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11월, 남한에 도착해 올해 남한 생활 4년 차를 맞고 있습니다. 2012년 아들을 데려와 혼자서 키우는 열혈 '워킹맘' 그러니까 일하는 엄마입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엔 남한 정착 9년차, 자강도 출신 탈북 기자 문성휘 씨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 우리 탈북자들이 하나센터에 나오게 되면 야구장을 꼭 데려가는데요. 저는 거기서 피자 맛있게 먹었던 기억 밖에 없습니다. 웬 사람이 공을 던지면 다른 사람이 정신없이 뛰니까 사람들이 쓰러질 것처럼 소리를 치고...
가을엔 '야구 강추'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서 추를 한자로 '가을 추'자로 바꿔 쓰기도 합니다. 남한 프로 야구에서 1,2,3,4위 각축전이 벌어지는 게 가을이라서 이런 말이 나온 건데요. 야구뿐이 아닙니다. 바람이 시원해지는 계절, 소연 씨 아들은 도 축구 대회에 나갑니다. 아들 이름이 적힌 체육복을 받아들고 아들보다 더 감격한 건 엄마네요.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지난 시간에 이어 축구와 야구 그리고 체육복에 대한 얘기 이어갑니다.
박소연 : 제가 고학년이 됐을 때는 체육 시간에 까만 바지를 입으라고 했습니다. 체육 시간엔 여학생들 옷차림이 이상해지죠. (웃음) 교복 밑에 까만 바지를 입어요. 옷차림을 보면 어떤 반이 체육인지 딱 알죠. 5-6학년이면 약간 처녀꼴이 잡혀서 한참 식(멋)을 낼 때인데 그때 선생님이 체육 시간에 파란 바지 말고 까만 바지를 입으라고 해서 엄마한테 해달라고 했더니 안 해준다는 거예요. 금방 파란 바지를 해줬다면서. 그래서 제가... 생각 끝에 파란 바지를 김치굴에 가지고 들어가서 가위로 베었습니다. 그리고는 직실나게 맞았죠. (웃음) 그리고 그날로 바꾼 돈 상점에 가서 반짝지를 샀습니다.
문성휘 : 그래 맞아요. 반짝지!
박소연 : 그 다음부터 체육 들은 날 교복 치마 밑에 반짝지 바지 입으면... 하늘이 다 낮아 보였습니다. (웃음) 너무 좋은 거예요. 문 기자도 아시죠?
문성휘 : 소연 씨가 까만 바지 얘기 하자마자 머리에 바로 떠오른 게 그 반짝지였습니다. (웃음)
진행자 : 반짝지가 뭔가요?
문성휘 : 반짝지가 약간 나일론 재질의 천인데 햇볕을 받으면 반짝 반짝 빛이 나요. 그래서 반짝지인데요. 어떻게 만들었지 모르겠지만 처음에 한두 벌 씩 나올 때는 난리였습니다.
진행자 : 북쪽도 이런 식으로 유행이 있군요.
문성휘 : 대단하죠. 남학생들은 교복을 입어야 하는데 멋을 부리고 싶으니까 교복 바지 대신 반짝지 바지를 입고 가죠. 선생들은 그게 빈부의 격차가 확 나니까 단속을 했습니다. 그래도 얼마나 입고 싶었으면 학교 갈 때 가방에서 교과서를 다 빼고 바지를 넣어 가지고 다녔습니다. (웃음) 학교 갈 때는 반짝지 바지를 입고 학교 가서는 선생님들이 검열할까봐 교복 바지로 갈아입죠.
진행자 : 아니... 그 반짝지 바지가 뭐라고 엄마한테 맞아도 좋고, 숨겨서 다니고...(웃음)
박소연 : 어우... 무슨 말씀이세요. 얼마나 인기였는데요.
문성휘 : 그때 89-90년도, 그게 정말 대단했죠. 근데 진짜 황당하게 나는 아직 바지도 반짝지를 못해 입었는데 힘 있는 집 자식들이나 중국에 친척이 있는 아이들은 바지도 반짝지, 체육 시간 바지도 반짝지... 그렇게 두벌씩이나 해 입은 겁니다. 정말 화나죠...
진행자 : 그래서 문 기자도 해 입었습니까? (웃음)
문성휘 : 나중에 다 해 입을 때 저도 해 입었죠. 하지만 일등엔 못 속했고요.
박소연 : 어머니가 바꾼돈 상점에서 그 반짝지를 사면서 저를 백번도 넘게 째려본 것 같습니다. (웃음) 그래도 저거 사주니까 맞은 게 그렇게 좋고 행복하더라고요. 그때는 그런 공주병이 있었네요. (웃음)
진행자 : 북쪽에서 5-6학년이면 16, 17살이니까 멋 내는 게 한창 중요한 때네요.
문성휘 : 이후에 북한에선 길거리에서 반바지 입는 걸 단속했는데 그것도 다 운동복, 체육복에서 시작됐죠. 그 유행이 아다라스 반팔에서 시작됐습니다. 그 연꽃무늬 상표는 아직도 생각나네요. 반팔이랑 반바지가 같이 나왔는데 여름에 입기 시원하니 바람도 잘 통하고... 그거 처음 나왔을 때 정말 대단했습니다. 그걸 입고 일부러 길거리에 나가서 몸을 흔들고 거기에 중국산 스레빠(슬리퍼)를 딱 신고 장마당을 휘젓고 다니면... 정말 대단했죠.
진행자 : 북한은 그런 유행이 없을 줄 알았어요. 있어도 남한보다는 덜 할 줄 알았는데요. 이건 뭐 만만치 않습니다.
문성휘 : 더 심하다고 봐야 해요. 북한은 과시적인 사회입니다. 례하면 배가 이렇게 좀 나오고 옆구리에 삼면자크 가방을 쥐면 검열하는 성원들도 건드리지 못 합니다. 공민증을 안 꺼내도 '보여주십시오...' 이런 말도 못해요. 무사통과죠.
진행자 : 보이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유행에 더 민감하다는 얘깁니까?
문성휘 : 그렇죠. 시도 때도 없이 전기가 안 오는데 냉동기를 사놓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그걸 쓸 수 있겠어요?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북한에서 수돗물이 안 나오는데 세탁기를 어떻게 씁니까? 그래도 세탁기가 있다... 이건 과시용이죠. (웃음)
박소연 : 북한은 키도 크고, 덩치가 있는 사람보고 산이 커야 그림자가 크다, 그런 사람들은 뭘 해도 통이 크게 하고... 자그마한 사람이 뭘 하다 안 되면 쟤는 안 된다, 산이 작아서 그림자도 작지... 그럽니다. 저희 친척이 대학을 다녔는데 총각부터 그렇게 배가 나왔어요. 이마도 벗어지고. 실제 간부는 아닌데요. 무산이니까 집 앞 두만강에 바께츠만 쥐고 척 나가도 밀수하던 여자들이 다 달아나요. 구루빠 지도원 나왔다고...(웃음)
진행자 : 그게 학생들로 내려오면, 좋은 옷을 입는다는 게 무슨 의미입니까? 집이 잘산다?
문성휘 : 그렇죠. 집이 잘산다, 힘있다... 저희 학급에 진짜 볼을 잘 차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국가 체육 선수단에서도 여러 차례 내려와서 걔가 볼 차는 것도 보고 달리기도 시키고 검증을 하더라고요. 근데 걔가 끝내 국가 체육단에 못 올라갔어요. 왜냐면 키가 작아서요.
제가 제일 놀란 때가, 사실 저뿐 아니라 북한 사람들 모두 엄청 놀랐는데요. 가네마루 신 일본총리가 왔을 때, 그 총리의 키가 162센티라고 하잖아요? 작고 약해보이는 사람이 총리가 돼서 북한에 왔는데 그때 북한 간부들이 배가 이렇게 나와 있었죠. 그때도 사람들은 일본이 잘 사는 걸 알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저렇게 볼 품 없는 사람이 일본을 이끄는 사람이야? 정말 놀랐고요.
그리고 마라도나요. 마라도나도 키가 162? 165? 크지 않았어요. 마라도나가 나오는 기록 영화를 걔랑 같이 봤습니다. 우리는 그냥 걔가 불쌍해서 사실 그걸 같이 본 것인데 보면서 막 울더라고요. 분해서. 앞으로 더 자랄 수도 있는데 키가 작다고... 북한은 체육 선수단이나 간부를 뽑아가도 인물이랑 키를 먼저 봅니다. 키를 일단 재보거든요. 체육 선수단도 키가 170... 이렇게 나와야 갑니다. 이 친구는 우리가 봐도 정말 볼을 잘 찼는데 마라도나를 보면서 막 우는 겁니다... 야... 진짜 우리도 슬펐습니다. 참, 신기했던 게 저 나라는 체육 선수들을 뽑을 때 키를 안 재보나? 그리고 저는 가네마루 신이 왔을 때 일본은 섬나라니까 저 나라 사람들은 다 작은 모양이다... 그러니까 저렇게 작은 사람이 국가를 이끌지 그랬던 기억이 나네요.
진행자 : 사실 이건 큰일 날 발언입니다. (웃음) 사람의 입성 또 얼굴 생김, 키 등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건 해서는 안 되는 일이죠...
박소연 : 북한에선 보편적인 생각이 사람이 잘 나고 봐야한다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도 본능적으로 사람이 볼품없고 그러면 관심을 안 갖게 되잖아요? 북한에선 항상 그럽니다. 그냥 여자고, 남자고 나고 봐야한다...
문성휘 : 또 먹은 티는 안 나도 입은 티는 난다, 이런 말도 많이 합니다. 집에서 강냉이 밥을 먹어도 행차복(외출복)은 다 갖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업신여김을 당합니다.
진행자 : 그래서 더 외모와 좋은 옷이 중요하군요. 근데 사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남쪽도 그렇지만 대표선수를 뽑을 때 키나 외모보다는 실력이 더 중요합니다. 좋은 체격은 좋은 재료가 될 순 있지만 그게 재능이나 노력을 보여주는 건 아니니까요. 그런 식으로 따지면 세계적인 선수들은 키가 다 장대만해야죠. (웃음)
문성휘 : 그게 국가가 인권을 유린하는 겁니다. 재능을 마음껏 꽃피우게 한다...? 재능을 누가 어떻게 꽃 피워요? 키 작으면, 인물이 없으면 안 되는데... 그게 북한이죠. 참 안타까운 게 정말 목소리가 좋은데 인물이 없어서 예술단에 못 뽑힌 아이들, 특히 키가 작으면 예술단에 못 갑니다.
진행자 : 진짜 보여 지는 게 중요한 국가네요. 남쪽도 외모 지상주의라고 할 정도로 보여지는 게 중요한 사회인데요. 북한도 대단합니다. (웃음) 자.. 체육에 대한 얘기도 해볼게요. 북한에선 축구가 제일 보편적이죠? 인민들 사이에 많이 하는 체육은 뭔가요?
박소연 : 가장 많이 쉽게 하는 건 정구요.
문성휘 : 배드민턴이랑 비슷한 경기인데요. 세계 경기도 있어요. 그게 둘이 있을 때는 제일 하기 좋습니다. 그 경기가 공을 구하는 게 힘들었는데 이제 중국에서 많이 나오니까 할 수 있겠죠. 탁구는 지금은 많은데요. 김정은이 체육 대중화를 한다고 하면서 장려를 많이 했고요. 사실 북쪽에서 대중 체육은 돈벌이 수단입니다. 지어는 당구도 많습니다. 중국에서 들여와서 시간당 얼마씩 돈을 받으며 하게 하는 겁니다. 당구는 전기 안 와도, 촛불 켜놓고 할 수 있고 그래서 아주 좋아한답니다. 그리고 요즘은 탁구판도 중국에서 들여온다는데... 그 전의 북한 탁구판은 정말 볼만했습니다. (웃음) 그냥 판자를 대패질해서 만든 것인데 비를 맞거나... 아니 비를 딱 안 맞아도 얼마 있으면 습기가 차서 이렇게 일어납니다. 그래서 탁구를 치면 왕청 같은 데로 튀고... (웃음) 재밌기는 한데 어디로 날아갈지 모르는 게 북한 탁구공이었죠. 그리고 탁구채도 없었고요. 하지만 지금은 중국이 있으니까... 정말 중국이 없으면 북한은 정말 까마귀 세상이죠.
박소연 : 빤스도 못 입습니다. (웃음)
진행자 : 그런 대중 운동은 남쪽과 비슷합니다. 남쪽 사람들은 탁구 많이 하고요. 배드민턴 많이 하죠. 일요일마다 학교 운동장에 아저씨들 모여서 볼 차는 조기 축구회 그리고 학생들은 농구도 많이 합니다.
문성휘 : 아... 북한에선 사람들이 잘하고 좋아하는 게 배구에요. 근데 한국은 이상하게 농구를 좋아하대요?
박소연 : 키가 큰데요...
진행자 : 그건 농구를 하는 자녀들에게 갖는 어머니들의 바람이고요. (웃음) 90년대 초반에 농구 만화가 엄청나게 인기를 얻은 적이 있습니다. 영화도 나오고 드라마도 나오면 농구가 선풍적인 인기였어요. 그런데 농구는 농구대만 있으면 혼자도 하고 여러 명이서 함께 하고... 놀기 좋아요.
문성휘 : 근데 농구는 북한 사람들 체질에는 잘 맞지 않아요.
진행자 : 엄청나게 장려하지 않습니까?
문성휘 : 그러니까요. 밑도 끝도 없이 한 2002년 그 즈음에 김정일 위원장이 세계적인 추세가 농구라고 하면서 농구대를 다 만들라고 했어요. 미치겠더라고요. 북한은 일단 뭘 만들라고 중앙에서 내려오면 나중에 다 검열을 나와요. 정말 마당이 작은 직장에서도 양쪽에 농구대가 세울 형편이 안 되면 한쪽에라도 세워놓아야 했습니다. 그러니까 농구대는 여기서는 다 돈을 주면, 그렇게 비싸지도 않고 와서 설치해주기도 하잖습니까? 북한에선 그 농구대... 십각각자라고 해요. 10센티, 10센티로 된 나무기둥이요. 그걸 다 톱으로 썰고 대패질을 하고, 공이 들어가는 부분은 철사를 구부려서 만들어야 했습니다.
진행자 : 그물 부분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문성휘 : 그물은 실로 대강 엮어서 만들고요.
진행자 : 83제품 장난 아니네요. (웃음)
문성휘 : 장난 아니죠... (웃음) 안 하면 기관장을 처벌했어요. 목이 달아나고... 하는 수 없이 만들어 놓는 겁니다. 근데 농구대를 만들어 놓았으면 농구공을 줘야하지 않습니까? 농구공이 없어서 그때 김정일이 군부대들마다 농구공을 선물했는데 엄청 나게 욕먹었어요... 그 공이 못 견디더라고요. 워낙 북한 땅은 고르지 못하고 여기저기 돌이 많아서 안 견딥니다. 껍질이 일어나고 터지고. 어디서 이렇게 제일 눅거리를 가져다 선물했다고 엄청 욕을 했죠. (웃음) 그리고 3년 뒤엔 그 농구대가 다 없어졌어요...
아마 그 농구대들은 어느 집 아궁이에서 명을 다 했겠는데요...
어느 나라든 국민들에게 대중 체육을 장려합니다. 우리가 소위 선진국이라고 부르는 국가들도 부러울 정도로 대중 체육 시설이 잘 돼있고 투자도 엄청나게 하는데요. 왜 그럴까요?
북쪽에서는 체력은 국방! 이러죠. 남쪽에선 체력은 국력! 이렇게 말하는데요. 체력은 사실 건강한 국민이 만들어가는 건강한 나라를 위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말도 있지 않나요? 건강한 몸에 깃드는 건강한 정신!
자, 김정은 위원장이 '강추'하던 농구대의 행방은 다음 시간에 알아보겠습니다. <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지금까지 진행에 이현주 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0:00 / 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