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박소연 씨는 2011년 11월 남한에 도착한 햇내기 입니다. 무산 출신으로 선전대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30대 중반의 여성인데요. 하나원 교육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남한 생활을 시작한지 이제 근 일 년...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에는 남한 정착 7년차, 자강도 출신 탈북 기자 문성휘 씨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 지금에야 알았습니다. 꽃은 철쭉이라는 걸... 이 꽃은 지건만, 이 꽃의 이름은 철쭉이건만 내 마음속에 간직하고 싶은 건 진달래입니다. 저는 진달래를 보면 그렇게 고향 생각이 납니다..
5월 남쪽은 꽃 세상입니다. 꽃도 많이 폈지만 꽃 살 일도 많은데요. 오늘 <세상 밖으로> 꽃 얘깁니다.
진행자 : 5월 8일이 어린이 날이고요. 5월 15일이 스승의 날입니다. 이 기념일에는 부모님과 선생님께 감사의 의미로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아주는데요. 두 분 다 꽃 받으셨습니까?
문성휘 : 아이들이 꽃을 사는 걸 몹시 쑥스러워 해서 아직 못 받아봤어요. 한국은 어른들도 꽃을 사서 잘 들고 다니고 그때 많이들 사던데 우리 아이들은 아직 그때 꽃 사는 법을 몰라요. (웃음) 그래도 작은 선물들을 마련해서 주죠. 올해는 지 엄마랑 나랑 맞춰서 가죽 허리띠를 사주더라고요.
진행자 : 꽃만큼 좋은 선물 받으셨네요. 소연 씨는 아직 아들이 하나원에 있어서 올해 어버이날은 카네이션은 못 받고 지났겠어요.
박소연 : 근데 어버이날 아침 7시에 전화 왔더라고요. 어머니 어버이날 축하합니다... 그저 그 뚝한 북한말투로... (웃음) 아무래도 누가 시킨 것 같은데 그래도 그 말을 듣는 순간에 코가 찡하더라고요. 그리고 어린이날에 청와대 가서 박근혜 대통령 만났다고 자랑을 하더라고요. 하나원에서 청와대에서 초청해서 7명 갔는데 거기에 끼었대요. 저에게 그 게 큰 선물이었어요.
문성휘 : 대단하다... 한국에 오자마자 그 이를 접견하신 분이 된 것이잖아요? (웃음)
박소연 : 그러게 말입니다. (웃음) 근데 이 기자님, 남쪽 사람들은 그걸 그렇게 크게 생각 안 하죠?
진행자 : 매해 텔레비전 나오는 걸 보니까요. 남쪽에서는 연례행사죠. 어느 대통령이나 어린이날 청와대에서 어린이들을 초청하는 행사를 합니다.
박소연 : 문 기자님 사실 이 정도면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하지 않나요?
문성휘 : 그렇죠. 북한으로 말하면 접견자가 되었는데요. (웃음)
진행자 : 남쪽은 앞에서 말씀드렸지만 감사와 존경이라는 꽃말을 가진 카네이션 꽃.. 그걸 어버이날, 스승의 날에 부모님, 선생님 가슴에 달아드리는데요. 그날 되면 길거리에 눈에 보이는 곳마다 꽃을 팔거든요. 그거 하나 사기가 그렇게 쑥스러웠나 보네요.
문성휘 : 남쪽은 꼭 이런 날이 아니라도 친구, 애인의 생일이나 각종 기념일에 꽃을 사갖고 다니지 않습니까? 북한은 꽃을 파는 곳이 없거니와 꽃을 사는 것도 그래, 들고 다니는 것도 굉장히 쑥스럽죠... 북한 같으면 차라리 양말 한 켤레 사들고 가는 게 최고죠.
박소연 : 문 기자님은 아내한테 꽃 선물 해주신 적 있으세요?
문성휘 : 없죠. 그걸 어떻게 사서 들고 다닙니까...(웃음) 차라리 꽃보다 살결물 같은 화장품을 가져다주는 게 좋죠. 이것도 줄 때 당신 선물이야... 이렇게 못 주고 옆으로 쓱 밀어줍니다.
진행자 : 사실 남쪽에서 부인들이 남편 꽃 선물을 하면 이 돈이면 고기 먹는 게 낫지... 이런 얘기를 하긴 해요. 근데 그 타박을 하면서 입은 웃고 있죠. (웃음) 꽃 선물이란 게 참 재밌어요. 금방 시들고 보기만 좋은 그 꽃이 선물을 받으면 기분이 꽤 괜찮거든요.
문성휘 : 꽃을 받는 감정이라는 게 남다르죠. 북한에도 그런 게 많으면 좋겠는데요... 옛날에 땔감이 넉넉했을 때는 북한에서도 온실이 많아서 꽃을 많이 키웠고 마당의 텃밭이나 공장 기업소의 텃밭에서 꽃을 많이 심었어요. 그렇다고 해도 꽃 선물에 대해서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고 김일성 생일이나 김정일 생일 같은 국가 명절에 꽃바구니나 꽃묶음을 만들어서 동상에 바치고 그랬죠. 그 외에 누구에서 꽃을 준다??? 보위부에 걸리지 않을까요? (웃음) 그런 존경은 김정일, 김일성이나 받아야지 다른 사람이 받기엔 너무 격이 높은 거죠. 옛날부터 북한에선 그저 꽃은 동상에 바치는 것이었습니다.
진행자 : 제가 꽃에 관한 북한 얘기로 기억에 남는 건 김일성 수령 사망했을 때 꽃 구하려고 산으로 들로 올려 뛰고 내려뛰고 했다는 얘깁니다.
문성휘 : 당시 어느 정도로 꽃이 없었냐면 평양에 있는 김일성 동상에 꽃을 올리기 위해서 군인들이 헬기를 띄었고요. 꽃 꺾으려 비행기 띄었다는 얘기 들어보셨어요? 그 때는 나무를 중국에 팔아먹기 이전이라 산에 나무도 많았는데 꽃을 너무 많이 꺾으니까 꽃을 꺾으려면 더 높은 산으로 가야 한 거죠.
박소연 : 저는 기억나는 게... 북한은 4월 15일이면 아직 춥거든요. 그때 아직 꽃이 안 핍니다. 그래도 동상에 바쳐야 하니까 산에 가서 가지를 꺾어서 집에다 놓고 꽃을 피웁니다. 빵통(물통)에 가지째 꽂아 놓고 분홍색 물감을 풀면 꽃이 더 붉게 피거든요. 그렇게 꽃을 피우는 게 아예 생활화 됐는데요. 그게 기억납니다.
문성휘 : 아 맞아요. 겨울에 산에 진달래는 꺾어 와서 집안에 따뜻한 곳에 놓고 꽃을 피워서 바쳤죠. 사실 이 얘기도 80년대, 90년대 중반까지 얘기죠, 지금은 다 베어서 그런 풍경도 없을 겁니다.
박소연 : 저는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게 김일성 사망했을 당시 쌀값이 천원이라면 장마당에서 파는 꽃묶음이 오백 원 정도였습니다. 당장 끓여 먹을 것이 없는 사람들도 바치라니까 그 꽃을 다 샀죠.
진행자 : 이번에 어땠을까요? 김정일 위원장 사망했을 때 겨울이었잖아요.
문성휘 : 이번에 종이꽃을 허용했고 무역 기관들이 중국에서 꽃을 엄청 사들였답니다. 최근엔 꽃이 귀하니까 겨울철 명절엔 지화를 허용하고 단 기업소에서 올리는 꽃바구니는 생화를 넣어야 하니까 알아서 키우고 또 어른들이 겨울에 나무하러 가서 아이들을 위해서 그때 사용하려고 깊은 산에서 진달래 가지를 꺾어 오고 그러죠.
박소연 : 근데 남쪽에서 제가 꽃을 보면 아는 꽃이 별로 없어요. 북한에선 가장 대중적인 꽃이 코스모스, 진달래? 그 외엔 알고 있는 게 별로 없는데 여기 와서 보면 다 새로운 꽃들이고요. 작년 추석에 제가 임진각을 다녀왔는데 거기 달리다 보니까 길 주변에 그렇게 코스모스가 많이 폈더라고요. 우리 집 울바자 옆에 코스모스가 많이 피었는데 아이들이 와서 그걸 그렇게 뽑았어요. 그러면 막 나가서 애들을 혼내고 했는데요... 그걸 보니 그렇게 집 생각이 나더라고요.
문성휘 : 참, 코스모스... 철길 주변에 정말 많았죠. 지금은 많이 뽑아버려서 보기 힘들 겁니다. 남한은 코스모스 길도 있고 유채꽃 길도 있고요. 유채꽃이 하나만 보기엔 별 것 아니어도 참 모아놓고 보면 장관이더라고요. 그리고 꽃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4월에 하는 그 여의도 벚꽃 축제 얼마나 소문이 많이 났어요? 제가 벼르고 별러 식구들이랑 다 같이 갔다가 사람이 너무 많아서 다들 뿔뿔이 흩어져서 결국엔 집에 가서 만난 적이 있습니다. (웃음) 다신 안 가요!
진행자 : 소연 씨는 작년에 꽃 박람회 가보셨다고요?
박소연 : 네, 정말 별의 별 꽃이 다 있었는데요. 제가 아는 꽃을 별로 없었습니다. 외국 꽃들도 다 모아놨던데 암만 그래도 저는 코스모스, 진달래가 제일 예쁜 것 같습니다. (웃음)
문성휘 : 아무래도 고향 생각나서 그러죠... 저는 들국화요. 들국화는 사실 북한에선 꽃으로 치지도 않는데 그래도 그 꽃이 흔하고 좋았어요. 사실 그러고 보면 북한엔 꽃이 너무도 없어요. 그 노래 있지 않습니까? 홍난파가 지은 노래...
진행자 : 봉선화요?
문성휘 : 네, 우리 어렸을 때 울밑에서 봉선화야... 이 노래 많이 불렀는데 저는 노래를 부르면서 도대체 봉선화가 어떻게 생긴 꽃인지 무척 궁금했어요.
진행자 : 북한에 봉선화가 없습니까?
문성휘 : 있긴 있겠죠. 전 본 적이 없습니다.
박소연 : 저도요. 텔레비전으로만 봤어요.
문성휘 : 여기 와서 직접 봤는데 별로 아름답지 않더라고요. 이게 왜 이렇게 이름이 났지...이해가 잘 안 가더라고요.
진행자 : 남쪽에선 봉선화가 참 서민적인 꽃이죠. 꽃잎을 따서 빻아서 그걸 손톱에 놓고 물을 들입니다. 그런 서민적인 꽃입니다. 그래서 일제 강점기에 이런 노래가 나왔던 것이고요...
봉선화의 꽃은 아주 작습니다.
꽃바구니에 꽂을 만큼 화려하지 않아서,
손톱에 빨간 물들이는 풍습이 허용될 수 없어서
북쪽에선 외면 받지 않았나 생각되는데요.
남쪽에선 이 봉선화 물 한번 안 들여 본 여성이 거의 없습니다.
늦여름 빨갛게 나오는 봉선화 꽃잎을
소다를 넣고 잘게 빻아서
손톱에 얹고
봉선화 잎으로 감싼 뒤
실로 동여매고 하룻밤 자고 나면
손은 퉁퉁 불어 주글주글하지만 그 꽃빛은
겨울이 가도록 손톱에 남았습니다.
예부터 내려온 조상들의 작은 풍습들을 남북이 더 이상 함께 허지 않는다는 사실이 새삼 안타깝습니다.
문 기자는 남한에 와서 사람들이 김일성 화, 김정일 화를 많이 키워서 놀랐다는데요. 이건 또 무슨 얘길까요. 다음 시간에 이 얘기 이어갑니다.
<세상 밖으로> 오늘 얘기는 여기까집니다. 다음 주 이 시간 다시 인사드립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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