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11월, 남한에 도착해 올해 남한 생활 3년 차를 맞고 있습니다. 2012년 아들을 데려와 혼자서 키우는 열혈 '워킹맘' 그러니까 일하는 엄마입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엔 남한 정착 8년차, 자강도 출신 탈북 기자 문성휘 씨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 이번 월드컵에서도 남한 선수들의 제일 첫 경기, 러시아랑 했던가요? 아침 7시에 지하철 타고 출근하면서 봤는데요. 지하철에서 지진 나는 줄 알았습니다. 다들 핸드폰을 보다가... 한꺼번에 (웃음)
지난 14일 브라질 월드컵이 막을 내렸습니다. 이런 저런 이변이 많았던 이번 월드컵에서 남쪽은 예선전 1 무 2패를 기록하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는데요. 그래서 끝나고도 한동안은 시끄러웠습니다.
의외로 볼 차기를 꽤 좋아한다는 소연 씨, 또 의외로 체육 경기에 영 흥미 없는 문성휘 기자... 지난 시간부터 이 두 사람이 본 월드컵 얘기를 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월드컵 보면서 두 분, 영 딴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고향 생각이 많이 났다고 하네요.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오늘 월드컵 축구 두 번째 얘깁니다.
박소연 : 2008년도에 무산에서 혜산, 청진, 함흥 도 축구선수단이 순회 경기를 했는데 지금도 기억나요. 그날 해가 나서 다들 우산을 들고 경기장에 앉았는데 경기장 절반도 못 채웠죠. 그런데 어떻게 일이 되다보니까 무산 선수들이 한 골을 넣어서 앉았던 사람들이 와~ 하고 일어났습니다. 2008년이면 사실 몇 년 전인데 그 때만해도 점수를 표시하는 전광판이 없었어요. 조그만 아이가 전광판 뒤에 창문으로 훌쩍 건너가서 0자리를 1로 바꿉니다. 여기는 전자 형광판으로 외국말까지 나오는데 말이죠. 그러니까 볼을 넣고 나서도 15분, 20분이나 돼야 점수가 표시가 되고... (웃음) 이런 상황은 지금도 같죠.
문성휘 : 아! 맞다. 진짜 그랬어요. 그리고 그 번호판을 제대로 못 보고 돌리고 안에선 소리가 안 들리는지 자강도가 한 골 넣었는데 함경북도가 한 골 넣은 것으로 잘 못 표시하는 거예요. 그럼 밖에서 바꾸라고 또 난리죠. (웃음) 옛날엔 아마 한국도 그랬을 겁니다.
진행자 : 듣다보니까 북한 축구 얘기가 더 재밌는데요? (웃음)
박소연 : 남한도 옛날에 그랬을지 모르지만 북한은 정말 지금도 정말 변한 게 없습니다.
문성휘 : 저도 가끔 구글에 들어가서 위성사진을 제공하는 구글 어스라는 걸 이용해서 보는데 달라졌다는 게 중국에서 수입한 양철판 기와가 늘어난 것 빼고는 여전합니다. 공설 운동장도 같고 같죠. 의자도 그냥 어느 천년에 시멘트로 발라서 만들어 놓은 게 여전하고. 지붕이 없어서 우리 어렸을 때 어쨌는지 소연 씨 기억나죠? 비와도 쫄딱 맞고 경기를 끝까지 봐야했습니다. 끝에 꼭 출석을 확인하니까 갈 수가 없어요. 그리고 그냥 비만 맞기만 하면 되나요? 반드시 박수채를 쳐야합니다. 계속 치면서 이겨라, 이겨라...
진행자 : 그럴 때 외치는 '이겨라'는 이겨라가 아니죠. 빨리 끝내라, 빨리 끝내라... 이러는 거죠. (웃음)
박소연: : 맞아요! 북한에는 진짜 중요한 게 인원 체크입니다. 시작하기 전에 확인하고 끝날 때 다시 확인하죠.
문성휘 : 줄을 죽 세우고 인원을 검열하는데요. 이게 도망자를 잡기 위해서입니다. 북한에선 중간에 빠져나간 사람을 도망자, 도망병 그렇게 부릅니다.
진행자 : 재밌으라고 하는 운동 경기까지 왜 그렇게 인원 동원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박소연 : 동원을 안 하면 누가 나오겠어요?
진행자 : 남쪽도 이번 월드컵에 아침 경기가 많았잖아요? 지방자치 단체에서 응원을 위해 운동장 빌린 다음 자리를 채우기 위해 학생들을 동원해서 아주 욕을 먹었습니다.
박소연 : 남조선 동지들도 그러는구나... (웃음)
진행자 : 남쪽도 옛날엔 동원 많았죠. 그러니까 사람들이 동원하면 안 좋은 느낌을 갖고 있어요. 억지로 오라고 시키는 거잖아요? 응원은 자발적으로 즐기러 가야하는 건데 이걸 동원했다고 인터넷에서 정말 난리... (웃음)
문성휘 : 북한은 모든 게 다 동원이니까요. 경기 응원도 누가 모이겠어요? 그리고 조용필의 북한 공연... 이런 것 해도 동원입니다. 앞에선 열심히 부르는데 사람들은 그냥 앉았죠. 한국 같았으면 외국 가수가 노래 부르면 호응해주고 그럴텐데... 사실 그 사람들, 따라 부르고 싶은 노래도 많았을 겁니다. 한국 노래가 북한에서도 많이 인기 있지 않아요? 그래도 티비 촬영기가 돌면 꼿꼿이 앉아있어야 합니다.
진행자 : 그 남쪽에서 북한 공연 뒷얘기 같은 보면요. 북한 공연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공연이라고 얘기 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특히 희극인들... 열심히 공연하는데 앞에 앉은 사람들이 웃질 않으면 얼마나 진땀나겠어요.
박소연 : 아, 제가 지금도 기억하는 건 주현미 가수가 북한에 와서 공연했던 거요. 그걸 조선중앙 티비로 냈어요. 저는 그걸 집에서 봤거든요. 정말 거기 앉은 사람들은 웃질 않았는데 저는 집에서 봤으니 옆에 누가 있나요? 막 호응했습니다. 그 노래가 기억이 안 나는데... 당신이랑 눈이 마주치면... 이런 가사도 너무 좋았고 저는 들썩 들썩 했습니다. 여기 와서 보니까 그 가수 이름이 '주현미'라고 하더라고요.
진행자 : 노래는 신사동 그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주치는 눈빛이...
박소연 : 맞아요. 맞아! 그 노래였습니다.
진행자 : 그렇게 재밌는 것도 동원이라는 이름으로 나가면 그렇게 재미가 없어지네요.
문성휘 : 그리고 또 남조선 가수들이 와서 공연하는데 어깨라도 잘 못 들썩였다간 큰일 나죠. 그런 것도 영향이 있었을 거고요.
박소연 : 그 좋은 일도 강제로 시키면 싫어지잖아요? 응원 문화까지 강제로 동원시키니까 사람들이 마음속에서 우러나서 응원하거나 하지 않죠.
진행자 : 그래도 진짜 우러나서 좋아하는 일도 있지 않아요?
박소연 : 그렇죠. 새벽에 6시부터 무산 광장에서 행사할 때 당비서가 우리한테 막 그랬어요. 다들 어디 도살장에 끌려가는 황소들 자세 같다고... 그렇지만 저는 형제들이랑 자다가 만세를 불렀던 기억도 납니다. 문 기자님 새벽 2-3시 불이 오면?
문성휘 : 아, 맞다, 맞다!
박소연 : 사람들이 막 만세, 만세 이러면서 록화기를 작동시키고...
문성휘 : 북한은 그게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똑같네... 한국에서 축구를 보다가 골을 넣으면 갑자기 온 아파트가 들썩 거리지 않아요? 북한은 밤에 이렇게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있거나, 중요 드라마를 앞두고 있는데 불이 가면 사람들이 막 안타까워서 그러죠. 그런데 그 시간을 바로 앞두고 일부러 그러는지, 어쩐지 불이 딱 올 때가 있어요. 그럼 진짜 그 때는 아파트가 떠나가게 와~ 그러죠. 그게 바로 진심으로 환호하는 거죠.
박소연 : 그리고 북한에서 집들은 땅 집이 많잖아요? 평평한데 집이 있는 게 아니라 다 산탁(산의 경사면)으로 죽 붙었죠. 새벽에 한 5-6시 그 즈음이 되면 제일 아랫집부터 수도관에서 솨... 하는 소리가 납니다. 얼마나 각성해서 자는지 수도관에서 물 오는 소리를 듣는다니까요. 곤해 자던 사람들도 야~ 하며 부엌으로 뛰어나옵니다. 그리고는 호수를 들고 입에 대고 쭉쭉 빨죠. 압을 자기 집으로 가져오느냐고. 그러다가 물이 한 두 방울씩 떨어지면 막... 부둥켜안고 만세를 부릅니다. (웃음) 두만강 열 번 갈 걸 안 가도 되잖아요?
문성휘 : 맞다, 맞다...
박소연 : 그게 우러나오는 환호인 겁니다.
문성휘 : 아니, 소연 씨 괜히 물 얘기를 해가지고... (웃음) 그게 정말 얼마나 안타까운지 몰라요. 아파트에서 살면 물이 나올 때 수도관을 틀고 그 아래서 기다립니다. 그렇게 소리만 나다가 어느 순간 꾸룩꾸룩 소리가 나면 얼마나 속이 타는지... 힘이 없어서 위쪽까지 못 올라오는 소리니까요. 그때야 말로 응원이 되죠. 힘 좀 내라... 결국 기다리다가 아랫집하고 소리도 칩니다. 이층! 이층! 너넨 물이 나오니, 너무 많이 받지 말아라... 부탁하기도 하고. (웃음) 그리고 북한 내부를 찍어온 사진이 많은데 아마 이 장면은 없을 겁니다. 강계시를 자세히 찍으면 벽에 한 쪽에 쪼매한 구멍을 볼 수 있어요. 이게 수도호수 구멍입니다. 이자처럼 2층에서 수도를 켜면 위층에선 물이 안 나오죠? 그리고 아래층에 가서 위층 사람들이 물 좀 받겠다고 하면 겨울철 같은 때는 귀찮으니까 애초에 구멍을 뚫어놓는 거죠. 그리고 그 구멍으로 호수를 내보내주면 그 뒤로 줄을 죽 섭니다. 위층에선 그 물을 올리기 위해 도르래를 설치해놓았다가 물 받은 바케츠를 딱 걸면 위에서 죽 당기고. 지금 생각 보니 그것도 참 재밌네요...(웃음)
진행자 : 지금 생각하니까 재밌는 거 아닙니까? (웃음)
문성휘 : 그렇죠. 겨울날 오돌 오돌 떨며... (웃음)
진행자 : 북한에서의 진짜 응원은 물 오고 전기 오는 것에 대한 응원이네요.
박소연 : 생활에 뭔가 보탬이 돼야 응원이 되는 거죠.
문성휘 : 아닌 게 아니라 북한에 이런 말도 있죠. 장군님이 온다매, 전기도 같이 온다오... 진짜 환호하는 게 그거죠. 지금은 더 할 겁니다. 장군님과 함께 오는 해산물 때문에.
진행자 : 지금 참 재밌게 얘기하는데 그때는 아니셨죠?
문성휘 : 그렇죠. 사람이 시간이 지나자면 울면서 지나오던 날들을 웃으면서 신나게 얘기하죠. 이거 인간의 망각 때문이겠죠? 전쟁 노병들 얼마나 신나게 얘기합니까? 옛날 늙은이들 치고 범 안 잡아본 사람은 또 어딨고요? 근데 노병들도 아마 총알이 날라 오는 전장에서 머리도 못 들었을 겁니다. 옛날 늙은이들이 범을 다 잡아서 지금은 범이 없고요... (웃음)
들으시면 저 두 사람, 뭐가 그리 신이 났나 했을 것 같은데요. 이상하게 남한 얘기는 그냥 덤덤하게 하는 두 사람이 북쪽 얘기만 나오면 이렇습니다. 아무리 힘들었던 기억도 이 두 사람에겐 과거 내지는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되기 때문에 가능한 얘깁니다.
언제나 이게 북쪽에서도 옛 얘기, 한 때 고생했던 무용담이 될 수 있을까요? 문 기자는 모든 게 정치적으로 계산되지 않으면 가능하다고 하는데 쉬운 일은 아니겠죠.
오는 9월, 막을 올리는 인천 아시안 경기 대회엔 북한에서 응원단이 파견될 예정입니다. 북쪽에서는 '북남 관계 개선'과 '민족 단합 분위기'라고 하지만 여기에 정치적인 계산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지나친 정치적인 계산 때문에 관계 개선과 민족 단합 분위기를 해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 얘기, 다음 시간에 이어 가겠습니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오늘은 여기까집니다. 함께해주신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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