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남한에 도착해 올해 남한 생활이 6년 차입니다. 도착한 다음해 아들도 데려와 지금은 엄마로 또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은 소연 씨가 북한을 떠나 남한이라는 세상에서 보고 겪은 경험담을 전해드립니다. 남한의 신기한 세상만사를 얘기하다고 보면 떠오르는 고향의 추억들도 함께 나눠 봅니다.
INS - 우리 회사가 약간 경제적인 사정으로 해서 문을 닫게 됐어요...
그래서 소연 씨는 새 직장을 찾고 있습니다. 남한에 온 탈북자들은 평균 5번 이상 직장을 옮겨본 경험이 있고 문 기자 역시 딱 그 평균에 들어갑니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오늘 소연 씨, 새 직장 구하는 얘기 들어보겠습니다.
문성휘 : 제가 첫 번 째 직장을 나왔을 때 두 번째 직장이 이미 예정이 돼있었어요. 당시 교회를 다녔는데 교회에서 부기원으로 일을 하게 됐는데 벌써 그때에도 영수증이 전부 컴퓨터로 나왔어요. 회계 프로그램이 있는데 도저히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북한처럼 내가 장부를 만들어서 일일이 다 손으로 정리를 했는데 매달 그걸 받아보는 장로님이 이거 정말 보기가 힘들다, 왜 쉬운 길이 있는데 이렇게 어렵게 일을 하느냐... 안 되겠더라고요. 8개월 다니다가 우선 컴퓨터부터 배워야 할 것 같아서 그만뒀어요. 한국은 취업 준비를 위한 컴퓨터 교육은 거의 무료에요. 그래서 학원에 들어가서 그래픽 디자인을 배우고... 그 다음부터는 컴퓨터는 어려운 것이 없었습니다. 학원을 다 졸업하지 못 하고 다른 직장에 들어가게 됐고 거기에 3년 다니다가 사장하고 대판 싸워서... (웃음) 우리 북한 사람들이 특징이 그렇잖아요? 대판 싸우면 그 다음엔 회사에 출근을 안 하고. 그 다음에 누가 북한 전문 인터넷 신문에 소개했고...
진행자 : 그리고 RFA 에 들어오게 되셨군요.
박소연 : 문 기자님 말 중에 특히 공감되는 게 싸우고 안 나갔다... (웃음) 북한에서는 그래야 남자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습게 본다고. 저는 여자이지만 북한에서는 장사를 했기 때문에 먹고 살다보니, 남자를 이겼습니다. 남한에 와보니 그 성격을 다 부리면 못 산다 하더라고요. 저도 회사에 들어갔더니 화나는 일이 많았습니다. 사람 차별하고. 생각해보면 당시 차별이 아니었는데 저만 그게 차별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죠. 그래서 제가 막 화가 나서 책상을 두드리며 나는 이제 더 이상 이 회사에 일을 하지 않겠다! 그랬습니다. 책임자가 소연 동지! 가지 말라며 붙들 줄 알았는데 그냥 가라고 하더라고요. (웃음) 그때가 제가 회사에 들어간 지 1년, 남한에 온 지 1년 밖에 안 된 때였습니다. 그때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내가 어떻게 잡은 직장인데, 실업자가 되지 않나... 이틀 고민하다가 전화로 사죄를 했어요. 저도 잘 못 했는데 대표님도 다 잘 하신 것 아니라고.(웃음) 그리고 출근해서는 귀가 왜 두 개가 있나, 한 쪽으로 듣고 한 쪽으로 흘리라는 것 아니겠나. 혼내면 내가 잘 못 해서 그런 거다 생각하며 있었더니 4년이 훌쩍 지났어요. 그랬더니 이제 다른 이유로 회사를 떠나게 되네요. 북한처럼 국가가 회사를 운영하는 게 아니라 개인이 운영하다나니까 경제적으로 어려우면 문을 닫는 경우도 있어요. 이제는 제가 책상을 땅 치고 나온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정든 회사를 떠나야하는 상황입니다. 그래도 그때 화를 내고 집으로 왔던 그 심정과는 다릅니다. 이제는 거의 5년차가 되니까 남한을 아는 겁니다. 직장은 널려있다, 다만 내가 돈을 많이 주고 내 적성에 맞는 좋은 직장을 찾으려니 고민하는 겁니다. 그걸 다 내려놓으면 내일이라도 가서 할 일은 있어요. 그래서 고민은 되지만 그래, 아직 한창 일할 나이고 이 기회를 이용해서 그 동안 못 한 공부를 하자, 회사 다니면서 시간이 없어서 못 배운 운전 같은 것을 배워보자는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진행자 : 네, 좋은 자세이신 것 같습니다. 할 얘기가 많지만 우선 그 얘기부터 해볼까요? 싸우고 회사를 그만 나가는 일... 다반사죠. (웃음)
박소연 : 아니, 멀쩡한 회사를 왜 그만 다니겠어요? (웃음) 다 싸우고 나오는 거죠.
문성휘 : 탈북자들 늘 직장을 옮기는 이유가 들이 부수어...
진행자 : 남한 사람들도 직장에서 언성을 높여 싸우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 지키는 수위라는 것이 있는데 참... 뒷감당 안 될 정도까지, 끝까지 몰아붙이시더라고요.
박소연 : 맞아요. 끝을 보죠.
문성휘 :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 무서운 것도 있고 그런데요. 나이가 젊었을 때는 이거 안 하면 육체 노동하지, 나 그런 자신이 있었고 무서운 것이 없었네요.
박소연 : 남한 사람들이 많이 이해해주는 편이죠. 처음에 남한에 왔을 때는 뭘 잘 못 했어도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북한에서 왔는데 그렇지모... 1년도 채 못 됐는데 횡당보도를 건너는데 빨간불이 들어왔어도 바빠서 막 뛰었어요. 하필 교통경찰한테 걸렸는데 벌금을 내라고 해요. 그래서 제가 저 엊그제 북한에서 왔습니다, 하나도 몰라요... (웃음) 봐주더라고요. 앞으로 그러시지 말라며 웃으며 인사하더라고요. 이제 5년째에 그러면 안 되죠. 그렇지만 그때 일을 생각하면 부끄럽고 지금 온지 얼마 안 된 탈북자들이 저하고 똑같이 그러면 창피하고 그렇습니다.
진행자 : 그게 얼마 전 소연 씨의 모습이었는데요? (웃음)
박소연 :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고...
진행자 : 그렇게 변하는 게 쉽지는 않죠?
문성휘 : 지금 생각하면 변하는 게 옳은데 그 과정이 정말 고달프고 힘들어요.
박소연 : 직장도 그런 것 같아요. 바꾸는 게 힘들어요. 4년 동안 같은 직장에서 일하다 이제 다른 직장을 구하자고 나서니 힘들기는 합니다. 한 달 정도 알아보고 있는데 남한에서 정말 많은 직업이 있더라고요. 그러면서 생각한 것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자! 제가 북한에서는 감자 배낭 매고 장사를 다녔습니다. 그게 좋아서 한 건 아니죠. 30대인데, 진짜 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먹고 살아야했으니까요. 남한에 와서도 처음엔 그냥 아무 직장이나 들어가서 일단 돈을 벌어야 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좀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약간이라도 내가 먹고 살 조건만 되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싶다...
북쪽은 직장을 배치하지만 남쪽은 본인이 직업, 직장을 선택하다보니 '직업 또는 직장을 구하는데 중요하게 생각하게 뭐냐?'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저도 소연 씨에게 같은 질문을 했는데 당연히 대답은 '돈'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돌아온 답변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 였습니다.
너무 이상주의에 한가한 소리로 들립니까? 남한에는 직업 선택을 조언해주는 전문가들도 많은데요. 의외로 이 분들이 제시하는 직업 선택에 가장 중요한 기준은 의미, 재미, 흥미입니다. 일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 재미를 느끼고 내가 흥미가 있는 직업. 소연 씨의 새 직장 얘기, 다음 시간에 이어가겠습니다.
<세상 밖으로> 지금까지 진행에 박소연, 문성휘, 이현주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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