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만의 해후 (4)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11월, 남한에 도착해 올해 남한 생활 4년 차를 맞고 있습니다. 2012년 아들을 데려와 혼자서 키우는 열혈 '워킹맘' 그러니까 일하는 엄마입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엔 남한 정착 9년차, 자강도 출신 탈북 기자 문성휘 씨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 90년에 헤어졌던 친구를 2015년에 만났네요. 저희가 그때는 10대였는데 지금은 세 아이의 엄마가 돼서 제 앞에 나타났습니다....

25년 만에 남한에 와서 고향 친구를 만난 소연 씨의 얘기를 들으면서 우리는 '친구'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남북한이 아무리 달라도 '친구'라는 의미가 다르진 않은데요. 다만 그 사이의 온도 차이는 있는 것 같습니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25년만의 해후 마지막 시간입니다.

문성휘 : 그리고 이제 생각해 보니 그렇습니다. 북한에서 친구는 자기 방어 수단입니다. 법이 해결해주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여기는 그리 심하지 않는 부부싸움에도 경찰이 와서 딱 정리를 해주잖아요. 접근 금지다, 그럼 떨어져야 하고요. 북한에서는 온 동네를 다 깨고 싸워도 보안원들이 지나가면서 저 또 싸운다, 싸운다... 그러면서 그냥 지나가요. 그런데 만약의 경우 돈 문제나 힘겨루기 때문에 남남끼리 싸움이 일어났다, 그런데 내 힘이 모자란다... 이럴 땐 친구들이 다 모여요. 그럼 패싸움이 되죠. 지어는 패싸움도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면 보안원들이 말리려고 안 하죠. 그러니까 북한에서의 친구는 남한에서의 친구와는 또 다른 면이 있습니다. 내 방어 수단. 내 방패.

진행자 : 나만의 편이라는 얘기군요.

문성휘 : 그래서 소연 씨 말이 맞습니다. 장마당 매대 덮고 와라, 그러면 가야합니다. 안 가면 다음번에 내 방패막이가 없어져요.

박소연 : 북한에서 살 때 잘 아는 친구였는데 남편이 바람이 났대요. 그 친구 이름이 혜옥이었는데 우리 집에 왔어요. 어느 동에 어느 간나하고 바람났는데 자부디 끊어서 엎어놓자! 그래서 우리 4명이 갔습니다. 니 우리 친구들 얼굴 다 봤지? 니 한번만 더 그랬다간 이젠 하늘 다 보는 줄 알아... (웃음) 진짜 바람을 못 썼습니다.

문성휘 : 그래요. 남자만 그런 게 아니라 여자들 무서워요.

진행자 : 그래서 친구가 중요하군요...(웃음)

박소연 : 그리고 저 언젠가는 제일 친하던 친구가... 그 친구가 시장에서 계란 장사하는데 외상값을 못 받아서 매일 저한테 돈을 꾸러 와요. 어느 날은 진짜 화가 나더라고요. 그래서 야, 니 외상 집 앞장서. 걔를 데리고 외상을 준 식당에 갔는데 다 강도식당들이더라고요. 어떡하겠어. 우리 내일 돈이 오오... 그래, 내가 이거 보오, 내 여기 딱 앉아있겠으니까 오늘 저녁에 사람들이 밥을 사먹을게 아니냐고, 그럼 받은 족족 달라고. 2시간을 고아 받았습니다. 저번에 가져간 외상값 좀 주십쇼, 주십쇼... 누가 줘요? 그래서 제가 돈이 없다고 저한테 너무 돈을 꾸러 와서 화가 나서 그랬던 건데요. 일곱 집인가 여덟 집 다니면서 돈을 다 받았다는데요.

문성휘 : 그래요! 바로 이게 친구에요!

박소연 : 그래서 제가 맨날 친구를 욕했어요. 이래 갖고는 이 험한 세상 못 산다, 썩어져라 막 이랬다는데요. 근데 친구니까 그런 욕도 하죠. 다른 사람이 썩어지라면 가만있겠어요? 자기 친구, 허물없는 친구가 이런 얘기를 하니까 됐다... 내가 성격이 그런 걸 어떡하게? 그러죠. 저는 막, 너 그래갔고 못 산다!! 그랬죠. 친구 지간엔 그런 게 있어요...

진행자 : 근데 이런 얘기를 듣고 보니까 남북의 친구가 크게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에요. 북쪽의 친구가 훨씬 더 뜨겁네요. (웃음)

박소연 : 못살수록 뜨겁죠. (웃음) 그건 맞아요.

진행자 : 남쪽에서도 진정한 친구란 이런 거다... 이런 얘기를 하는데 남쪽에서는 친구를 위해 몸 던질 일이 많지 않잖아요.

문성휘 : 법이 있는데요.

진행자 : 친구 남편이 바람 핀다고 상대여성을 자부디 뜯는다...? 요즘 남쪽에서 그랬다가는 상대 여성한테 고소당하고요. (웃음) 그렇게 나설 일이 없는데 북한이야 말로 친구 일을 내일처럼 나서주는 뜨거운 친구입니다.

문성휘 : 왜냐면 그렇게 나서지 않으면 내가 그런 일이 생겼을 때 나서줄 사람이 없습니다.

진행자 : 그래도 친구 일에 나서줄 때 그런 계산에서 나서주진 않을 것 같은데요?

박소연 : 그렇죠...

문성휘 : 아니요. 그렇게 계산 안 한다고 하면서도 장마당 덥고 와라 하면 그땐 그런 생각이 있습니다. 내가 오늘 여기 안 가서 후에 애랑 틀어지면 나 진짜 죽는 거예요.

박소연 : 친구들이 강해요. 그래도 못 살수록 더 끈끈해요.

진행자 : 힘들 때 친구가 진짜 친구라는 얘기도 있잖아요.

문성휘 : 맞지...

박소연 : 아, 진짜 보고 싶네요. 지금 바람 안 쓰는지 모르겠어요. (웃음)

진행자 : 외상값은 제대로 받는지 모르겠네요.

박소연 : 맞아요... (웃음)

문성휘 : 친구가 무슨 일이 일어나서 같이 가서 싸웠는데 우리 다 맞았어. 맞았는데도 뭔가 친구를 위해 마지막까지 저항하면서 나섰다는 거... 머리 다 터져서 우리 오늘 잘 했다...(웃음)

박소연 : 맞습니다. (웃음) 남자들 항상 그러죠. 쟤네 맞고도.

문성휘 : 내가 너에 대한 증명이다... 이런 걸 과시하려 하고요.

진행자 : 친구라고 말보다는 왠지 동무라는 말이 어울릴 것 같아요.

문성휘 : 북쪽은 반대네요. 동무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많이 쓰니까 친구라는 말이 더 와 닿죠.

진행자 : 어쨌든 친구... 얘기하면서 보고 싶은 얼굴들이 하나둘씩 떠오르실 것 같네요.

박소연 : 너무 많아요.

문성휘 : 머리는 터져 가지고 자체 사기 높이면서 술을 나누던 때... 아이고...(웃음)

박소연 : 북한 남자들은 지는 사람이 소리가 더 많아요. (웃음) 피 터지게 맞고서도 야, 우리 봐라 어디 가서 밀리지 않는다! 저도 북한에서 친구와 역사가 많은데요. 싸움 소리가 나왔으니까 생각납니다. 친구 집이 돈을 꿨는데 제때 물어 안 주니까 집에 와서 재산을 다 들러 엎는다고 했대요. 제가 체격은 안 큰데 드살이 있어서 남자를 이깁니다. 그래서 친구가 저한테 연락을 했습니다. 갔더니 그 집 남편은 웃방에서 나오질 않아요. 조금 있다가 아닌 게 아니라 돌격대 아이들, 군대 아이들이 곡괭이에 삽을 들고 왔더라고요. 돈을 내놓을래, 집을 박살 만들겠냐... 집에는 저랑 친구, 남편, 애들 둘 이렇게 맨 부대 노력밖에 없었어요. 고민을 하다가 일단 문을 열어줘라... 대문을 열었어요. 딱 들어오는데 정지칸까지 신발을 신고 들어오더라고요. 근데 남편은 무서워서 웃방에서 나오지도 않고요. 제 친구는 아저씨 인차 물겠습니다... 막 빌고요. 남자들이 니 안 나온나? 안 나오면 죽인다며 웃방까지 신발 신고 들어오는데 제가 딱 김일성 대원수님이 생각나더라고요. 야, 너 김일성 대원수님 초상화 있는데 신발 신고 들어오겠니? 근데 그 순간에 멈칫 하더라고요. 북한에 사상이 이렇게 강해요... 주먹 위에 있습니다. 니 초상화 아래서 신발 신고 다 깨라, 이럼 우리 안전원한테 알린다... 그것 때문에 저지된 거 아니지만 유야무야 돼서 어떻게 남편이랑 마당에서 잠깐 한판 붙었고 친구 남편이 머리가 터졌고 걔네들은 갔죠. 저녁에... 술상 차려놓고 야, 그래도 우리 그 놈들 물리쳤다... 실컷 맞아놓고는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친구한테 그랬습니다. 저것도 남편이라고 데리고 사냐... (웃음) 그래도 웃방에서 흰 붕대를 감고 그렇게 고으더라고요. 참 역사가 많습니다...

진행자 : 재밌는 얘기였습니다. 그런데 남쪽도 사람 사는 사회니까요, 약간씩 다르긴 하지만 친구라는 의미도 친해지는 방법도 다 같습니다.

문성휘 : 방식이 약간 씩 다를 뿐 사람 사는 게 같죠.

박소연 : 여기서도 누가 바람을 써야겠어요. 그래 머릴 자부디 뜯어놔야 친구를 만들겠는데... 남한에는 그런 친구는 못 만드네요. (웃음)

진행자 : 남쪽에서도 지금 소연 씨가 올해 4년차, 문 기자가 근 10년 차가 되는데요. 세월이 쌓여갈수록 친구들도 많이 만들게 되겠죠. 사실 가장 친한 친구는 세월이 만들지 않을까요?

박소연 : 맞아요. 같이 했던 시간들... 그래놓고 보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친한 분들은 이 두 분이네요. 제가 한국에 와서 4개월부터 방송을 하기 시작했으니까요. 그런데 머리 자부디 잡아줄 일이 없겠어요...(웃음)

진행자 : 제가 그럴 일 있으면 꼭 소연 씨에게 부탁할게요. (웃음) 많이 웃었지만 처음에 시작하면서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친구들에게 갖는 죄책감, 그 죄책감 때문에 문 기자도 소연 씨도 힘들었다고 했는데요. 유명한 책 제목에 이런 게 있습니다. 살아남는 자의 슬픔... 살아있는 게 미안하고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게 저쪽에 있는 친구들이 잘 살아줬으면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성휘 : 언젠가 그런 날이 오겠지만 친구들 생각을 하면 이렇게 금방까지 웃다가도 서글프죠.

박소연 : 그걸 이겨내려고 노력해야할 것 같아요.

진행자 : 아마 오늘 얘기하면서 머릿속으로 하나 둘 씩 친구 얼굴들이 떠오르실 텐데요. 우리가 그 친구들의 이름을 입 밖으로 꺼내 부를 순 없지만 친구들의 건강과 행복, 친구 가족들의 평화와 무엇보다도 만날 그날까지 살아있어 달라고 기원하며 이 시간 인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문성휘, 박소연 : 감사합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 은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쓴 시 제목입니다. 짧으니까 전문을 적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 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살아남은 자가 슬퍼지는 이유는 앞서 떠나보낸 사람들이 친구이기 때문이겠죠. 첫 회에서 소연 씨는 친구의 사연 앞에서 미안함에 소리 죽여 울었다고 했고 문 기자는 남한에 와서 만난 동창생의 부인에게 전해들은 소식 때문에 한 동안 혼자 있기 무서울 정도로 죄책감이 시달렸다고 했는데요.

그 미안함은 만나서 갚기로 하면 어떨까요? 또 갚을 수 있게 기다려 주면 고맙겠습니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25년만의 해후, 오늘인 마지막 편이었습니다.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