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인상(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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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11월, 남한에 도착해 올해 남한 생활 3년 차를 맞고 있습니다. 2012년 아들을 데려와 혼자서 키우는 열혈 '워킹맘' 그러니까 일하는 엄마입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엔 남한 정착 8년차, 자강도 출신 탈북 기자 문성휘 씨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 웬 잘생긴 사람이 나오더니 '대한민국에 온 걸 환영한다'고, '우리는 여러분을 환영한다'고. 그 첫 말에 우리가 울었어요.

"대한민국에 온 걸 환영합니다." 소연 씨가 남한에 도착해서 들은 첫 문장입니다. 덕분에 소연 씨는 북한을 떠나 처음 타보는 비행기, 공항에서 바삐 지나치는 사람들 속에서 느낀 낯설고 조금은 울적한 마음을 위로받을 수 있었습니다.

남한에 대한, 그리고 남한 사람에 대한 그녀의 첫인상은 어땠을까요? 처음 받은 느낌은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지기도 하는데요. 남한생활 3년 차인 그녀,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소연 씨 얘기를 계속 들어보시죠.

진행자 : 우리가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도 첫인상이라는 게 있지만 어떤 대상이나 어떤 지역에 처음 갔을 때도 첫 느낌이라는 게 있잖아요.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일을 겪느냐에 따라 그 나라나 지역에 대한 첫 느낌, 인상이 결정되는 것 같은데요. 두 분은 큰 모험을 하셨고, 그래서 남한이라는 새로운 곳을 경험하게 됐는데, 분명히 첫 느낌이 있었을 것 같아요. 남한에 대한 첫 인상, 기억나는 게 있나요?

박소연 : 저희는 다른 나라를 경유해서 오잖아요. 남한에서 인천공항이라는 곳에 들어섰는데, 사실 비행기 타고 오면서 음식도 잘 안 맞았어요. 쓴 커피도 주고 하니까..

비행기를 태어나 처음 타 보는 사람들이잖아요. 비행기가 땅으로 꽂힐 때는 귀에서 북한 말로 귀채가 떨어질 정도로 윙하고 속이 안 좋았어요. 비행장에 내렸을 때는 비까지 억수로 와서 기분도 울적하고. 그렇게 공항에 도착했는데 숱한 사람들이 지나가는데 우리한테 무관심한 거예요. 우리는 오고 싶었던 곳이고, 보는 사람마다 반가워할 줄 알았는데...

그런데 버스에 탔는데, 한 잘생긴 남자가 나오더니 '대한민국에 온 걸 환영한다'고.. 우리를 마중 나온 선생님이었어요. 그분은 남한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잘 생겼더라고요. 문 기자한테는 미안한 말이지만, 북한 여자들은 북한 남자들보다 남한 남자들이 더 잘생겼다고 생각하거든요(웃음). 그런데 그 분이 말을 정말 부드럽게 해주는 거예요. "대한민국에 온 걸 환영합니다. 여기는 여러분이 오고 싶어 하던 대한민국입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울었어요.

이후에 (탈북자심문)합동센터까지 가는데 도시에 나무가 가득한 거예요. '아, 이 나라는 잘 사는 나라구나..' 나무는 그 나라의 재산이잖아요. 북한은 도시와 인접한 산은 다 벌거숭이고 밭이에요. 일부러 심어놓은 몇 그루를 제외하고는 나무를 보기가 힘들어요. 그리고 저희가 새벽에 도착했는데, 굴뚝에 연기 나는 집이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모두 전기난방인 거죠. 그 첫 모습, 현실을 보고 '아, 진짜 우리보다 한 세기가 앞선 나라구나..' 남한에 대한 저의 첫인상은 그랬어요.

진행자 : 문 기자는 어떠셨어요?

문성휘 : 저는 인천공항에 내렸을 때 기가 팍 죽었어요. 왜냐면 저희들 인식에는 비행기는 정말 돈 많은 사람들, 웬만한 사람들은 못 타는 거잖아요. 그렇게 큰 공항, 그 건물 자체가 굉장히 크고 화려한데 옷차림도 형형색색인 사람들이 저마다 가방을 들고 이동하는 걸 보면서 기가 죽었어요. '여기 있는 사람들은 돈이 얼마나 많을까.. 저 비행장에서 저렇게 가방을 들고 당당하게 다닐 날이 과연 나한테 올까..'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우스운 거죠(웃음).

저희는 저녁에 왔는데 고속도로 가로등이 쭉 켜져 있는데, 한편으로는 '우리를 위해서 일부러 켜 놓았나.. 도대체 뭘 하는 건가' 북한은 가로등이라는 게 없어요, 사람 안 사는 곳에는. 자동차 조명으로 가면 되는데 가로등이 다 켜져 있으니까 '지금 우리한테 너희 힘 있는 걸 드러내려는 것이냐, 우리 기를 죽이려는 거냐?' 이런 생각이 들었고.

그 다음 하나원에 갔는데, 하나원 선생들이 아침에 출근할 때 자동차를 척 타고 오는 걸 보면서 '저 사람들은 돈이 얼마나 있을까..?' 저희들은 그때 차 종류도 몰라요. 이름도 제대로 모르니까. 차를 타고 들어오는 걸 보면 정말 신기하고. 우리는 언제 자동차를 타 볼까...

진행자 : 두 분이 남한에 와서 처음 만난 사람들이 하나원 담당자들인데, 하나원 담당자들은 탈북자를 위한 분들이니까 실질적으로 남한 사회에 나와서 만난 사람들은 확연히 다른 면이 없지 않아 있었을 것 같아요. 남한 사회, 남한 사람들에 대한 첫인상은 어떠셨는지, 또 첫인상에 대해 생각했던 어떤 편견,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까 이렇게 달라지더라' 이런 것도 얘기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박소연 : 저는 사회생활을 해 보니까 '남한 사회가 내가 생각했던 첫인상하고는 다르구나...' 그냥 회사에 들어왔을 때는 옆에 있는 선배한테 이것저것 물어봐서 '할 만 하네...' 그렇게 생각하고 북한 말로 편편하게 생각하고 시작했어요. 그런데 1년이 지나고 시간이 감에 따라 내가 할 몫은 실력이 딱 나타나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못하고 뒤지게 되면 벌써 사람들 눈치가 보이고, 북한 말로 떨어지거나 잘려요.

북한에서는 모두가 합쳐서 일을 하니까 누가 못하고 잘하고 상관이 없어요. 그런데 남한은, 첫인상은 "우리 서로 도우면서 잘 해봐요, 부탁해요." 이러면서 아주 좋은데, 일단 일에 들어가면 첫인상하고 다른 거예요. 내 노력과 실력, 내가 열심히 하지 않고는 안 되는 거예요. 지금은 경험하는 과정이지만, 시간이 지나도 상황은 같을 것 같아요. 남한은 처음에는 아주 인상 좋은 사회지만 공과 사가 분명하고, 실력이 정확히 확인되는 세상이구나... 그걸 깨닫고 있는 과정이에요.

진행자 : 개인적으로는 편하고 따뜻하게 대하지만 일적으로 들어가면 확실하게 처리하는...

박소연 : 네.

문성휘 : 사회에 처음 나와서 만나는 사람들은 복지관이나 적십자에서 나온 도우미들이잖아요. 그분들을 처음에 만나고 그 다음에 담당 경찰들이 저희를 맡잖아요. 처음에 왔을 때 그 도우미분들 저희를 많이 도와주려고 애를 썼어요. 실제로 많이 도와줬고. 그런데 저는 그게 굉장히 부담스러웠어요. 우리는 탈북자니까, 북한은 늘 서로가 감시하는 사회가 아니에요. 그러니까 남한에 대해서도 북한처럼 생각하는 거예요. 도우미들이 계속 전화를 걸고, 시도 때도 없이 반찬 등을 들고 집에 찾아와요. 그러면 "이 사람들 왜 자꾸 찾아오지, 내가 그렇게도 궁금하나?" 계속 나를 감시하는 것 같고.

지금 생각해보면 한국사회에 대해서 처음부터 알았더라면 그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지 않았겠나... 그때 북한의 시각을 버리지 못해 아까운 인연들을 다 놓친 게 지금도 후회되고요. 애초에 칸막이가 많고 담장이 높은 사회에서 살다 보니까 저희가 이해할 수 없었던 거, 그게 도리어 서러웠고, 좀 억울했고, 이렇게 돌이켜 보니까 눈물이 나고, 서럽기도 해요.

진행자 : 사실 남한 내에서도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고 성향이 달라서 개인차가 많지만 어떻게 보면 서울에서 한두 시간 자동차로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북한인데 굉장히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러 말씀들을 해주셨는데, 왜 이렇게 됐을까, 이런 것도 얘기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문성휘 : 사람은 항상 자기 잣대로 상대를 재려고 하지 않느냐, 남한 사람은 남한 잣대로, 북한 역시 자기네 기준으로 남한을 재단하려는 거예요. 그러니까 화해가 잘 안 되고. 결국 남과 북의 인상싸움이 아니겠어요. 우리가 과연 인상싸움을 해야겠는가...

인간관계도 같은 거죠. 저는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정말 인상싸움을 많이 한 것 같아요.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배우라고 하지 않았어요. 자기만의 잣대, 우리가 처음 북한이라는 잣대를 버리지 못했던 탓에 아까운 인연들, 소중한 인연들 많이 놓쳤어요. 이제라도 지금 오는 탈북자들, 북한을 향해서도 남과 북이 잣대를 버리고 접근하는 게 좋지 않을까...

인생이라는 게 자기를 열어놓는 건데, 북한이라는 사회가 그렇지 못했다는 게 안타깝고, 처음 자본주의 사회에 와서 그걸 이해를 못했던 게 지금도 후회가 많이 돼요.

진행자 : 소연 씨는 어떠세요?

박소연 : 문 기자가 얘기한 것처럼 그 사회에서 살았으니까 세뇌라는 게 정말 핵폭탄보다 무서운 것 같아요. 그걸 뿌리를 뽑는다는 게, 지금은 뽑아가는 중이니까 아직은 완성은 안 됐지만. 우리가 처음에 만났던 인연들, 우리 처음 인상에는 간드러지는 말투, 우리에게 관심을 보이고 배려하는 마음이 북한 말로는 시끄럽고, 왜 이럴까... 왜 나를 감시할까... 오해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게 우리 잘못이 아니에요. 정권이 그렇게 세뇌를 시켰기 때문에 상대를 믿지 못하고 그랬어요.

지금은 그 간지러운 말투가 겉치레가 아니라 우리를 품어주려고 했던, 순수한 마음에서 출발했다는 게 지금은 이해가 돼요. '그때 그분들이 우리를 반갑게 대해준 게 가식이 아니었구나...' 그때는 몰라서 놓쳤지만, 그 첫인상이 가식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으니까 이제는 그 인연을 소중하게 여겨야겠다... 생각을 많이 하는데 그래서 이제는 서로 잃기도 하고 얻기도 하면서 남한 사회에 적응을 해야겠다고 생각해요.

문성휘 : 간단히 말하면 그렇죠. 내 인상은 내 인생을 바꾸는 시작이다... 북한 사람들도 이제는 마음의 문을 깨뜨리고 세계의 흐름, 급변하는 사회에 맞춰서 문을 열어놨으면, 인상을 좋게 펴고 서로 화합이 됐으면... 그러니까 내 인상은 내 인생을 바꾸는 시작이다!

박소연 : 네, 맞는 것 같아요(웃음).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특성, 그러니까 개성이 있고, 지역에 따라 독특한 지방색을 드러내기도, 나라별로 고유의 민족성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특성들이 처음 만났을 때 특별한 느낌, 첫인상으로 각인되는 것이겠죠.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 만남이 잦아지면 서로의 다른 점을 인정하고 첫인상이 얼마든지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을 확인합니다. 하지만 교류의 기회가 없다는 것, 그래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이해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 지금 남북한의 안타까운 점이 아닐까 합니다.

소연 씨는 남한에서 앞으로도 수많은 '처음'을 경험하게 되겠죠? 편견이나 오해 없이 어떤 상황이든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또 대처할 수 있도록 오늘도 힘차게 걷고 있는 그녀의 발걸음을 응원하고 싶네요.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첫인상'에 관한 얘기는 여기까집니다.

진행에 윤하정이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