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박소연 씨는 2011년 11월 남한에 도착한 햇내기 입니다. 무산 출신으로 선전대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30대 중반의 여성인데요. 하나원 교육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남한 생활을 시작한지 이제 근 일 년...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에는 남한 정착 7년차, 자강도 출신 탈북 기자 문성휘 씨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 문 기자님, 한국에 온지 몇 년 밖에 안 된 여자가 샤넬, 루이비통 이런 명품을 사겠다면 욕하시겠어요? 당연히 욕하죠...
지난 시간, 소연 씨가 문성휘 기자에게 예상치 못한 질문을 하나 던졌습니다. 오늘 <세상 밖으로> 비싼 고가의 물건, 명품에 대한 얘기 이어갑니다.
문성휘 : 북한 사람들도 이런 상식은 많습니다. 북한에 재봉기가 비둘기, 풍년, 쌍마... 가장 좋은 게 쌍마라고 하죠. 재봉기 공장은 워낙 철을 좋은 걸 쓴다는데 거기에서 제비라는 자전거를 만드니 괜찮다, 청년은 어디 청진 제철소에서 만든다는데 완전 깡통이다, 갈매기 자전거는 수송 정치범 수용소에서 만드니까 수용소 수인들이 약간만 잘 못 만들어도 죽도록 맞아야 하니 정말 최고의 질이다... 이런 얘기를 합니다.
진행자 : 진짜 상품들을 잘 분석하시네요. 근데 정말 북한식 분석입니다. (웃음) 남쪽엔 그런 상품들이 재봉기 한 가지, 자전거 한 가지만해도 수천, 수만 가지가 있고 사람들이 그런 상표들을 다 알고 또 어디서 나오는 어떤 제품이 좋다는 평가를 하는데요. 그러면서 최고의 상품이다, 최고 잘 만든 명품이다... 이런 얘기를 합니다. 명품이라는 건 이름 난 제품이라는 뜻이었지만 이젠 그 의미가 많이 변했어요, 그냥 비싼 최고급 제품이라는 뜻으로 쓰입니다.
문성휘 : 사실 중소기업에 만든 제품은 3-4만원인데 소문난 공장에서 만든 제품은 똑같은 제품이라도 12만원, 20만원 이렇게 값이 훌쩍 뜁니다.
진행자 : 그러게요. 그 상표가 뭐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근데 이게 참 심리적인 요인이 큰 것 같습니다. 83년도 즈음에 나이키...
문성휘 : 북한에선 '니케'라고 합니다.
진행자 : 당시엔 그냥 시장 신발 가게에서 모양이 맘에 드는 아무 신발이나 사서 신었는데 모양은 비슷해도 그 니케 상표 하나 붙으면 가격이 열배는 차이가 났을 겁니다. 그래도 어린 마음에 그게 그렇게 갖고 싶었는데요. 이유는 그걸 신은 얘들은 엄청나게 자랑했거든요. (웃음) 바로 이런 심리 때문에 다들 그렇게 누구나 알아주는 상표, 명품을 찾는 것이고요. 그래서 명품을 욕망의 발현이다... 그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갖고 싶은 욕망의 발현으로 비싼 물건, 남들이 다 인정해 주는 물건, 명품을 사고 싶은 마음으로 나타나는 거다.... 이런 분석인데요. 어느 정도 동의하시죠?
박소연 : 네, 맞아요.
진행자 : 소현 씨가 나는 북한에서 왔지만 다른 동기들보다 내가 좀 나아보이고 싶고 그리고 문 기자 같은 경우에는 카메라를 갖고 싶으셨다고 했죠?
문성휘 : 북한에서는 사진사 기술을 배운 사람들이 있거든요.
진행자 : 부러우셨던 거죠? 그런 욕망들이 이런 식으로 발현된다는 얘기죠.
문성휘 : 탈북자들의 경우엔 남한 사회에 나오면 그 욕망이 더 하죠. 욕망, 갈망... 북한에서 한번 해보고 싶었던 것에 대한 욕망이 폭발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탈북자들 아까 말했던 것처럼 나오자마자 자동차를 사는 사람도 많은데 그게 꼭 탓할 것만은 아닙니다. 욕망이 한꺼번에 분출돼서 분수없이 되기도 하는 거죠.
진행자 : 그런 차원에서 소연 씨가 명품을 하나 갖고 싶다... 그러는 것도 같습니다. (웃음) 그런데 가장 좋은 건요, 명품을 사는 것보다 이런 태도인 것 같아요... 내가 명품이야!
박소연 : 아! 내가 명품이 되어야 한다... 뭐 이런 말인가요?
문성휘 : 네, 그렇죠. 유명한 아이슈타인의 일화가 있어요. 물리시간에 상대성이론을 배우며 아이슈타인에 관한 이야기가 조금 나옵니다. 그래서 방송 듣는 분들도 아이슈타인을 아실 거예요. 아이슈타인이 유대인 아닙니까? 유대인들의 학살을 피해서 아이슈타인은 독일에서 미국으로 갔어요. 그 때 아이슈타인을 잘 아는 한 분이 아이슈타인을 보고 말했데요. 선생님은 그렇게 유명한 분이신데 왜 그렇게 낡은 코트를 입느냐... 그러니깐 아이슈타인이 괜찮다, 여기서 날 알아 볼 사람 누구도 없다 그랬답니다. 그런데 몇 년 후에 아이슈타인이 굉장히 유명해 졌어요. 그 때 그 사람이 아이슈타인을 다시 만났는데 아직도 똑같은 코트를 입고 있더래요, 그래서 선생님은 되게 유명해 졌는데 왜 아직도 그 후줄근한 동복을 그대로 입느냐? 물으니 아이슈타인 말이 괜찮다, 이젠 여기에서 날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이런 태도가 중요하다는 얘기겠죠.
박소연 : 아, 이자 기자님 그 말을 하시니까 생각났는데요. 제가 지금 학원에서 공부하는데 학원에 맨 여자들이에요. 저의 뒷자리에 계신 여성분은 온 지 4년 됐다는데 정말 세련되셨더라고요. 뭐 먹을 것도 많이 가져와요. 음료수도 사와서 돌구고... 그래요. 사람들이 주변에 항상 많죠. 그런데 이번에 시험을 쳤는데 제가 최고 점수가 나왔어요. 우리 실장님이 소연 씨는 내가 항상 보면 쉬는 시간에 말을 안 하고 열심히 공부를 하니까 실력이 나온 거라고 지나가면서 한 말씀했는데 그 다음부터는 앞줄에 앉았던 사람들이 저한테 많이 물어보고 저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게 알리더라고요. 저 사실은 그 분을 굉장히 질투했었거든요... 이자, 기자님 말씀하신 게 이런 얘기죠?
진행자 : 맞습니다. 그런데 소연 씨, 저는 좀 이 얘기를 하면서 걱정됐는데요. 북쪽에 있는 청취자들이 남쪽에서 명품이라고 해서 200만원 짜리 가방을 사는 이런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요?
박소연 : 이해 할 것 같아요.
진행자 : 욕하지 않을까요?
박소연 : 아니요. 그렇지 않을 겁니다. 남한은 일을 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할 것 같습니다.
문성휘 : 당연하다고 생각할 겁니다. 최하 노임이 중국 노동자들의 5배는 되지 않습니까? 당연히 그 만큼의 물질생활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할 겁니다.
진행자 : 사실 남쪽에선 돈을 버는 것 보다 중요한 게 쓰는 겁니다. 아무리 많이 벌어도 많이 쓰면 소용없으니까 나오는 얘기거든요. 그러니깐 잘 쓰는 게 중요한 거죠.
문성휘 : 그건 북한도 같습니다.
진행자 : 네, 어떻게 돈을 잘 쓰는가... 그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이런 선택이 아닐까요?
문성휘 : 네, 맞아요. 내가 200만 원짜리 가방을 살 것인가 말 것인가....
진행자 : 소연 씨 지금까지 쭉 얘기해 봤는데요. 끝나면서 드시는 생각은 어때요? 명품 가방이 아직도 갖고 싶으세요? (웃음)
박소연 : 그저 부럽다 하는 생각만 드는 거죠. 저도 그쪽에서 가정을 이끌고 살던 여자에요. 사람이 본분은 못 잊는다고 못 사고 항상 부럽다, 부럽다... 이렇게 생각만 하겠죠.
진행자 : 뭐 돈을 많이 벌어서 사시고 싶은 것을 살 수 있는 게 사실 제일 좋은 거죠. 그런데 모든 사람이 그렇게 되지는 못하니까요...
문성휘 : 나보고 능력이 못 되는 게 자꾸 카메라는 산다고 욕하는 거죠? (웃음)
박소연 : 아니에요. 그건 문 기자가 카메라 너무 많이 사시니까...(웃음)
진행자 : 소연 씨가 명품을 살만한 경제력을 바로 가질 수는 없을 겁니다. 사회를 좀 더 아시고 제대로 돈을 쓰는 법을 배우고 어떤 소비가 내 돈의 가치를 제일 높여주는 것인가를 알고 사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요. 이런 걸 배우는 게 정착의 과정이겠죠?
문성휘 : 그렇죠. 우선 나에게 명품이 왜 필요한지 원인을 알아야 되요. 그게 단순히 과시욕이라면 그건 버려야 되요. 남한테 잘 보이기 위해서 내가 이 물건을 살 때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남들의 눈길이 나에게 쏠리게 하기위해서 그래서 사지 않냐.... 그렇다면 과감하게 버리세요. 그리고 가방을 가지고 사람들이 나를 보게 만들게 하지 않겠다, 차라리 노래를 잘 부른다든가, 이자처럼 컴퓨터를 굉장히 잘 한다던가, 뭔가 내 능력이 남보다 훨씬 앞서서 남들이 나를 쳐다보게 만든 그런 게 진짜 필요하고요. 그리고 언젠가 능력이 될 때에는 거기 맞을 정도의 명품을 사세요. 그래도 늦지 않습니다.
박소연 : 좋은 말씀 해주셨네요.
진행자 : 소현 씨 남쪽에서 살면서 제일 중요한 게 뭐 같아요?
박소연 : 사람이 정신력인거 같아요. 어떤 생각을 가지느냐...
진행자 : 남쪽은 능력중심의 사회다, 이런 얘기 들어보셨어요?
문성휘 : 사람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능력, 자기가 가지고 지식이 있다면 다른 돈을 갖고 있는 것 보다 더 쳐 주는 게 남쪽사회거든요. 그런 건 돈 주고도 못 사지 않습니까? 그리고 저 같은 경우엔 아이쇼핑 그러니까 눈으로 물건 구경하는 거 되게 좋아하는데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그게 꼭 나쁜 것 아니라 때로는 일부러 백화점에 갈 때가 있어요. 굉장히 힘들고 피곤하고 스트레스 북한말로 말하면 머리 아픈 것, 속 썩을 일들이 많이 쌓였을 땐 일부러 돌아봐요. 머리를 식히려고 돌아보는 게 아닙니다. 그런 매장에 가서 비싼 물건들 딱 보면 내 수준은 어떠냐, 내가 저런 물건들을 살 수준이 됐냐? 언젠가는 내가 저런 물건들을 내 맘대로 꼭 사고 싶다. 그런 욕망이 생기는 거예요. 그니깐 삶에 대한 의욕이라고 할까 그런 강한 의지가 생겨난다는 거죠....
사실 이 명품 얘기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얘기를 시작하면서 저는 고민을 많이 했는데요. 소연 씨나 문 기자는 그런 고민을 하는 저를 이상하게 봤습니다.
저는 남쪽 사회의 명품 집착이 좀 가리고 싶은, 창피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는데 두 사람은 돈 벌어서 좋은 물건 가지고 싶은 건 당연한 얘기라고 했습니다.
저보단 두 분이 더 솔직했던 것 같네요...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비싸고 고급스러운 물건, 명품! 그걸 살 수 없으면서도 과시하기 위해 무리해서 명품을 산다면 허영과 사치겠지만요. 그런 물건도 맘대로 살 수 있을 만큼 열심히 벌어 보겠다는 목표가 될 수 있으면 그걸 허영이라고 부를 순 없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소연 씨에게 명품은 남한 사회에 치열하게 살아갈 좋은 목표가 될 수 있길 바라고요. 그 가방, 살 수 있는 날이 꼭 왔으면 좋겠습니다.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오늘 얘기 여기 까집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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