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인상(1)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11월, 남한에 도착해 올해 남한 생활 3년 차를 맞고 있습니다. 2012년 아들을 데려와 혼자서 키우는 열혈 '워킹맘' 그러니까 일하는 엄마입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엔 남한 정착 8년차, 자강도 출신 탈북 기자 문성휘 씨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 제가 얼마나 경험이 없는지, 전화기에 대고 "저 월급 얼마 줄 거예요?"하니까 그쪽에서 대답을 못하더라고요. 제가 그 회사에 들어가서 일화가 됐어요.

남한에서는 첫인상이 중요합니다. 사람을 만날 때, 취업을 위해 면접을 볼 때... 밝고 긍정적인 모습을 보이면서도 자신의 의견을 차분하게 드러낼 줄 알아야 하고요. 주위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도록 사회적이고 친화력 있는 성격이라면 금상첨화죠.

그런데 소연 씨는 북한에서처럼 강하게 밀고 나갔습니다. 상냥하고 활달한 남한 사람들을 보며 처음에는 간지러웠다고 하는데요. 남한생활 3년 차인 그녀, 지금은 어떻게 변했을까요? 소연 씨 얘기 들어보시죠.

진행자 : 안녕하세요.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새롭게 진행을 맡은 윤하정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두 분은 여러 해 동안 함께 방송을 해온 것으로 아는데요. 저는 오늘 처음 뵙는 거잖아요. 제 첫인상 어떤가요?

문성휘 : 좀 부드럽고 예쁜데 기왕이면 화장이랑 좀 진하게 하고 오지... 그런 생각이 들어요.

진행자 : 소연 씨는 어떠셨어요?

박소연 : 옷차림 자체를 연한 색깔을 선택해서 사람이 유해보이고 유연해 보여요. 그렇지만 북한 말로 편편하진 않겠다..

진행자 : 편편하진 않겠다?

박소연 : 만만하지는 않겠다... 이걸 북한 말로는 '쟤 편편하지는 않겠다'..

진행자 : 맞습니다. 저 편편한 사람 아닙니다.

박소연 : 알겠습니다.

진행자 : 네, 저희가 오늘 첫인상에 대해 얘기를 할 건데요. 사실 남한에서는 첫인상이 굉장히 중요한 편에 속하거든요.

자료를 조사해봤더니, 미국의 사회학자 메르비안 박사가 이런 얘기를 했어요.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과정에서 상대방의 첫인상이 주는 법칙이 있는데요. 4초 만에 100% 중에 80%의 이미지가 형성된다고 합니다. 또 30~40초 안에 처음 보는 사람에 대한 호감과 반감의 감정이 판단되는데요. 이때 언어적인, 그러니까 청각적인 요인은 38%, 나머지 55%는 시각적이라고 해요. 전체적인 외모, 옷차림, 이런 것들이 아닐까 싶은데 북한에서도 첫인상이 중요한가요?

박소연 : 북한에도 그런 말이 있어요. 첫인상이 마지막 인상이다.. 그러니까 대표적으로는 첫인상이 좋아야 된다.. 그런데 북한이라는 게 더불어 사는 세상이 아니다 보니까 사람마다 인상이 안 예뻐요. 북한 말로 첫인상이 곱지 않아요. 그게 원인이 내가 상대를 처음에 대할 때 곱게 보고 부드럽게 보이면 쟤가 나를 만만하게 보고 그냥 나를 속여 먹고... 이런 부담감이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일부러라도 인상도 쓰고 앉아서, 처음부터 아주 세게 나와요.

진행자 : 남쪽에서는 약간 센 이미지를 유하게 보이려는 경향이 있고요, 첫인상으로. 그러면서도 내 안에 무언가 뚝심이 있다는 이런 걸 보이는 이미지가 강하다면 북쪽에서는 좀 강한, 나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하는 이미지가 강하다는 말씀인가요?

박소연 : 상대한테 없이 보이지 않게, 사람마다 달라요. 문 기자님은 어떠셨어요?

문성휘 : 북한에 가면 굉장히 다툼이 많고 싸움이 많아요. 대한민국 같은 경우는 길거리에서 다투거나 아니면 부부간이 다퉈도 즉시 경찰이 뛰어오잖아요. 그런데 북한은 그런 걸 상관도 안 해요. 그러니까 사람들은 될수록 자기를 감추려고 해요. 인상을 남에게 표현을 안 해요. 왜냐면 상대를 모르면 함부로 상대한테 접근을 못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평범한 사람들이 만났을 때 첫인상은 될수록 강하게 나가려고 해요.

진행자 : 두 분이 말씀하신 걸 종합해 보면 일단 북한에서의 첫인상이라는 건 나를 좋게 보이는 것보다는 어떤 스포츠, 운동 경기에서 상대를 제압하는 그런 걸 기선제압이라고 하잖아요. 약간 그런 차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요. 그러니까 강인한 이미지를 보여주는 게 중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고요.

문성휘 : 맞아요. 상대의 기선을 제압한다. 북한에서 일반적인 노동과 배치를 받아서 사회에 진출하는 사람들은 어디를 가든 기선을 제압하려고 해요. 첫인상은 매우 강하게 나가려고 하고, 솔직함, 부드러움이 없어요. 무척 딱딱한 사회...

진행자 : 개인과 개인이 만날 때도 그렇지만 사실 첫인상이 중요한 경우 바로 취업 면접시험 때가 아닌가 합니다. 실제로 남한에서는 직업별로 원하는 인재가 따로 있어서 면접시험으로 당락이 결정되기도 하는데요. 예를 들어 저희처럼 방송하는 사람들은 부드러우면서도 똑 부러지는 면을 보여줘야 하고요. 승무원들은 단정하면서도 역시 유연한 모습이 강조되곤 하죠. 그래서 직업 별로 면접 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한 학원이 있을 정도고요. 또 요즘 대학생들은 면접시험을 위해서 모여서 공부를 하더라고요. 면접관이 이런 걸 물어볼 수 있으니까 이렇게 대응하자.. 이런 식으로.

문성휘 : 물론 면접의 종류에 따라 북한에도 면접이 있어요. 문화예술인이나 간부처럼 남들이 부러워하는 그런 일자리를 갈 때는 옷차림이나 인상도 신경을 쓰는 부분이 많아요. 그런데 노동과 배치, 그러니까 노동자나 농민이나 그런 배치를 받을 때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데..

또 대한민국은 누구나 자기 선택권이 있잖아요. 기회라는 게 있잖아요. 내 마음대로 공장을 선택하고 마음에 안 들면 다음 날로 그만 둘 수가 있잖아요. 북한은 그런 권한이 없어요. 내가 싫든 좋든 '너 여기 가서 일해!' 억지로 들어갔는데 거기 가서 인상 좋게 할 이유가 뭐예요. 거기 간부나 지배인, 소장 이런 사람한테 우리가 좋게 보일 필요가 없거든요.

여기서는 처음에 들어갔을 때 살뜰하게 보이기 위해서 노력하고 부드럽게 보이려고 허리도 90도로 굽혀서 인사하고, '김치' 하며 환하게 웃는 연습도 하고 그렇잖아요. 북한은 그런 게 없어요.

진행자 : 북한에서와 남한에서의 첫인상이라는 개념, 본인의 첫인상을 만드는 게 다르니까 면접시험 보실 때 초반에는 몇 번 정도 낭패를 보셨을 것 같아요. 그런 경험담 없으세요?

박소연 : 제가 지금 다니는 직장인데, 글도 쓰고 방송도 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 해서 제가 전화를 했어요, 고용주한테. 이것저것 물어보시더니 그럼 이력서하고 기사 하나 써서 이메일, 전자우편으로 보내라... 며칠 있다가 전화가 온 거예요. 한 번 회사로 나와 보라고. 그런데 제가 얼마나 경험이 없는지, 남한에서는 고용주를 대표라고 하잖아요. "대표님 저 월급 얼마 줄 거예요?" 하니까 그쪽에서 대답을 못하더라고요. 당황하시더라고요. 제가 그 회사에 들어가서 일화가 됐어요. 세상에 이런 여자가! 그 얘기를 지금도 하세요.

문성휘 : 처음에 여행사, 좋은 직업을 가졌댔어요. 그런데 나 스스로 나오게 되더라고요. 금방 하나원을 졸업하고 나오니까 하나원에서 배운 컴퓨터 실력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정말 그 직업을 놓치기가 안타깝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컴퓨터나 이런 거, 그리고 한국의 현실생활을 잘 모르니까... 한 달 만에 북한과는 완전히 질적으로 다른 사회라는 걸 알게 된 거예요.

그리고 사람들의 업무능력이... 북한은 그래요. 한 20분 일 하고 30분은 모여 앉아서 얘기를 해요, 직장에서. 끊임없이 일한다는 게 없어요. 여기는 일단 시작하면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잖아요. 그래서 일 능률을 높여야 하는데, 북한은 이게 국가계획경제, 집단주의라는 게 이래서 나쁜 거죠. 국가에서 시키는 일을 하니까, 내 일이 아니니까 성의가 없는 거죠. 시간을 채우는 게 북한의 직업이에요. 그런데 한국에 와서는 그게 아니라는 걸 느꼈어요. 그러니까 내가 과연 이 사회를 어떻게 헤쳐 나갈까...

박소연 : 그리고 제가 일하는 사람들이 다 남한 분들인데, 회식이나 가게 되면 처음 가는 손님이라도 "안녕하세요. 이것 드세요." 하니까 그 분들이 정말 좋아하는 거예요. 저희는 아직도 적응이 안 되면서 '왜 이렇게 간질간질한 말을 써...' 여기는 누가 말하면 거기에 맞장구를 쳐요. "아, 정말요? 그래요?" 근데 우리는 자기 일이 아니면 그냥 음식을 먹어요. 그냥 자기 일만 하는데, 남한에서는 서로 공유해주고 맞장구를 쳐줘요. 지금도 아직 적응이 안 돼요.

진행자 : 요즘은 어떠세요? 지금도 누가 말할 때 가만히 계세요? 아니면 "맞아요! 그래요?" 대꾸를 해주는 편인가요?

박소연 : 오늘도 회사에 외국 손님이 오셨는데, "안녕하세요" 하면서 커피도 타다주고 했더니 그분들이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식사도 같이 하고 했는데, 북한에서 말하면 언가살, 애교도 사회 생활하는데 괜찮다... 분위기 좋잖아요. 지금 변화하는 과정이에요.

문성휘 : 집단주의 사회는 늘 그래요. 자기 속을 감추려고 해요. 드러내려고 안 해요.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 와 보니까 될수록 자기를 소박하게 드러내려고 해요. 그러면서도 자기의 강인한 의지라든가.. 내가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그런 인식을 상대에게 심어주는 거예요. 오히려 북한처럼 자기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한다면 '얘는 뭔가 솔직하지 못하다'고 인식될 수 있잖아요.

한국은 '열린사회' 이런 말을 많이 하잖아요. 사람 마음도 확 열려 있는 거예요. 그런데 처음에는 저희들 정말 이해도 공감도 안 되고, 적응이 정말 안 되더라고요. 탈북자들 '적응기간, 적응기간' 하는 이유가 그거예요.

진행자 : 문 기자께서는 남쪽에서 생활한 지 오래됐다고 들었는데, 그런 것들이 좀 적응이 되셨어요? 마음을 터놓고 얘기 한다거나..

문성휘 : 그런데 그게 잘 안 돼요. 나이 먹은 탈북자들 다 그런 얘기하잖아요. 이런 줄 알았으면 왜 10년 전에 오지 못했을까... 20년 전에 못 왔을까... 늘 부러운 게 젊은 애들이에요. 북한에서 살던 청소년들 한국에 오면 빨리 적응해요. 아무것도 북한의 물이 들지 않았고 그러니까 한국의 문화를 빨리 받아들이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이미 굳어졌어요. 우리가 지금 얘기하는 것도 딱 드러나잖아요. 우리 딴에는 그래도 한국말을 많이 배웠다, 하지만 완벽하지 못하잖아요. 그거랑 똑같은 거죠.

지금 처음 오는 사람들은 정말 한심해요. '아, 우리도 저런 과정을 거쳤겠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지금도 내가 어디 가서 직업을 바꾸거나 하면 저를 채용하는 사람들도 정말 한심하고 답답하다고 느끼지 않을까... 저 사회가 심어준 씨앗이 너무 오래가는 거예요...

진행자 : 같은 무리끼리 모여 이루는 집단을 사회, 그리고 그 사회에 적응하는 개인의 소질이나 능력, 대인 관계의 원만성 등을 사회성이라고 하는데요. 서울에서 자동차로 한두 시간 거리에 있는 북한인데도 남과 북은 전혀 다른 사회를 이루고 그래서 구성원들도 전혀 다른 사회성을 드러낸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첫인상에 대한 개념도 이렇게나 다르네요.

첫인상은 비단 한 사람으로 부터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죠? 어딘가에 갔을 때 어떤 사람들을 만나 어떤 경험을 하느냐에 따라 그 지역이나 나라에 대한 첫인상도 만들어지는데요. 소연 씨는 처음 남한에 왔을 때 어떤 인상을 받았을까요? 이 얘기, 다음 시간에 이어가겠습니다.

오늘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는 여기까집니다. 다음 주 이 시간에 다시 인사드릴게요.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