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1) 마른 낙지와 잘 생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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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11월, 남한에 도착해 올해 남한 생활 3년 차를 맞고 있습니다. 2012년 아들을 데려와 혼자서 키우는 열혈 '워킹맘' 그러니까 일하는 엄마입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엔 남한 정착 8년차, 자강도 출신 탈북 기자 문성휘 씨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 하나원에 오니까 일요일이면 종교를 가고 싶은데 가라고 합니다. 강제는 아니고 자기가 가고 싶은데 가면 되는데요. 처음에 간 곳은 기독교였는데 음악 소리가 너무 요란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다음 주엔 심심풀이로 천주교도 한번 가봤습니다. 아니, 신부님이 엄청 잘 생기셨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소연 씨는 천주교 신자가 되기로 했답니다. 물론 이게 소연 씨가 종교를 천주교로 선택한 이유의 전부는 아니죠. 문 기자는 개신교 신자입니다. 그를 교회로 이끈 건 마른 낙지였다는데요. 성경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그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 북쪽에선 마약이라 불리는 종교, 이 두 사람이 선택한 종교는 정말 마약과 같은 건인지, 오늘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우리의 종교 얘기 해보겠습니다.

진행자 : 안녕하세요.

문성휘, 박소연 : 안녕하세요.

진행자 : 한 주 동안 별 일 없으셨습니까? 잘 지내셨어요?

문성휘 : 저야 별일 없이 잘 지냈죠.

박소연 : 잘 지냈습니다. 그리고 저는 축하 받을 일이 있습니다.

진행자 : 좋은 일이에요?

박소연 : 다시 태어난 달까요? 천주교라는 종교 안에서 새로운 이름으로 세례를 받습니다.

진행자 : 아... 영세하시는 군요. 축하드려요. 근데 저희 청취자 분들은 세례를 받는다는 의미를 잘 모르실 겁니다.

박소연 : 그러니까 우리 태어나면 이름을 짓지 않습니까? 천주교라는 종교에 내가 새로운 신자가 되면, 거기에서 천주교 2천년 동안 헌신한 명인들이 있는데 그 분들의 이름 중 하나는 얻고 다시 태어나는 그런 날입니다.

문성휘 : 저는 기독교 신자인데요. 천주교하고는 좀 다른가요? 세례라는 건 기독교에서는 공식적으로 기독교 신자가 됐다, 이런 의미하는 게 아닌가요?

진행자 :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문 기자가 지금 기독교라고 하셨는데 사실 개신교라고 부르는 것이 맞죠? 개신교와 천주교를 합해서 기독교라고 합니다. 둘 다 하나님을 신으로 믿는 종교이고요. 두 종교 다 세례를 받는데요. 세례라는 건 그 종교의 신자로 들어가는 의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차이가 약간 있는 것 같은데 같은 뿌리에서 나왔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비슷합니다. 일단 세례하기 전엔 종교의 교리와 형식에 대해 일정 정도의 교육을 받으시죠?

박소연 : 네, 지금 받고 있습니다. 한 주일에 한번, 한번에 2시간씩 6개월 공부를 하는데요. 저는 봄이 시작했고 8월 15일에 세례를 받습니다.

진행자 : 개신교에서도 교육을 받으세요?

문성휘 : 네, 그렇습니다.

진행자 : 천주교는 옛날 성인의 이름을 세례명으로 줍니다. 기독교도 비슷할텐데 그 이름을 받는 건 꼭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선택인 것 같습니다.

문성휘 : 아 그래서 더러 이상한 이름을 단... 요한이니 엠마누엘이니... 이런 이름을 한 사람이 있었네요. 근데 왜 그런지는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웃음)

진행자 : 그런데 왜 소연 씨는 천주교를 선택하셨습니까?

박소연 : 아... 문 기자님도 아시겠지만 북한에서도 지하 교회라는 게 있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우리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근데 남한에 와서도 중국에서 살지 않고 남한으로 직행하다시피해서 종교를 접해 못 봤죠. 하나원에 오니까 일요일이면 종교를 가고 싶은데 가라고 합니다. 강제는 아니고 자기가 가고 싶은데 가면 되는데요. 처음에 간 곳은 기독교였는데 음악 소리가 너무 요란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다음 주엔 심심풀이로 천주교도 한번 가봤습니다. 아니, 신부님이 엄청 잘 생기셨더라고요. (웃음) 기타를 매고 들어오니까 옆에서 막 우우... 소리 치고 난리가 났어요. 북한에선 아무리 남자가 잘 생겨도 여자들이 그렇게 티를 내는 법은 없는데 다들 난리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저도 자세히 봤는데 그 분의 얼굴에 그늘이 하나도 없어요. 정말 너그럽게 생겼고... 나도 하나님을 믿으면 저 사람과 같은 얼굴 표정을 가질 수 있을까? 그래서 하나원에 있을 때 주말마다 천주교에 나갔는데 실은 신부님 때문에 간 것이죠. (웃음) 사회에 나오니까, 남한은 큰 교회에선 탈북자 지원을 많이 하거든요? 솔직히 정착 초기엔 힘드니까 탈북자들이 교회를 많이 나가죠. 저도 힘드니까 그런 데 나가고 싶더라고요. 이왕이면 하나님도 믿고 지원도 받자... 그래도 내가 하나원 3개월 동안 믿어 온 신앙이라는 게 있어서 그랬는지 그게 마치 큰 배반처럼 느껴졌고요. 때를 기다려서 이제 천주교 신자가 되기로 한 거고요.

진행자 : 어쨌든 잘 생긴 신부님 때문에 시작됐지만 천주교의 어떤 부분이 소연 씨에게 큰 동감을 준 것 같네요. 문 기자는 개신교 신자시죠? 종교를 어떻게 선택하시게 됐어요?

문성휘 : 저도 비슷한 경로죠. 하나원에서는 종교관이 형성되기 이전이니까요. 가면 한국의 3대 종교죠? 불교, 개신교, 천주교에서 다 와서 주말이면 여러 가지 음식도 나눠주고 자기 종교에 대한 교리도 선전하기도 하는데요. 그렇다고 다 가는 건 아니고요... 처음엔 사실 음식이겠죠? (웃음)

진행자 : 먹을 거 보고 가셨군요. (웃음)

박소연 : 맞아요! 맞아...

문성휘 : 기독교에선 탈북자들이 낙지를 좋아한다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마른 낙지를 많이 갖고 옵니다. 한국에서 오징어라고 하죠?

박소연 : 저도 거기에 유혹됐어요. 저도 먹어봤습니다.

문성휘 : 그래서 가서 오징어를 많이 가져오죠. 천주교에서 과일, 불교에선 빵이랑 떡. 그래서 한 호실에서 나눠서 가는 겁니다. 한 호실에 보통 4-5명 이런데 너는 기독교, 나는 천주교, 너는 불교... 그래서 다녀오면 먹을 것이 이것 저것, 북한식 표현으로 육해공군이 다 모입니다. 실은 간식 받으러 여기 저기 다녔지만... 좋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느 날인가 보니까 조금씩... 종교를 선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행자 : 종교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셨습니까?

문성휘 : 네, 그럼요. 기도를 하고 좋은 얘기를 들을 때는 마음이 정화되고 편안해집니다. 자신을 돌이켜 볼 수 있고요. 이런 건 사회생활에서 내가 종교를 꼭 안 믿는다고 해도 들어야 될 이야기들이 아니냐, 그래서 뭔가를 선택해야겠다. 근데 저는 왜 개신교를 선택했냐면 하나원에 가면 교회에서 기증한 물건이 굉장히 많습니다. (웃음) 복도에 있는 거울에도 벽시계라든가 다 무슨 무슨 교회 기증... 이렇게 썼어요. 그래서 교회라는 곳이 진짜 대단한 곳인가 보다 나가면 꼭 교회를 다녀야지 그랬죠.

진행자 : 근데 북쪽에서 오신 분들은 종교라는 걸 모르잖아요. 종교라는 건 절대자, 절대 신을 믿는 게 종교이고 신에 대해 얘기를 많이 하잖아요? 처음에 좀 거부감 같은 거 안 드셨습니까?

박소연 : 저는 솔직히 중국에 있을 때 아들이 저를 뒤따라오다가 국경경비대에게 잡힌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순간에 머리가 휙 돌더라고요. 미칠 것 같았습니다. 근데 그 순간에 하나님을 찾게 되더라고요. 그러니까 연변... 제가 있던 집에 4층이었는데 거기서 큰 길까지 뛰어 내려와서 무릎을 꿇고 앉았습니다. 하나님 살려주세요... 했어요. 하늘을 보고. 북한 사람들도 어찌 급할 때는 하나님 아버지 그럽니다. 옆집 여자가 압록강에 나가서 물을 긷다가 얼음장이 꺼졌는데 다행히 살았다고 그러면 아이고 하느님... 이럽니다. 누구나 다 신앙은 있는 거죠. 그 신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부르면서 그저 한 오라기 희망이라고 쥐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문성휘 : 막연한 초자연적인 힘이랄까요? 북한에서는 어릴 때부터 '승냥이' 같은 영화를 봅니다. '승냥이'는 언더우드 1 세의 선교 행위를 비난하는 영화이고요. 또 '최학신의 일가' 같은 기독교를 비난하는 영화입니다. '성황당' 같은 연극도 있고 그렇게 반종교 교육을 많이 받았고 하나님이 세상에 없다는 교육도 받습니다. 그런데도 당장 내 아이가 물에 빠져 죽게 됐는데 유일하게 믿고 따르라는 장군님이 평양에서 달려와서 구해주겠어요? 그럴 수는 없지 않아요? 그러니까 애초부터 사람들의 몸엔 초자연적인 힘을 믿고 거기에 의지하려는 본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종교의 발현이 아니겠는가... 북한 사람들이, 탈북자들이 한국에 와서 종교에 의지하는 것도 이런 것에 기인한 것 같고요. 비단 이게 탈북자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진행자 : 그리고 얘기를 들으면서 생각이 났는데요. 많은 분들이 북쪽에서 나와서 중국을 거쳐 남한으로 오는 그 과정에서 절대적인 힘을 믿게 되는 계기가 있더라고요.

문성휘 : 다른 사람들의 얘기는 잘 모르겠지만요. 저도 말하지 않은 여러 가지 사건들이 많습니다. 코앞에서 경찰을 만나 이제 붙잡히면 끝이다, 이런 순간도 있었고 이제 정말 마지막이다... 이런 순간도 많았어요. 그런데 그럴 때 뭔가 우연히 확 빠져나가게 됐습니다. 나를 잡아야할 경찰이 우연히 머리를 돌리고 지나간다던지... 아니면 뒤쪽에서 소란스러운 일이 일어나서 주위를 다른 데로 돌린다던지. 이런 일들을 경험하는 겁니다. 그러면 이거 하나님이 도와주신 거다...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는데요. 그런 상황 자주 겪다보니까 조금씩 이런 믿음이 쌓이는 거죠.

진행자 : 사실 종교 얘기가 민감하고 무거운 얘기인데요... 종교끼리 대립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요. 근데 사실 시작은 간식 보고 교회 가셨고 잘 생긴 신부님 보고 성당 가셨고요. (웃음) 그런 데 그게 두 분만의 얘기는 아니고 남쪽엔 군대에도 성당, 교회, 절이 있는데 군인들도 주말마다 간식을 따라 다닌다고 하더라고요. (웃음)

문성휘 : 군대도 우리 하나원에 있을 때처럼 그러는 군요. (웃음)

진행자 : 그러나 군대에서 제일 인기 있는 간식은 마른 낙지가 아니라 초코파이라고 하고요.

문성휘 : 역시... 사람이 다 같네요. 먹을 것이 혹하고... (웃음) 그리고 저는 군대 체험을 갔었습니다. 가면 군인들 하고 똑같이 생활하는데요. 웃기는 게 점심시간에... 북한은 사탁 탁자인데 제가 갔던 곳은 특이하게 원탁이었어요. 거기 빙 둘러 앉아 먹는데 사람들이 제각각이더란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머리 숙이고 기도를 하고 어떤 사람은 십자가를 긋는 사람도 있고 아무 것도 안 하고 그냥 먹기도 하고요. (웃음) 아니, 진짜 신기하게 느껴졌던 것이 어떻게 저렇게 다 다른 종교를 가졌나... 그리고 하나님은 늘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그런 믿음을 갖고 총을 쥐고 적하고 맞서 싸울 수 있겠나...(웃음) 여하튼간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종교적인 이유로 총을 들 수 없어서 군대에 가는 것을 거부하고 징역에 가는 젊은이들도 있습니다. 최근 신문 보도만 봐도 수혈을 거부해 수술 중 사망한 사람도 있고요. 이것도 종교적인 이유였습니다. 또 극단적인 경우이긴 하지만 종교의 이름으로 사람을 죽이거나 전쟁을 하는 경우도 있죠. 이럴 때면 인간의 자의로 해석된 종교적 신념이라는 게 얼마나 무서운지 느낄 수 있는데요. 그러나 대부분의 국가에서 종교는 고작 먹을 것에 이끌려 선택할 수도 있는, 생활적인 것이기도 합니다.

한번 빠지면 헤어날 수 없는 마약 같은 것이 아니고 원하면 바꿀 수도 있고 또 종교를 가지지 않을 권리도 있습니다. 북쪽에서는 종교가 없죠. 그렇지만 남한에 와서 종교를 갖은 탈북자들은 우리는 이미 전에 신자였다... 이렇게 말합니다. 어떤 의미인지 짐작하십니까?

이 얘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가겠습니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오늘은 여기까집니다. 함께 해주신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