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만의 해후 (2)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11월, 남한에 도착해 올해 남한 생활 4년 차를 맞고 있습니다. 2012년 아들을 데려와 혼자서 키우는 열혈 '워킹맘' 그러니까 일하는 엄마입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엔 남한 정착 9년차, 자강도 출신 탈북 기자 문성휘 씨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 90년에 헤어졌던 친구를 2015년에 만났네요. 저희가 그때는 10대였는데 지금은 세 아이의 엄마가 돼서 제 앞에 나타났습니다....

소연 씨는 얼마 전 고향 친구를 찾았습니다. 그냥 알던 사이도 아니고 어릴 때부터 앞뒷집으로 살면서 함께 자란 짝꿍이랍니다. 고난의 행군이 시작하면서 친구 집이 망했고 결국 둘은 남한에 와서야 생사를 확인했는데요. 그런데 이 두 사람... 서로의 존재를 알고 바로 달려가 얼싸안고 눈물의 상봉을 했을까요? 25년의 세월이 그렇게 간단치 않았습니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25년만의 해후, 두 번째 시간입니다.

박소연 : 제일 가슴 아픈 건요. 중국 남편이 돈 벌러 어디 시내로 나갔는데 3살 짜리 애기를 업은 채로 잡혔답니다. 남편도 연락이 안 되고 친척도 없고. 애를 업은 채로 북송이 됐답니다. 신의주에서 북송이 돼서 무산까지 호송이 되다나니까 기차에 탔는데 애가 족쇄를 만지작만지작 하더랍니다. 애가 보는 게 그럴 것 같아서 수건으로 둘둘 감았는데 아들이 그러더랍니다. 엄마 나는 커서 경찰이 되겠다고. 우리 엄마 손에 이런 거 못 채우게. 수용소는 3년 짜리를 가고 아이는 꽃제비 같이 생활하는 늙은 부모에게 맡겼는데 10번도 더 죽을 번했지만 새끼 때문에 견뎠답니다. 나중에 나와 보니까 친정 엄마는 죽고 없고... 엄마 따라 가고 싶지만 어린 아들 때문에 그럴 순 없었다고요. 아득바득해서 눈이 오는 날, 아들 손잡고 깡도강을 했더라고요. 나는 나라를 잘 못 만나서 여기서 이렇게 고생하지만 얘는 중국 아이인데 무슨 죄가 있나. 엄마를 잘 못 만나 꽃제비 4년을 넘게 살고... 그 맏아들이 이제 15살이 됐어요. 막 얘기를 하는데 저는 소리 내서 울었습니다. 저도 힘들었지만 친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그래서 이 친구가 자식을 세 명이나 놓은 것 같아요. 그것도 모르고 저는 처음 전화 받았을 때 애가 세 명이라고 하기에 니 미쳤냐, 첫마디에. 니 미쳤냐 애를 셋씩이나 낳고... 그랬어요. 제가 이렇게 철이 없습니다. (웃음) 내 친구를 애들을 보며 웃고 사는데 몇십년 만에 만난 친구가 미쳤다고 하니까... 아, 참... 친구를 만나서 많이 울었습니다. 반갑기도 하고요.

문성휘 : 옛날부터 우리 하는 말 중에 이런 거 있어요. 친구가 4층 기와집 지으면 배 아파서 못산다.

진행자 : 남한에선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프다..

문성휘 : 북한에선 늘 그랬어요. 그게 조선 사람이다... 그런데 한국에 와서 보니까 북쪽에서 힘들게 살던 친구들이 남한에 와서 잘 살고 그러면 기분이 좋아지고 흐뭇해져요.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심술이 참 많은데요. (웃음) 남한에 와서 보니까... 우리 동네는 아니었어도 조그마한 시골 동네는 사정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 친구들 와서 잘 꾸려놓고 사는 걸 보니까 제 마음이 너무 좋습니다. 근데 하나 제가 진짜 딱 하나 배 아픈 게... 그 아이가 컴퓨터를 엄청 잘 해요. (웃음)

진행자 : 근데 소연 씨도 문 기자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어렵게 살아온 내 친구가 지금은 행복하고 잘 살아서 너무 좋다...

박소연 : 네, 너무 좋습니다. 새까만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데 운전도 잘 하고. 근데 저는 그 아이를 통해서 어릴 적 저를 찾았습니다. 제 어린 시절을 감감히 다 잊었었는데 그 친구의 얘기 속에서 저를 찾습니다. 두루 이런 저런 얘기하면서 25년 헤어졌다 우리 다시 만났으니까 죽을 때까지 헤어지지 말자 그럽니다. 우리 서로 노여운 거 있으면 얘기하고 (웃음) 서로 과거에 어떻게 살았던 타산하지 말고 지금 보이는 모습으로 살자. 그 친구는 나를 보면 옛날 생각, 힘든 과거 생각으로 가슴 저미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동심으로 돌아간다고...

진행자 : 아팠던 기억보다는 아주 옛날, 어렸을 때 기억이 더 많이 나신 것 같아요.

박소연 : 이제 한국에 온지 7년 됐다고 하고요.

진행자 : 소연 씨보다 선배잖아요? (웃음)

박소연 : 그러네요. 22평 짜리 집에 화장실에 알록달록 하고 예쁘게 하고 살아요. 침대도 멋지고요. 제가 집이 너무 좋다 그러니까 우리도 3년 동안 임대아파트 살다가 이사 왔다고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돼, 조급해 하지마, 그러더라고요. 언니 같고요. 어릴 때는 조용하게 자기 할 말도 잘 못하고 내가 하자는 대로만 하는 친구였는데 지금은 달라졌어요. 멋있더라고요.

진행자 : 소연 씨 어릴 때 성격이 대단하셨나 봅니다.

문성휘 : 그림이죠 뭐...(웃음)

박소연 : 그래요. 문 기자님은 북쪽에서 오셔서 인정하시네요... (웃음) 하여튼 한참을 웃었습니다.

진행자 : 친구 잘 사는 것보고 배 아프진 않으셨고요? (웃음)

박소연 : 전혀요. 저 정말 너무 좋았습니다.

문성휘 : 저도 소연 씨처럼 그랬습니다. 지어는 내 형제가 나보다 잘 산다고 해도 배가 아플텐데 이상하죠. 잘 알던 아이도 친구 사이도 아니었는데요. 뭔가... 마음이 엄청 가벼워져요.

진행자 : 아마 우리가 그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 알기 때문에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이겠죠. 근데 소연 씨가 여기 가족이라고는 아드님 밖에 없으니까요. 가족 같은 친구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박소연 : 이 기자님도 남조선 사람이잖아요? 제가 여기 와서 친구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혹시 북쪽이랑 연계를 갖다가 실수를 할까봐 같은 탈북자 친구를 만드는 걸 두려워했습니다. 한국 친구를 정말 진심을 다해 잘 해줬는데 저와의 관계를 그냥 쓰레기장에 들어가는 한 장의 사진같이 대했더라고요.

진행자 : 남한 친구를 만들어 보려고 했는데 잘 안 됐다?

박소연 : 네, 그렇습니다. 이 아이는 내 인민 반 주소에 다 알고 있지만 전혀 두렵지 않고요. 지난 25년 간 뭘 하고 살았는지 그런 걸 몰라도 그냥 묻게 안 되더라고요. 그냥... 그냥 제 친구입니다.

진행자 : 그래요. 그냥 친구. 참 북쪽에선 오신 분들이 남쪽에서 살기 어렵다 하는 이유 중엔 그런 친구를 만들기 힘들다는 것도 있습니다.

문성휘 : 거기에 대해 나도 많이 생각해 봤고 다가서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꽤나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도 있고요. 그런데 아무래도 소꿉 시절 친구만은 안 됩니다. 제가 저보다 5살 정도 어린 친구가 있는데요. 한번 물어봤습니다. 나 여기 와서 친구를 만들려고 했는데 북한에서처럼 그렇게 다가가지 않는다... 그랬더니 걔 하는 말이 형, 나도 전라북도 사람이야. 내 어렸을 때 친구들은 지구 어느 끝에 가있던 전화도 하고 만나면 너무 반갑고 그렇다, 근데 나도 아직 서울 친구가 없다... (웃음) 서울에 전라북도 사람들 많아도 그 사람들하고 친구가 되는 게 아니라 고향 친구들을 찾게 되고. 그러니까 친구는 역시 철없었을 때 친구이고 나이가 들면 그렇게 속을 터놓고 얘기할만한 친구를 찾기 힘들다는 거죠.

진행자 : 그래요. 게다가 북쪽에서 오신 분들은 북에서 남으로 오셨으니 친구 만들기는 더 힘들고요.

문성휘 : 그래요. 어렸을 때 친구는 정말 무슨 말을 해도 기분이 별로 상하지 않고요...

진행자 : 어쨌든 소연 씨 그런 인연을 한국 와서 만나셨다니 축하드릴 일입니다.

박소연 : 한국에 와서 남자들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저는 두만강을 건널 때까지 친구가 제 옆에 앉아있었어요. 부모한테 할 소리가 있고 친구한테 할 소리가 있는데 제일 할 소리가 많은 게 친구에요. 내가 가슴 응어리 맺힌 걸 말하고 싶은데 누구한테 하겠습니까? 잘 모르는 남조선 사람 붙들고 말할 순 없고... 혼자 삭히다 보니까 병이 날 것 같더라고요. 나는 여기서 분명 사람들 속에 살지만 고립된 사람? 그런 느낌이었는데요. 사회생활도 하고 방송도 하면서도 많이 좋아졌지만 그때뿐이고 하고 싶은 얘기는 다시 쌓이는데 이제 친구는 아무 때나 전화해서 조잘 거릴 수 있잖습니까... (웃음)

문성휘 : 저도 얼마 전에 고향에서 온 사람을 만났어요. 노래방이랑 갔는데 아닌 게 아니라 친구 소리가 나오니까 그 사람이 친구라는 노래를 부르더라고요. 아마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다 같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 노래 들으면서 고향이란 말은 없지만 고향이 떠오르고 소꿉시절 친구들이 먼저 떠오르지 않을까... 참 어른이 돼서는 친구가 되기 힘들고요. 같은 탈북자끼리여도 따지고 보면 그런 친구는 아닙니다.

박소연 : 얼마 전에 친구랑 놀이동산에 놀러갔는데요. 약속했습니다. 우리 아이들 자주 만나게 하자 그래서 우리가 허물없던 것처럼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그런데 우리 아들이 11살, 친구 아들이 15살인데 둘이 말을 안 해요. (웃음) 그래서 우리가 전략, 전술을 세웠습니다. 우리는 뒤에 따라가고 둘만 따로 다니게 했습니다. 밤에 집에 와서 물어보니까 자주 만나면 친해질 것 같다고... 근데 애들은 나이가 먹었더라고요. 우리는 그냥 7-8살 때부터 간격이 없었는데 되게 뻣뻣해서 양쪽 산만 보고... (웃음)

너와 마주 앉아서 두 손 맞잡으면 두려운 세상도 내 발 아래 있잖니 어느 곳에 있어도 다른 삶을 살아도 언제나 나에게 위로가 되는 너...

가수 안재욱의 친구라는 노래, 노랫말입니다. 이런 친구, 갖고 계시죠?

남한의 친구... 북쪽과 다르지 않습니다. 친해지는 방법도 친구라는 의미도 비슷하지만 나이가 들어서 남한에 와서 일까요, 문화 차이 때문일까요...

친구가 잘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하네요. 남한과 북한의 친구 이야기 그리고 그리운 고향의 친구 이야기, 다음 시간에 이어가겠습니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지금까지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