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11월, 남한에 도착해 올해 남한 생활 3년 차를 맞고 있습니다. 2012년 아들을 데려와 혼자서 키우는 열혈 '워킹맘' 그러니까 일하는 엄마입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엔 남한 정착 8년차, 자강도 출신 탈북 기자 문성휘 씨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 이번 월드컵에서도 남한 선수들의 제일 첫 경기, 러시아랑 했던가요? 아침 7시에 지하철 타고 출근하면서 봤는데요. 지하철에서 지진 나는 줄 알았습니다. 다들 핸드폰을 보다가... 한꺼번에 (웃음)
지난 14일 브라질 월드컵이 막을 내렸습니다.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국가들이 줄줄이 탈락하더니 브라질이 독일에게 1대 7로 대패를 당하고 4위에 머물렀고요. 브라질의 바로 옆 나라, 아르헨티나가 의외의 선전으로 2위, 독일이 통산 4번째 월드컵 우승을 이뤄냈습니다.
이런 저런 이변이 많았던 이번 월드컵에서 남쪽은 예선전 1 무, 2패를 기록하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는데요. 그래서 끝나고도 한동안은 시끄러웠습니다.
자...이제 월드컵이 끝나고 남쪽은 본격적인 폭염이 시작됐습니다. 의외로 볼 차기를 꽤 좋아한다는 소연 씨, 또 의외로 체육 경기에 영 흥미 없는 문성휘 기자... 이 두 사람이 본 월드컵 얘깁니다.
진행자 : 안녕하세요.
문성휘, 박소연 : 안녕하세요.
진행자 : 다들 잘 지내셨어요? 날씨가 무척 덥습니다.
문성휘 : 더워서 진짜 잘 지냈다는 말을 못 하겠네요. (웃음)
진행자 : 소연 씨는 더 힘들 것 같네요. 소연 씨, 남한에 와서 몇 번째 여름인가요?
박소연 : 이번이 두 번째 여름인데 물어죽겠어요. 덥다는 말이 어울리지 않아요. 정말 물커 죽겠습니다.
진행자 : 물커 죽겠다... 북한식 표현이라도 무슨 의미인지는 딱 알겠어요. (웃음) 습하고 덥고 그렇습니다. 근데 이렇게 물커 죽겠는, 여름밤의 더위를 시원하게 날려주던 월드컵이 끝났습니다. 이번 월드컵들 좀 보셨습니까?
박소연 : 저는 빠지지 않고 재방송까지 열심히 챙겨봤습니다. 전 축구를 좋아해요.
문성휘 : 브라질이 독일한테 1대 7로 지고 브라질 전역이 난리도 아니었다고요? 축구 좀 진건데 뭘 그렇게...
진행자 : 브라질에서 열린 첫 월드컵, 1950년대였는데요. 결승전에서 한 점 차이로 우루과이에 브라질이 졌습니다. 당시 응원석에서 2명이 심장마비, 2명이 자살했습니다. 이 정도면 축구가 단순한 체육 경기가 아닌 거죠?
박소연 : 그랬군요... 어쨌든 저한테도 축구는 그냥 단순한 체육 경기라기보다는 나라의 명예? 이런 게 먼저 생각이 납니다. 이번 월드컵에서도 남한 선수들의 제일 첫 경기, 러시아랑 했던가요? 아침 7시에 지하철 타고 출근하면서 봤는데요. 지하철에서 지진 나는 줄 알았습니다. 다들 핸드폰을 보다가... 이근호 선수가 볼을 딱 넣는 순간 으악! 하고 소리치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문성휘 : 맞지...
박소연 : 솔직히 요즘은 지하철 타면 서로 눈길을 안 주고 고개 숙이고 제 스마트폰만 쳐다보는데 그러던 사람들이 와~하면서 같이 떠드는데 갑자기 속에서 뭔가 울컥하더라고요. 북한에서 살 때는 북한만 조국애가 있고 남조선은 그런 게 없다고, 니가 죽겠으면 죽고, 상관 안 하는 세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와보니까 북한에서 알던 것과는 다르네요.
문성휘 : 그러면 뭘 해... 16강도 못 올라갔는데요.
진행자 : 그러니까요! 러시아전 처럼 알제리, 벨기에 전도 잘 했으면 좋았을 걸... 하여튼 워낙 이번 월드컵 축구는 말이 많았습니다. 끝나고 결국 홍명보 감독이 사퇴를 했죠.
문성휘 : 감독이 사퇴를 한 거는 사퇴를 한 것이고 워낙 16강만 올라갔어도 경제가 좀 피어나겠는데...
박소연 : 축구가 경제랑 관계가 있어요?
문성휘 : 2002년에 4강까지 올라가지 않았습니까? 맥주 집, 치킨 집이 잘 팔리고 사람들이 돈도 잘 쓰고 그러니까 경제가 빨리 순환됐다고 하고요. 축구라는 게 체육, 스포츠가 경제 효과로 이어진다는 게 이런 것이죠. 이번에 16강만 올라갔어도 좋았을텐데! 아유... 진짜 맥 빠져요.
진행자 : 그게 솔직한 심정이죠. (웃음) 우리가 합리화 시키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우리가 지고 나니까 축구 경기를 더 열심히 보게 된다고요. 우리나라 선수가 아니니까 3자의 입장에서 경기를 차분하게 볼 수 있단 얘기죠.
문성휘 : 아, 맞아요. 진짜 한국 체육 경기를 할 때는 발길질 잘 못하면 입에서 바로 욕 나오죠. 그리고 골 한번 먹으면 감독을 얼마나 욕합니까? (웃음) 그런데 우리나라 경기가 아니면 이 나라 선수단은 수비랑 공격에 어떤 특징이 있는지... 그런 걸 평가를 하면서 볼 수 있어요.
진행자 : 그래요. 우리나라 선수 경기 볼 때는 분석할 틈이 어딨어요? 소리치기 바쁘죠.. (웃음) 아마 청취자 여러분도 어떤 건지 잘 아실 겁니다. 북한이 이번 월드컵 때 광장에서 대형 화면으로 경기를 틀어주고 관람하는 모습이 보도에 나왔는데요. 다들 좀 분석도 해가며 보시더라고요? 한 발짝 떨어져서.
문성휘 : 사실 북한이라는 나라는 아마 열광적으로 축구를 본 일이 한 번도 없었을 겁니다. 왜냐면 66년도 영국 월드컵에서 8강까지 올라가지 않았어요? 그쯤하면 한국에선 정말 난리도 아니었을 텐데 북한은 선수들을 오히려 다들 혁명화 보냈죠.
진행자 : 왜죠? 저도 얘기를 들었지만...
박소연 : 과오 범했잖아요? 저는 아버지에게 말만 들었는데요. 어느 나라 경기를 앞두고 전날에 우리나라 선수들 방에 여자를 들이밀었답니다. 그래서 그 여자들에게 빠져있다 나니까 다음날 축구 경기에 졸아서 성공을 못 했는데 그게 공화국에 보고가 다 돼서 농촌 오지로 쫓겨 가고 그랬다고...
진행자 : 지금 소연 씨가 하신 그 얘기, 정말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많은 탈북자들이 합니다. 근데 그 얘기, 믿으십니까? 신빙성이 있는 건가요?
문성휘 : 글쎄요. 그때는 믿었고 특히 북한에는 이런 종류의 뒷얘기들이 많습니다. 사실 소문일 따름이지 사실은 아닐 수 있죠. 8강은 북한 축구 역사상, 아니죠. 아시아 축구에서도 최고 높은 것인데 당시에 국가 지도자가 수고했다 한마디만 했으면 다들 영웅이 됐을 겁니다. 그런데 당시 김일성 주석이 뭔가 기분이 언짢은 부분이 있었겠죠.
박소연 : 지금 와서 보면 그 얘기들, 참 허무했구나 싶습니다.
진행자 : 지금은 별로 믿을만한 얘기가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군요.
문성휘 : 그때 감독도 있고 보위 지도부도 갔을 텐데요. 그리고 선수들 숙소에 누가 그렇게 마음대로 드나들 수가 있습니까? 차단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북한 사람들은 그런 사정을 모르니까 그걸 믿을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런 이상한 소리들, 북한 사람들은 참 많이 믿습니다.
진행자 : 남쪽에서는 그런 소문 대신 인터넷에서 떠도는 정보를 가장한 얘기들과 언론 보도들이 있죠. 어쨌든 이번에 남한 축구가 16강에도 못 올라간 것에 대해 감독은 물론 축구 협회에 대한 비판도 많아요. 남한 사회에 없어져야할 관례들이 있는데 예를 들면 지연, 학연 이런 것들이요. 그게 축구를 망쳤다, 다 바꿔야한다는 그런 비판이 많죠.
문성휘 : 바뀌어야 하는 거 맞습니다. 이게 사회의 폐단을 낳고 악습을 만드는 거잖습니까? 지니까 책임론이 부상하고 의혹을 제기하고...국민들이 비난하죠.
진행자 : 비난이 아니라 비판, 지적하는 거죠... 하여튼 일찌감치 져서 거리 응원전도 그다지 흥겹지 않았고요. 소연 씨가 저번에 축구하면 거리 응원전에 한번 꼭 나가본댔는데 김 빠졌을 것 같네요.
박소연 : 그래도 잘 봤습니다. 북한하고는 많이 다른 게... 이번에 이근호 선수가 볼을 딱 넣으니까 사람들이 이근호, 이근호 이름을 부르며 막 환호하는데 저희는 북한에 살 때, 어릴 때는 불이 잘 왔어요. 온 집 식구가 소나무 텔레비전 아래 모여서 경기를 봤는데 누가 볼을 몰고 가면 야야 하면서 소리만 쳤지 그 선수 이름을 몰랐어요.
진행자 : 해설자가 얘기 해주지 않습니까?
박소연 : 그냥 7번 선수, 7번 선수 볼 몰고 갑니다. 14번 선수 15미터 볼차기 입니다... 그러죠. 해설과 응원 방법이 다 다르죠. 그런데 그나마 그건 좀 잘 살 때 얘기고 경제적으로 떨어지니까 관심이 없습니다. 또 한국에 오니까 이근호 선수가 볼을 넣었다면 연봉이 얼만가 이런 얘기가 나오는데 북한에서는 국제 경기에서 누가 우승하면, 쟤는 벌써 공화국 영웅 됐구나, 쟤네 가족들은 평양 가겠구나,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하죠. 이건 정말 판이하게 다르죠.
문성휘 : 보면 북한 축구도 남한 못 지 않게 관심이 높았고 응원 열기도 뜨거웠어요. 북한이 텔레비전 축구 중계를 시작한 것이 1961년부터였는데 실제로 텔레비전이 많이 보급되기 시작한 건 81년도고요. 히타치가 만들어서 망한 텔레비전을 북한에 넘겼는데 그게 소나무 텔레비전입니다. 그 전에 소련에서 만든 전자관식 텔레비전...
진행자 : 점이 점점 커지면서 화면 나오는 텔레비전이요?
문성휘 : 맞아요. 그거요. 근데 그런 텔레비전도 동네에 하나 있으면 다행이었죠. 대신 포전이나 길거리에 유선 스피커를 많이 달아놓았는데 그 아래서 중계를 들었습니다. 유선 방송 밑에 모여서... 북한도 그런 응원 문화가 있었어요. 그리고 80년대까지만 무슨 학교별 경기가 많았고 응원단도 학교에서 조직해줬습니다. 아... 굉장히 시끄러웠죠. 소연 씨도 박수채 생각나죠?
박소연 : 337 박수 생각나죠.
문성휘 : 아... 응원 구호도 생각난다... 이겨라, 이겨라, 우리 선수 이겨라!
박소연 : 오늘의 승리를 우리의 것이다! (웃음)
진행자 : 고전적입니다. (웃음)
문성휘 : 그 다음에 부르는 노래도 있었습니다. 우리 선수는 공부도 잘 하지만 운동장에 나가서 체육도 잘 한다네...
박소연 : 랄라라라 랏차!
문성휘 :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웃음)
진행자 : 근데 왜 노래 부르면서 얼굴이 빨개지시나요. (웃음)
문성휘 : 지난번에 무슨 새마을 식당이라는 곳을 지나가는데 새마을 노래라는 게 나오더라고요.
진행자 : 새벽빛이 밝았네, 모두 함께 일어나... 70년대 새마을 운동 노래입니다.
문성휘 : 그 노래 때문에 우뚝 멈춰 섰습니다. 몸이 오싹 오싹할 정도로 어색하더라고요.
진행자 : 70년대 새마을 운동 노래죠.
문성휘 : 북한 응원 가요가 딱 그 비슷합니다. 그런데 참... 응원 문화도 경제력에 속하고 국민의 단합이죠. 한마디로 먹고 살기 바쁜데...
이겨라, 이겨라 우리 선수 이겨라... 하는 북쪽의 응원에 맞서는 남쪽의 응원은 대한민국 짝짝짝짝! 이겁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세계를 놀라게 했던, 엇박자 응원입니다. 한 때는 이 엇박자가 선수들의 헛발질을 유도한다는 주장도 있었죠. 올해는 이 볼만한 길거리 응원도 단 3번으로 끝이 났네요.
북한의 경기 응원은 대부분은 동원으로 채워지죠. 달가울리 없습니다. 대신 진심으로 환호하는 건 따로 있다고 하는데... 뭔지 아시겠습니까? 이 얘기는 다음 주에 이어가겠습니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오늘은 여기까집니다. 함께해주신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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