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합시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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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박소연 씨는 2011년 11월 남한에 도착한 햇내기 입니다. 무산 출신으로 선전대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30대 중반의 여성인데요. 하나원 교육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남한 생활을 시작한지 이제 근 일 년...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에는 남한 정착 7년차, 자강도 출신 탈북 기자 문성휘 씨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 서울 사이버 대학입니다. 아이가 오면서 마음을 굳혔습니다. 대학을 내가 졸업해서 아이에게 도움을 주겠는지 안 주겠는지 미래에 알 수 있는 문제이지만 엄마가 열성스럽게 공부도 하고 그러면 아이도 따라와 주지 않겠는지...

소연 씨가 대학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일하면서, 아이를 키우면서, 공부까지 할 생각을 한 것 보면 소연 씨도 참 어지간히 욕심이 많습니다. 쉽지 않았던 결심이라 더 단단하다는 소연 씨의 얘기, 지난 시간에 이어 들어봅니다.

박소연 : 저도 사실 작년에 2013년 대학 신입생 모집한다고 얘기를 들었을 때 대학에 가고 싶었어요. 북쪽에선 대학 공부도 못하고 바로 사회로 나왔으니까요. 그래서 알아봤더니 35살까지는 남한에서 장학금을 대주는데 그 이상은 알아서 공부하라... 그래서 너무 안타까워하면서 접었는데요. 사회생활을 1년 동안 하면서 보니까 여느 마트 이런데서 일하는 사람들도 다 대학을 졸업했더라고요. 그리고 50-60 대에도 배운다고 하기에 저는 그냥 북한처럼 풍문으로 돌아가는 소리겠지 했는데 아니었고요. 대학을 가자니 제가 갈 수 있는 곳이 사이버 대학 밖에 없더라고요.

문성휘 : 그게 2005년부터 그렇게 제도가 바뀐 겁니다. 그 전엔 특별히 나이를 보지 않았습니다. 탈북자들이 대학에 가고 싶다고 하면 특별히 나이를 보지 않고 나라에서 학비를 대줬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다나니 누구라도 할 것 없이 다 대학에 가서 공부를 하겠다고 나선 겁니다. 그것도 보통 대학을 가겠다는 게 아니라 정말 서울에서도 일러주는 좋은 대학을 들어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대학에 들어가서 공부를 따라갈 수 있었을까요? 그러니까 굉장히 혼란만 만든 겁니다. 게다가 북한은 대학을 중퇴하고 나오면 다시 들어갈 수 없는데 남한은 필요한 때 쉬었다가 다시 대학에 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4년제 대학을 10년 졸업한다... 이런 말도 하지 않습니까? 탈북자들이 들어가서 공부 좀 하다가 못 하겠으면 휴학을 하고요. 휴학을 하는 와중에는 일을 안 하니 나라에서 생활수급자 생계비가 나오고요. 생활수급자 생계비가 끊길 즈음엔 다시 대학에 가고, 다시 학교 좀 다니다 휴학하고 다시 생계비 타고를 반복하는 사례가 문제가 된 거죠.

진행자 : 좋은 제도가 너무 악용됐군요.

문성휘 : 사실 지금도 탈북자들이 제도를 악용하는 좋지 않은 사례들이 많아요. 그러니 2005년부터 제도가 바뀐 거죠.

진행자 : 탈북자들 자신들이 나서서 본인들에게 유리했던 제도를 더 안 좋게 바꾸는 것 같습니다.

문성휘 : 맞아요. 2005년 바뀌기 전엔 훨씬 더 유리한 제도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탈북자 스스로가 망쳐놓은 게 많죠. 초기에 왔던 사람들이 자본주의 제도를 잘 못 이해하다 나니 많은 오류를 겪었답니다. 그런데 저희 때부터는 선배들에게 이런 얘기를 많이 듣다나니 시행착오가 좀 덜 했죠.

진행자 : 사실 남쪽 대학 학비가 만만치가 않죠. 한 학기에 4천 달러 정도이니 1 년이면 8천 달러는 가져야 합니다. 그러니까 학비 지원이 없으면 학교 가기가 머뭇거려지는데 다행히 사이버 대학은 학비가 지원이 되죠?

문성휘 : 네, 35살 이상은 국가에서 돈은 안 대준다고 해도 소연 씨처럼 35살 넘어도 공부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을 위해 사이버 대학을 다 열어놓은 거죠.

진행자 : 가끔은 탈북자들이 부러울 때가 있다니까요. 사실 사이버 대학 학비도 만만치 않습니다. (웃음)

박소연 : 제가 처음 특강을 지난 토요일에 갔었는데 저는 공책하고 원주필을 갖고 갔는데 사람들은 막 노트북을 갖고 와서 치고 있더라고요. 굉장히 있어보였어요. (웃음) 제 옆에 앉으신 여성분이 나이가 60 세 정도 되어 보이는데 무엇인가 자꾸 쓰시더라고요. 중간 휴식시간에 그분하고 통성명을 했어요. 그분은 이미 주간대학을 다 나오시고 석사과정이신데 정신복지학 자격을 따고 싶어서 오셨대요. 서울대 병원 같은 큰 병원에는 전문상담원이 필요한데 그 자리가 들어가기 힘들답니다. 제가 그러면서 한 학기에 학비를 얼마 정도 내시나 물어봤더니 그 분이 저를 의아하게 보시는 거예요. 한 학기에 350만원, 3,500달러 정도 내는데 참고 서적도 사야하고, 실습 나가면 5, 6만원 들고 그래서 한 학기를 졸업하려면 700~750만 원 정도 든다는 거예요. 전 깜짝 놀랐어요. 그분에 의아한 눈으로 보시며 근데 왜 모르세요? 묻기에 그냥 씩 웃었어요. 저는 북한에서 와서 학비가 면제라 솔직히 학비를 모릅니다... 그랬더니 첫 마디가 '그래야지, 힘들게 왔는데 어떻게 돈 주고 공부하나? 이렇게 와서 공부한다니 정말 대단하다' 그러셨어요... 끝나고 지하철역까지 함께 갔는데 앞으로 알고 지내기로 했어요. 제 어머니뻘 되는데 이제 그 나이에 자격을 따서 뭐 하시려고 하냐고 물었더니 자격을 쥐고 뿌듯하게 일하면 좋지 않냐... 그러면서 자기가 나이가 많다고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거예요. 저분처럼 나이가 들어도 많이 변하지 말고 많이 배우고 자격에 대해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진행자 : 소연 씨도 적은 나이에 시작하는 공부가 아니라서 마음은 앞서지만 수업 듣기가 쉽지는 않으죠?

박소연 : 네...

문성휘 : 유머에 있지 않아요? 어머니가 '너 학교가기 좋니?' 물었더니 '네, 어머니! 전 학교 가는 것도 좋고 오는 것도 좋은데 그 도중에 수업을 듣는 게 정말 싫어요...' 이랬다고요. (웃음)

진행자 : 이런 상태십니까? (웃음)

박소연 : 네, 막 머리가 터져요. 저는 지금도 같이 일하는 동료의 도움을 많이 받아요. 왜냐하면 외래어가 많잖아요. 도대체 '자유 게시판'이라는 건 뭐하라는 거예요? '게시판'이라는 건 분명 뭔가 적으라는 건데 뭘 적으라는 거예요? 물었더니 막 웃더니 자기 의견을 게시판에서 자유롭게 논쟁하는 곳이래요. 그 분은 제가 이런 말 하는 걸 굉장히 재밌게 생각하는데 전 아직 잘 모르니까 하나도 재밌지 않아요.

문성휘 : 저희 집사람도 복지를 선택한 게 그 중 무난하고 자기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들어갔죠. 제가 집사람이 가져온 책을 한번 읽어봤거든요? 복지에도 무슨 이론이 그리 많아요? 외국에 누가 쓴 저서에 의하면 이렇게 정리했다... 무슨 이론에 의하면... 한창 읽을 때는 재밌더라고요. 근데 다음 장을 펼쳤는데 그런데 그와의 반대 의견이 있대요! 그 다음부터 쭉 보니까 모두 그런 거예요. 이거 복지라는 게 보통 골 때리는 게 아니구나...(웃음)

진행자 : 복지라는 게 마구잡이로 도와주는 게 아니라는 거죠.

문성휘 : 저도 전혀 그런 생각을 못했어요. 애초에 복지라는 게 그저 남을 도와주는 거다 이렇게 간단하게 생각했지 이걸 하나의 학문으로 접근하지 않았던 거죠. 저희 집사람이 2년 만에 뒤로 벌렁 자빠진 이유도 바로 그거예요. 학문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고 남을 가서 도와주는 방법... 마당 쓰는 방법, 청소하는 방법 그런 걸 배우나보다 생각했는데 무슨 이론, 어떤 방법... 정말 간단치 않더라고요. (웃음)

진행자 : 소연 씨 큰일 났네요. (웃음) 수업이 일주일에 몇 시간이에요?

박소연 : 보통 한 강의가 100~130분 사이인데 전 강의 네 개를 들어요. 그래서 보통 매주 500시간 정도요. 다다음주부터는 중간고사가 있어요.

진행자 : 그럼 컴퓨터 앞에 하루에 한 시간 이상 매일매일 앉아야 된다는 얘기네요.

박소연 : 적어도 하루 2시간 이상 앉아야 해요.

진행자 : 중간고사는 어떻게 봐요?

박소연 : 컴퓨터로 질의문답을 보내는 것 같아요.

진행자 : 쉽지 않네요. 소연 씨 중간고사 끝날 때 쯤 성적이 어떻게 나오는지 제가 물어보겠습니다. (웃음)

문성휘 : 사이버대학 중간고사는 역시 컴퓨터로 해요. 그땐 북한말로 요꼬들이(끼어들기)라고 하나 조금 꼼수를 부릴 수 있어요. 집사람하고 나하고 앉아서 열심히 풀었는데 집사람이 공부를 했다는데 나보다 더 모르는 거예요. (웃음) 어찌어찌 시험에 통과는 됐는데 그 다음이 문제죠. 단순히 이렇게 시험을 치는 게 아니라 직접 사이버 대학 본교에 가서 시험을 치는 과정이 있어요. 컴퓨터 시험은 조금 거짓말을 할 수 있는데 이건 할 수가 없어요. 제도적 장치가 다 있더라고요. 너희들 거짓말을 쳐서는 빠져 못나간다는 거죠. 결국 공부를 못하는 저희 집사람은 뒤로 벌렁 자빠졌는데 이제 마저 다녀야죠.

박소연 : 그래서 누가 그러더라고요. 사회복지 4년 다니기 간단치 않다...

문성휘 : 괜찮아요. 왜냐하면 한국은 북한에서 말하는 묵은돼지가 있잖아요. 이번에 내가 학년을 넘어뛰지 못했다면 한 학년 더 다닐 수 있고 그런데 한국은 묵은돼지를 절대 욕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내가 다른 급한 일이 있어서, 아님 외국에 나가서 몇 달 일하게 됐던지 여러 가지 사정이 있으니까 얼마든지 묵은돼지가 될 수가 있죠. 제가 잘 아는 분이 사회복지를 공부했는데 졸업하는데 7년 걸렸어요. 3년 묵었죠.

박소연 : 북한 같으면 3년 묵은돼지는 대 왕따예요. (웃음)

진행자 : 근데 그 분, 정말 인간 승리하셨네요.

문성휘 : 그 분도 2년 하다가 저희 집사람처럼 못하겠다고 벌렁 자빠졌어요. 근데 한창 일하다보니 2년 공부한 게 너무 분하더래요. 하는 수 없이 접어들어 또 공부를 하고 못 하겠다 또 집어치고, 또 하고... 결국 졸업시험을 몇 번 쳐서 7년 만에 통과했어요.

진행자 : 값진 졸업이네요.

문성휘 : 근데 탈북자들 대개 그래요. 소연 씨도 4년 안에 졸업을 하겠는지 의문이에요. 졸업하는데 대개 5, 6년 걸리더라고요. 근데 학점을 받으려면 공부를 해야 하니까 졸업을 하면 어쨌든 지식이 남잖아요. 북한에도 그런 제도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대학 때보니까 생활이 어려워서 중퇴를 하는 경우가 많아요. 특히 제대 군인들은 공부도 어려운데 금방 가정생활을 해야 하니까 초기에 정말 많이 떨어져나가요. 그런 사람들이 생활이 조금 안정됐을 때 다시 공부할 수 있는 권리를 줘야 하는데 그런 게 없어요.

진행자 : 그런 부분은 지금이라도 조절할 수 있을 텐데요... 어쨌든 소연 씨 칭찬해 드리고 싶습니다! 일하면서 학교 다니는 게 쉽지 않고 공부하겠다는 생각보다는 사실 돈 벌겠다는 생각 많이 하게 되는데요.

박소연 : 사람이 뭐든 해야 잡생각을 안 해요. 상담사분이 저한테 말씀해 주셨는데 탈북자들이 자기 지나간 과거 그리워하고, 추석 때 부모가 그리워 울고... 그런 게 살아가는데 도움이 안 된다고요. 사람이 과거를 생각한다고 돌아갈 순 없잖아요. 바쁘게 사는 게 나를 발전시킬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문성휘 : 잊으려면 일을 해라! 일을 하되 유익한 일을 해라!

진행자 : 소연 씨 공부 잘 하시고 4년 안에는 힘들 것 같아도 7년 안에는 졸업하시길 빌어요.

박소연 : 6년으로 줄여주세요. (웃음)

문성휘 : 무슨 섭섭한 소리예요. 무조건 하면 된다! 4년 안에 졸업하세요. 4년 만에 졸업하는 게 정말 힘이 들지만 자기 인생에 시간을 그만큼 절약하는 것 아니에요. 절약한 만큼 내 인생에 남는 거라고 생각하면 돼요.

진행자 : 네, 오늘 두 분 말씀 감사합니다.

박소연, 문성휘 : 네, 감사합니다.

4년 안에 졸업 못 하면 어떻습니까? 80 인생에 3-4년쯤은 괜찮지 않겠습니까?

청취자 여러분도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셨는지 모르겠는데요. 저는 공부하는 소연 씨가 참 부럽네요. 시험과 숙제는 정말 싫지만 학교와 공부가 보장하는 가능성 그리고 미래를 준비하는 부지런함은 참 부럽습니다. 10월, 우리도 뭔가 한번 시작해보면 어떨까요?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오늘 얘기 여기까집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이현주 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