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학교에 보내면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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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박소연 씨는 2011년 11월 남한에 도착한 햇내기 입니다. 무산 출신으로 선전대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30대 중반의 여성인데요. 하나원 교육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남한 생활을 시작한지 이제 근 일 년...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에는 남한 정착 8년차, 자강도 출신 탈북 기자 문성휘 씨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 저도 처음에 고민을 많이 했어요. 대안 학교를 보내라는 사람들도 있고 여기 사회에서 살려면 어쨌든 일반 학교를 보내라... 왕따를 당해도 다 그것도 자기 몫이다...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었고요...

지난겨울, 소연 씨는 중국에 남겨놓았던 열 살짜리 아들을 데려 왔습니다. 그리고 탈북 학생들을 위한 대안 학교 대신 남한의 일반 학교에 넣었는데요. 아직 적응 못하는 아이를 보며 잘 한 일인지 잘 못한 일인지 고민이 많답니다.

오늘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아이 교육 문제로 고민 중인

진행자 : 안녕하세요.

박소연, 문성휘 : 안녕하세요.

기자 : 소연 씨, 얘들 방학했죠?

박소연 : 네, 아이들 방학 시작했습니다.

문성휘 : 북쪽은 7월 하순부터 방학을 했습니다. 날씨도 그렇고 행사도 많아서 방학을 조기에 줬다고 합니다. 올해는 보통 때보다 여름 방학이 한 15일 정도 길 것 같습니다.

기자 : 남쪽은 8월 중순까지 방학입니다. 그런데 요즘 얘들은 방학 때 더 바쁜 것 같아요. 소연 씨, 이번 방학에 계획 있어요?

박소연 : 방학에도 아이는 학교에서 방과 후 교육을 한다고 해서 거기 참가시키기로 했습니다.

문성휘 : 방과 후 교육이라는 건 북한말로 하면 과외 학습이죠? 과외학습 소조 정도로 이해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기자 : 뭘 배웁니까?

박소연 : 요일마다 다른데요. 중국어, 영어 다음날은 또 다른 과목... 이렇게 돌아가면서 수업 일정이 나옵니다. 수업은 한 1시간 정도 하고요.

진행자 : 초등학교 3학년, 인민학교 3학년에게 정규 수업이 끝난 다음, 다시 공부를 1 시간 한다는 게 짧은 건 아닙니다. 우리 때는 마냥 놀았는데요... (웃음)

문성휘 : 우리 때는 과외 소조요, 뭐요... 이런 게 많아서 굉장히 복잡했어요. 그리고 여름철엔 수영장 만든다, 토끼사에 풀 뜯어 바쳐야 하고요. 겨울에는 또 강에서 물을 퍼다 스케이트장을 닦아야 했고요.

진행자 : 니네가 놀 곳은 니네가 만들어라... 뭐 이런 식이군요. (웃음) 소연 씨는 어땠어요?

박소연 : 저희 때도 문 기자 때랑 크게 다르지 않죠 뭐...

문성휘 : 일요일 날에는 파고철이나 공병, 파지 수매했어요. 꼬마계획이라고... 생각해보니 편히 놀아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웃음)

진행자 : 북쪽은 진짜 방학 때도 학교에서 부르고 일할 것도 많네요... 북쪽 아이들은 이런 일 때문에 힘들고 남쪽은 공부 때문에 힘드네요.

문성휘 : 그런데 소연 씨는 아직 굉장히 행복하네요. 아이를 어떻게 공부시키겠다는 계획도 아직은 없는 것 같고요.

진행자 : 초등학교 3학년인데 무슨 교육을 벌써 계획해요?

문성휘 : 무슨 말씀하시는 겁니까! 텔레비전 보면 5살 때부터 학원에 보내던데요.

진행자 : 그건 너무 심한 경우고요. 심한 경우라서 텔레비전에 나오는 겁니다. (웃음) 소연 씨는 방과 후 학습 외에 다른 것 하는 게 있나요?

박소연 : 동네에 디딤돌 센터라는 곳이 있어요. 집에서 아주 가까운데요. 사람들이 돈을 기부해 만든 곳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거기에 탈북자 아이들을 모아서 공부를 시켜줍니다. 노래도 가르치고 놀게도 해주고 밥도 주고, 영어도 개별 교습 시켜주는데 선생님들은 자원 봉사하는 대학생들이고요. 학교 다녀와서 거기 가서 8시 반까지 있습니다.

문성휘 : 디딤돌 센터는 다른 지역에도 있습니다. 탈북자들, 또 이런 식의 보살핌이 필요한 가정의 아이들을 자원봉사자들이 보살펴 줍니다.

진행자 : 저는 처음 알았습니다. 참 좋은 곳이네요... 소연 씨가 직장에서 퇴근하면 한 저녁 7시 정도 되잖습니까? 학교에서 아이가 집에 와서 그때까지 혼자 있으면 좀 걱정되겠는데 센터에서 맡아주면 안심이 될 것 같습니다. 게다가 밥도 준다고 하고요... (웃음)

문성휘 : 근데 제가 그 나이 때를 생각해보면 별로 좋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 나이 때는 어디 속하는 걸 싫어하지 않습니까? 학교에서 공부가 끝났는데 방과 후 학습을 1시간 시키고 디딤돌 센터에 가서 또 몇 시간을 공부하고요...

박소연 : 근데 문 기자는 너무 북한식으로 생각하시는 거예요. 애가 학교를 가기는 싫어하는데 디딤돌 센터는 날라서 갑니다. 가보면 달리기를 하면서 놀기도 하고요. 지금 아들아이가 남한 일반 학교를 다니는데 아무래도 말투도 그렇고 낯설죠. 디딤돌 센터에 가면 같은 북한 애들이 있으니까 신나는 거죠.

문성휘 : 그럴 바에 아예 대안 학교를 넣지 그랬습니까?

박소연 : 처음엔 대안학교도 생각했죠. 일단 아이가 한글을 잘 몰라서 탈북자 사정을 아는 선생님이 더 잘 배워주지 않을까 생각도 했는데 그러면 발전이 없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일반학교에 넣었습니다.

진행자 : 대안 학교라면 아마 저희 청취자들에게는 상당히 익숙한 말일 거예요. 워낙 탈북자 대안 학교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니까요.

문성휘 : 대안 학교를 쉽게 이해하려면 학교를 대신하는 학교, 학교의 대안이다... 이렇게 이해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탈북자 대안학교도 정말 많은데요. 가장 큰 곳은 한겨레 학교, 여명 학교 있고요. 셋넷 학교, 하늘꿈 학교, 삼흥 학교...

박소연 : 이게 다 서울 시내에 있는 학교입니까?

문성휘 : 서울 시내만 해도 여명학교, 한꿈학교, 셋넷학교, 삼흥 학교도 있고... 많죠. 그런데 탈북자들 사정상 이렇게 많을 수밖에 없어요. 몇몇 학교는 대안 학교이지만 1,2,3 학년을 구분하고 지어는 한국 학교의 교과서도 이용해서 정규 교육 과정과 비슷하게 교육합니다. 이런 학교 학생들은 북한에서도 공부를 좀 했던 학생들, 남한 학교에도 갈 수 있는 아이들이죠. 다만 말이 서툴고 낯서니까 대안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이 많고요. 그런데 진짜 문제는 북한에서 전혀 교육을 받지 못한 애들이거든요. 북한은 의무교육이라고 하지만 실제 한국에 와보면 교육받지 못한 아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런 아이들을 위한 학교가 있고 또 탈북한 여성들이 중국에서 몇 년씩 살다보니 아이를 낳아 데려오는데 이 아이들은 중국말 밖에 모릅니다. 이런 아이들을 모아서 한국말을 가르치는 학교가 있고요. 이러니 대안학교가 여러 개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진행자 : 대안학교가 여러 개 있다는 얘기는 탈북자들이 남한 학교의 정규 과정을 그만큼 쫓아가기 힘들다는 얘기겠죠?

문성휘 : 못 쫓아갑니다. 남한은 제가 생각하기에 가혹하다고 할 정도로 교육이 너무 셉니다. 북한은 애들을 너무 가혹하다고 할 정도로 일을 시켜서 야단인데 여긴 또 부모들이 너무 교육에 안달을 합니다. (웃음) 학원에 막 경쟁적으로 보내고 하니까 애들 수준은 높죠. 요즘 보도를 보면 남한 아이들은 학교 가기 전에 교과 과정을 미리 다 배워서 수업 시간에는 졸고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북한에서 아무리 착실하게 공부를 했다고 해도 학교에 가서 따라가기가 너무 힘든 겁니다.

진행자 :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자녀가 있는 탈북자들은 모두 고민합니다. 대안 학교를 보낼 것인지, 아니면 일반 학교를 보낼 건지...

박소연 : 저도 처음에 고민을 많이 했죠. 대안 학교를 보내라는 사람들도 있고 여기 사회에서 살라면 어쨌든 일반 학교를 보내라... 왕따를 당해도 다 그것도 자기 몫이다...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었고요. 아이가 상처 받는 걸 걱정하거나 가정 형편이 힘들면 대안 학교를 보내더라고요. 저는 애가 오자마자 일반 학교를 보냈습니다. 학교에 가서 교장 선생님, 담임선생님도 만났는데 정말 인상이 다들 좋더라고요. 담임선생을 소개해주는데 30대 초반에 얌전하게 생긴 여자 선생님이었어요. 학교에 탈북 학생들이 몇 명 있는데 다들 열심히 공부하고 잘 한데요. 그런데 처음에 며칠은 그냥 가더니 조금 지나니까 학교 갈 시간만 되면 애가 방구석에 머리를 숙이고 앉아 있어요. 가슴이 너무 아팠죠. 학교에 친구가 없어 가기 싫답니다. 아이들이 와서 말을 시키면 입에서 말이 막 도는데 말이 안 나오고 말투가 달라서 아이들이랑 휩쓸려 놀기도 싫다고요.

문성휘 : 옛날에 우리 북한에서 평양이나 앞 지대에서 온 아이들을 막 깐드래, 깐드래 하면서 놀렸잖아요. 북한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는데요... 그건 감수해야죠.

박소연 : 그래서 선생님과 전화 통화를 했는데 아이들은 우리 혁이 앞에서 말도 시키고 그러는데 혁이가 대꾸를 안 한 대요. 시간만이 해결해 줄 겁니다... 아이들도, 혁이도, 자기도 많이 노력하고 있으니까 우리 시간을 갖고 기다려 봐요... 그러더라고요.

어느덧 2달의 시간이 흘렀고 소연 씨의 아들 혁이의 휴대 전화에는 같은 반 친구들 전화번호 2개가 저장돼 있습니다. 차차 더 많은 친구들이 생기겠죠...

남한 사회에 와서 부모가 적응을 위해 분투하는 사이 아이들 역시 이 사회에 살아가기 위해 자기와의 싸움을 시작합니다.

결코 쉽지 않지만 반드시 이겨야 하는 싸움이기도 합니다.

소연 씨는 또 혁이를 학교에 보내면서 궁금한 것이 하나 생겼는데요. 뜨겁다 못해 약간 도를 넘은 듯 보이는 남한 사회의 교육열이 이해가 안 됩니다. 왜들 그렇게 공부에 목을 매는지... 그 이유, 다음 시간에 얘기해보겠습니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오늘 여기까집니다. 다음 주 이 시간 다시 인사드릴게요.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