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11월, 남한에 도착해 올해 남한 생활 4년 차를 맞고 있습니다. 2012년 아들을 데려와 혼자서 키우는 열혈 '워킹맘' 그러니까 일하는 엄마입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엔 남한 정착 9년차, 자강도 출신 탈북 기자 문성휘 씨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 재밌는 게 그래도 남조선은 산에 가면 나무가 많잖아요. 심는 사람은 전혀 안 보이고 북한은 번대산인데 작은 아이들까지 다 동원돼서 나무를 심습니다...
남한의 4월은 나무 심는 달입니다. 4월 5일이 식목일이고 청명, 한식이 다 있으니 나라에선 4월을 이렇게 정해놓긴 했는데... 정착 4년차인 소연 씨도, 근 10년이 다 되가는 문 기자도 남쪽에 와서 나무 심어본 적이 없답니다. 그래서 궁금하답니다.
남쪽 산에 그 많은 나무는 누가 심었고 북쪽 사람들이 심는 그 많은 나무는 다 어디로 가는가?
나무 얘기, 오늘 마지막 시간입니다.
문성휘 : 남한에선 자그마한 묘목은 누가 심어요? 원칙이 있을게고... 북한은 그래요. 살림 경영소, 살림 설계사업소, 양묘장, 종묘장... 남한은 도대체 그게 어떻게 됐냐는 거죠.
진행자 : 산림청에서 하고 있겠죠. 그걸 평범한 시민들이 알아야 합니까?
문성휘 : 북한도 평범한 사람도 알 필요가 없어요. 나무를 심으라면 들고 가서 꾹꾹 눌어 심으면 되는데요...
진행자 : 남쪽도 6-70년대에는 운동 식으로 주민들까지 다 동원해서 했다고 합니다. 산림 녹지화... 정부가 주관해서 산을 푸르게 만들자는 운동을 했지만 지금은 그런 식이 아닙니다. 그리고 심기보다 먼저 가꾸기를 강조하고요. 상한 연한이 된 나무를 베어주고...
문성휘 : 그런 건 북한에선 조림 작업이라고 해요.
진행자 : 남쪽도 산림청에서 합니다.
문성휘 : 남쪽도 삼림청이 있어요? 산림 감독원도 있고요?
진행자 : 다 있습니다.
문성휘 : 그럼 난 왜 못 봤지?
진행자 : 산에 가서 나무를 베거나 꺾기만 해도 당장 출동할 걸요. (웃음) 바로 아실 수 있을 겁니다.
박소연 : 저는 남쪽에서 이상했던 것이요. 우리가 지하철을 타게 되면... '당신은 오늘 한 그루의 나무를 심었습니다' 이렇게 써 있어요. 처음에 와서 이해를 못 했었어요. 내 돈 주고 타고 나니는데 무슨 나무를 심어? 가만 생각해보니까 아... 차를 안 타고 다녀서 공기를 안 어지럽히니까 그래서 이런 소리를 하는 거구나. 처음엔 이해를 못했다는데요. (웃음)
진행자 : 나무가 우리가 이산화탄소 같은 탄소를 배출하면 그걸 정화시켜주는 역할을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소연 씨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탄소 배출을 적게 했다는 얘기죠.
박소연 : 저 지금 와서 이해를 했어요. 처음에는 남조선에는 왜 거짓말을 이렇게 가뜩 붙였어 그랬다는데요. (웃음) 내가 내 돈 내고 표 사고 내 직장 가는데 언제는 나무를 심었다고... 이제 아... 내가 휘발유 차에서 내보내는 나쁜 연기를 안 내보내고 지하철을 탔으니까 이렇게 말을 썼구나... 지금 와서 이해를 했네요.
문성휘 : 그렇게 따지면 저 엄청 애국자입니다. 매일 지하철을 타고 다니니까요. (웃음)
박소연 : 우리 다 엄청 애국자들입니다. (웃음)
진행자 : 남쪽에는 내가 산에 들어가서 나무를 심는 것보다 아끼는 것을 강조해요. 종이, 휴지, 화장지 등 나무로 만든 것들을 아껴 쓰거나 탄소 배출을 줄이는 일을 했을 때 나무를 한 그루 심은 것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죠.
문성휘 : 그 말 맞는 얘기네요. 내일부터 진짜 이 연필을 쓰지 말아야겠어요.
진행자 : 제가 보기엔 연필 말고 담배를 좀 덜 태우시면... (웃음)
문성휘 : 그리고 보니 담배는 일산화탄소도... 그러니까 저는 매일 나무를 심고 또 매일 나무를 뽑네요. (웃음)
박소연 : 저는 지금도 매일 저녁에 퇴근해서 들어오면서 분리수거장을 한번 씩 보거든요. 가구 안 쓰는 것, 버린 걸 보면 지금도, 3년이나 됐는데 아... 저거를 우리 집에 갖고 들어가서 패서 잘 조절해 때면 여름엔 한 보름도 때겠는데...(웃음) 가구는 패기도 쉬워요. 도끼 뒷등으로 툭툭 치면 툭툭 나가거든요. 지금도 그 생각을 한다는데요. (웃음)
진행자 : 나무를 보면 자동으로 생각이 나시나 보네요. (웃음)
박소연 : 아직도 한이 맺혀서. 그리고 그 마른 나무가 타는 희열? 그런 게 있고요. 아깝습니다.
진행자 : 여기는 나무를 많이 심자는 얘기도 환경오염과 많이 결부를 하는데요. 공기를 정화해주고 나무가 지구 온난화도 막아준다고 하고요.
문성휘 : 근데 난 오늘 얘기가 상당히 불쾌하고요...(웃음)
진행자 : 아니 왜 그러십니까?
문성휘 : 이론은 아주 빠삭해요. 지하철 타면 이래서 나무 한 대 심은 것과 같다, 환경오염이 적어지고... 근데 제가 알고 싶은 건 나무를 심을 때는 몇 센티 나무를 땅을 얼마만큼 파고 어떻게 심느냐고 물어보는데 아직 그 답을 안 주고 딴소리만 하잖아요!
진행자 : 남한에선 어떻게 나무를 심느냐... 물론 전문적으로 나무를 심는 분들은 그런 규칙을 갖고 있겠죠.
문성휘 : 전문적으로 심는 사람도 있습니까?
진행자 :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겠습니까? 일단 대중 운동으로 하는 건 아니고 남한도 나무를 심어야 하니까요. 그렇지만 문 기자님이 생각하는 대로 전 국민적으로 식수절마다 동원돼서 하는 일은 아니죠. 그러니까 그걸 제가 알 턱이 없고요. 물론 알아볼 수 있겠습니다만...
박소연 : 그랬던 건 새마을 운동 때 얘기죠.
문성휘 : 아... 그래요. 여긴 인민반, 공장 기업소 동원이 없구나... 우리는요, 규정이 있어서...
진행자 : 규정이 있으시지만 나무는 구멍을 파고 다음 조가 그 구멍에 꾹 쑤셔 박듯이 심으신다면서요! (웃음)
문성휘 : 그렇긴 하죠. (웃음) 하지만 생각해보니 제가 무척 자랑스럽습니다. 저는 그 규정을 아주 잘 알고 있고요...
진행자 : 그렇지만 문 기자, 남한 와서 나무 심어본 적이 있으십니까?
문성휘 : 없죠. 내년부터 심어야지.
진행자 : 식목일이라고 나무 좀 심어야겠다, 이런 생각도 안 해보셨다는 얘기잖습니까? 그런데도 지금 저를 계속 타박하고 혼내고 계시네요. 그리고 혼내는 이유가 나무 심는 법을 모른다, 남한 사람 주제에 남한 정부에서 하는 산림 산업, 산림청 사업을 모른다... 이걸 일반 시민이 알아야 하는 것인가요?
문성휘 : 아니, 내가 왜 그랬냐면 남한도 이게 전 군중적인 운동으로 북한처럼 생각한 거죠 뭐...
진행자 : 남한에선 그런 것이 전군중적인 운동 아닙니다. 대신 전 군중적으로 하는 운동이 있습니다. 아까도 제가 얘기했지만 나무를 심기 이전에 뽑게 하지 말자.
박소연 : 그래요. 그게 기본이죠.
진행자 : 나무로 만드는 것들을 낭비하지 말자.
문성휘 : 그러네요... 사실 나무 전문가들은 북한에 다 있을 거예요.
박소연 : 그래요. 그런데 우리는 이론을 잘 아는데 이론을 잘 아는 우리가 심은 나무는 죽고 모르는 사람들이 심은 나무는 잘 살고... 세상에 너무 신기해요.
진행자 : 두 분, 북한의 민둥산 보면서 옛날 생각도 나고 중국에 나무를 싣고 가던 화물차 행렬을 보며 눈물도 흘렸다... 이런 얘기도 하셨는데요. 그럼 북한은 어떻게 나무를 심고, 키울 수 있을까요?
문성휘 : 땔감을 풀어주면 돼요. 석탄이나 가스를 도입해서 주민들이 때는 문제를 풀어주면 되죠.
박소연 : 경제가 풀려야 사람들이 산에 있는 나무를 뽑아 때지 않을 거잖아요. 경제가 풀리지 않고는 번대산이 숲이 될 수 없어요.
문성휘 : 배급제를 시행하든 자본주의 세계처럼 먹는 문제를 풀던 그래야 뙈기밭이 사라지고 숲이 생기는 거죠. 그냥 김일성부터 계속 그랬어요. 북한 정권이 언제 나무를 벌거벗긴다고 한 적이 없습니다. 나무, 산림애호, 나무를 심자 맨날 하던 말이고요. 그렇다고 산이 벗지 않는 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도 나는데요. 옛날에 조총련에서 출간해서 북한에 들여보내는 '시대'라는 책이 있었어요. 거기에 보면 남한 인민들이 진짜 불쌍했어요. 민둥산이라는 게 벌거벗은 산이라는 것도 그 때 처음 알았거든요. 민둥산 아래서 가난하게 뭐... 판자 집에서 살고... 근데 저는 이 사람들은 판자는 어디서 구할까 궁금했어요. 사진도 나왔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기름 깡통 같은 것을 쭉쭉 펴서 벽이랑 붙인 그런 사진이 있었는데 저는 이 사람들은 못산다면서 이 많은 깡통이 어디서 났을까...(웃음) 와보니까 나무가 너무 많고 거꾸로 된 거에요. 저는 정말 궁금한 게 남한도 북한처럼 민둥산이었나...
진행자 : 네, 민둥산이었답니다. 남한도 60년대부터 계속 조림 사업을 했고 수억 그루를 심었습니다. 그리고 조림 사업은 몇 십 년 후를 내다보고 해야 하는데 지금은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가를 고민해야하는 시점이라고들 얘기하죠.
문성휘 : 나무 심는 법은 몰라도 이론으로는 바싹하고만...(웃음)
진행자 : 죄송합니다. 남한 식 나무 심는 법을 못 알려드려서... 그렇지만 남한식이 뭐 별다를 것이 있겠어요? (웃음) 문 기자, 소연 씨! 남한에 와서 나무 한 그루 안 심어보셨다고 하셨잖아요? 남한엔 기념식수라는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아이가 태어났을 때 아이 이름으로 나무를 심어준다던가... 개인도 기업도 제목을 달아서 기념으로 나무를 심는 거죠. 두 분께도 권해드립니다.
박소연 : 그래요. 곡괭이 지고 문 기자님과 산에 한번 가죠.
진행자 : 구호 나무는 아니지만 그래도 기념으로 제목 하나 다신다면 뭐라고 하실래요? 무슨 나무?
문성휘 : 나는 북한에서처럼 정치적인 생명, 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천국... 이런 걸 믿진 않지만 나무를 심으면 '영원'이라고 쓰고 싶네요. 인간이 끊임없이 대를 남기며 이어지는 것처럼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영원을 누려야 한다. 인간이 파괴할 권리도 없고 자연도, 나무도 훼손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산림 훼손 행위, 이건 정말 인간이 하는 가장 야만적인 행위라는 걸 요즘 많이 생각합니다. 북한이 수리마, 원리마를 한다는 데 꼭 좀 하길 바랍니다. 당과 수령, 전당, 전 인민적인 구호 말고 난 그저 우리가 자연과 함께 영원히 살고 자연은 영원히 남아 우리와 함께 영원할 것.
박소연 : 나는 항상 한 가지예요. 보고 싶다! 부모님이 다시 태어나면 볼 수 있으려나...
문성휘 : 부모님을 볼 수 있게 키 크는 나무! 통일 나무! (웃음)
박소연 : 내가 키가 작아서 나무가 키가 크겠는지... (웃음)
문성휘 : 현주 씨는요?
진행자 : 저는 뭐라고 짓지 말고 함께 가서 땅 파드릴게요. 제가 아주 땅을 잘 팝니다. (웃음)
문성휘 : 와... 우리를 식수하라고 내몰더니....
네덜란드의 철학자 스피노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나는 오늘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겠다.
이 말은 어떤 역경 속에서도 자기의 길을 가는 초연함 또는 희망을 놓지 말라는 응원을 뜻한다고 풀이되기도 하고 바꿀 수 없는 운명 속에서도 행복을 찾으라는 뜻으로 해석되기도 하는데요.
이런 해석과는 별개로, 나무 심는 마음으로 최고의 격언일 것 같습니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나는 오늘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겠다! 꼭 사과나무는 아니어도 됩니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오늘까지 세 차례, 식수절과 나무, 우리의 산림에 대해 얘기해봤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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