 사랑한다!

진행자 :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박소연 : 감사합니다.

진행자 :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지금까지 진행에 저는 이현주였습니다. 다음주 이 시간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