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요, 오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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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11월, 남한에 도착해 올해 남한 생활 3년 차를 맞고 있습니다. 2012년 아들을 데려와 혼자서 키우는 열혈 '워킹맘' 그러니까 일하는 엄마입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엔 남한 정착 8년차, 자강도 출신 탈북 기자 문성휘 씨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 제가 얼마 전에 남조선을 한 바퀴, 다 돌았습니다. 차에 휘발유를 여러 번 넣기에 도대체 우리가 몇 리를 왔다, 갔다 했느냐 물었더니 집에까지 도착하면 사천리라는 겁니다. 1,600킬로래요.

5월초 4일 동안 이어진 연휴 기간, 소연 씨가 여행을 다녀왔답니다. 2박 3일 동안 강원도부터 동해 바닷가를 거쳐 한반도의 동쪽끝인 포항을 찍고 부산으로 가서 서울로 올라오는 무려 4천리에 달하는 긴 여정이었다고요.

남쪽에 와서 첫 여행, 근 사십 평생 만에 해보는 여행다운 여행이었다는데요. 지난 시간에 이어서 소연 씨의 여행 얘기 들어봅니다.

문성휘 : 나는 '민족과 운명' 가운데 홍영자 편에서 베사메무초 노래가 나오면서 홍영자가 착 앉아서리 눈물을 흘리면서 앞에 커피를 들고 창밖을 내다보는데 아... 그 장면이 정말 멋있었습니다. 내 일생에 저런 날이 올까? 저렇게 고급스러운 탁자에 자유롭게 앉아서 커피를 마시는. 하지만 정말 꿈만 같은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 강원도 통나무집에 여행을 갔어요. 밖에서 약간 보슬비가 내렸고 앞에 큰 호수가 있어서 비가 오니까 안개가 쫙 꼈더라고요. 아침 일찍 이층 창밖으로 밖을 보며 앉아 있는데 밑에서 주인이 올라오더니 왜 그렇게 앉아 있냐고, 잠이 안와서 일찍 깼다고 했더니 그럼 커피 한잔 가져다 드릴까요? 그래요. 가져다 달라고 해서 딱 커피를 마시는데 그때 생각이 나더라고요. 야, 이거 나도 홍영자가 됐구나! 완전히... 보슬비 내리는 호수를 내려다보며 커피를 마시는. 아...내 일생에도 정말 이런 날이 있구나! (웃음) 그런 느낌 아시겠어요?

박소연 : 저는 북한에서 '파리의 연인' 이라는 드라마를 봤어요. 거기에 보면 주인공이 파리에서 길거리 악사들에 노래하는 걸 듣고 돈을 주고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근데 가끔 남한에 와서 다큐멘터리(기록영화)를 보면 길에서 노래 부르는 사람한테 돈을 주는 장면을 봤는데 실제 제 눈으로는 한 번도 못 봤어요. 부산에 밤에 도착해서 바다에 갔는데 사람들이 군데군데 모여 있어서 가보니 마술쇼를 하는데 키가 자그마한 사람이 입에서 불이 팍팍 나오고... 텔레비전에서만 봤지 눈앞에서는 처음 봤어요. 전 박수를 치고 난리인데 같이 간 남한 동무들은 그냥 보고만 있는 거예요. (웃음) 그 옆에 보니 바이올린도 켜고 노래도 부르고... 참 신기하다... 북한에서 이랬다면 당장 안전원이 두 주먹 쥐고 와서 단속을 하죠. 길거리 악사라는 게 이런 사람들이구나, 말하자면 이제 내가 남조선이라는 현실에 와서 사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같이 간 친구들이 노래를 안 좋아하는지 자꾸 가자가자 해서 돈을 못 넣고 그냥 왔지만요. (웃음)

진행자 : 남한사람들은 흔하게 보니까요.

박소연 : 전 처음 봤어요.

진행자 : 남한 친구들이랑 같이 갔다니까 좋아하니까 감동하는 게 다르지 않느냐고 앞에서도 물어봤지만 이런 것도 좀 다르네요. 그 친구들은 항상 보는 것이지만 소연 씨에게는 온통 다 새것이었을 것 같습니다.

박소연 : 그 친구들도 어쩌다 나왔대요. 이번에는 한 주일 동안 연휴가 붙어있어서 왔지 그냥은 시간 내기가 참 힘들다고요. 그런데 이번 여행 다니면서 보니까 남한에는 참 동굴이 많습니다. 입구에서 저쪽 빠지는 출구가 보일 정도로 어떤 동굴은 참 짧은데 그래도 동굴 안이 환하게 전기를 켜놨더라고요. 가면서 제가 그랬습니다. 아니, 이 나라는 전기가 흐르냐, 돈이 넘쳐나느냐? 왜 대낮, 동굴에 불을 켜놓았냐? 이거 북조선에 돌려주면 좋겠다. 그랬더니 옆에 앉으신 분이 전기를 생산을 하는데 저장할 데가 없으니 써야할 곳엔 좀 써야한다고 설명을 하대요? 이거 저를 놀리는 건 아니죠? 그 말을 듣는데 납득이 안 됐어요. 왜 저장을 못 하나... 땅속에 하던 하늘에 하던 저장을 하면 되지. 제가 무식하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표현은 못했습니다.

진행자 : 아, 자동차 터널 말씀하시는군요.

문성휘 : 자동차 굴이죠.

진행자 : 한반도에는 워낙 산이 많아서 고속도로 만들 때 제일 힘든 과정이 산을 통과하는 건데요. 산 위로 지나갈 수는 없으니까 자동차 굴을 만들죠. 어떤 곳은 무지하게 길어요...

박소연 : 그래요. 긴 곳엔 다마를 킨 거 이해해요. 근데 짧은 곳도 환하게 켜놓으니, 북한에서 전기 없이 살다온 저는 너무 아까운거죠.

문성휘 : 그게 생각해보면 또 그렇잖아요? 굴이 아무리 길다고 해도 자동차 자체에 조명이 또 있잖습니까.

진행자 : 그렇다고 해도 굴 안에서 혹시 교통사고라도 나면 큰일이죠.

박소연 : 이게 벌써 이 기자님하고 우리하고 차이네요. 문 기자님하고 저는 같은 생각이잖아요. 굳이 불을 켜야 하나... 북한 굴에는 조명 없습니다...

진행자 : 남한이 하루에 생산하는 전기량이 수천만 킬로와트잖아요? 그걸 저장하려면 배터리가 얼마나 커야 하겠어요. 북한에서도 집에서 배터리 써보셨으니까 많은 전기를 저장하려면 배터리가 얼마나 커야 하는지 짐작하시죠? 그래서 저장을 못한다... 이런 얘기를 하신 것 같고요.

문성휘 : 그래요. 그래서 겨울에는 화력 발전소를 좀 끄고 그러죠.

박소연 : 근데 남조선은 이렇게 전기를 수월하게 생산하는데 왜 북한은 그렇지 못하나요.

문성휘 : 아니, 남조선이 수월하게 전기를 생산할게 뭡니까? 남조선의 조상들, 어머니 세대들이 그만큼 땀을 흘려서 만들어왔으니까 그렇죠. 그런데 생각해 보면 우리 어머니, 아버지도 밤 2시까지 열심히 일했는데...

박소연 : 그러니까요. 허리띠 조이면서 천리마 시대 넘었다고 우리 매일 교양 받았는데요.

문성휘 : 그러게요. 나도 모르겠네요.

박소연 : 그 답을 누가 알까요.

문성휘 : 장군님이야 알겠죠? (웃음)

박소연 : 아! 장군님 소리를 하니까 생각나는데 불국사라는 절을 갔는데 부처님 오신 날이라고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진행자 : 그날이 어떤 날인지는 알고 계세요?

박소연 : 부처님 오신 날이라니까 부처님이 하늘이든, 땅에서든 왔겠죠.

진행자 : 부처님 탄생일입니다. 기독교에서 예수 탄생일인 크리스마스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처럼 불교 신자들은 석가탄신일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박소연 : 그래서 제가 같이 간 친구에게 그랬습니다. 남한에는 부처님 오신 날을 이렇게 성대하게 하는가? 친구가 그러대요. 크리스마스도 쇤다고. 북한에는 이런 날이 없는가 묻기에 우리는 장군님 오신 날만 있다고 얘기해줬습니다...(웃음)

문성휘 : 아 근데, 크리스마스 성탄절에는 뭔가 좀 기쁜 마음이 있고 석가탄신일에는 볼 것이 대단하죠?

진행자 : 그래요. 연등 행사하죠?

박소연 : 봤죠. 천장에 풍선 같은 연등을 많이 매달아놓고 치어서 사진도 못 찍을 정도로 사람들이 너무 많았어요. 전 금방 와서 그런지 부처님이나 종교에 대해 해박한 지식이 아직 없죠. 게다가 북한에서의 생각이 아직 그대롭니다. 그래서 인지... 저는 산 사람 온 날 기억도 못하는데 돌상처럼 생긴 사람 온 날을 어떻게 기억하나, 부처님이 돌이더라고요. 돌부처잖아요?

문성휘 : 아니, 소연 씨 그렇게 말하면 수령님은 구리겠네요. (웃음) 다 구리로 만들어 놨으니까...

박소연 : 그리고 북한에서는 부처님에 대해서 좋은 말로 표현 안 합니다. 어떤 사람이 말도 안하고 이해력도 없으면 아, 이 돌부처 같은 게.., 그러죠. 북한에서 세뇌 받은 게 있으니까 뭐가 오셨다고 이 난리야, 속으로 그랬어요. 가자고해서 간 거지 돌부처를 환영해서 간 건 아니고요.

진행자 : 한국에 있는 수많은 불교신자들이 기절할 소리네요. (웃음)

박소연 : 아직은 그렇습니다. (웃음)

문성휘 : 그래도 부처님 오신 날은 일 년에 한번이지 않습니까? 우린 주요 명절 때마다 구리로 만든 동상 앞에 가서. 그것도 이른 새벽에 가서... (웃음) 근데 참 신기하죠? 아니, 한국은 한 주에 토요일, 일요일 이틀 휴식하잖아요? 우린 토요일 휴식 못해요. 일요일도 계속 동원이에요. 근데 남보다 왜 못 사는 건지... 이게 진짜 궁금합니다.

진행자 : 글쎄요... 열심히 일한다고 잘 살면 다들 열심히만 일하겠죠?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잖아요. 남쪽도 열심히 일하는 것보다 머리 쓰는 일이 돈 더 받고 잘 살지 않습니까?

문성휘 : 하긴, 북한에서 살아도 못 본 사람한테 물어본 내가 참 우둔하지...

진행자 : 그런데 생각해보면 북한에 돈이 아예 없나요? 인민들이 일해서 버는 돈이 있는데 그걸 어디다 쓰는지가 중요하겠죠. 남한도 한참 산업화 시작할 때 도로, 철도 같은 인프라 그러니까 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기반 시설을 많이 확장을 했는데요. 북한은 기반시설 투자보다는 핵, 미사일이나 군수 이런 쪽에 더 투자를 하고 있는 게 사실이잖아요...

대통령 선거에 나왔던 남쪽 정치인이 유행시킨 유명한 질문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왜 우리는 열심히 일하고 더는 아낄 것도 없이 아껴 사는데 살림살이가 나아지질 않을까요? 답은 사실 빤하죠... 딱 나옵니다. 답은 나와 있어도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게 사실 문제겠죠.

여행을 많이 다니는 사람들은 여행이 중독이라고 표현합니다. 한번 가면 그 맛에 중독돼 또 떠나고 싶고 때가 되면 엉덩이가 들썩거리는. 이렇게 사람을 중독 시키는 그 여행의 맛은요. 맛난 산해진미도 멋진 풍경도 아닌 낯선 환경과 장소에서의 약간의 두려움 그리고 설렘이랍니다. 이해되십니까?

여행 얘기, 다음 시간에도 이어갑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이현주 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