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들, 남의 아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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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11월, 남한에 도착해 올해 남한 생활 4년 차를 맞고 있습니다. 2012년 아들을 데려와 혼자서 키우는 열혈 '워킹맘' 그러니까 일하는 엄마입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엔 남한 정착 9년차, 자강도 출신 탈북 기자 문성휘 씨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 우리 아이가 막 누구를 때리거나 하는 아이는 아닌데요. 우리 아들이 화가 나서 애들이 앉았던 책상을 확 뒤로 밀쳤는데 3명이 쪼르르 넘어지고 맨 끝에 앉았던 아이는 넘어지면서 팔목이 금이 가서 깁스...

아이들은 싸우면서 큰다... 이런 말 많이 하죠? 아이들, 특히 남자 아이들은 사고 치면서 큰다... 소연 씨는 이렇게 말하고 싶을 것 같습니다.

소연 씨 인생의 가장 큰 보물이자 가장 큰 행복인 13살 난 아들 덕에 지난달에 미안하다 머리를 숙였고 이번 달엔 사과를 받았습니다. 북한에서도 그렇지만 남한에서 아이 키우기? 나름 또 힘이 듭니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오늘도 소연 씨 그리고 문 기자의 하소연 이어집니다.

진행자 : 어쨌든 북에서 남으로 오시면 애들 훈육하는 방법도 굉장히 달리지는 군요. 혼란이 오겠어요...

문성휘 : 한 마디로 골 때립니다. (웃음) 골 아픕니다...

박소연 : 그렇죠. 여기 와서는 다 참아야하니까요. 북한에서 애들을 훈육할 때는 공부를 안 한다고 혼내 본 적은 없습니다. 제가 과일 장사를 할 때 개수를 맞춰 놓은 사과를 빼서 먹어서 그것 때문에 혼냈는데 문 기자님 말씀처럼 내쫓았습니다. 그게 훈육이었죠.

진행자 : 그렇다면 두 분은 남쪽에 와서는 어떻게 바뀌셨어요? 새로운 방법, 찾으셨습니까?

문성휘 : '고도원의 아침 편지'라고 매일 좋은 교훈이 되는, 생활의 지침이 되는 좋은 글을 보내주시는 분이 있습니다. 신청만 하면 이메일로 매일 보내주는데요. 그 글을 매일 아이들에게 보내줬어요. 처음에는 좋다고 하더니 어느 날 물어보니까 지워버렸대요. 그러면 싫증이 난 것이니까 또 방법을 바꿨죠. 딸애한테는 음악을 일부러 넣어주고... 아들애한테는 취미를 살려주고. 이게 저는 많은 효과를 본 것 같습니다.

진행자 : 친구 같은 아빠로 다가가는 방법을 택하셨군요.

박소연 : 제가 마흔을 넘어 먹고도 여전히 잘 못하는 것이 많고, 여전히 배우는데 아이들은 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일단 사고 치면 혼을 내는 게 아니라 손을 잡고 강변에 나가서 걸어요. 네가 여기까지 힘들게 왔는데... 그러면서 얘기를 많이 합니다. 그리고 잘 못 했다고 욕하는 게 아니라 거짓말을 하고 똑같은 잘못을 다시 하면 혼내고요. 아이가 모르는 줄 알았는데 언제인가 일기장을 훔쳐보니까 엄마는 내가 잘 못 해도 솔직하기만 하면 욕하지 않는다, 다음부터 그러지 말아야지... 아이도 다 알고 있더라고요.

진행자 : 어쨌든 두 분 다 좋은 방법을 찾으셨네요. 그렇지만 말로 하는 것, 쉽지 않으시죠? (웃음) 가장 빠르고 또 쉬운 게 회초리일 때도 있습니다만 우리 어렸을 때도 부모님께 맞아 봤지만 그게 좋은 경험은 아니었잖습니까?

문성휘 : 맞아요. 그런 걸 인정하면서도 진짜 어렵습니다. 어떤 때는 나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그렇게 될 때가 있고요. (웃음)

박소연 : 저도 가끔 가다 나오는데... (웃음) 제가 바뀌었다는 걸 가끔 느낍니다. 그건 환경 때문인 것 같습니다. 남조선 사람들은 우리랑은 또 달라요. 목소리가 낮고... 지하철에서도 작게 여보세요... 이러지 여!보!세!요! 큰 소리로 이렇게 안 한다는데요? (웃음)

문성휘 : 애들도 그래, 어른들도 세월이 필요합니다. 물론 교양이 앞서야 하지만 시간도 약이라고 했어요. 대한민국에서 사니까 그 흐름이 따라가는 거죠. 애들은 빠르니까요. 우리보다 더 빨리 따라가고요.

박소연 : 그런데 우리가 북한에서 저 애들을 키웠으면 저렇게 변하지 않았겠죠. 북한에선 그냥 밥 조금 먹어라, 엄마 밥 내놓고 먹어라, 선생님이 뭐 내라고 했으니 학교 가지 말아라... 이런 거 갖고 싸웠겠죠. 저는 아이에 대해서 믿는 거 하나가, 엄마보단 낫다! (웃음) 그렇지만 가끔 저렇게 사고를 치고... 얼마 전에도 친구들끼리 놀다가 공작시간에 친구끼리 칼을 주고받다 이마에 스쳐서 병원 응급실 가서 몇 바늘 꿰맸습니다. 이번에는 피해자가 된 셈이죠. 그날은 같이 못 가고 나중에 처치를 받으러 같이 갔는데 상처를 보고 울컥하더라고요. 그 상처 보니까 너무 기분이 없고... 나중에 그 칼 던진 아이 부모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막 목소리가 부들부들 떨리고... 자기가 입원비도 대고, 치료비도 대고, 보상하겠다고. 근데 탈북자에요, 금방 왔어요... 이 말을 딱 듣는 순간 딱 5초를 가만있었어요. 그래요, 와서 보시고 사과하시고 보상할 것 하세요, 이렇게 할 것인가, 애들이 놀다 그런 것인데 괜찮다고 할까. 딱 5초 생각했습니다. 그 다음에 괜찮다고 다 보험에 들어서 치료비도 나왔고 앞으로 조심해서 놀라고 주의만 좀 주시면 좋겠다고 그랬습니다. 그 분이 고맙다고 말하느라고 전화를 끊지 못하는 겁니다. 막 울먹울먹 하고... 전화 끊고 나서 기분이 너무 좋더라고요. 금방 정착할 때 그 마음은 저도 잘 알죠. 솔직히 아이 상처는 속상하지만 상대한테 그렇게 해줄 수 있다는 게 기분이 좋았습니다.

진행자 : 그러니까 소연 씨는 최근에 피해자 부모도 돼봤다가 가해자 부모도 돼봤다가 그런 거네요.

박소연 : 그렇죠. (웃음) 빌어도 보고 사죄도 받고..

진행자 : 북한에서도 가해자, 피해자... 이 말 사용하세요?

문성휘 : 네, 알아듣습니다. 근데 되도록 피해자가 안 되려고 하죠. (웃음) 그리고 북쪽에 가장 나쁜 교육은... 제가 언젠가 장난삼아 딸애한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걸, 괜히 데려왔다. 데려오지 않았으면 물고기 함지이고 장마당 뛰어다니고 밭을 일구매 새까맣게 타서 정신도 못 차렸겠는데... 그런데 얘가 막 울더라고요.

진행자 : 왜 그렇게 심한 말씀을 하셨어요...

문성휘 : 아빠 왜 그런 얘길 해요, 남의 가슴을 긁어놓으면 좋아? 난 다 잊고 싶은데...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한국에선 용서해라, 잊어라, 화해하라 교육합니다. 나의 가슴에 있는 상처를 잊어라, 대담하게 용서해줘라 그리고 화해하라.. 그래야 사회가 평안하게 살 수 있다. 그런데 북한은 늘 잊어서는 안 된다, 천 백배로 복수해라, 착취 받고 억압받던 지난날을 잊지 말아라... 내 자신으로써는 사람이 과거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빨리 잊게 하는 게 좋은 방법일 수 있구나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살아 못 본 사람들은 모를 겁니다. 지금도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북한 선전화들. 찢어죽이자! 천백배로 복수하자! 낳아서부터 그런 교육을 받으니까 그 아이들의 심성이 어떻게 곧아질 수 있겠습니까? 교육에서 부모가 중요하죠. 그러나 국가와 사회의 올바른 교육관을 갖는 일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박소연 : 아까 이 기자가 문 기자에게 어떻게 그렇게 심한 말을 했느냐 그러셨는데요. 그거 심한 말 아닙니다. 남한 사람들 기준으로 그럴 수 있지만 우리는 그냥 부르는 게 새끼, 간나 입니다. 밥 먹어라 이 새끼야... 그게 보위원이 별 죄로 안 지은 사람 데리고 가면서도 막 이 새끼야, 저 새끼야 이렇게 부르고, 사회적으로 일상적인 거죠. 저도 아들한테 이 새끼야 나가라, 들어가라 그랬죠. 저 한국에 와서는 그런 말 안 썼습니다. 주변에서도, 텔레비전에서도 우리 아들 뭐 먹을래... 좋게 들리더라고요. 야, 이 새끼야 뭐 먹게? 이것보단 낫죠? (웃음)

진행자 : 딸들은 뭐라고 부릅니까?

박소연 : 야, 이 간나야... 기집애야 그러죠.

문성휘 : 이상하게 북한에선 이름을 부르는 게 드물었습니다. 이건 자기 자식에게도 그렇지만 친구들 사이에서도 그렇죠. (웃음) 지금 금방 온 탈북자들 모임가보면...

박소연 : 그 간나 어찌사니... 그러죠. (웃음)

문성휘 : 맞죠. 정착한 지 한 10년 된 사람들 모임에 가야 아무개 씨, 아니면 이름을 부르고요.

진행자 : 그러니까 이름 찾는데 10년 걸리는 거네요? (웃음)

박소연 : 그래요. 딱 우리 모임도 그렇습니다. 지금은 아랫벌은 누이... 이러죠.

진행자 : 간나, 임마 아니네요.

박소연 : 저한테 여기서 그랬다간 뼈도 못 추리죠. (웃음)

진행자 : 두 분은 사회적 흐름에 따라 남한에 와서 교육 방법을 바꾸셨고 아이들도 많이 변했는데요. 어떠세요. 남한에서 아이 키우는 것...

문성휘 : 사랑하며 삽시다... 국가 교육관이 이러면 부모는 사랑하는 법, 사랑을 실천하는 법을 알려줘야 하지만 절대 용서하지 말라면 우리는 증오하는 방법, 서로 싸우는 방법을 가르쳐야겠죠? 그래서 국가의 교육관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늘 화해, 평등, 사랑을 외치는 구호와 멸족, 때려 부수자, 불바다로 만들자고 외치는 국가하고 어떤 차이가 있겠는가... 저의 답은 이겁니다.

진행자 : 근데요, 사실 이건 누구나 알고 있는 얘기지만요. 가장 좋은 교육은 부모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랍니다.

문성휘 : 가슴 흠칫하네요. (웃음) 나... 요새 많이 게을러져서 제가 거둬도 되는 걸 막 아이들한테 화내고 그랬는데...

박소연 : 저는 밤에 냉면 같은 거 해주면 나중에 엄마 늙으면 이렇게 해줘야해! 그랬는데 생색 그만 내야겠습니다. (웃음)

진행자 : 저도 매일 후회합니다...

문성휘 : 우리는 사람이니까요.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는 말 어느 사회에서나 똑같고요...

박소연 : 남한도 배워야 하고 이것도 배우고 저것도 배우고... 박사 되겠습니다. (웃음)

부처는 출가 전에 낳은 아들 라훌라 때문에 골치를 앓았습니다. 게으름을 피우고 계율을 자주 어겨 다른 제자들의 원성을 샀습니다. 제자를 3천 명이나 두었던 공자도 외아들 백어의 교육은 자신이 하지 못 했답니다.

위대한 성인들도 자녀 교육은 어려웠다는 게 좀 위안이 되나요?

아이들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는 말이 있습니다. '가장 좋은 교육'이라는 검색어를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성숙한 부모의 모습을 보이라는 답이 첫 번째로 나옵니다. 100% 동의하지만 부모들에게는 굉장히 부담되는 한편으로는 좀 무서운.. 답이기도 하죠. 어쨌든 우리가 좀 더 열심히 또 잘 살아야하는 이유가 자식 때문이 맞네요.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오늘 얘기는 여기까집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