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 그 강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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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11월, 남한에 도착해 올해 남한 생활 4년 차를 맞고 있습니다. 2012년 아들을 데려와 혼자서 키우는 열혈 '워킹맘' 그러니까 일하는 엄마입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엔 남한 정착 9년차, 자강도 출신 탈북 기자 문성휘 씨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 친구 애들이랑 놀아주고 짐이나 봐주겠다는 마음으로 갔는데 미끄럼틀이 얼마나 좋은지 10번도 넘게 탔네요...

소연 씨가 친구 가족과 수영장 다녀온 얘기를 신나게 하고 있습니다. 문 기자도 올해는 계곡에서 반두로 물고기도 잡고 물놀이다운 물놀이도 했다는데... 입추도 지났으니 이제 지난여름 얘기라고 해야 할 지도 모르겠네요.

여름과 물 하면 이런 즐거운 추억만 있는 건 아니죠. 문 기자는 여름에 강을 건넜고 소연 씨는 이중 영웅을 넘어 삼중 영웅 칭호를 얻어 들은 것도 여름입니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지난 시간에 이어 그 여름, 그 강 세 번 째 시간입니다.

문성휘 : 북한에서 가장 믿지 말아야 하는 말이 '누구나 다'입니다. 선전하는 그 자체가 믿을만한 것이 못 된다는 것이죠. 무슨 물놀이장, 무슨 물놀이장 그래도요. 사전에 다 약속된 장소에 가서 북한의 진실을 본 것인냥 얘기하면 그건 정말 상상입니다.

박소연 : 그리고 표 자체도 중앙당 간부에게 특표가 나가죠. 그냥 북한의 80%의 아이들은 다 강에서 헤엄을 쳐요. 강은 그 아이들에겐 놀이장이죠. 그리고 나머지 중 10% 정도는 부모덕을 봐서 물놀이장에서 놀고요.

문성휘 : 왜 물놀이 장이 특권층을 위한 것이라고 자꾸 말을 하느냐... 그 물놀이 장을 아무리 자랑해도 1-2개죠. 그걸 갖고 인민을 위한 시설이라고 얘기하면 사람들 웃습니다. 그리고 그 수영장에 3천 명을 수용하는 대형 목욕탕을 지어놨다고 북한이 자랑을 하는데 그 물을 어떻게 보장합니까...

진행자 : 그럼 북한에서 수영장에 가본 애들은 거의 없다고 봐야하네요.

문성휘 : 수영장이라는 거? 저희 때는 못 가봤어요. 우리가 말하는 수영장은 강에 이렇게 가다보면 넓고 깊은 곳이 있는데 그게 바로 수영장이죠.

박소연 : 우리 아들은 13살인데 한 번도 못 가봤었죠. 그냥 엄마 따라, 엄마 치마폭에 매달려서 개칫강에 와서 물장난 하다가 엄마한테 귀쌈이나 맞고... 그게 추억의 전부에요.

진행자 : 여기서는 다니죠?

박소연 : 학교에서 조직해서 안 다니는 데가 없죠. 지 말로는 아주 수영을 잘 한다는데 가봐야 알죠. (웃음)

문성휘 : 92년도 경이었을 텐데요. 북한은 왜 그러는지 체육도, 김정은이 농구를 장려한다고 다 농구대를 세우라고 해서 난리였는데 그때 수영장도 그랬습니다. 수영장을 만들라는 지시가 내려와서 매 학교들에서 다 수영장을 만들고 학교뿐 아니라 도시에서 농촌까지 다 수영장을 만들었죠. 순수 인력으로 만들면서 바닥을 진흙으로 깔았는데 저희 학교에서도 여자 아이 두 명이 그 진흙 구덩이에 들어가서 빠져 죽었습니다. 아! 그때 한번 수영장이라는 걸 대충 만들어서 거기서 헤엄쳐봤네요. 근데 완전히 흙물이죠, 바닥이 다 흙이니까...

박소연 : 야! 좀 살살 다녀라... 막 그랬던 기억이 나네요. (웃음)

문성휘 : 그게 2년도 못 가고 겨울이 되니까 다 쓰레기장이 돼서...

진행자 : 아... 수영장 얘기 괜히 했네요. (웃음)

박소연 : 그러게요. 좋은 기억이 없어요. 안타까운 기억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북한 사람치고 수영장 없다고 투정부리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내일 입에 들어갈 쌀을 구해야 하는데요. 그냥 티비에서 수영장이 나오면 입을 헤 벌리고 어릴 땐 부모를 원망하죠, 어째 아부지, 엄마는 평양에서 살끼지? 이러면서, 그게 끝이죠.

문성휘 : 살만한 세상이 와야 투정질도 나오는 겁니다. 정말 시위를 안 하다가 어쩌다 일어나면 폭동이 되는 거죠.

박소연 : 그런데 보니까 이런 시위가 많아야 나라가 발전을 하는 것 같습니다. 서로 자기 불평을 토로해야 발전이 있죠. 그런데 먹고 살만해야 시위도 하는데 북한은 오직 시위를 해도 미군과 남조선 괴뢰도당 타도하라는 것이죠.

문성휘 : 사실 그 나라를 저렇게 만든 건 북한 인민들 책임입니다... 저도 탈북자지만, 초기부터 잘 못된 지도자를 택했고 잘 못 지도자의 게임에 넘어갔고 자신들의 발이 묶여 노예가 됐고 이젠 투쟁할 능력도 상실한 것이고요. 그래서 국민의 선택이 중요한 것이겠죠. 물놀이장도 그렇습니다. 살만 하니까 물놀이장도 만드는 것이고 살만하면 자기 절로 다 만들어지는 것이고요.

진행자 :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김정은 위원장이 왜 이런 물놀이장에 집착하는지 알겠습니다.

박소연 : 북한에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이부자리를 보고 발을 펴라... 북한 인민들의 평균 소득에 맞춰서 그렇게 화려한 것부터 시작하지 못해도 전 군중적으로 실리가 있는 것부터 단계적으로 시작하면 좋지 않겠습니까. 그걸 다 무시하고 그냥 외국식으로 큰 것만 자랑하고 보여주고...

문성휘 : 그러니까 생색내기죠. 아직 지방의 강들은 맑은데 이런 걸 이용하면 엄청 좋겠는데요... 왜 그걸 못 할까요? 그러나 올해 노동당 창건 70돌, 조국해방 70돌, 100일 전투라고 어린 아이들 중학교 아이들까지 총동원 됐답니다. 물놀이는 무슨 물놀이입니까? 아, 진짜 답답하네... 남한과 북한을 비교한 거 자체가 잘 못 된 것 같습니다.

진행자 : 꼭 비교하자고 한 건 아니지만 두 분이 남,북에서 양쪽에서 살아보셨으니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거죠.

문성휘 : 물놀이에 대해서 우리의 추억을 다 끄집어낸다면 정말... 조금 재밌을 때도 있었어요. 아버지, 엄마 모르게 쌀을 꺼내야 하는 겁니다. 어죽을 쑤어먹는다 그러면 물고기는 손가락만한 걸 대여섯 마리 잡고... 그저 강가에 나가서 끓여먹는 그 재미인거죠. (웃음) 어죽을 끓여먹어도 한 사람이 다 재료를 갖고 올 수 없으니까 분공을 줍니다. 니는 조금 잘 사니까 먹는 기름을 책임져라, 니는 고추하고 뭘, 너는 쌀을 훔쳐오나... 이게 재미고 추억인거죠. (웃음) 쌀을 훔칠 때도 쌀자루를 툭툭 쳐보고 엄마 눈에 안 띄게, 쌀자루는 늘 엄마들의 감시 대상이니까 공짜로 열지 않거든요? 여긴 이렇게 묶여있고 이런 형태로 이렇게 이렇게... 살짝 퍼내고 그대로 묶어 놓지요. 집에서 파랑 고추 가지고 올 임무를 받은 얘는 정찰병을 세우고, 자기 엄마 아빠 보는가, 동네 사람들 보는가... 몰래 자기 텃밭에 들어가서 고추, 파, 호박이고 뜯는 겁니다. 그저 그 재미입니다. (웃음)

진행자 : 가난했어도 이렇게 웃을 수 있는 추억을 많이 남길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문성휘 : 아이고... 제발 언제고 그렇게 되겠는지요.

진행자 : 저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언제라도 남쪽의 얘기가 자랑이 아니고 함께 웃고 넘길 수 있는 그런 얘기가 되겠는지...

문성휘 : 그렇죠. 이런 얘기가 극히 평범해 질 때 그게 바로 통일이겠죠. 통일이라는 게 그렇지 않습니까? 남이나 북이나 모든 게 신기한 것들, 우리가 북한에 놀라운 것이 전혀 놀라운 것이 아니 되고 북한이 남한에 부러워하던 것들이 부러워하지 않게 될 때, 그러면 자연적으로 마음이 통하고 통일이 되지 않겠습니까?

강대강으로 치닫던 정세를 생각하면 물놀이 얘기가 너무 한가하게 들리기도 하는데요...

청취자 여러분도 그렇지만 남쪽 사람들도 이런 긴장된 정세를 처음 겪는 건 아니죠? 외국 사람들이 깜짝 놀랄 만큼 평온하게 지나갑니다. 사실 조선중앙티비, 우리민족끼리 티비에 나온 남한의 사재기, 청년탈출 보도는 남쪽에선 농담꺼립니다. 진짜가 아니에요.

그래도 아무렇지 않을 순 없죠. 이럴 때마다 밥 먹고 일어나서 직장 나가고 가족들과 대화하고 아이들이 웃고 또 싸우는 걸 보는 일상이 새삼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어느 국가든 정부와 군대는 이런 걸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국민, 인민들의 일상적인 삶을 지켜주기 위해. 그래서 물놀이 같은 어쩌면 하찮은 일상이 가장 중요한 가치일 수 있습니다. 43시간, 3일 동안의 남북의 피타던 협상도 이런 가치를 위해서였다고... 믿고 싶습니다! 다음 주에도 한가한 얘기, 하찮은 일생의 얘기를 들고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오늘은 여기까집니다.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