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복 중에 으뜸은 (2)

0:00 / 0:00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11월, 남한에 도착해 올해 남한 생활 5년 차를 맞고 있습니다. 2012년 아들을 데려와 혼자서 키우는 열혈 '워킹맘' 그러니까 일하는 엄마입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엔 남한 정착 10년차, 자강도 출신 탈북 기자 문성휘 씨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 병원에 갔더니 바로 치아 사진을 찍어서 보여주는데 이빨이 아래까지 까맣게 썩은 게 보이더라고요. 의사가 빨리 뽑아야 한대요. 지금 뽑자고요... 지금이요? 놀랬더니 5분이면 뽑는 답니다...

지난 시간 소연 씨가 치과를 다녀왔던 얘기를 했는데요. 오늘은 무용담이 이어집니다.

온몸이 오그라지고 저절로 인상이 찌부러지는... 북한의 구강 병원 경험담! 다들 비슷한 얘기꺼리 한 두 개는 갖고 계시죠?

소연 씨, 문 기자는 어땠는지 함께 들어보시죠.

문성휘 : 북한은 위생 상태가 일단 나빠요. 저도 처음 알았지만... (웃음) 여기는 아침, 저녁으로 사람들이 이빨을 닦잖아요? 북한은 그렇지 않습니다. 북한은 공장 기업소에는 수도 시설이 전혀 없고요. 도당까지만 해도 공동변소를 씁니다. 여기처럼 건물마다 층 마다 화장실이 있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5-6층에 있는 사람들도 뭘 보자면 변소까지 걸어서 내려와야 하고...

진행자 : 그런 곳에서 양치하기는 힘들겠습니다...

문성휘 : 아예 할 수가 없어요. 하수 시설이 되지 않습니다.

진행자 : 칫솔, 치약은 쓰시잖습니까?

문성휘 : 명절 공급이죠. (웃음)

박소연 : 저는 남쪽에 와서 하루 세 번 칫솔질 한다는 걸 처음을 알았습니다. 북한에선 아침에 눈떠서 밥 먹고 한번 하면 끝입니다. 그리고 솔직히 저녁에 세수를 한다는 것도 여기 와서 처음 접해본 문화입니다. (웃음)

진행자 : 아무래도 물이 귀해 그렇겠죠?

박소연 : 설령 물이 나와도 사람들은 하루에 한번 양치하고 한번 세수할 겁니다.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진행자 : 남한은 333이라고 해서 하루 세 번, 밥 먹은 삼분 뒤, 삼분동안 닦으라고 교육을 합니다.

문성휘 : 북한에선 그렇게 많이 닦으면 이빨이 못 쓰게 한다고 못 사게 합니다. (웃음) 진짜 그런 얘기를 했다니까요!

박소연 : 그리고 북한에서는 칫솔질을 옆으로 하는데 한국에서는 위아래로 하게 하더라고요. 하지만 아직 버릇이 안 돼서 내 칫솔질은 굴착기로 땅 뚫는 것처럼 힘차게 옆으로 하죠. (웃음)

문성휘 : 아야.... 지금은 이름이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이빨 치료할 때 마취하는 그 주사. 지금은 중국에서 넘어오는 걸 사서 쓴다고 해요. 병원에 갈 때는 그 약을 장마당에 가서 다 사서 가져가야하는 거죠. 지금도 기억나는 게 고난의 행군 직후에 중국에서 약이 넘어오지 않았습니다. 하필 그 때... 이빨은 참을 수 없게 쏘는 겁니다. 병원에서 뽑아주기는 하는데 마취 없이 뽑아 줍니다. 환자들에게 먼저 동의를 받아요. 마취 없이 뽑겠다고. 그때 치과를 가면 이빨 뽑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교육을 했습니다. 주먹을 꽉 쥐거나 자기의 팔을 손으로 꼬집어라, 그럼 고통을 좀 덜 수 있다고.

그리고 진짜 개 잡듯 사람 이빨을 뽑았습니다. 남자 의사 한 명이 머리를 꽉 잡고 양쪽에서 간호원들이 팔을 잡고 다른 의사 한 명이 이빨을 '뺀찌'로 뽑았습니다. 나는 너무 끔찍해서... 사람들이 고함을 지르는 것이 너무 끔찍하니까 이빨 뽑는 병동하고 이빨 뽑을 사람들이 모여 있는 대기실하고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왜냐면 뽑는 걸 보면 절대 뽑는다고 할 사람이 없으니까요. 한 사람씩 데려가서 뽑고, 뽑고 그랬죠. 그때는 아예 위에서부터 그렇게 뽑으라고 지시가 내려왔었다고 합니다.

박소연 : 맞아요. 저도 북한에 있을 때 이빨을 앓았는데 밤새 잠을 못 자고 아침에 치과를 갔습니다. 제 앞에 먼저 치료하는 사람이 천하를 들었다가 놓더라고요. 그래서 병원에 앉아서 부들부들 떨다 그냥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우리 동네 용하다는 의원에 갔더니 아편을 주사기에 재워서 잇몸에 놓고 마취를 하고 아편 덩지를 0.01그램 정도 이빨 썩은 곳에 넣고 쇳대 뜨개바늘을 불에 달구어서 빨갛게 만든 뒤에 지졌습니다. 그렇게 한 일 주일을 지졌습니다.

문성휘 : 신경을 완전히 죽인 거네요.

박소연 : 그렇죠. 그런데 이게 어떤 위험성이 있냐면 자칫하면 쇠꼬챙이에 입을 데어요. 기구가 있나 뭐가 있나요? 엄마랑 동생이 같이 와서 치료 받을 때 제 입을 벌리고 있었습니다. 북한에 있을 때는 그런 공포가 있어서 남쪽에 와서도 이빨 치료는 아프지 않아도 겁은 납니다. 차라리 배를 째고 수술하는 것이 안 무섭지 저는 치과 치료가 훨씬 더 무섭습니다. (웃음)

진행자 : 아이 낳는 것보다 아프다는 얘기도 합니다. (웃음)

박소연 : 그렇다니까요. 한결 같은 말이에요. (웃음)

문성휘 : 제가 한국에 온 지 한 11년 정도 되는데 그 사이만도 많이 바뀌어서 진짜 세상 좋아졌다 하는 것을 이빨 치료하는 것만 봐도 느낍니다. 치아 임플란트 값이 저 막 왔을 때는 2백 만 원에서 5백 만 원정도 했지만 지금은 70만원 까지 내렸습니다. 2천 달라 정도하던 것이 700 달러 정도 하는 것이죠. 그리고 임플란트 치료로 이빨을 해 넣으려면 6개월 정도 걸렸습니다. 잇몸 뼈를 생성하고 어쩌고... 하면서 그렇게 걸렸죠. 지금은 보통 1달이면 된다고 합니다. 뭐 하루에 하는 임플란트도 있다고 하고... 참 세상이 이빨만 갖고도 얼마나 발전했는지 모릅니다.

진행자 : 문 기자와 소연 씨는 북쪽과 지금이 비교되시겠지만 저는 제가 어렸을 때 다녔던 치과와 지금이 비교가 많이 되요. 아팠고 엄청나게 무서웠습니다... 그 냄새가 아주 싫었고요. 그래서 최대한 안 가려고 노력하다가 어른이 돼서 2천년 즈음에 다시 갔는데 거의 안 아프더라고요. (웃음)

박소연 : 근데 싸기도 쌉니다. 오늘 제가 마취하고 이빨 뽑고 약도 탔는데... 병원비 1천 5백 원 냈습니다. 1.5달러 정도죠. 병원비가 너무 눅어서 미안할 지경이었어요. 탈북자들은 의료 지원이 되니까 더 싸게 된거죠.

문성휘 : 그거 끝나기 전에 소연 씨는 빨리 빨리 치료를 해야겠습니다. (웃음)

진행자 : 남한 사람들이 일반 의료 보험 갖고 치과에서 이빨 뽑아도 10달러 안 나옵니다...

박소연 : 그래서 저는 아버지 생각이 너무 나요. 아버지가 이빨이 안 좋아서 틀니를 했는데 요즘 텔레비전에서 80 나이에도 임플란트 된다, 틀니가 된다 그러니까. 우리 아빠 이빨 좀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나...

놀라시는 분들 계실텐데요. 남쪽에는 쌀 함지박이 없습니다!

수확부터 도정을 모두 기계식으로 하다보니 쌀에 돌이 있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북쪽에선 쌀에 돌 씹히면 그날 어머니들이 아버지 눈치를 엄청 보셨다는데.. 소연씨 아버지도 틀니 하시면서 어머니 타박을 그렇게 하셨다고요. 돌을 많이 씹어서 이빨이 망가셨다고... 지금은 어떻습니까?

믿거나 말거나 쌀의 돌 때문에 치아가 약하다 이렇게 주장들을 하는데요. 위생 문제가 더 크지 않을까 생각 됩니다.

오늘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치과 얘기, 두 번째 시간이었습니다. 다음주 이 시간 뵙겠습니다.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