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11월, 남한에 도착해 올해 남한 생활 4년 차를 맞고 있습니다. 2012년 아들을 데려와 혼자서 키우는 열혈 '워킹맘' 그러니까 일하는 엄마입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엔 남한 정착 9년차, 자강도 출신 탈북 기자 문성휘 씨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 친구 애들이랑 놀아주고 짐이나 봐주겠다는 마음으로 갔는데 미끄럼틀이 얼마나 좋은지 10번도 넘게 탔네요...
남한 전역에 내렸던 폭염 특보가 10일 오후 모두 해제됐습니다.
폭염주의보는 낮 최고기온이 33도 이상, 경보는 낮 최고기온이 35도 이상인 상태가 2일 이상 지속되면 내려지는데요. 대구 같은 지역은 17일 만에 폭염주의보가 해제된 겁니다.
그야말로 푹푹 찌는 여름... 차가운 계곡물과 파란 바다, 하다못해 개울물이라도 찾아서 떠난 사람들로 고속도로는 명절 때만큼 막혔습니다.
소연 씨, 문 기자도 빠질 수 없죠, 다녀왔습니다! 오늘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시원한... 물놀이 얘깁니다.
진행자 : 안녕하세요.
문성휘, 박소연 : 안녕하세요.
진행자 : 잘 들 지내셨습니까? 소연 씨는 굉장히 지쳐 보입니다.
박소연 : 더워서 죽겠습니다.
문성휘 : 습하고 날씨가 좀 답답하고요.
진행자 : 근데 소연 씨는 오신지가 벌써 몇 년째인데 아직도 남쪽 날씨에 적응을 못하셨어요. (웃음)
문성휘 : 남한 사람도 적응 못했을 겁니다. 가는 데마다 선풍기요, 냉방기요... 적응할 틈이 없잖아요?
진행자 : 또 여름 날씨가 더 더워지고 비도 많이 오고요. 남한 사람도 적응이 안 되긴 마찬가집니다. 그래도 이렇게 힘든 여름! 즐겁게 보낼 수 있는 방법도 있습니다. 물놀이들 다녀오셨습니까?
박소연 : 네, 다녀왔습니다.
문성휘 : 그럼요. 반두 가지고 고기잡이도 했습니다.
진행자 : 어디 다녀오셨어요?
박소연 : 저는 수원 수영장에 다녀왔고요.
문성휘 : 저는 영덕이라는 데 갔는데 경상도랑 전라도랑 경계선에 있는데요. 거기 가니까 지역 이름이 굉장히 재밌었습니다. 양강도 있고 혜산도 있고, 그래서 여기가 북한인가 그랬습니다. (웃음) 수영장은 아니고 계곡이었는데 깊은 산골자기여서 사람도 별로 없고 인가도 드물었고요. 물도 진짜 맑고 고기도 많고...
진행자 : 남한에서도 좀 시간을 들여서 멀리 가면 맑은 물을 만날 수 있어요. 그런데 서울 근교는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 워낙 많기 때문에 물 반, 사람 반... 어떤 때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기도 하죠. (웃음)
박소연 : 네, 제가 지금 바로 그 얘기 하려고 했습니다! 물보다 사람이 더 많은 것 같은데도 있어요. (웃음)
진행자 : 친구 분들이랑 같이 가셨어요? 그럼 북쪽식으로 어죽도 끓여 드셨겠네요.
문성휘 : 정말 고기도 많이 잡고 준비도 했었는데 술 먹다나니 다음날 12시 일어나서 어죽 쑤어먹을 시간이 없었습니다. 저희가 그 마을 경로당에서 잤는데요. 냉장고에 어르신들 어죽 끓여 드시라고 편지 써놓고 냉장고에 넣어놓고 왔습니다.
진행자 : 문 기자 계곡 자랑 들었으니 소연 씨 수영장 다녀온 얘기도 듣고 싶네요.
박소연 : 저번에 방송에서 얘기했던 25년 만에 만난 친구가 애들 데리고 수영장 놀러가자고 연락이 왔어요. 아마 다른 사람이 가자고 했으면 안 갔을텐데 그 친구 얘기니까 함께 갔어요. 그리고 하필 저희 아들은 학교에서 수영장에 간다고 빠졌고요. 친구 애들이랑 놀아주고 짐이나 봐주겠다는 마음으로 갔는데 친구가 그거 뭡니까... 수영복? 아래, 위 따로 있는 수영복이요.
진행자 : 비키니 말씀하시는 건가요?
박소연 : 맞아요. 저 입으라고 비키니 수영복을 준비해 왔더라고요. 거기 수영장에 여성들이 비키니를 많이 입었으면 저도 입었을 겁니다. 제가 봐도 나쁘지 않더라고요. (웃음)
진행자 : 아... 소연 씨 자랑 나왔습니다. (웃음)
박소연 : 아니, 몸매가 좋다는 게 아니라 내가 나이 먹기 전에 한번 까짓 거... 입어보고 싶더라고요. 끈이 목으로 이렇게 돌아가는 게 아주 예뻤는데 대부분 아주머니들이 반바지에 윗도리를 그냥 입어서 저도 그냥 겉에 옷을 입었습니다. 입고 보니까 수영장이 물도 깊지 않고 미끄럼틀도 있어서... 그 미끄럼틀이 얼마나 경사가 심한지 마지막엔 붕 뜨면서 물속으로 떨어지는데 속도가 빨라서 거의 바닥에 엉덩이가 닿게 떨어져요. 얼마나 좋은지 10번도 넘게 탔네요. (웃음) 저는 제가 그렇게 주력이, 힘이 좋은지 몰랐어요. 해만 나면 기운 없어 죽겠다, 힘들다 그랬는데 그 오르막을. 거기는 그렇게 큰 수영장이 아니라 다이빙대까지 수동으로 걸어 올라가야 합니다. 거기를 제가 막 젊은 애들을 제치고 빨리 타려고 뛰었습니다. (웃음)
진행자 : 그게 그렇게 좋으셨습니까? (웃음) 어릴 시절로 돌아가서 신나게 놀다오셨네요.
박소연 : 너무 좋고... 근데 50분 놀면 나가서 10분 휴식을 줘요. 그리고 물도 깊지 않은데 자꾸 모자를 쓰래요. 시끄러워서 벗으면 와서 벗지 말라고 하고. 그래서 그 아저씨 계속 째려보다 나왔네요.
진행자 : 모자는 머리카락 빠질까봐 위생상 쓰라는 것이고요. 50분 놀고 10분 휴식은 심장마비 등 물놀이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랍니다.
박소연 : 그리고 또 신기했던 게... 미끄럼틀에서 안경 쓴 사람이 탔는데 그 학생이 점프하는 순간 안경알이 쑥 빠졌습니다. 북한 같으면요. 찼던 시계를 잃어버려도 아무도 찾아주지 않습니다. 자기가 찾아야죠. 그런데 호각을 딱 불더니 줄을 딱 매요. 아니, 왜 못 들어가게 하냐고 그러니까 안경알을 다 찾을 때까지 못 내려간다고 하더라고요. 여자 직원분이 물속으로 딱 뛰어 들더니 조금 있다가 그 바닥을 헤매서 작은 안경알을 찾아서 갖고 나왔습니다. 다들 박수를 쳐줬다는데요. (웃음) 안경알이 뭐라고 그 많은 사람들을 못 들어가게 하고... 근데 저는 그걸 보니까 기분이 좋더라고요.
진행자 : 다칠까봐 그러는 거죠.
박소연 : 우린 상관없어요. 다치겠으면 다치고...
진행자 : 그러다 사람 다치면 수영장에서 보상해 줘야 합니다.
박소연 : 아, 그래서 그 여자 분이 그렇게 악을 쓰고 찾았나? (웃음) 아니 저는 규정도 그렇겠지만 좋아 보이더라고요.
문성휘 : 맞아요.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겠다는 취지가 얼마나 좋습니까...
진행자 : 그렇지만 북쪽에서 오신 분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시끄럽죠. (웃음)
박소연 : 아... 진짜 제 친구가 북한을 떠나온 지 20년이 넘어서 완전히 잊었는데 저를 보니까 북한에서 살았던 게 새록새록 떠오른다고요.
진행자 : 두 분이 어렸을 때 놀던 생각도 많이 나셨겠습니다.
박소연 : 내내 그 소리 했죠. 우리 압록강에서 다섯리터짜리 빵까통 안고 발 만 흔들어요. 앞으로 나가면...
진행자 : 튜브 말고 빵까통을 탑니까?
문성휘 : 특히 어린애들 같은 경우엔 구명조끼 같은 게 없으니까 그걸 갖고 놀죠. 여기는 여름철이 오기 전에 곳곳에서 즐거운 바다로 가자... 하면서 수영 도구들을 엄청 파는데요. 제일 멋있던 게 북한에서 말하는 개구리 발, 오리발이요.
진행자 : 그게 한 20달러 정도면 사죠.
박소연 : 저는 그 오리발 하면 생각나는 것이 그림책에서 남조선 간첩들이 들어올 때... 저는 항상 그 기억이 나요. 간첩들이 오리발을 바위 뒤에 숨길 때 인민군대가 손들엇! 딱 이러는 장면이요. (웃음) 그래서 저는 오리발하면 간첩 생각이 나네요.
문성휘 : 남한에서는 그걸 상점에서 팔아요. 그걸 끼면 바다에서 수영을 속도 있게 할 수 있고요. 해녀들이 꼭 그걸 끼고요.
박소연 : 근데 수영장을 새파란 색으로 칠해서 그런지 물이 맑고 깨끗해 보여요. 뭐 사람이 그렇게 많이 들어갔는데 깨끗하겠어요? 그래도 깨끗해 보이더라고요. 그런데 그 파란 물을 보니까 저희가 탈북할 때, 라오스에서 태국으로 넘어갈 때 메콩 강을 건너던 생각이 났습니다. 저희는 장마철에 건너서 그 악어 강이 그냥 누런 진흙물이었습니다. 라오스까지 우리를 데려왔던 브로커들이 긴 장대를 쥐고 우리를 염소처럼 쫓았어요. 날이 밝게 되면 경찰들이 나온다고, 잡히면 안 된다고, 넘어가서 잡혀야 한다고... 멀미를 해서 토하는 우리를 장대로 밀면서 조바! 조바! 중국말로 빨리 가라는 얘깁니다. 아무리 둘러봐도 구명대도 없고 어디 잡을 것도 없고 동복을 입고 배낭을 잡고 그냥 떨고 앉았었어요. 그 배가 뒤집히면 애기까지 다 죽어야 했으니까요. 그 때 강 건너는 시간은 20분밖에 안 됐는데 그 시간이 영원인 것 같았죠. 그 파란 물을 보고 있는데 왜 그 때 그 누런 물 생각이 나나요. 그 누런 물을 건너왔으니까 내가 여기서 이렇게 있을 수 있구나... 눈물이 났습니다.
진행자 : 왜 파란 물을 보며 하필 그 생각이 났을까요...
박소연 : 제가 수영을 못 하니까 목도 안 오는 물에도 구명대를 빌렸습니다. 5천원 주고 대여를 했어요. 행복하면 과거를 잊어야 하는데 그게 본능이 아니더라고요. 그 때 구명대 없어서 무서웠던 생각, 이게 뒤집히면 난 악어 밥이 되겠다, 내 아들은 꽃제비가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 때문에 그 때는 참 슬펐습니다. 무서웠고요. 여기 오니까 수영을 배운답시고 허리춤에 오는 물에서 생돈 주고 구명대를 빌려서 입고 있고... 그런 생각 끝에 낸 결론은 수영장에 돈을 내지 말고 그냥 배재를 넘어올 걸 아까워라... (웃음)
저도 이 수영장에 매년 여름 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세련되진 않았지만 온 가족이 함께 갈 수 있는, 당시에는 냄비랑 끓일 것도 싸가지고 가서 음식도 해먹을 수 있는 수영장이었는데요. 요즘도 검열이 약간 느슨해서 사람들이 배재를 넘어 몰래 들어가기도 한답니다. 소연 씨는 나중에 이걸 알고 돈 내고 들어간 게 그렇게 아까웠답니다.
저는 여름하면 당시에도 별로 좋지 않았던 그래서 편했던 이 수영장이 생각나는데요. 소연 씨는 이곳에서 누런 메콩 강의 물을 기억했습니다.
문 기자는 물만 보면 압록강을 건너던 기억이 난다고 합니다. 뿌연 연무에 싸여서 앞이 보이지 않던 그 강으로 뛰어들던 그 날, 강은 무서웠습니다.
청취자여러분들은 물, 강하면 뭐가 떠오르십니까?
남은 얘기는 다음 시간 계속 됩니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지금까지 진행에 저는 이현주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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