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의 다른 꽃(1)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11월, 남한에 도착해 올해 남한 생활 3년 차를 맞고 있습니다. 2012년 아들을 데려와 혼자서 키우는 열혈 '워킹맘' 그러니까 일하는 엄마입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엔 남한 정착 8년차, 자강도 출신 문성휘 기자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남한에서 처음 꽃다발을 받을 때 내가 공주가 된 느낌이었어요. 그 꽃다발의 주인이 나라는 게 너무 신기했어요.

소연 씨는 남한에 와서 종종 꽃다발을 받는다고 합니다. 생일 등 무언가 축하받을 일이 있을 때면 꽃다발을 선물 받았다고 하는데요. 싱그럽고 아름다운 꽃다발을 받으면 공주가 된 느낌이라고 해요. 남한 곳곳에 피어 있는 꽃들과 일 년 사계절 꽃을 파는 꽃집, 계절마다 열리는 꽃 축제... 유독 꽃을 좋아하는 소연 씨는 세계의 꽃을 만나볼 수 있는 꽃박람회에 가면 마치 꿈나라에 있는 기분이라고 하는데요.

소연 씨의 꽃 얘기 함께 들어보시죠.

진행자 : 안녕하세요. 어떻게 지내셨어요? 추석도 있었고 연휴가 꽤 길었는데요.

문성휘 : 늘 지금 같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딱 휴가를 간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박소연 : 저는 좀 피곤했어요. 인사할 데도 많고, 또 아이가 놀이장에 가자고 해서요. 북한에 있을 때는 추석이면 묘지에 가서 배가 볼록하게 먹고 내려오면 되는데 남한에 오니까 여기저기 놀러 가야 해서...

진행자 : 저는 성묘를 가느라 꽃다발을 샀는데, 국화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정말 가을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박소연 : 남한에는 묘지 앞에 꽃을 세워뒀더라고요. 지나가면서 봤는데. 그런데 싱싱한 거예요. 생화를 그렇게 흔하게 보는 건 남한이 처음인 것 같아요.

진행자 : 얼마 전에 보니까 함경북도 청진에서 김일성 주석, 김정일 위원장 동상 세워지는 거 보니까 꽃다발 많던데요.

문성휘 : 북한에서도 그럴 때는 특별히 꽃다발을 많이 가져다 놓아요. 북한에서는 남한과 달리 바구니에 꽃을 넣어요. 그런데 꽃바구니라는 건 김일성에게만 줄 수 있고, 북한에는 남한처럼 꽃시장이 없어요.

진행자 : 여성들은 꽃을 좋아하는데, 그럼 소연 씨는 북한에서는 꽃다발을 못 받아보셨나요?

박소연 : 북한에는 생화를 파는 데가 없어요. 그런데 북한 시장에 가면 꽃 매대가 있는데 중국에서 넘어온 인조 꽃이 있어요. 그 꽃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북한 여성들은 정말 꽃을 좋아해요. 그래서 인조 꽃을 사서 꽃병에 꽂고 거울 앞에도 매달아 놓고, 때가 묻으면 가루비누를 물속에 풀어서 씻으면 때가 벗겨져요. 그러면 툭툭 털어서 상이나 거울 앞에 놓으면 또 예전처럼 되는 거예요. 오래 보존할 수 있고 값도 저렴하고, 다만 한 가지 향기가 없어요(웃음).

문성휘 : 저도 '지아'라고 하죠? 종이나 천으로 만든 꽃인데 지금도 집에 놓고 있어요. 그런데 잘 아는 남한 분이 저희 집에 와서 왜 이런 걸 집에 잔뜩 놔뒀냐고 기왕이면 화분을 가꾸거나 생화를 꽂지, 남한에서 지아는 화장실에 놓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러고 보니까 진짜 화장실들에 지아가 많은 거예요(웃음).

진행자 : 남한에서는 꽃을 선물 하는 게 굉장히 흔한 일이잖아요. 어버이날, 스승의 날, 졸업식, 입학식, 또 누가 출산했을 때 꽃을 선물하기도 하고, 결혼식, 생일 때도 하고. 특히 젊은 층에서는 남자친구가 여자친구에게 고백할 때도 꽃다발을 선물하는데.

문성휘 : 저는 하나원에서 꽃을 처음 받아 봤어요. 그때 탈북자들이 기분이 모두 언짢았어요. 장미꽃 한 송이씩 포장한 거였는데. 사실 꽃값이 비싸요. 양말 한 켤레에 천 원이 안 되는 것도 많잖아요. 우리는 모두 '이걸 왜 주지? 차라리 양말이라도 하나 주겠다.' 그랬어요.

(진행자 : 환영하겠다는 의미겠죠?)

네, 그런데 여자들도 보니까 좋은 인상은 아니었어요. 다들 얼떨떨한 표정?

(진행자 : 꽃을 받는 것 자체가 자연스럽지 않은 거군요.)

맞아요, 이게 어떤 의미인지 잘 몰랐던 거예요. 그만큼 우리한테 꽃에 대한 생각이 남한 사람들처럼 폭넓지 않아요.

진행자 : 그러면 소연 씨는 처음 남한에서 꽃다발을 받았을 때 기분 기억하고 계세요?

박소연 : 저는 남한에서 3년을 사는데, 꽃다발을 많이 받았어요. 생일에도 받았고, 이번에 세례 받을 때도 받았고, 아들한테도 화분을 받았어요. 남한에서 처음 꽃다발을 받을 때 내가 공주가 된 느낌이었어요. 그 꽃다발의 주인이 나라는 게 너무 신기했어요. 우리는 (김일성)동상에 바치기만 했잖아요. 그런데 그 예쁜 꽃을 내가 받았다는 게, 생일을 축하한다는 카드까지 받았어요. 그때는 내가 갑자기 공주가 된 느낌, 호강한다... 내가 꽃을 받는 임자가 된 거예요. 이번 생일에는 배달이 왔어요. 웬 남자가 배달 와서 생일을 축하한다는 리본까지 달아줬어요. 여자라서 그런지 꽃은 계속 받고 싶어요(웃음).

진행자 : 사실 꽃을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것도 어느 정도 마음의 여유, 경제적인 여유가 기반이 됐을 때 가능한 것 같아요. 남한에서도 과거 저희 부모님 세대만 해도 꽃다발 주고받는 게 그렇게 자연스러운 건 아니었고, 지금도 미혼여성들은 꽃다발 받는 걸 굉장히 좋아하지만, 기혼여성들은 꽃다발 4~5만 원짜리를 사오느니 더 실용적인 것을 사오라는 말을 장난스럽게 하거든요. 아무래도 실용적인 면에서 꽃을 선물하는 문화는 조금 사치스럽다는 생각은 남한에도 있습니다. 또 꽃 가격이 수요가 많다 보니까 더 오르는 면도 있어요. 꽃을 가꾸는 원예사도 외국에 나가서 유학을 하고 오니까 인건비 자체가 올라서 꽃값이 점점 상승하는 경향도 있고요.

문성휘 : 그러니까 꽃을 보면 남한의 경제규모를 알 수 있다는 거예요. 남한이 한 해 일본에만 지불하는 로열티, 그러니까 일본에서 꽃 종자를 들여와 심는 대신 일본에 돈을 주는 거잖아요. 이게 한국 돈으로 5억여 원이라고 하잖아요. (진행자 : 일본만 그 정도니까 다른 나라까지 하면 더하겠죠?) 그렇죠, 그게 한국의 수용 능력이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남한 사람들이 그런 꽃에 대한 수요가 있기 때문에 사들여와 심는 게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한국의 꽃 문화가 엄청난 수익을 창출한다는 거죠.

북한도 1980년대까지는 꽃이 많았어요. 그때 보면 북한은 김일성 동상 주변에 가장 많이 심는 꽃이 샐비어라고 북한말로는 불꽃이에요. 이게 작은 꽃들이 많이 붙어있으니까 단결과 열정의 상징이라 해서 김일성 동상 주변에 특히 많이 심었어요. 또 80년대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공장이나 마을에 공동으로 관리하는 텃밭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다 없어진 거예요. 사람들이 굶어죽는데 누가 꽃을 심고 가꾸겠어요. 그러니까 자연히 꽃이 없어지게 됐고.

최근에 김정은이 꽃밭을 만들라고 해서 공장기업소 사람들이 굉장히 싫어했다고 하더라고요. 왜냐면 공장기업소의 작은 화단들에는 흔히 고추를 많이 심어요. 그리고 여기서 상추라고 하는 부루 같은 걸 많이 심어요. 북한에서도 직장이 먼 사람들은 도시락을 싸서 오거든요. 반찬거리가 특별히 없잖아요. 그러면 그 텃밭에서 고추를 따서 먹는 게 최고의 낙이었는데 그걸 다 꽃밭으로 만들어놓으니까 사람들이 황당해 했다고 하더라고요.

(진행자 : 식재료를 심는 게 아무래도 나은 거군요.)

그렇죠, 반찬거리가 마땅치 않아요. 남한처럼 식당 망이 발전하고, 여기 학교나 공장들처럼 밥을 먹여주는 게 아니니까 다 집에서 밥을 준비해 와야 하는데, 그러자면 반찬거리가 없잖아요.

진행자 : 남한에서도 도로변에 다양한 꽃들이 자라고 있는데, 중요한 건 누군가 가꿀 사람이 있다는 거죠. 공공사업으로 꽃 모양도 잘 가꾸고 비료도 주고. 공원을 보면 한국식 정원, 일본식, 영국식 정원들도 있잖아요.

문성휘 : 그게 사람들의 수요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거예요. 누가 와보는 사람이 없으면 가꾸는 사람도 없을 것이고, 꽃밭도 없어질 거예요.

그런데 북한에 있을 때는 어쩌다가 산에 가서 꽃을 보면 한참 보고 향기를 맡아보고 기뻐했어요. 그런데 한국은 그런 느낌은 안 들어요. 어딜 가나 꽃이니까, 꽃이 없는 곳이 어디 있어요. 그러니까 별로 꽃이 예쁘다, 걸음을 멈추고까지 한참 바라보고 그런 게 없어요. 북한 같았으면 '야, 꽃이다' 하면서 달려가겠는데 남한에서 그러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미친 거 아니냐고 할 거예요.

진행자 : 남한에는 계절마다 꽃이 있잖아요. 봄에는 개나리, 진달래, 철쭉, 산수화가 많이 피고, 여름에는 장미 등 계절마다 꽃이 피어서 꽃 축제 하는 곳에 돈을 내고 찾아가기도 하잖아요.

문성휘 : 그런 것 같아요. 남한은 집에 샤워시설이 있어서 집에서 얼마든지 목욕을 할 수 있잖아요. 더운 물도 마음껏 쓸 수 있고. 그런데도 남한 곳곳에 목욕탕이나 사우나가 있어서 일부러 돈을 내고 목욕탕에 가잖아요. 꽃 축제도 가면 그냥 길가에서 보는 것과는 다를 것 같아요. 저도 한강에서 열리는 꽃 축제에 세 번이나 갔어요. 아닌 게 아니라 꽃보다 사람이 더 많은 거예요. 이렇게 꽃을 즐기는 사람이 많다니, 깜짝 놀랐어요.

진행자 : 서울 여의도도 그렇지만 주요 도시에서 꽃 축제를 할 때면 교통통제가 이뤄질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립니다.

문성휘 : 이건 뭘 공짜로 준다고 해도 그 정도로는 못 모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진행자 : 계절마다 꽃 축제가 많은데, 소연 씨는 다녀보셨어요?

박소연 : 경기도 고양시 꽃박람회에 갔어요. 남한에 있는 꽃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온 꽃인데, 저는 꿈나라에 온 것 같았어요. 그게 만든 꽃도 아니고, 생화가 그렇게 싱싱하게 여러 외국에서 온 것도 신기하고. 그런데 거기에 김일성화가 있는 거예요. 유일무이하게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꽃인 줄 알았는데 흔하고 흔한 꽃이 김일성화였어요.

남한에 와서 일 년 사계절 피는 꽃을 보고 꽃다발을 직접 선물 받으며 기뻐하던 소연 씨는 어느 날 꽃 축제에 가서 김일성화를 봤다고 합니다. 비슷하게 생긴 꽃이 남한 곳곳에 있다고 하는데 어찌 된 일일까요? 이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가겠습니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릴게요. 지금까지 진행에 윤하정이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