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하다 용해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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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남한에 도착해 올해 남한 생활이 6년 차입니다. 도착한 다음해 아들도 데려와 지금은 엄마로 또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은 소연 씨가 북한을 떠나 남한이라는 세상에서 보고 겪은 경험담을 전해드립니다. 남한의 신기한 세상만사를 얘기하다고 보면 떠오르는 고향의 추억들도 함께 나눠 봅니다.

INS - 아니 먹고 사는 일 걱정이 없는데 내가 왜 점쟁이한테 내 돈 들여서 가나 했는데 5년 만에 처음 아들래미 때문에 제 발로 찾아갔네요.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아 속이 답답하다, 중요한 결정을 앞뒀다, 이사, 결혼, 승진, 입학시험... 중요한 그 날을 코앞이다... 지금 청취자 여러분들 머릿속에 바로 떠오르는 그 곳!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지난 시간에 이어 점 얘기 이어갑니다.

문성휘 : 사람이 그러니까 참 요상한 존재라니까요...(웃음)

박소연 : 저 얼마 전에도 아들아이가 너무 힘들어 하는 겁니다. 힘들어 축구는 내가 할 것이 아니야... 너무 실망하고 그래서 동기 부여가 돼야할 것 같았습니다. 마침 엊그제 학교에서 축구 경기가 있어서 그날 제발 한 골만 넣으면 다 잘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퇴근을 하고 부지런히 쫓아 갔어요. 마침 비가 많이 왔어요... 추적추적 비가 오는 학교로 올라가면서 학교 담장 아래서, 내가 당장 미신집에는 달려갈 수 없는 상황이고. 그냥 빌었습니다. '하느님 아버지, 저 자식 제발 한 골만 넣게 해주세요. 그래야 용기를 갖습니다'. 빌고 빌었는데... 진짜 넣었잖아요! 이거 봐! 세상에 미신은 있다는데! 내가 열성스럽게 비니까 골 넣잖아!

진행자 : 근데 소연 씨, 하나님 아버지에게 비셨다면서요? 그건 종교지 않습니까!

박소연 : 솔직히 말하면... 저는 종교와 미신이 구분이 잘 안 됩니다. 그냥 섞여 있어요. (웃음)

문성휘 : 북한의 설명대로 말하면 점이랑 보는 사람들은 비조직화된 미신이고 종교는 조직화된 미신이다...

진행자 : 그렇다면 미신이 아닌 것은 김일성, 김정일... 장군님 말씀뿐인가요? (웃음) 남한에서 종교를 미신의 범주에 넣지 않습니다.

문성휘 : 참, 그 미신이라는 게 어떤 것이냐면 제가 하나 예를 들겠습니다. 북한 인민 학교, 여기로 하면 초등학교 교실엔 김일성, 김정일 교시가 붙어 있어요. 이젠 김일성이 빠지고 김정일과 김정은으로 바뀌었는데. 보면 위대한 동지 김일성 동지 말씀, 경애하는 아버지 김일성 원수님 교시... 이렇게 해갖고 '학생들의 임무는 공부를 잘 하는 것입니다', '학생들의 기본 임무는 첫째도 둘째도 학습입니다' 그때는 참 그게 좋은 말씀이다, 맞는 말씀이다 생각했는데요.

박소연 : 글치... 그때는 (그 말을) 뼈와 살로 만들었어요.

문성휘 : 그런데 남한에 와서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자기는 북한에 갔을 때 학교에서 가서 그 글을 보고 너무 웃겨서 웃음을 참으려고 혼이 났다는 겁니다. 그게 뭐가 웃기냐 물었더니 당신 배고프면 어떻게 하느냐 물어요. 밥먹죠… 그랬더니 '배고프면 밥 먹어라'와 같은 말이 아니겠냐 하더라고요. 배고프면 밥 먹어라 이런 당연한 말을 중요한 말씀이라고 교실 벽에 붙인 것으로 보였다고요. 말하자면 미신이라는 게 믿으면 다 대단하고 안 믿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고.

박소연 : 맞아요. 근데 남한은 좀 이해가 안 된 것이 있는데요. 종교를 나눠도 너무 나누고. 기독교나 천주교 신자들이 들으면 욕을 할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과 하느님은 또 왜 그렇게 따져요? 그게 다르다고 싸우고...

진행자 : 그건 일부 기독교인들이 하는 주장이고요. 종교인들 중에서도 다니시는 분들이 꽤 되실 겁니다. (웃음) 어렵고 답답한 일이 있을 때 점을 보러 가는 건 저희가 많이 보고 자라기도 했고... 물론 종교적인 이유로 반대하는 분들도 계십니다만. 사람들도 생활 속에서 아이 낳으면 아이 이름을 짓기 위해 철학원으로 물어보러 가기도 하고 태어난 일시로 사주에 어떤 글자가 좋은지 인터넷에서 찾아보기도 하고 궁합도 보고요.

박소연 : 에이 궁합은 당연한 것이고. 과학이죠. (웃음)

진행자 : 그런가요? (웃음) 이사 가기 전에 이사 날짜도 받습니다.

문성휘 : 손 없는 날 이사하는 건 인터넷으로 찾아봐도 나오죠.

진행자 : 요즘은 달력에도 표시돼 있어요.

문성휘 : 저는 가끔씩은 보는 것도 좋은 것 같습니다. 대개는 나쁜 말이 없어요. 어떤 때는 그 답이 너무 쉽고 간단해서 듣고 나면 허무하기도 하지만요.

진행자 : 어쩌면 우리가 물어보러 갔을 때는 이미 답을 알고 있을지도 몰라요.

문성휘 : 기대고 싶고 확인하고 싶은 거죠. 북한도 마찬가지고 과거 히틀러도 점쟁이들에게 많이 의지했다는 얘기가 있었고... 그 사람들 역시 인간이니 많이 기대고 싶었던 것이죠. 불안감은 항상 있고 그럴 때 의지할 곳이 있었으면 좋겠고. 그게 인간이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진행자 : 남한에서 한 때 유행했던 소녀들이 많이 읽는 순정 만화에 유명한 구절이 있습니다. 소녀 감성으로 그리는 만화라서 약간 감성적이고 유치한 면도 있지만... 아직까지도 많이 인용되는 만화의 대사인데요. 인생은 예측 불허, 그래서 의미를 갖는다!

문성휘 : 맞죠!

진행자 : 우리가 사는 삶을 예측할 수 없지만 그런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종교도 믿고 어떤 때는 미신에 물어보기도 하는 거죠. 결국 다 좀 살아보려는, 잘 살아보려는 몸부림이 아닐까요?

문성휘 : 저는 그 살아보려는 노력을 악용 당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사실 안타깝습니다. 북한의 얘깁니다. 북한 주민들, 없는 살림에 돈을 모아 점을 보러 갑니다. 다 아득바득 살자고 하는 일인데 이걸 처벌도 하고 국가 지도자들은 외국에서 값비싼 호화스런 물건을 사들이고. 이런 사실을 인민들이 다 알지 못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우리의 인생이 악용당하는 것이죠.

진행자 : 그래서 제가 청취자 여러분께 마지막으로 이런 말씀 드리겠습니다. 여러분들 다들 노후에는 굉장히 잘 사실 거에요.

문성휘 : 늙으면 굉장히 잘 된다...? (웃음)

진행자 : 저도 자주는 아니지만 몇 번 점집에 가본 적이 있는데요. 두 가지 말만 기억에 남았습니다. 자식 잘 된다, 노후에 좋다...

박소연 : 그거면 제일이죠!

진행자 : 그러니까 말입니다. 그거 하나 희망 있으면 되지 않을까요? 노후에 잘 산다.

문성휘 : 그런 말 안 들어본 사람은 없을텐데요... (웃음)

박소연 : 저는... 마지막으로 이 말은 꼭 하고 싶네요. 이 기자가 아까 인생은 예측 불허다, 그래서 생은 의미를 지닌다 그랬잖아요? 근데 저는 북한에서 40년 가까이 살지 않았습니까? 그 예측 불허가 너무 싫습니다. 왜냐면 너무 힘든 시간, 예측 불가했던 시간들을 넘어 왔기 때문에 무엇인가 보이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북한 주민들에게 예측불허는 가난이거든요. 그냥 나는 지금처럼 밥 걱정 안 하고 냉장고 문 열어 시원한 김치 먹고, 장국 먹고 그렇게 살고 싶어요.

예상 가능하고 평안하게... 누구나 그렇게 살고 싶죠. 그렇지만 큰 부자도, 권력이 있는 사람들도 지어는 김정은 위원장도 그렇게 살지는 못할 겁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바래봅니다.

우리가 예상 불가한 그 많은 굴곡들은 넘어 언제가 조금 나이가 들어서는 편안한 삶을 살 수 있기를. 지금까지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박소연, 문성휘, 이현주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