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키움 저축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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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11월, 남한에 도착해 올해 남한 생활 3년 차를 맞고 있습니다. 2012년 아들을 데려와 혼자서 키우는 열혈 '워킹맘' 그러니까 일하는 엄마입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엔 남한 정착 8년차, 자강도 출신 탈북 기자 문성휘 씨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 본인이 3년 동안 한 달에 십만 원 씩 적금을 하게 되면 정부에서 식구 수에 따라 30만원에서 40만원을 도와주는 거랍니다. 도와주는 액수는 식구 숫자에 따라서 달라지고요.

소연 씨가 최근에 시작한 저축 얘긴데요. 한 달에 내가 10만원, 약 100달러 정도를 저금하면 국가에서 그 3배의 액수를 3년 간 지원하는 파격적인 조건이랍니다.

아무나 해주는 건 아니고 국가에서 매달 생활비를 지원받는 저소득층 중에 심사를 거쳐 자립의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을 지원하는 거라고 합니다. 일단 3년 동안 모으면 자립의 종자돈은 마련할 수 있을 것 같죠?

지난 시간엔 소연 씨의 돈 모으는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오늘은 돈 빌리는 얘기 좀 해보겠습니다.

진행자 : 요즘을 저금리 시대라고 합니다. 은행에서 돈을 맡기면 주는 이자가 아주 낮습니다. 탈북자, 저소득층처럼 배려 계층이 아닐 경우, 얼마나 받는지 아십니까?

문성휘 : 저금이자, 그냥 은행가면 2.5%요?

진행자 : 아주 잘 준다 해도 3% 넘는 경우가 많지 않은데요. 굉장히 짠 거죠. 사실 이 정도면 세금 떼고 물가 상승률 생각하면 원금 넣다가 빼는 거랑 똑같은 수준입니다.

박소연 : 이야... 낮네요.

문성휘 : 저도 마찬가지인데요. 북한에선 상상도 못했지만 여기선 은행 이자를 따지거든요? 저금이라는 게 순수 내 돈을 맡기기만 하는 게 아니라 은행에 돈을 맡기면서 거기에 대한 보상, 일정한 이득이 나에게 발생하는 걸 기대하죠. 그런데 한국은 이득이 굉장히 적게 발생하니까... 어떻게 방법을 바꿔서 금리를 높여주면 나 같은 건 좀 더 빵빵하게 힘을 내서 저축을 하겠는데...

진행자 : 문 기자님은 함정이 있습니다. 저금 금리가 올라가면 문 기자님이 은행에서 빌린 돈에 대한 금리도 올라갑니다. (웃음)

문성휘 : 에잇, 오르지 말아랏! (웃음)

진행자 : 사실 제일 좋은 건 내가 빌린 돈에 대한 이자는 덜 받고 저금한 건 높게 주는 게 좋죠.

문성휘 : 세상 일이 그렇게 안 되죠. (웃음) 어쨌든 은행에 돈을 넣어놓으면 그거에 돈이 붙고 이득이 생기고 그걸 갖고 장차 집이나 땅을 살 수 있고 아니면 그대로 쌓아 놨다가 늘그막에 꺼내 쓸 수도 있고요.

진행자 : 어쨌든 이자를 따지기 이전에 돈 쓸 때가 너무 많아서 저금할 여유가 안 되는 것도 문제입니다. 그런데 저금을 안 하면 약간의 죄책감 같은 것도 느껴지거든요? 이건.... 남한에서는 인민학교 1학년 때부터 저금에 대해서 엄청나게 강조합니다. 10-20원을 매일 학교 있는 저금소에 저금하게 했던 그런 교육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문성휘 : 지금도 그런 제도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진행자 : 아이들 이름으로 통장도 만들어주고 저금하는 버릇을 들여 주려고 노력하죠. 북쪽에서는 아이들에게 혹시 이런 교육합니까?

박소연 : 저는 인민학교 때 기억나는 게 엄마가 인민반 엄마들과 함께 쌀도 한 사발, 두 사발... 동네마다 열 명 정도 모여서 쌀 한 사발씩을 모았어요. 그게 순서가 돌아서 내 차례가 되면 쌀 열 사발이 생겼어요. 그렇게 돌아가던 것이 제가 사회생활을 할 때 즈음엔 싹없어지고 고난의 행군이 시작됐죠. 저는 결혼을 해서 저금을 어떻게 했냐면요. 장사를 해서 얼마나 벌었다 하면 한번 씩 백 원짜리, 오 십 원짜리를 비닐에 돌돌 말아서 궤짝 뒤에 훌 던졌어요. 양복장, 옷장은 북한에 필수인데 진짜 가구가 무거워요. 그걸 한번 옮기려면 장정이 한 명 있어야 하고 궤짝이라는 건 천장이랑 딱 맞붙지 않거든요. 또 습기 때문에 또 벽하고 딱 붙이지지도 않고요. 그러니까 쥐가 쏠까봐 돈을 비닐로 싸서 그 뒤로 던져 놓는 겁니다. 그렇게 모아서 1-2년 뒤에 남편과 함께 으쌰, 그걸 한번 옮깁니다. 그럼 그 뒤에 그냥 거미줄이 씌우고 먼지 씌우고 옹기종기 돈이 모여 있어요. 그럼 그 돈이 정말 많았습니다... (웃음)

진행자 : 집에 금고를 하나 만드신 거군요.

박소연 : 그렇죠. 도적놈도 궤짝은 들지 못합니다.

문성휘 : 북한에 대개 그래요, 은행을 안 이용 합니다. 80년대 북쪽 인민 반에서 하던 걸, 지금 소연 씨가 얘기한 거요. 그걸 남쪽에선 계모임이라고 하죠? 80년대에 북한이 좋았다고 하는데 배급을 7백 그람씩 주고 전량미를 잘랐기 때문에 그 때도 배불리 먹지는 못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인민반에서 계모임을 하면서 저축을 좀 한 것이죠. 이게 망가진 게 88년... 13차 세계 청년학생 축제. 북한의 완전한 분기점입니다 그 다음부터는 은행에 저축한 돈을 찾지 못하는 거예요.

진행자 : 잔치를 너무 크게 해서...

문성휘 : 그렇죠. 그래서 손해 본 게 많았고요. 그 다음부터는 사람들이 저축을 안 하는 거죠? 그래서 그걸 좀 고쳐보겠다고 한 게 1992년 화폐 개혁이었지만 더 망가졌고요. 2009년 화폐 개혁에는 많은 사람들 죽었고... 북한도 제 딴엔 뭘 해보겠다고 하는데 안 되는 거죠. 한국 주민들도 똑같죠. 왜 은행에 저축을 할까요? 은행을 믿으니까, 국가를 믿으니까죠. 근데 북한은 이미 모든 공공기관, 사회 관계망들이 주민들의 신뢰를 잃었기 때문에 기대려 안 하는 겁니다. 국민들이 은행을 신뢰안 하면 국가의 돈이 회전을 못 하고요.

진행자 : 저는 이 부분이 좀 궁금하던데요. 은행에 저금도 하지만 돈을 빌리기도 하는 곳인데요. 은행을 이용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돈이 필요할 땐 어떻게 합니까?

문성휘 : 개인들에게 빌리는 거죠. 고리대업자들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줘야하는 이자는 굉장히 높습니다. 만원에 50%, 한 달 동안에 1만 5천원, 하루에 막 천 원 씩 붙고... 그래서 망하는 사람도 많죠. 근데 이번에 화폐 개혁을 하면서 고리 대금 업자들도 많이 망하고 싸움도 굉장히 많이 나고 했답니다. 국가 사회 제도에 대한 신뢰가 허물어지면서 개인들 간에도 역시 신뢰도 없어지고 어려운거죠.

진행자 : 고리 대금업을 남쪽에선 세련된 말로 '대부업' 이렇게 부르기도 합니다. 은행이 아닌 대부 업체들은 금리가 25-29% 정도 되던데요. 많이 떼는 거죠.

문성휘 : 북한하고 대비할 수 없지만 많이 떼고요. 그리고 한국에선 고리 대금은 불법입니다.

진행자 : 국가에서 인정받은 대부 업체들도 최고 금리는 법적으로 정해놓았습니다. 법정 최고 금리는 34.9%이고요. 이런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릴 때보다 은행에서 빌리는 게 더 쌉니다. 문 기자님은 집 사면서 돈을 빌렸잖습니까? 이자가 몇 퍼센트입니까?

문성휘 : 4.7% 요. 그러니까 한국은 복지가 잘 안 됐다고 하지만 생각해보면 잘 돼있다니까요!

진행자 : 혜택을 받으시니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겁니다. (웃음)

문성휘 : 나도 혜택을 받았지만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도 있습니다. 공장에서 사업에서 빚더미에 앉은 사람들. 그 사람들은 국가에서 이자를 낮게 해주고...

진행자 : 개인 파산제도라는 것이 있죠.

문성휘 : 개인 파산을 신청해서 받아들여지면 빚의 일정 부분은 탕감해주고 낮은 금리로 갚을 수 있게 해줍니다. 그런 제도 얼마나 좋아요. 그렇지만 은행에서도 담보가 없이 그냥 대출을 받자고 하면 8%, 11%.. 이자가 높아지더라고요.

진행자 : 소연 씨, 돈을 빌려본 적 있으세요?

박소연 : 그럼요. 빌려 주기도 하고 빌리기도 하고 북한엔 다 그래요. 이런 말이 있죠. 빌려주는 건 1 등 바보, 빌려준 돈을 갚는 게 더 큰 바보. 북한에서도 은행에 저금하고 싶은 사람도 있지요. 그런데 돈이 좀 많으면 보위부에서 나와서 수입 대 지출이 안 맞는다고 돈의 출처를 캐요. 그러니까 어떻게 그 돈을 불리냐면 겉곡을 가을에 사서 잠거 놓으면 (묶어 놓으면) 봄날에는 배로 올라요. 그 때 팔면 그게 북한식 예금, 적금이 되는 겁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은 10%도 안 되고 일반 사람들은 하루 벌어 하루 살잖아요? 일반 주민들은 모든 재산이 몸 안에 있습니다. 잘 때도 그 빨간 천으로 만든 전대를 차고 자고 여자들은 속옷 안에 전대를 넣고... 그렇게 돌아가니까 북한 돈도 사실 멈춰있지 않아요.

문성휘 : 그렇지만 이런 차이는 있을 것 같습니다. 합법적인 국가 체계를 통해 유통이 돼야할 것 같은데 개인들과 개인들끼리 지하경제를 통해 유통되니 이게 문제고요. 그리고 이런 말도 있어요. 돈 꾸는 사람 노력 영웅이고 꾸어준 돈을 받는 사람 공화국 영웅이다... 북한엔 돈 때문에 이런 얘기들이 정말 많습니다. 재테크라는 게 은행을 통할 수 없고 노후 준비라는 게 꿈도 못 꿉니다.

박소연 : 하루하루 살면 대비가 안 되니까...

문성휘 : 북한은 다 운명으로 받아들입니다. 한국 같으면 사람이 죽으면 왜 그런지 원인을 알아보고 잘못 됐다고 하면 국가나 법에 신고해서 해결할 수 있고요. 억울하면 소송도 하지요. 그러나 북쪽은 다 자기가 알아서 살아가야 하는 거죠. 그래서 그런 말 있지 않습니까? 자기 운명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다! 주체사상대로 사는 겁니다. (웃음) 장사라는 게 매일 잘 되는 게 아닌데도 한번 빚을 진 사람은 영원히 쫓겨야 하고...

어떤 사회가 정말 살기 힘든 사회일까 생각해보면요. 경제적인 면에선 가난한 사람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부자가 될 수 없는 사회 또 한 번 빚을 지거나 장사나 사업이 망하면 다시 일어설 수 없는, 다시 한 번의 기회가 보장되지 않는 그런 사회가 진짜 살기 힘든 사회가 아닐까 합니다. 좋은 사회의 모습은 당연히 그 반대겠죠.

소연 씨가 저금하고 있는 통장의 이름, 희망 키움 통장인데요. 누가 지었는지 이름 참 잘 지었습니다, 희망을 키우는 통장... 남쪽엔 저금하면 항상 따라다니는 구호가 있는데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입니다. 소연 씨의 희망 또 우리의 희망은 티끌 모아 태산이 될 수 있을까요... 저금 얘기는 다음에도 이어갑니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오늘은 여기까집니다. 함께 해주신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