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남한에 도착해 올해 남한 생활이 6년 차입니다. 도착한 다음해 아들도 데려와 지금은 엄마로 또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은 소연 씨가 북한을 떠나 남한이라는 세상에서 보고 겪은 경험담을 전해드립니다. 남한의 신기한 세상만사를 얘기하다고 보면 떠오르는 고향의 추억들도 함께 나눠 봅니다.
INS - 한 직장에서 4년 3개월을 일해봤다... 이 경험이 저에게는 큰 자부심이자 힘입니다.
직장이 문을 닫는다... 이 막막함은 꼭 겪어보지 않더라도 알 수 있겠습니다. 소연 씨가 새 직장을 찾아 나섭니다. 그 마음이 꼭 두렵지만은 않다니 다행입니다. 오늘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는 소연 씨의 얘깁니다.
진행자 : 안녕하세요.
문성휘, 박소연 : 안녕하세요.
진행자 : 어떤 때는 어제 봤어도 오랜만에 만나는 것 같고 어떤 때는 한 참 전에 봤는데도 어제 본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저희, 꽤 오랜만에 만나서 방송하는데 어제 만난 것 같은 기분입니다.
문성휘 : 에이... 우리가 그럴 나이가 됐죠? 이 기자, 왔다 갔다 하나 봐요. (웃음)
진행자 : 그렇다고 수긍했다가는 혼날 것 같은데요? (웃음) 나이 마흔에 벌써 무슨 말씀이에요!
문성휘 : 남한은 그렇죠. 북한은 마흔이면 벌써 바늘귀를 못 뀌어요. 그럼 벌써 늙었나... 실망하거든요. 오십은 늙은이고. (웃음)
박소연 : 우리 옛날에 그랬어요. 우리 엄마 벌써 쉰 살이 된다... 쉰 살이라는 게 할머니도 보통 할머니가 아니죠.
진행자 : 남쪽은 할머니 되려면... 심리적인 할머니 아니고, 진짜 손주가 태어나서 할머니가 되는 나이가 거의 60세 중반입니다.
박소연 : 북한으로 치면 증조할머니 나이입니다. (웃음)
진행자 : 그래서 남쪽은 백세 인생이라는 얘기가 있죠?
문성휘 : 진짜 요즘은 100살까지 산다니까요.
진행자 : 맞아요. 이렇게 사람의 인생이 길어지다 보니 생기는 변화들이 있습니다. 가장 많이 바뀐 것이 직업에 대한 개념 아닐까 싶은데요. 예전엔 20대에 학교 졸업하고 사회 나와 잡은 첫 직장에서 은퇴할 때까지 일한다 해서 평생직장이라고 했는데 이제 평생직장은 없습니다. 직장을 잡고 은퇴할 때까지 몇 번의 직장을 바꾸기도 하고 그야말로 할머니, 할아버지 나이에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도 합니다.
문성휘 : 이제 평생직장이라는 게 가능하지 않잖습니까? 저는 남한 직장에서 제일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은 일자리가 없다는 것. 노동신문에도 그런 보도가 많이 나왔어요. 일자리가 없는 가난한 사람들, 비참한 삶... 이렇게 남조선을 비난을 많이 했어요. 저는 그 기사를 보면서 세상에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왜 일자리가 없지? 남쪽이 인구가 너무 많아 그런가? 이상하게 생각했고 일자리 전쟁이라는 얘기도 이해하지 못 했고요. 그런데 여기 와서 살아보니까 아하! 일자리라는 게 이래서 전쟁이구나...
진행자 : 왜 그렇던가요? 어떤 결론을 내셨습니까?
문성휘 : 일자리가 없다는 의미가 아니고요. 더 좋은 일자리, 더 안정적인 일자리가 찾기 힘들다! 중국사람,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여러 국가에서 남한에 일하러 오지 않아요? 이 사람들이 찾는 일자리는 남한 사람들이 외면하는 일자리들이죠. 일자리는 많은데 내 맘에 맞는, 내 속이 확 풀릴 그런 일자리가 잘 없다는 겁니다.
박소연 : 그런데 진짜 남북이 반대인 것이 북한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일자리가 남자는 운전기사, 여자는 식당입니다. 남한은 가장 인기 없는 직장이 그겁니다. (웃음) 지금 문 기자 말이 정말 공감이 되는데요. 남한은 젊은 사람의 95% 정도가 대학을 다닙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을 다 다니다보니까 내가 원하는 직장, 내가 꿈 꾸는 일을 하기 위해 기다리고 또 공부하고. 그러다보니 실업자들이 많아지는 거죠. 어떻게 생각해보면 배부른 흥정입니다.
진행자 :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문성휘 : 그래요. 북한에서는 식당에서 일하면 일단 자기 입도 덜고 집에 돼지 같은 거 키울 때도 뭐 줄 것이 없는데 식당에서는 일하면 돼지 줄 것도 얻을 수 있고 정말 최고의 직업이죠. 또 북한에 이런 말도 있어요. 어제 저녁에 뜨락또르 운전사가 선 보러온 것도 싫다고 했는데 대학 교수가 다 뭔가? (웃음)
진행자 : 아직도 그럴까요?
박소연 : 그럼요. 북한은 여자가 대학 몇 개를 나온 거 다 필요 없다. 간부? 줄 잘 못 서면 간부도 살기 힘들다. 그럴 바엔 둥근 거 굴리는 사람이 낫다, 운송 기제를 움직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부의 상징입니다.
진행자 : 이해가 됩니다. 저희가 직업 얘기를 길게 하게 됐는데요... 소연 씨는 지금 직장이 첫 직장이시고요.
박소연 : 맞아요. 저는 하나원에서 나와서 바로 잡은 직장이 여기죠.
진행자 : 문 기자는 남쪽에서 첫 직장, 어디서 일하셨습니까?
문성휘 : 첫 직장... 저는 하나원을 나와서 9일 만에 일을 시작했어요. 전문 기획을 하는 직장이었는데요. 기획이라는 건 북한으로 말하자면 오늘 어느 어느 작업반은 어디에 뭘 심고, 어디어디에 뭘 건설한다... 이런 작업에 대한 전체 계획을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시면 되요. 그런데 북한하고 한국은 완전히 다르지 않아요? 북한에서는 국가에서 그런 기획이라는 게 다 만들어져 내려오는데 남한은 그걸 다 내 절로 만들어야 합니다. 저로써는 너무너무 힘든 일이었고 3달 동안 일하다가 스스로 나왔어요. 못 하겠다고...
진행자 : 그리고 몇 번의 직장을 옮기셨어요?
문성휘 : 세 번. (웃음)
진행자 : 많은 건가요?
박소연 : 아휴! 그렇지는 않아요. 탈북자들은 비난하자는 소리는 절대 아니고요. 우리가 분단된 지 거의 70년. 남북의 문화가 너무 다른 겁니다. 북한은 지배인, 초급당 비서가 지시를 하면 그냥 옳고 그름이 없이 그냥 하면 됩니다. 내가 더 한다고 쌀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냥 시키면 하는 거죠. 남한에 오니까... 저랑 똑같이 일해도 창발적인 기획안 같은 걸 내놓아서 그게 회사에 도움이 되면 노임도 더 받고 보상이 있어요. 그러니 하나라도 더 하려고 하죠. 공부도 더 하려고 하고요. 그러나 북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탈북을 했지만 수 십 년을 그 곳에서 살았고 배우지 못하고 바로 직장을 잡았기 때문에 대한민국 초등학교 아이들보다 어떤 때는 수준이 더 못해요.
진행자 : 그 정도는 비약이시죠...
박소연 : 비약은 아니에요. 컴퓨터도 다루는 것도 잘 모르고요. 문화를 겪는 보는 게 저희에겐 배움이에요. 저도 처음 직장에 가서 3개월을 실습 기간을 줬어요. 여기서는 그걸 인턴이라고 하는데요. 그때는 정말 최하 월급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이 일을 할 수 있나, 없나를 지켜보는 일종의 시험 기간이기 때문에 노임이 절반입니다. 정말 너무 힘들었어요. 다들 나보다 나이는 15살 정도 어렸는데 컴퓨터 타자도 잘 치고 인터넷 검색도 잘 해요. 나는 정말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고... 진짜 한 주 만에 그만 두고 싶었어요. 그냥 내가 할 줄 아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릇 가시고 의자 당기고, 청소하고 하는 것은 누가 배워 안 줘도 하지 않습니까? 근데... 그런 생각 했던 것 같아요. 조금만 조금만 더 참아보자. 그리고 그 후에 4년 3개월을 일했어요. 지금은 이렇게 말하지만 그때는 정말 너무너무 힘들었어요.
진행자 : 처음에 소연 씨가 직장 구할 때, 면접 볼 때 그 직장을 잡는 과정까지 저희가 방송으로 담았는데요. 그때 항상 힘들다 했던 게 기억납니다.
문성휘 :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되네요.
박소연 : 그러게요. 벌써 5년이에요.
진행자 : 그렇게 시간이 흘러 흘러, 소연 씨가 새로운 직장을 찾아야 하는 시간이 됐습니다.
박소연 : 아우 진짜... 우리 회사가 경제적인 사정에 의해서 문을 닫게 됐어요. 제가 화가 나서 그만둔다, 성질부리며 책상을 땅 치고 나온 게 아니고요... (웃음) 제가 회사 사정에 의해서 딴 직업을 찾아야하는 시점이에요. 그런데... 솔직히 이제 4년 넘었고 5년차가 되니까요. 무섭지는 않아요. 남한을 알고 여유가 있어요. 고민은 되지만 그래... 아직 한 참 일할 나이인데 이 기회에 일하느냐 시간이 없어서 못 배운 것도 배우고 찾아보자!
소연 씨가 학원을 졸업하고 면접을 다니고 결국 직장을 구하기까지 그 과정을 고스란히 방송에 담았던 것이 기억납니다. 당시 저의 가장 큰 고민은 힘들다는 얘기만으로 방송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이었고 문 기자의 고민은 어떤 말도 소연 씨가 잘 듣지 않는다 였습니다.
당시 가장 많이 했던 말이 이 시기도 곧 지나갈 것이다... 이 말이었는데 청취자 여러분 기억 하십니까?
지금 이 시간도 누군가에겐 분명 견디기 힘든 순간일 것이고 세계가 반대한 핵실험과 그에 따른 제재, 전쟁이 언급되는 나날들을 지나는 남북의 주민들에게도 이 말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 시기도 지나간다... 시간은 누구의 편도 아닌 기다리는 자, 겪어내는 자의 것입니다.
<세상 밖으로> 오늘은 여기까집니다. 진행에 박소연, 문성휘, 이현주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