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11월, 남한에 도착해 올해 남한 생활 5년 차를 맞고 있습니다. 2012년 아들을 데려와 혼자서 키우는 열혈 '워킹맘' 그러니까 일하는 엄마입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엔 남한 정착 10년차, 자강도 출신 탈북 기자 문성휘 씨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박소연 : 저는 억년 살아도 이해 못 할 것 같아요. 너무 무서워서 꿈에 나타날 것 같은데 그걸 왜 보나요. 문성휘 :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됐는데... 요즘은 괜찮아졌습니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땀이 한번 죽 나면 그게 그렇게 시원하더라고요.
오싹한 공포 영화가 한 여름 더위를 식혀주느냐 아니면 더운 여름 밤, 더위와 같은 악몽을 선사하느냐... 두 사람의 의견은 다른데요.
탈북의 과정이 고스란히 영화 장면마다 겹쳐 떠오르는 소연 씨는 아직 공포 영화를 보지 못 합니다. 그래서 이 공포를 떨치는 것이 소연 씨에겐 여전한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여름과 공포 영화, 마지막 시간입니다.
박소연 : 남한은 자체적으로 사람들이 휴가를 가지만 북한은 항상 8월이면 가족들이 다 함께 산에 가서 반항공 훈련을 했습니다. 그게 가만 보면 놀러가는 것이었어요. 야외로 나가서 다 같이 하루밤 자고 오니까요. 그런데 협동 농장에서는 반항공 훈련 한다고 하면 땅을 치죠. 올 해 농자 망했다고. 여물지도 않은 강냉이 밭에 들어가서 이삭채 다 따니까 관리원들이 농장들에서 가을을 다 하고 난 다음에 훈련을 해달라고 제기하고 했습니다. (웃음)
진행자 : 그래도 항상 훈련은 8월에 해야했군요.
박소연 : 그렇죠. 북한도 규정이 있어요. 일 년에 몇 번씩 몇 월에 해야 한다는.
문성휘 : 대피훈련할 때는 가족이 다 가야하는데 애들 방학이 그때라서 일정을 그때로 맞춘 것이죠.
진행자 : 지금 두 분이 말씀하시니까 기억이 나는데 남한도 80년대엔 등화과제 훈련이라는 걸 했습니다.
박소연 : 아 그건 북쪽에도 있었습니다. 이름도 똑같네요. 등화관제.
진행자 : 제 기억에 그 걸 여름에 했습니다. 온 식구들이 옥상에 올라가서 깜깜하게 불을 끄고 있다가 훈련이 끝나는 사이렌과 함께 내려왔던 기억이 납니다. 깜감한 밤에 별도 진짜 잘 보였는데요...
박소연 : 북한도 내가 어렸을 때는 창문에 크라프트 지를 매달아 놓았다가 사이렌 소리와 함께 종이를 내려 불이 안 새어나가게 했는데요. 90년대 이후에는 불도 안 오는데 무슨 등화관제 훈련이 필요해요?
문성휘 : 맞다. 김일성 사망하기 전까지 고난의 행군전까지는 매 집집마다 종이를 감아서 창문에 매달아 놓았었습니다. 그러다가 불도 안 오니 안 했죠.
박소연 : 지금은 왜 남북이 모두 그걸 안 하는 건가요?
문성휘 : 지금은 드론이 싸우는 때인데 등화관제 훈련이라는 게 필요하겠습니까? (웃음)
진행자 : 우리가 공포 영화 얘기를 계속 했지만 두 분 모두 즐기지 않는 것 같고... 그럼 이번 여름 휴가는 어떻게 보내셨나요?
박소연 : 합리적으로 보내려고 합니다. 한국은 휴가철이라는 게 지정돼 있어서 사람이 많을 때 가면 돈도 많이 들고 힘들기만 해요. 사람이 좀 줄어들고 차 값도 싸지는 가을에 아들과 함께 제주도를 가고 싶습니다. 거기서 오르막 길인가 내리막 길인가를 걸어볼까 합니다. 그 때는 비키니를 안 입으니 아들이 나를 모른 척 안 할 것 같고... (웃음) 둘이 손 꼭 잡고 갔다 오고 싶습니다.
진행자 : 문 기자는요?
문성휘 : 강화도 다녀왔습니다. 휴가철에 어디 가면 비싸니까 그 전에 일찍 다녀왔습니다. 가까운 강화도로 갔는데 바닷물에도 못 들어갔지만 좋았습니다. 비오는 날에 논에 대는 물이 바다로 빠져 나오는 수문 앞에서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웃음)
박소연 : 이 기자는 휴가를 어찌했나요?
진행자 : 아직 계획이 없습니다. 저야 말로 저렴하고 빠르게 영화관으로 공포 영화를 보러 가야하게 생겼습니다. (웃음) 그러나 저도 사람들이 막 피서를 가고 여행을 떠나니까 마음이 동해요. 저도 떠나고 싶습니다!
박소연 : 근데 저는 참 그 떠난다는 말이 싫었습니다. 떠난다고 길을 나섰는데 고향을 영원히 떠나게 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한국에 와서 방송에서 막 '여행을 떠나요...' 이런 노래가 나오면 어이구...! 한번 실컷 떠나봐라, 다시 못 갈 길을 떠나면 저런 노래를 부르겠냐 빈정거렸는데요. 내가 직장에 다니고 계속 바쁘고 하니까 갑자기 일하다가도 북한식 표현으로 아들이고 띡대가리고 모르겠다고 하고 차타고 어디 멀리 가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웃음) 일상에서 다만 몇 시간이라도 좀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죠.
진행자 : 우리가 공포 영화 얘기를 했는데요. 소연 씨는 옛날일 떠올라서 못 본다고 했죠? 조금만 있으면 공포 영화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박소연 : 눈이 크면 겁이 많다고 하잖아요? 제가 일반 사람의 눈이 2배이니 2배는 늦게 볼 것 같습니다. (웃음) 만약에 우리가 하는 방송이 북한 방송이라면 저는 이 기자에게 '열심히 하겠습니다. 꼭 고칠 겁니다!' 그렇게 말하겠지만 이건 남한에서 하는 방송이 아닙니까? 솔직히 저는 그게 고쳐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앞으로 못 볼 것 같아요. 노력한다고 되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가위를 베고 자고 그러면서 나름대로 노력하지만 안 되네요.
문성휘 : 그러나 이겨낼 수는 있습니다. 만약에 그걸 이겨낼 수 없다면 전쟁에 나갔던 사람들은 영원히 그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 하지 않을까요?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이겨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소연 : 사실 아들을 데러 오기 전에는 더 했습니다. 울지 않은 날이 없었고요. 이제는 울지 않으니까 나아진 것인가요? 문 기자는 이제 여유가 있어 보이는데요. 나도 이제 몇 년 후에는 누군가에게 너도 괜찮아 질거야... 이런 말을 해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랬으면 좋겠어요...
모기 입이 삐뚤어진다는 처서가 지납니다. 벌써 8월도 막바지, 맹위를 떨치던 더위도 시간과 함께 자연히 물러가겠죠. 소연 씨를 비롯한 많은 탈북자들의 악몽도 시간이라는 약으로 서서히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청취자 여러분들은 유난히 무더웠던 이번 여름과 함께 무엇을 떠나보내고 싶으십니까?
다음주, 가을의 시작에서 뵙겠습니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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