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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박소연 씨는 2011년 11월 남한에 도착한 햇내기 입니다. 무산 출신으로 선전대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30대 중반의 여성인데요. 하나원 교육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남한 생활을 시작한지 이제 근 일 년...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에는 남한 정착 7년차, 자강도 출신 탈북 기자 문성휘 씨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 축하합니다. (감사해요) 북한 글을 쓰는 신문사인데 정직원이 되겠는지 모르겠는데 열심히 할게요...

소연 씨가 드디어 직장을 잡았습니다. 설레임보다는 아직 두려움이 앞선다는데요. 소연 씨의 첫 출근이 어땠는지... 오늘 그 얘기 들어봅니다.

진행자 : 안녕하세요. 비가 많이 옵니다. 소연 씨 오는데 괜찮았어요?

박소연 : 저는 괜찮았는데 아들이 오늘 학교에서 조직해서 수영장 갔거든요. 새벽 5시 반부터 깨워서 밥해달라고 빨리 간다고 들떠서 갔는데 비가 와서 마음이 안 좋아요.

진행자 : 잘 다녀왔을 겁니다. (웃음) 빨리 녹음 끝내고 집으로 가서 아드님 보셔야죠! (웃음) 소연 씨한테 좋은 소식 있어요. 지난주에 취직 안 된다고 하셨는데 일단 수습이긴 하지만 일자리 찾으셨다고요.

문성휘 : 축하합니다.

박소연 : 감사합니다.

문성휘 : 어디예요?

박소연 : 북한에 대한 글을 쓰는 작은 신문사인데요. 지금은 수습 기간, 배우는 기간입니다.

정직원이 될 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들어갔으니 열심히 할께요.

문성휘 : 그러니까 북한소식은 전문으로 하는 인터넷 신문사라는 얘기죠? 그런 인터넷 신문이 몇 개 있는데요. 활동도 아주 활발하고 솔직한 글들이 많이 나와요.

진행자 : 출근해보니까 어떠세요?

박소연 : 모두 조용하게 글을 쓰시니까 물어보는 것도 조용조용하게 되고 굉장히 가정적인 분위기입니다.

진행자 : 첫 출근하게 되면 걱정도 되고 긴장도 되고 그러지 않습니까? 소연 씨, 북한에서도 첫 출근해봤잖아요. 그때랑 비교해보면 어때요?

박소연 : 일단 두려움이 앞서요. 북한에서는 실력이 필요 없잖아요? 일단 노동과 수습이 끝나면 내가 실력이 좋아서 붙어있고 실력이 없으면 밀려나고 그런 사회가 아니니까 그냥 무작정 따라 가는 거예요. 근데 신문사에서 기자님들이 일하는 걸 자세히 보니까 다 자체로 글도 쓰시고 써 놓은 글을 읽어보니 내가 정말 할 수 있을까, 내가 따라가서 이분들과 나란히 글 쓸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어요.

문성휘 : 지금은 흐름을 파악하는 중이겠죠. 남한이나 북한이나 일단 직장에 들어가면 그 직장의 분위기, 흐름을 알아야 해요. 북한에서 가장 중요한 건 누가 제일 무지막지 하고, 팔 힘이 세고 싸움을 잘 하나입니다. 또 맘이 어질어서 무시해도 되는 사람, 조심히 다뤄야 할 사람을 나누고요. (웃음) 한국은 일단 들어가면 여기 분위기가 어떤가, 정숙한가 아니면 활발한가를 파악해야하죠. 저도 소연 씨처럼 자그마한 북한 전문 인터넷 신문에서 시작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처음 출근 했을 때 숨이 막히더라고요. 북한은 어디나, 사무직이나 노동 현장이나 한 20분 정도 일하고, 30분은 잡담하고 빙빙 돌아다니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한국은 일단 일을 시작하면 다들 몇 시간은 옆에도 안 보고 부지런히 일만해서 옆 사람한테 말 걸기도 조심스러워요. 처음엔 이런 분위기가 너무 숨 막히더라고요.

진행자 : 남한은 출근해서 점심시간까지는 일하고 점심 먹고 바로 일하고 저녁에 퇴근할 때까지 열심히 일해야 자기 맡은 책임이 끝나죠. 사무실 막 돌아다니면 다른 사람들에게 눈치 보이고 또 큰소리를 내면 방해가 되니 조심해야 하고요.

문성휘 : 그러니 일 능률이 굉장히 높은 사회인데 북한은 그렇지 않아요. 난 굉장히 그게 불편하더라고요. 아마 그걸 적응하는 기간이 수습 기간 일겁니다. (웃읍)

진행자 : 소연 씨도 비슷하게 느꼈어요?

박소연 : 다들 자기 과제를 하느라 그냥 필요한 말만 하고 계속 컴퓨터로 열심히 글 쓰고 그럽니다. 문 기자 말처럼 우리는 일하다가 옆 사람 툭툭 치고 야, 요새 쌀값이 얼마야? 하고 물어보고 기관장이 자리를 뜨는 즉시 와... 하고 놀다가 누가 온다, 온다하면 일하는 척하고 순 깜빠니아 식으로 일하죠. 언제 점심시간이 되나, 오후 4시면 언제 퇴근하나... 생각했는데 남한 직장은 차원이 다른 것 같아요.

진행자 : 그렇게 일하면 해고 대상에 오릅니다.

박소연 : 그럴 것 같습니다. (웃음)

문성휘 : 북한에 '15소년에 대한 이야기'에 나오는 노래가 이런 풍조를 대표적으로 잘 보여주죠. '선주 놈이 없는 세상 얼씨구나 좋다'... 기관장, 책임자 이런 지켜보는 사람이 없을 때를 선주 놈이 없는 세상이라고 하거든요. 맘대로 떠들고 소란을 피우고 그런 사람들이 빨리 나가기만 바라는 거예요.

진행자 : 이렇게 얘기를 듣다보니 직장생활 자체는 북쪽이 훨씬 쉬울 거라는 생각도 드네요. (웃음)

박소연 : 제가 남한에서 정식으로 입직해보진 않았지만 임시 아르바이트 같은 일도 딱 자기가 맡은 몫이 있잖아요. 내가 일 안 하고 놀면 내 몫이 많이 지고 내 몫의 일은 어느 때건 다 해야 합니다. 북한엔 집체 노동이 힘들지 않다는 말이 있어요. 사업소 탄이 무산 역전에 왔다, 탄 부리러 가자고 일 개인당 삽을 준비하라고 지시가 내려옵니다. 가보면 탄무지보다 사람 수가 더 많아요. 대충 삽 끝에 바르는 흉내만 내도 노동현장에 참가한 걸로 되잖아요. (웃음)

그러니 그런 말이 나오죠. 그런데 여기는 직업적 사명감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진행자 : 양쪽 사회가 다른 만큼 일하는 분위기도 다르겠죠. 문 기자님! 소연 씨가 어떻게 일하면 직장에서 인정받고 잘 하겠는지,

조언을 좀 해주세요. 문성휘 : 딱히 별거 없습니다. (웃음) 예전에 것을 다 잊으면 돼요. 하나원에서도 늘 그렇게 설명을 하죠. 당신들은 새로 태어난 거니 모든 걸 잊어라! 나의 북한에서의 직업, 생각, 습관 이런 걸 다 버려라, 버리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 내가 북한에서는 이런 형태의 글을 썼는데 그리고 내 생각에는 이렇게 써야 할 것 같은데 근데 그게 아닙니다. 대게 북한의 글은 주관적이고 선동적인데 그런데 남한의 글은 객관적이어야 되요. 또 반박을 하는 걸 한국 사람들은 제일 싫어해요. 이건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다 같아요

진행자 : 반박하는 걸 싫어한다... 어떤 뜻입니까?

문성휘 : 북한에서는 자기를 굉장히 회피해야 되요. 지배인이 '야, 임마 이런 걸 잘해' 이러면 '지배인 동지 어제도 이렇게 일했는데 요전에도 어쩌구...' 굉장히 자기변명을 해요.

진행자 : 아, 변명을 하지 말아라... 이런 얘기군요.

문성휘 : 네, 변명이요. 잘못에 대해 지적을 하면 과거에 어떻든, 지금 어떻든 변명을 하지 말아라.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다음부터 그걸 반복하면 안 하면 됩니다. 한국 사회는 일이 복잡하고 기계처럼 다 맞물린 바쁜 사회이기 때문에 변명을 한들 그걸 들어줄 시간이 없습니다. 일단 지적을 받으면 아, 나한테 이런 잘못이 있구나... 변명거리를 생각 말고 고쳐야 해요. 주변 사람들하고의 관계를 잘 가진다는 게 결국 별거 아니에요. 이런 변명을 하지 말고 자기 과오를 인정하라는 거죠. 제가 보면 탈북자들의 문제는 첫 번째는 변명이 많은 것, 두 번째는 연락을 잘 주고받지 않는 것입니다. 명절이나 평소에도 문자를 잘 주고받지 않는데 이런 게 굉장히 실례가 돼서 인간관계를 그르칠 수 있죠.

진행자 : 문 기자님이 지금 하신 말들은 모두 직장 동료나 상관과의 관계에 대한 건데요. 이게 사실 직장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근데 문 기자! 남한 사람들도 변명은 하잖습니까?

문성휘 : 북한 사람들은 변명하는 게 어렸을 때부터 습관이 됐습니다. 왜냐면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내가 박살나는 사회이기 때문이죠. 최대한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말고 자기를 변호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이 북한입니다. 예를 들어 초상화 위에 먼지가 가득해요. 검열 나와서 사진틀 위에 먼지를 쓱 닦고 이게 뭐냐? 하면 '저희가 보통 때는 절대 그렇지 않은데 어제 사실 천장이 무너져 청소를 좀 하다가 먼지가 낀 거예요' 이래야지...

진행자 : '잘못했습니다. 제가 바로 닦겠습니다' 이럼 큰일 난다는 거죠?

문성휘 : 그렇게 말했는데 너희들 일상적으로 이렇게 해왔구나... 이렇게 나오면서 큰일 나죠. 어떻게든 그 순간을 모면해야하고 그 다음 말이 안 나올 수 있는 핑계거리를 찾다보니 그게 습관화 된 거예요.

진행자 : 사실 그게 남쪽에서는 직장 상사들이 제일 싫어하는 태도, 직장에서 가장 바람직하지 않은 태도입니다.

박소연 : 여기선 직장 상사한테 죄송합니다,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걸 들어도 그 사람이 그렇게 비굴해 보이지 않는데요. 북한에서 살 때는 무엇인가 잘못을 인정을 하면 내가 정말 바닥으로 떨어지는 기분이고 비굴하게 느껴졌습니다. 사실 북한 사람들이라고 다 성격이 욱하는 사람만 있겠어요? 풍습이나 풍조가 그렇게 만든 것이죠. 간혹 CD알이나 DVD 보다가 갑자기 보위원이나 안전원이 문을 차고 들어와도 절대 그 순간에도 인정을 안 합니다. 왜냐하면 인정을 하고나면 그 뒤에 따르는 게 어마어마하거든요. 그래서 그런 버릇이 생기는 것 같아요. 또 이런 것도 있는데요. 매년 1월이면 퇴비를 생산하는데 무조건 한 톤 씩 해놓으라고 해요. 퇴비를 작업반 사무실 앞에 모아뒀는데 밤새 누가 정치공작을 해 도둑을 맞았어요. 반장이 와서 왜 퇴비가 없냐고 물으면 솔직히 그 전날에 조금했는데도 부풀려 말하는 거예요. 어제 장(온) 저녁 무산 시내 뒷간을 다 뒤져서 한 톤을 해놨는데 다 도둑을 맞았다고요... 이렇게 과장하는 습관도 있습니다.

진행자 : 근데 문 기자님은 아실 겁니다. 이런 변명하는 태도 때문에 탈북자들이 초기에 남쪽에 처음에 와서 직장 생활하면서 굉장히 고생을 많이 했어요.

문성휘 : 맞아요. 지금 오는 후배들은 선배들이 그나마 있어서 자꾸 그런 이야기를 얻어 듣는데 저희 때만해도 그런 이야기를 듣기가 쉽지 않았어요.

진행자 : 그리고 저는 북한이 위계질서가 분명한 사회여서 직장 상사한테 아주 복종할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주 정반대던데요? (웃음)

문성휘 : 북한은 정치나 법적으로 구속력이 있는 것을 제외하면 굉장히 반발해요. 일을 해라 시켰는데 거부하면 결국 상사에 대해 배반이 아니라 국가계획을 망치자는 태도라고 밀고 올라 갈 수 있기 때문에 저항을 못하죠. 그러나 개별적으로 야...가서 커피 타와 그러면 내가 왜 커피를 타 와? 그런 건 안 하는 거죠. (웃음)

진행자 : 남쪽은 사실 직장 문화 중에 위계질서가 중요합니다. 아까 소연 씨도 머리 아픈데 먹는 약 텔레비전 광고에서 상사한테 막 혼나면 머리 아프다고 그런 내용을 봤다고 했는데요.

박소연 : 네, 이 사회의 풍조인 것 같아요.

진행자 : 그런 상사에 대한 스트레스는 옛날부터 있었고 오히려 지금은 많이 좋아졌고 부드러워졌죠. 그러나 직장에는 높은 사람이 있고 말단 직원도 있으니 어쩔 수 없는 면이 있습니다...

남북 사회가 참 다르지만 이렇게 직장 문화에서도 많은 차이가 있죠? 북쪽에서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행동, 비겁하게 보이는 행동이 남한에선 정반대로 좋은 태도로 인식되기도 하고요. 또 생각보다 딱딱하고 상하 관계를 중시하는 남한의 직장 문화가 당황스럽기도 합니다.

특히 자유 사회에선 직장도, 조직도 한없이 자유로울 거란 생각... 이게 착각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 진짜 직장 생활이 시작됩니다. 박소연 씨의 직장 생활 얘기, 다음 시간에도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