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에 와서 달라진 이혼&재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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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11월, 남한에 도착해 올해 남한 생활 3년 차를 맞고 있습니다. 2012년 아들을 데려와 혼자서 키우는 열혈 '워킹맘' 그러니까 일하는 엄마입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엔 남한 정착 8년차, 자강도 출신 문성휘 기자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여기 오니까 과부라는 말을 안 쓰고 '돌싱'이라고 하더라고요. 지붕이 샐 일도 없고, 전기난방이니까 스위치 넣으면 다 되고. 그러니까 과부라는 표징이 안 나요. 그게 정말 좋았어요.

북한에서 이혼 후 과부라는 말을 들어야 했던 소연 씨는 남한에서는 상대적으로 홀로 아들을 키우는 것에 어려움이나 편견이 적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혼이라는 지난 상처에도, 재혼이라는 새로운 희망에도 예전과는 다른 생각과 기준들이 자리 잡게 됐다고 하는데요. 소연 씨를 이렇게 변하게 만든 건 무엇일까요?

소연 씨 얘기를 직접 들어보시죠.

진행자 : 안녕하세요. 요즘 날씨가 좋아서 남한에서는 주말마다 결혼을 많이 합니다. 탈북자들도 남한에서 결혼, 결혼생활 이런 것들을 많이 생각하실 것 같아요.

박소연 : 남한에 온 지 2년이 좀 넘었잖아요. 제 동기생이 150명인데 130명이 결혼했어요. 애기 있는 사람들이 많아요.

문성휘 :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빨리 결혼했다는 거예요?

박소연 : 가족이 함께 오기보다는 독신들이 많이 오잖아요. 그러니까 외로움을 더 많이 타고. 결혼식에 남자친구를 데려오지 않은 사람이 저밖에 없더라고요. 놀랐어요.

진행자 : 소연 씨도 지금 혼자잖아요, 아드님이 있지만. 그래서 결혼, 재혼이 되겠죠. 재혼에 대해서 생각하실 것 같아요.

박소연 : 생각하죠.

문성휘 : 궁금한 게 소연 씨는 어떤 사람이 이상형이에요?

박소연 : 저는 이상형이 없어요. 처음에는 있었어요. 재작년까지는 문 기자님한테는 미안하지만 탈북자는 생각을 안 했어요. 남성 탈북자들이 '탈북 여성들은 비행기에서 남한 땅에 발을 놓는 순간 남한 여자 흉내를 낸다'고 해요. 속으로 그럴까 했는데 제가 그렇게 됐더라고요.

북한 사람이 나빠서라기보다는 우리가 북한에서는 경제가 기본이에요. 사랑을 떠나서. 내가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데 아무 것도 없는 북한 사람을 만나서 언제 일어설까, 우리 행복하려고 왔는데. 고생길이 계속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으로 북한 남자를 거부했어요. 2년 반이 지난 지금은 아니에요. 탈북자라도 저와 대화가 통하고 괜찮은 사람이면 상관없어요.

문성휘 : 저 같은 경우는 가족과 함께 왔잖아요. 탈북 여성들에게 환멸을 느끼기도 했어요. 탈북 여성들 우리 같은 탈북 남자들을 돌아보지 않아요. 다 남한 남자와 살 거라고 해요. 우리 탈북 남자들이 보기에는 굉장히 민망하고 안타깝고 화가 나는 거죠.

소연 씨가 탈북 남자들과 언제 돈을 모아서 일어나겠나 했는데, 저는 다른 쪽으로 생각했어요. 북한 남자들 굉장히 가부장적이에요. 북한에서 가족끼리 온 사람들도 북한의 가부장적인 제도를 안고 살아요. 나는 그래서 여성들이 싫어하지 않을까. 남한은 이런 가부장적인 요소가 많이 해소되지 않았어요. 아마 그게 부러워서 북한에서 남편한테 술심부름, 그리고 폭행도 당하고,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었던 여성들이 이제는 남한이라는 사회, 가부장적인 억제가 덜한 그런 사회에서 살아온 남자를 만나서 새로운 사랑에 대한 출발을 하고 싶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진행자 : 그리고 남한이라는 전혀 새로운 공간이잖아요. 남한 사람을 만나면 정착하는 데 안내를 받을 수 있잖아요. 같이 북한에서 오신 분들은 서로 이해하는 면이 훨씬 더 강할 것 같고, 남한 분은 남한에 대해 알려줄 수 있으니까 정착하는 데 훨씬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소연 씨가 보기에 남북한 남자들의 차이점은 뭔가요?

박소연 : 북한 남자들은 겉이 뚝뚝해요. 마음은 정말 깊고 아내를 위해 진심을 다 하는데 겉으로 표현이 안 돼요. 남한 남자들은 여자들 가방도 들어주고, 식당에 가면 문도 열어 주고, 여자가 다 들어갈 때까지 문고리도 잡고 있고. 남한에 와서 저희 같은 사람은 남한 남자하고 살면 또 새로운 세상이 있지 않을까. 그리고 남한사회를 알려면 남편과 대화를 많이 하면 그게 배우는 게 아닐까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문성휘 : 남한 분들과 함께 사는 분들이 다 같이 호소하는 게 속이 타는 말을 못하겠다. 왜냐하면 잘 이해하지를 못한대요. 그리고 상처를 입은 사람들 아니에요. 그런 면에서 탈북자들은 감정적으로 보듬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요. 그런데 남한 분들은 '고생했다' 이해는 하는데 보듬을 줄 모른대요. 사실 뚝뚝하다는 건 사회제도나 문화가 달라서 그렇지 북한 남성이나 남한 남성이나 똑같아요.

진행자 : 아무래도 문화적인 차이가 크다는 게 결정적이지 않을까 생각되는데요. 남한에서는 이혼율이 굉장히 높습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지난해 이혼이 11만5천여 건이 된대요. 하루에 3백여 쌍이 이혼한 셈인데요. 그만큼 재혼율도 높습니다. 그런데 결혼했던 분들은 결혼하려는 분들에게 그 힘들고 고달픈 걸 왜 하려고 하느냐, 그냥 혼자 살라고도 하는데, 소연 씨가 재혼을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박소연 : 어차피 일생을 혼자 살 수는 없잖아요. 저는 북한에 있을 때부터 혼자였어요. 북한에서는 재혼이라는 말보다는 두 번 시집간다, 살림을 합친다는 말들을 해요. 그런데 살림을 합친다는 말 자체가 식구가 늘어난다는 거잖아요. 먹을 것도 없고, 애들도 없는 데서 싸움이 더 많아요. 그걸 생각하니까 저는 애만 데리고 살다가 남한에 왔어요. 그런데 남한에 오니까 쌀에 대한, 먹을 것에 대한 걱정이 없는 거예요. 북한에서 살 때는 먹을 것, 경제력만 해결되면 다른 건 참고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남한에서는 경제적인 면이 해결되니까 이 사람이 나하고 생각이 비슷한가, 애는 없는가, 내 이익부터 생각하는 거예요. 이렇게 되니까 지금 현재도 못가고 있는 것 같아요.

진행자 : 이혼 얘기를 잠깐 했었는데요. 남한 같은 경우 1950년대와 비교하면 2000년대 이혼율이 13배나 높다고 해요. 남한에서도 그 당시만 해도 여자들은 경제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혼하는 걸 꺼려하는 면이 있었고, 또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서 참고 사는 경우가 많았는데요.

90년대 들어 여자들의 경제활동이 많아지면서 참지 않고 이혼하겠다는 게 많아졌고, 그래서 황혼이혼이라고 하죠. 50~60대들이 더 이상은 참지 않겠다며 이혼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지금 이혼율이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이혼한 사람에 대한 편견은 존재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웬만하면 참고 살자는 면도 있는데, 혹시 그런 면에서 남북을 비교해보면 어떤가요?

박소연 : 북한에서는 이혼하면 무조건 여자 탓을 해요. 북한에서는 술 먹고 싸우다 이혼하는 경우도 많아요. 남자들이 술고래가 많거든요. 그런데 술이 다 돈이에요. 쌀 썩은 물이라고, 술 두 병이면 쌀 1kg을 사는데, 그걸로 자식들 배부르게 먹이지 다 오줌으로 나가는 걸 그렇게 먹느냐. 그런데 이혼을 하게 되면 무턱대고 여자부터 욕해요. 자식들 데리고 헤어지면 하늘에 시집갈 것 같으냐, 네가 싫다는 그 남자도 또 어떤 여자가 맞추며 산다, 그런 말들을 많이 하는데 저는 싫어요.

진행자 : 소연 씨가 남한에서 직접 겪어 보기에는 어떻습니까? 글쎄요, 남북을 비교했을 때는 남한이 덜 가부장적인지 모르겠지만 남한 여성들은 여전히 남한이 가부장적이라고 하고 서양과 비교했을 때는 이혼과 관련해서 특히 여자한테 이혼녀 딱지가 붙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아직 남한 사회도 이혼에 대해 그렇게 자연스럽지 않은데요.

박소연 : 이혼한 사람들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만 이혼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보지는 않아요. 북한에 있을 때는 스스로도 '이혼을 하면 안 되는데' 생각했어요. 그런데 제가 남한에 와서 보니까 이혼도 할 수 있다, 한 번뿐인 인생이잖아요. 그런데 자식만 보고 살기 싫은 사람,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만 보는 사람하고 왜 살겠어요.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나서 새롭게 출발하는 것도, 그래서 저는 이게 정말 아니다 할 때는 이혼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진행자 : 남한에서 이혼녀라는 편견, 선입견이 북한에 비해서는 크지 않다고 느끼는 건가요?

박소연 : 북한에 살 때도 저는 혼자 살았잖아요. 북한 말로는 과부죠. 사별했든 이혼했든 그냥 과부라고 해요. 저희는 매일이다 싶게 인민반, 세대주 동원이 있어요. 그럴 때면 과부가 나가야 해요. 어린 애를 삽 쥐어서 내보낼 수는 없잖아요. 세대주들이 모이다 보면 남녀의 일 능률이 다르잖아요. 그러면 사람들이 돌아서서 그래요. 우리 민반에는 '과부때기'밖에 없다고. 과부라는 말도 서러운데 과부때기라고 하거든요. 그리고 북한은 거의 단독주택, '땅집'이에요. 비가 세게 오면 기와 밑으로 비가 새는데, 다른 집 남편보고 고쳐달라고 하면 소문이 나요. 쟤네 둘이 좋아한다고, 눈이 맞았다고. 나무를 신세지면 '저 과부때기네 집에 남자 들어갔다'고. 그러니까 마주서기만 해도 좋아한다고 바람이 났다고 그렇게 말을 하는데. 여기 오니까 과부라는 말을 안 쓰고 '돌싱'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여기는 지붕이 셀 일도 없고, 지붕이 세면 주택관리소에 전화하면 고쳐주고, 전기난방이니까 스위치 넣으면 다 되고. 그러니까 과부라는 표징이 안 나요. 그게 정말 좋았어요.

진행자 : '돌싱'이라는 건 신조어인데, 짝이 없는 사람들보고 영어로 싱글이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결혼했다 다시 돌아왔다, '돌아온 싱글'이라고 해서 '돌싱'이라고 하는데, 그런 표현에서 봐도 남한의 경우 이혼에 대해서 과거에 비해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면이 없지 않아 있기는 합니다.

문성휘 : (남한에서는)한 동네에 살면서 이혼했다고 하면 잘 몰라요. 그런데 북한은 사정이 달라요. 인민반 회의, 동원, 작업과제 등 계속 모여요. 그러면 그 즉시로 소문이 나거든요. 그러니까 이혼했다는 징표, 과부라는 징표 가슴 아프죠. 한국에서 생각하는 것의 몇 십 배, 몇 백 배예요. 그리고 북한은 가부장적인 사회니까 모든 걸 여자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어요.

박소연 : 북한에는 그런 말이 있어요. 여자하고 명태는 두드려야 한다. 그러니까 여자들은 '여자로 태어난 게 죄다' 그러는데 스스로 그런 인식이 있는데, 남한에 와서 드라마를 보면 남한 남자들 얼마나 싹싹하고 부드러워요. 처음에는 거기에 반해요. 남한 남자를 세 번 만나는데 카페에 가니까 의자까지 내주고 제가 막 공주가 된 느낌이에요.

가부장적인 사회, 그래서 여자로 태어난 걸 죄로 생각하며 살던 소연 씨. 소연 씨는 남한에서 와서 드라마에 나오는 싹싹하고 부드러운 남자를 만났을까요? 남한 생활 3년 차 소연 씨가 생각하는 좋은 남자, 그리고 좋은 재혼은 어떤 걸까요?

이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가겠습니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릴게요. 지금까지 진행에 윤하정이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