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놈의 복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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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11월, 남한에 도착해 올해 남한 생활 4년 차를 맞고 있습니다. 2012년 아들을 데려와 혼자서 키우는 열혈 '워킹맘' 그러니까 일하는 엄마입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엔 남한 정착 9년차, 자강도 출신 탈북 기자 문성휘 씨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 아, 진짜 우리 회사의 남자 기자들... 거의 30대 중반인데요. 짬만 나면 땅바닥에 엎드려서 팔을 아래위로 움직이며... 너 뭘하냐 그러니까 복근 만드는 운동한다고. (웃음) 헥헥... 이러면서요. 아... 진짜 복근이 뭔데 저렇게 열성인가 싶더라고요.

복근, 그러니까 배의 근육이죠. 남쪽엔 요즘 한자로 왕자 모양의 배 근육을 만든다고 땀 흘리는 사람 많습니다. 북쪽엔 너나 나나 다 가진 이 복근이 뭐라고... 소연 씨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가 안 되는 일이라고 하네요. 남한 사람들, 정말 할 일이 없어서 그러는 걸까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지난 시간에 이어 복근 얘기 이어 갑니다.

진행자 : 소연 씨, 남한에 와서 몸 나지 않았어요?

박소연 : 저 10 킬로 불었어요.

문성휘 : 아... 난 20 킬로 나마 불었어요...

진행자 : 그러니까 1년에 평균 2-3 킬로 는다고 봐야하네요. (웃음)

문성휘 : 아닌 게 아니라 저 처음에 하나원에서 와서 찍은 사진을 보고 엄청 놀랐습니다. 몸도 약해보더라고요. 좀 창피한 말이지만 지금은 도당 책임비서쯤 배가 나왔죠. 야단이에요.

박소연 : 그 정도에요? 보기 좋으신데요. (웃음)

문성휘 : 이것도 조절을 하는데 이 정도에요.

진행자 : 문 기자도 운동을 열심히 하는 편이고... 사실 두 분 다 변한 건 크게 없는데 왜 이렇게 몸이 났을까요?

박소연 : 그러게요. 저 북한에 비하면 많이 먹지도 않습니다.

진행자 : 북한에 비해서 많이 안 드신다고요?

박소연 : 북쪽에선 양적으로 많이 먹었습니다. 여기서 한 끼 먹는 공깃밥? 북쪽에선 빼배 놀이입니다. 사발로 이렇게 올라오게, 수북하게 먹었습니다.

문성휘 : 어제 얘기를 해봤는데 우리 북한에 있을 때 한 달에 쌀을 얼마나 먹었나... 우린 어디 가서 얼마나 먹나 물어보면 4인 가족 기준, 한 달에 쌀이 60킬로 필요합니다 그래요. 근데 우리 김지은 기자는 자기 집은 86킬로는 가져야했다... 그래요. 내가 알건데도 우리 집은 72킬로가 필요했거든요. 근데 어디 가서는 대강 60킬로라고 하는 겁니다. 4인 가족이 한 달에 쌀을 80 킬로 넘어 먹었다고 하면 여기 사람들 믿어 안 줘요. 실제 기름, 당분도 못 섭취하지 간식거리 없이 밥으로 다 해결하자면 그만큼 먹어야 합니다. 여기 사람들 이틀 동안 먹는 밥을 한 끼에 다 먹는 사람 많습니다.

진행자 : 먹는 것만 상관이 있을까요? 생활 습관은요?

박소연 : 그런데 그것도 아니에요. 저는 하루에 두 끼 먹었는데요. 아침엔 새벽부터 바쁘니까 스치듯 먹고 저녁은 정말... 세수 대야보다 좀 작은 그릇에 국수를 말아서 그야말로 흡입하듯 먹습니다. 그래도 살커녕 아무것도 안 쪘는데 남쪽에 오니까 저녁을 먹으면 살이 찐다고 그러더라고요. 저는 남한에서 얘기하는 거, 어떻게 하면 몸이 난다, 빠진다... 다 안 맞는 것 같습니다.

진행자 : 그런 것 다 떠나서 운동량을 한번 생각해보시죠? 남쪽에 와서 많이 안 바뀌셨다고 하지만 두 분, 하루에 얼마나 걸으세요?

박소연 : 아, 진짜요. 제가 처음 남한에 와서 커피 집에서 일 했을 때는 밥을 많이 먹었어도 몸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많이 움직이는 일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사무직으로 옮기고 부터는... 진짜 그렇네요.

문성휘 : 북쪽은 도시락 싸기도 좀 눈치 보입니다. 누구는 잡곡이 얼마 섞인 걸 싸왔고... 이런 걸 서로 눈치 보기 시끄러우니까 그냥 집에 가서 밥을 먹거든요. 보통 집에서 학교나 직장까지 40분 정도 걸리는데 여길 아침, 점심, 저녁으로 왔다 갔다 하려면... 그게 보통일이 아닙니다.

진행자 : 점심을 집으로 먹으러 가요?

문성휘 :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구내식당이 어디 있어요... 남쪽은 학교에서도 거의 구내식당이 있고 급식을 하는데 북쪽은 그렇게 자랑하는 평양시 학교들에도 구내식당이라는 게 없고요. 애들도 점심을 먹으러 집에 왔다 가죠. 이런 상황이니까 아침, 점심, 저녁으로 왔다 갔다만 해도 그게 어딥니까.

진행자 : 그렇게 생활하시던 분들이 남쪽에 와서 거의 걷지를 않으니 운동량이 정말 현저히 줄어드는 거죠. 그리고 현대인의 생활 습관상 몸이 안 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운동에 매달리는 것이고요.

박소연 : 아, 진짜 우리 회사의 남자 기자들... 거의 30대 중반인데요. 짬만 나면 땅바닥에 엎드려서 팔을 아래위로 움직이며... 너 뭘하냐 그러니까 복근 만드는 운동한다고. (웃음) 복근을 만들어 뭘 하냐 물었더니 아닌 게 아니라 이 기자님 말처럼 여름에 수영장에서 한번 자랑해 볼 것이라고요. 저는 속으로 저 두 사람을 북한으로 보내서 속도전 청년 돌격대에 반년만 굴리면 복근이 울긋불긋 생길텐데...(웃음) 근데 진짜 막 마지막 숨을 쉽니다. 헥헥... 이러면서요. 아... 진짜 복근이 뭔데 저렇게 열성인가 싶더라고요. (웃음)

문성휘 : 북한은 저절로 생기는데 여기서는 그냥 땀을 뻘뻘 흘리며 운동을 하고 약도 먹어가며... 이렇게 하면서 정말 고달프게 복근을 만들더라고요. 그거 그렇게 하지 말고 북한처럼 강냉이 국수에 시금치 반찬, 기름도 거의 넣지 말고... 그렇게 먹고 직장부터 집까지 매일 걸어 다니고 현수 조금만 하면 복근 쉽게 생깁니다!

진행자 : 지금까지 말씀드렸잖아요. 그게 남쪽에선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니까요!

박소연 : 우리 아들이 두지 배라고 하죠? 어렸을 때는 다른 데는 엄청 마르고 배만 볼록 나왔었어요. 어른들이 그래서 숫쥐를 먹이면 나아진다고 했는데 배가 쑥 들어간 것보다 낫다 생각하면서 그냥 놔두었어요. 남쪽에 와서는 진짜 먹는 거 보면 무섭습니다. 하루에 우유를 1리터는 마시는 것 같고 밥도 엄청나게 먹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게 배가 들어갔어요.

진행자 : 키도 많이 컸죠?

박소연 : 키도 20센티나 크고요. 나라에서 운영하는 방과 후 교실이 있어요. 디딤돌 센터라고. 여기에 탈북민 아이들이 많습니다. 한 80% 되는데 끝나고 나오는데 보면 확실히 알립니다. 북에서 온 아이들은 작아요...

문성휘 : 태어나서부터 영양을 못 섭취하면 일생동안 영향을 미친데요. 그래서 그런지 여기 와서 잘 먹어도 잘 안 큽니다. 그리고 지금 한국의 식습관은 채소를 많이 안 먹습니다. 어디 회사에서 식사를 하러가도 고기 집에 가고요.

진행자 : 청취자들께서는 안 믿을 수 있지만 남쪽은 남새 값이 고기값보다 비쌀 때가 많습니다.

박소연 : 그렇죠. 그리고 남새를 먹어도 그 위에 소스 같은 것도 올리고... 하여튼 여기 와서 음식을 보면 북한식으로 볼 때는 애들 빼배놀음입니다. (웃음) 진짜 그렇다는데요.

문성휘 : 북한에 있을 때 우리 그랬죠? 한 달에 한 번씩은 고기를 먹어야한다. 우리도 한 달에 한 번씩 고기를 먹으면 중국 사람처럼 살이 찐다... 그게 무슨 소리에요? 한 달에 한 번도 고기를 못 먹는다는 얘기죠. 그러니까 복근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가끔씩 텔레비전을 보면 아프리카에 분쟁이 있는 국가들, 사람들 나오면 잘 보세요. 복근이 있습니다.

박소연 : 그래요. 힘든 나라일수록 육체적으로 일하고 먹을 것은 많이 없으니 복근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문성휘 : 잘 사는 나라 사람들에는 또 이 복근이라는 게 없죠. 그러니까 부러워하는 것입니다.

진행자 : 사실 복근 얘기를 들으면 배부르니까 별 짓을 다 한다고 얘기할 수도 있어요. (웃음) 그렇지만 남쪽 생활 방식을 보면 당연한 얘기일 수 있습니다. 보세요, 북쪽에서 오신 분들도 자연히 몇 년 만에 몸이 나고 배가 나오고 그렇습니다.

박소연 : 우리가 참 웃으면서 말을 하지만 슬픈 얘기죠. 북한은 못 먹고 너무 고단한 노동을 하다나니 자체로 생긴 것이고 여기는 또 멋을 내기위해서, 자신감을 갖기 위해서 일부러 만들고...

문성휘 : 그러니 우리 한번 그런 걸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이어트 체험거리 이래서 새벽5시면 철길 레일장을 잘라서 공중에 걸어놓은 종이 있잖아요? 그걸 땅땅땅 두드리면 다 인민반 동원을 나오고요. 목욕도 한 달에 겨우 하게하고 여름에는 강바닥에서 한쪽으로 방망이 두드리며 빨래를 하고... 이게 북한의 모습이기도 하지만 남한도 옛날에는 이렇게 살지 않았습니까? 옛 체험도 해보고 거기서 한 달만 살면 살도 많이 빠지고 복근도 나오겠는데?

진행자 : 말씀드렸듯이 남한에는 남한만의 방법이 있고 또 살다보시면 더 이해가 가실 겁니다.

박소연 : 저도 문 기자님처럼 한 10년 살면 복근 있는 남성에 환성을 지르겠는지... (웃음) 그때 그러면 오망 쓴다고(노망났다고) 하겠죠?

고대에는 엉덩이, 배, 가슴에 살이 많아야 미인이었답니다. 기계가 없어서 사람은 곧 노동력이었고 아이가 많다는 건 노동력이 풍부하다는 얘기였으니 다산의 상징이 최고의 아름다움으로 꼽혔습니다.

로마 제국에서는 일자눈썹에 하얀 치아, 진한 화장을 한 여성을 미인으로 봤는데 인공적인 치장이 돈과 지위의 상징이었기 때문입니다.

종교의 힘이 막강했던 중세 시대, 유럽에선 작은 가슴과 순결을 상징하는 하얀 피부의 여성들이 미인이었다고 하고요...

이렇게 역사적, 사회적 환경에 따라 미인의 기준 달라졌지만 어느 사회든 경제 수준이 낮을 땐 뱃살이 부의 상징이 되고 사정이 나아지면 마른 몸이 상류층의 상징이 됐다고 합니다. 남쪽과 북쪽에도 딱 맞는 얘기네요.

그래서 저희가 복근의 이름을 한번 붙여봤습니다. 남쪽 복근은 이른바 행복 복근.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행복에 겨운 복근이고요. 북쪽 복근은 체제 복근! 체제가 만든 가난, 그 가난이 만든 복근입니다.

소연 씨가 마지막에 나이 오십에 남성의 복근을 보고 환호를 지르면 아마 오망 쓴다는 얘기를 들을 것 같다고 했는데, 그러면 마흔도 훌쩍 넘은 나이에 복근을 만든다고 하면 그것도 노망일까요? 그렇다면 남쪽엔 요즘 노망이 유행입니다.

이 얘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가죠.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