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놈의 복근 (3)

가수 김필이 서울 강남구 신사동 엠큐브에서 열린 첫 번째 미니앨범 '필 프리' 발매 쇼케이스에서 복근을 공개하고 있다.
가수 김필이 서울 강남구 신사동 엠큐브에서 열린 첫 번째 미니앨범 '필 프리' 발매 쇼케이스에서 복근을 공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0:00 / 0:00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11월, 남한에 도착해 올해 남한 생활 4년 차를 맞고 있습니다. 2012년 아들을 데려와 혼자서 키우는 열혈 '워킹맘' 그러니까 일하는 엄마입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엔 남한 정착 9년차, 자강도 출신 탈북 기자 문성휘 씨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 아, 진짜 우리 회사의 남자 기자들... 거의 30대 중반인데요. 짬만 나면 땅바닥에 엎드려서 팔을 아래위로 움직이며... 너 뭘하냐 그러니까 복근 만드는 운동한다고. (웃음) 헥헥... 이러면서요. 아... 진짜 복근이 뭔데 저렇게 열성인가 싶더라고요.

복근, 그러니까 배의 근육이죠. 남쪽엔 요즘 한자로 왕자 모양의 배 근육을 만든다고 땀 흘리는 사람 많습니다. 북쪽엔 너나 나나 다 가진 이 복근이 뭐라고... 소연 씨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가 안 되는 일이라고 하네요. 남한 사람들, 정말 할 일이 없어서 그러는 걸까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복근 얘기 마지막 시간입니다.

진행자 : 재밌는게요. 남쪽에서 복근을 만드는 사람들, 특히 남성들의 평균 연령대를 따지면 어느 나이가 가장 많을까요? 보통 20대가 많을 것이라고 짐작하는데 정작 가보면 40대가 많습니다.

문성휘 : 40대가요?

진행자 : 40대 중후반 남성들이요.

박소연 : 그 나이에 이제는 중고 값인데...

진행자 : 그런데도 열심히들 하더라고요.

박소연 : 할 일 없어...

진행자 : 왜 그렇게 만드느냐? 사실 복근 만드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문 기자님 지금 복근 만들라고 하면 만들 수 있으시겠어요?

문성휘 : 어우, 못하죠. (웃음)

진행자 : 문 기자님 몸매가 지금 남쪽의 중년 남성들의 평균 몸매보다 조금 날씬합니다. 조금 배가 더 나와야죠. (웃음) 그 정도 되면 조직비서?

문성휘 : 책임비서... 하여튼 비서급은 돼야죠.

진행자 : 그 비서급 배를 다 빼고 운동을 해서 근육을 만든다? 쉽지 않죠.

문성휘 : 그러니까 왜 하는 건가요?

박소연 : 도대체 왜 해요? 20대들처럼 해수욕장 가서 몸매 자랑할 일도 있고...

문성휘 : 그리고 헬스장에 돈도 내야하고.. 이건 이유가 간단해요. 밥 먹고 할 일이 없어서 그런 겁니다!

박소연 : 마누라 잔소리 듣기 싫어 그러나...?

진행자 : 몇 명 운동하시는 분들께 여쭤봤는데 요약해 보자면 이런 겁니다. 40대 중후반이면 결혼해서 열심히 처자식들 먹여 살렸고, 아이들도 이제 어느 정도는 컸고, 직장도 십년 이상 다녔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답니다. 나는 뭐지? 나한테는 뭐가 남았지?

문성휘 : 그렇죠. 인생이란 게 어느 시점까지는 뒤돌아보지 않고 가정과 자식들을 위해서 끊임없이 달린다고 해야 할까?

진행자 : 예를 들어보자면 100미터 달리기를 하듯이 막 달려왔는데 뒤돌아보게 되는 나이가 바로 40대 중후반이라는 겁니다.

박소연 : 공감이 됩니다.

진행자 : 북쪽은 어떠십니까? 아무리 힘들어도 중년은 그런 나이일 것 같은데요.

박소연 : 북쪽은 그렇지 않아요. 그걸 생각할 여력이 없습니다.

진행자 : 그렇군요. 남쪽은 그렇게 달려오면 한번쯤 쉬게 되는, 뭐 원하지 않아도 이 때쯤이면 지쳐서 쉬어 가게 되는 나이인 것 같습니다. 이럴 때 그런 생각이 드는 거죠, 나는 누군가, 나한테 남은 건 뭐지? 이제 젊지도 않고...

박소연 : 나는 나를 위해 뭐했나...

진행자 : 이럴 때 시간을 좀 내서 자기한테 뭔가를 할 수 있다면? 뭘 하시겠습니까? 그럴 때 나를 위한 새로운 목표로 복근을 만들겠다고 선택하는 분들이 있다는 겁니다.

문성휘 : 그러니까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건가요?

진행자 : 그것보다는 나를 위해 뭔가 해보고 싶은 것이죠.

문성휘 : 나 같았으면 뭐... 낚시질이나 다니겠다.

진행자 : 낚시질은 시간이 많이 필요하죠. 낚시하러 갔다, 왔다해야하고요. 헬스장은 회사 끝나고 회사 가기 전에, 이렇게 시간을 낼 수 있고... 어쨌든 저는 그 얘기를 듣고 이해가 됐습니다.

박소연 : 저는 100% 공감해요.

문성휘 : 진짜로요?

박소연 : 네, 지하철 역 앞에서 항상 할머니가 전단지를 나눠주는데 그게 헬스장 전단지입니다. 헬스 한 달에 4만원... 뭐 이렇게 써 있어요. 항상 버렸는데 얼마 전부터는 그게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언젠가 주말에 아들하고 얘기하는데 그런 얘기가 나왔는데 아이가 축구 선수가 되고 싶대요. 축구 선수가 돼서 뭐 하겠냐, 물으니까 자기는 축구 선수가 돼서 돈을 많이 벌고, 결혼은 일찍 하고 인차 퇴직해서 벌어놓은 돈으로 더러는 저금을 하고 더러는 사업을 하겠다. 13살짜리 아이가 그런 말을 하는데 엄마가 나를 이렇게 힘들게 키워주셨는데 그 돈을 엄마한테도 주겠다... 이런 말 한마디도 없는 겁니다. 그래서 애가 나간 다음에 혼자 앉아서 열두 새끼 불렀죠. (웃음) 아, 안 되겠다 이제 나도 운동도 좀 하고 나한테 투자를 좀 해야겠다. 불끈 마음먹었습니다. 진짜 공감가요, 그 아저씨들... (웃음)

문성휘 : 나는 우선 그래요. 헬스장 가서 운동하는 사람들, 저는 그 사람들 다 필요 없는 노릇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선 나는 과거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진행자 : 왜 과거를 돌아보지 않으십니까?

문성휘 : 나는 과거를 돌아보면 우울증이 걸릴 것 같아요. 너무 분하게, 억눌려 살았잖아요? 우리의 젊은 시절이라는 게 우리 절로도 이 사회가 너무 답답하다, 다 걷어 내고 싶다는 울분이 많았어요. 그래도 꼼짝 못하고 살았던 그런 시절, 이미 떠나간 친구들을. 그걸 다시 생각한다는 자체가 나한테는 우울한 일입니다. 그리고 저는 헬스장에 가지 않을 겁니다! 그건 자신에 대한 학대와 고문입니다!

박소연 : 그게 왜요? 자기가 나약한 걸 그렇게 포장하시면 안 됩니다. (웃음)

진행자 : 나약한 게 아니라 문 기자님 그냥 운동이 하기 싫으신 것 같고요. (웃음) 아까 소연 씨가 적절한 표현을 하셨는데 그거죠. 자신에 대한 투자! 근데 문 기자님 싫으시다면 안 하셔도 됩니다. (웃음)

문성휘 : 다 쓸 데 없어요. 헬스장 그건 자신에 대한 학대고 고문이고요. 자신에 대한 투자? 저는 다른 방법으로 좀 더 휘황찬란하게 하겠습니다. 자그마한 뙈기밭을 사서 축산도 하고 내가 키운 남새들만 먹으면 자기 절로 운동도 되고 살도 빠지고, 진짜 자연적인 건강한 생활이죠. 난 절대 헬스장은 가지 않아요.

진행자 : 앞에서 말했지만 저희는 강요하는 게 아니고요. (웃음) 근데 문 기자님, 그 분들도 문 기자님의 이런 얘길 들으면 지적할 얘기가 있을 겁니다. 저도 그렇게 몇 평짜리 농사짓고 있지만 별로 할 일이 없습니다...

박소연 : 결국은 오륙을 놀리기 싫다는 얘기인 것 같습니다. (웃음)

문성휘 : 그럼 염소를 길러서 같이 산에 다닐게요. 그럼 운동이 됩니다...

진행자 : 그러니까 문 기자는 복근을 만들 바에야 농사짓고, 축산하고 자연으로 돌아가시겠다... 하지만 소연 씨는 복근을 만드는 것, 이해하신다고 했고요.

문성휘 : 네, 뭐 공감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그런 사람들도 있구나, 이렇게 이해를 해야지... 생각을 줄을 세우지 않고 그런 사람도 있다, 이해하는 게 자유 민주주의인게고...

진행자 : 네, 다양성을 인정해주십시오.

문성휘 :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게 정말 옳은 것 같은데...

진행자 : 청취자 여러분들도 욕하는 분들 계신 것 같은데 그냥 남한엔 이런 현상이 있다, 정도로 이해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문성휘 : 하지만 복근을 위해서가 아니라 운동은 정상적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는 점은 저도 동의합니다. 북한에서도 일은 일이고 운동은 운동이다, 아무리 일이 고달파도 조금 운동을 해라 이런 얘기들 합니다. 그게 건강하게 사는 길입니다.

박소연 : 북한에 있을 때는요, 아들들이 철봉대에 매달려 있으면 막 그랬습니다. 먹은 것도 없는데 그만해라. 안쓰러웠어요. 애들은 좋아서 하는데 아침, 점심 그냥 잡곡에 감자밥에 먹었는데 그거 조금만 움직이면 꺼집니다. 항상 그랬어요. 먹은 것도 없는데 빨리 내려오나... 한국에 와서는 건강하려면 운동해야해 이렇게 바뀌었죠. 얼마나 다른가요?

진행자 : 북쪽의 복근은... 먹는 것도 허술하고 고기도 잘 못 먹지만 강단 있게 버틸 수 있게 해주는 그 힘이 거기서 나오지 않나 생각이 들고요.

문성휘 : 북한의 복근은 한 마디로 체제 복근이죠.

박소연 : 체제가 만들어 놓은 가난의 복근이네요.

문성휘 : 참, 안타까운 안쓰러운 복근입니다. 그러면 남한 복근은 뭐라고 해야 하나요? 민주 복근? (웃음) 살 찐 것을 뽑기 위해 돈까지 투자해 가며 만드는 복근...

박소연 : 행복한 얘기죠. 행복한 복근? (웃음)

문성휘 : 어쨌든 인간이 여유가 있고, 니가 니 취향대로 살아라, 이런 자유가 있어서 좋네요.

진행자 : 북쪽에 계신 복근 짱짱하신 젊은 청년들! 남쪽에 오면 인기 짱 입니다. (웃음)

문성휘 : 근데 얘들아... 키가 안 커서 안 돼. 도저히 안 돼...

진행자 : 아니에요. 복근으로 덮고 갈 수 있어요.

행복한 복근이 아니라 행복에 겨운 복근이 맞는 이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근육이 찢어지는 고통을 참으며 문 기자 표현을 빌리면 자기에 대한 학대며 고문을 해가며 만드는 복근... 새로운 자신을 찾기 위한 선택이었든 나에 대한 투자이든 누구에게 과시하고 싶어서 만드는 허영에 의한 선택이었다고 해도 이게 그렇게 마냥 행복한 복근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어느 사회나 사람 사는 것은 다 나름대로 힘드니까요.

그래서 남이나 북이나 우리 모두 복근은 길러야 할 것 같습니다. 배에 새긴 왕자 복근이 아니고요. 인생에 닥치는 어려움과 어깨를 눌러오는 책임들, 내가 져야하는 의무 속에서 버틸 수 있는 그 탄탄한 복근, 뱃심을 말입니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오늘 여기까집니다. 다음 주 이 시간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