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명 모인 교황 시복식에 참여하다

지난 16일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시복식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지난 16일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시복식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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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11월, 남한에 도착해 올해 남한 생활 3년 차를 맞고 있습니다. 2012년 아들을 데려와 혼자서 키우는 열혈 '워킹맘' 그러니까 일하는 엄마입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엔 남한 정착 8년차, 자강도 출신 탈북 기자 문성휘 씨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 "제 좌석은 정말 주석단 밑인 거예요. 그 자리가 VIP좌석이라고."

소연 씨는 최근 남한을 찾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얼굴을 직접 봤습니다. 지난 16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시복식에 초대받았는데요. VIP, 북한으로 치면 간부 석을 배정 받아 교황을 가까운 거리에서 봤다고 하네요.

100만 군중 속에서 소연 씨는 어떤 것을 느끼고 경험했을까요? 소연 씨 얘기를 직접 들어보시죠.

진행자 : 안녕하세요.

문성휘, 박소연 : 안녕하세요.

진행자 : 저희는 평범하게 지냈는데, 소연 씨는 굉장한 경험을 하셨다면서요?

박소연 : 네, 교황님 시복식에 가느라 새벽 4시부터 나가서 북한 말로 춤을 췄어요.

진행자 : 네, 일단 시복식에 대해 간단히 말씀드리면 한국 천주교는 과거에 선교사가 와서 선교를 한 게 아니라 학문적으로 접근됐습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한반도에도 신분의 차가 있었기 때문에 갖은 박해를 당했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순교했는데, 시복식이란 당시 천주교 순교자 124명에 대해 성인의 전 단계인 복자로 선포하는 의식이라고 해요. 그 중요한 행사에 참여하신 거잖아요. 어떻게 참여하게 되셨어요?

박소연 : 남한에 탈북자 가운데 천주교 신자가 5백 명 정도 된다고 해요. 그래서 탈북자 출신 신자 30명을 초청한 거예요.

저희는 교황에 대해서 잘 모르잖아요. 북한 사람이 어떻게 알고, 세례를 받은 지 하루 밖에 안 된 사람이 어떻게 알겠어요. 그래서 TV라는 게 좋은 것 같아요. TV에서 교황님은 자기가 들고 다니는 사무용 가방도 북한 말로 부관에게 주지 않는대요. "내가 아직 가방을 들 기운이 있는데 왜 다른 사람에게 주느냐." 그러니까 낮은 자세인 거예요.

우리는 항상 김 씨 일가를 하늘처럼 태양처럼 높이만 봤던 사람들이에요. 그렇지만 김일성이나 김정일과 교황은 비교할 수가 없잖아요. 그 신자가 지구상에 몇 억이잖아요. 그런데 최고위 성직자가 자기 사무용 가방을 쥐고 다닌다, 이게 너무도 가슴에 와 닿았어요. 그래서 뵙고 싶었어요.

문성휘 : 맞아요, 교황님 나왔을 때 언론에 많이 나왔죠. 굉장히 낮은 자세, 소박한 자세. 저도 교황이라면 아무런 지식도 없어요. 천주교 신자도 아니니까 별로 관심도 없었고. 그런데 이번에 올 때 보니까 교황님이 이렇게도 높으신 분이야? 제가 남한에 오고 나서 미국 대통령이 두 번 정도 남한을 방문했는데, 그때보다 경호가 세더라고요.

진행자 : 천주교는 전 세계적으로 공동체이고요. 그 최고위에 있는 분이 교황이니까, 또 교황이라는 분이 사랑과 평화의 상징이기 때문에 더 그렇지 않을까 싶은데 이번 시복식에는 천주교 신자가 17만 명 정도인데 전체 참가자가 100만 명 정도였으니까 신자가 아닌 사람들도 많이 참여했다는 의미인데요. 소연 씨는 세례를 받긴 하셨지만 신자로서의 감동보다는 다른 것들이 신기하지 않았을까 생각돼요.

박소연 : 행사를 10시부터 시작했는데, 제가 오전 6시에 자리에 앉았어요. 그런데 그 자리가 VIP좌석이라고, 저는 한국에 온 지 2년밖에 안 됐잖아요. 그러니까 VIP라는 게 고급좌석이다, 북한으로 치면 간부석이라고는 생각했어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땅바닥에 앉아 있는 거예요. 제 좌석은 정말 주석단 밑인 거예요. 그런데 옆에 보니까 외국인 노동자들이 앉아 있는 거예요. 필리핀, 태국에서 오신 분들인데, 그분들이 VIP 좌석에 앉은 거예요. 진짜 남한 국민들은 땅바닥에 앉아 있더라고요.

진행자 : VIP가 'very important person'이라고 해서 '매우 중요한 사람'이라는 뜻인데 탈북자나 외국인 노동자들처럼 어쩌면 남한에서는 아직 적응을 못하시고 조금은 소외감을 느낄 수 있는 분들과 함께 평등과 화해의 자리를 도모해보자는 의지가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어쨌든 VIP석이면 정말 엄청난 자리에 앉으신 거 같아요.

문성휘 : 참 부러운 게, 간부좌석에 앉았다는 얘기잖아요. 그런데 한국에서 탈북자들, 대통령이 추대될 때 그런 때도 참석하는 때가 많고요. 고급좌석에 앉을 때가 많습니다.

진행자 : 앉아보신 적 있나요?

문성휘 : 저는 한 번도 없는데, 오히려 평범한 대학생들, 평범하게 일하는 탈북자들... 그러니까 여러 계층을 다양하게 부르잖아요. 대통령이 추대사나 이런데 참가하고 그러더라고요. 보기가 좋더라고요.

진행자 : 어떻게 보면 남한에서 어떤 행사에 100만 명이라는 사람이 자발적으로 참석한 거잖아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북한에도 그런 자발적인 행사가 많나요?

문성휘 : 북한에서 자발적이라면 그건 국가와 당이 조직하지 않은 행사를 의미하는데 애초에 있을 수가 없어요. 그런데 우리도 자발적으로 가는 경우가 있기는 해요. 국경연선에 사는 사람들, 소연 씨도 무산에서 살았다고 하니까 많이 봤겠네요. 거기에 사는 사람들은 음력 설 때 압록강변이나 두만강변에 서서 중국을 많이 바라봤다고 하더라고요.

박소연 : 맞아요. 중국에서 밤 11시부턴가 터지기 시작해요. 그러면 그걸 보느라고 강둑으로 자발적으로 뛰어 나가요. 그러면 또 국경 경비대는 강둑에 내려서지 말라고 소리를 질러요. 그러면 또 우리는 좋은 말로 "군대 삼촌, 설날에 욕하면 일 년 내내 욕을 먹는대." 하면 경비대도 같이 구경을 해요. 그때 같이 자발적으로 강둑으로 뛰어가요.

진행자 : 불꽃놀이 말씀하시는 건가요?

문성휘, 박소연 : 네.

진행자 : 그러면 반대로 강제적으로 동원되는 경우는 많습니까?

박소연 : 다 100% 강제죠. 누가 기념보고대회에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진행자 : 그럼 이번 시복식 행사는 사실상 100만 명이 모였는데 저처럼 가고 싶어도 못 간 사람들도 많거든요. 자발적으로 100만 명이 모여서 그 오랜 시간 행사에 참여하는 모습 자체에서 생각하신 게 많을 것 같아요.

박소연 : 네, 북한에는 김일성, 김정은 장군님이 아닌 외국 사람을 위해서 100만 군중이 모일 일도 없고, 장군님이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서 환호할 일도 없어요. 괜히 환호를 했다가 정치범이 될 걸요. 우리 장군님 밖에 몰라야 하는데. 북한은 그런 나라예요. 상상도 못할 일이죠.

그런데 솔직히 그날 무척 더웠어요. 그래서 시작하기 전에 이거 빠질까... 너무도 해가 뜨거운 거예요. 그런데 주위를 봤는데 저는 의자에 앉아서 얼마나 편했겠어요. 땅바닥에 앉은 분들이 열심히 부채질을 하더라고요. 안 움직이는 거예요. 그리고 교황님이 온다고 TV에서 나오니까 끝에서부터 사람들이 '와'하는 거예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교황님이 큰 텔레비전 화면에 나타났는데 그걸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손이 올라갔어요. 그 다음부터 덥다는 생각이 없어졌어요. '아, 오늘 내가 세상에 태어나 교황님 얼굴을 한 번 보는 것도 행운이다.' 너무도 좋고, 저 솔직히 울었어요.

진행자 : 사실 남한에서는 2002년 월드컵 때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응원하는 모습이 전 세계 언론에 보도가 됐고, 그 전후로도 크고 작은 것들로 굉장히 잘 모입니다. 배우나 가수들을 보면서 울기도 하고 환호하기도 하는데. 문 기자께서는 남한에서 오랫동안 생활하셨으니까 남한의 그런 모습 보면서 어떻게 생각하셨어요?

문성휘 : 남한 사람들은 너무 열정적이고 격동적이에요. 매우 신기한 게 설날의 타종행사 있을 때는 벌써 몇 시간 전부터 나가서 벌벌 떨고. '왜 저러니? 왜 벌써부터 나가서 고생을 하나? 이건 누가 강제로 나가라고 쫒은 것도 아니고.

진행자 : 돈도 안 나옵니다(웃음).

문성휘 : 네(웃음), 지금도 이런 건 잘 이해가 안 돼요. 다만 한국 사람들 어떤 면에서는 조용조용 차분하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주최할 수 없이 격동되는 것 같아요.

진행자 : 어떤 재미나 본인들의 즐거움을 위해서 그렇게 모이는 것 같아요. 직접 참여해보신 적은 있으세요?

문성휘 : 저는 포항 해맞이 행사 두 번 갔어요. 거기 가보니까 처음 해를 뜨는 모습을 볼 때 정말 경쾌했고, '내가 태어나서 여태 기대했던 그런 모습이 아닌가' 환상적이더라고요. 그래서 남한 사람들이 이런 감정 때문에 이렇게 모이겠구나 생각됐어요.

진행자 : 어쩌면 북한에서는 느껴보지 못했던 집단적인 행동, 행사 이런 것에서 새로운 재미와 감동을 알게 된 걸까요?

문성휘 : 그렇죠.

박소연 : 이번에 저는 희망을 얻은 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하나가 됐는데 '아, 그래도 아직은 좋은 사람들이 더 많은 세상이구나' 이런 것에서 감동을 받고. 또 하나는 저희 앞뒤에 북한으로 말하면 조선노동당 최고인민위원회 대의원들이 앉은 거예요. 국회의원들이 앉은 거예요. 그 뒤에 가서 '안녕하세요, 의원님' 했더니 저를 모르시니까 '누구세요?' 그래서 '저 탈북자입니다.'라고 했더니 정말 좋아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팔을 끼고 인증사진을 찍었어요.

당 간부잖아요, 북한으로 말하면. 우리 같은 사람이 그런 간부들을 만날 기회도 없어요, 북한에는. 그런 간부들과 언제 팔을 끼고 찍겠어요. 그래서 더 기분이 좋았어요.

진행자 : 교황님이 처음 남한에 입국했을 때 한반도의 평화를 가슴 깊이 새기고 왔다고 말했거든요. 특히나 북한에서 오셨으니까 평화라는 거, 북한에 있는 분들을 많이 생각하셨을 것 같아요.

문성휘 : 사실 제가 믿는 종교도 아니고, 대한민국 사람들 다 그랬을 거예요. 불교를 믿든, 아니면 종교가 없는 사람들도 스트레스라고 하죠. 뭔가 마음에 쌓인 우울증을 다 털어버리는 기회가 아니었나. 이런 감정을 북한에 있는 주민들도 느껴봐야 하는데. 사실 교황님이 와서 모두 화해하고 손을 잡자,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고 밀어주는 것만이 우리 앞날을 위한 것이고 희망을 얻는 것이다. 이런 얘기 하시는 걸 들으니까 정말 마음이 편안해지더라고요.

박소연 : 그래요. 영어로 된 미사를 한국말로 번역을 해서 TV로도 나오고 저는 책으로 보는데 사랑과 화해라는 말이 정말 연속으로 나오더라고요. 북한에서는 항상 복수를 언급해요. 전쟁에는 전쟁으로, 핵에는 핵으로 복수해야 한다. 이런 복수심이 강한 언어만 들었는데, 화해와 사랑이 정말 많이 들어있는 거예요. 그 말씀을 들으니까 문 기자 말처럼 마음이 편안해져요. 아, 이래서 백만 군중이 환호를 하는구나! 그런 생각을 해봤어요.

문성휘 : 교황님 하시는 미사를 북한 주민들도 다 들어봤으면. 사랑과 화해라는 게 무엇인지 그들도 직접 느껴봤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어요.

박소연 : 맞아요, 그랬어요.

프란치스코 교황이 4박5일간의 방한 일정 가운데 강론이나 미사 등을 통해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사랑'이라고 합니다. 무려 160여 회나 언급했다고 하는데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에서 '사랑'이라는 단어를 그토록 자주 언급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소연 씨는 백만 군중 속에서 그 의미를 제대로 새긴 것 같습니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오늘 얘기는 여기까집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윤하정이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