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새로 인사드리는 <세상 밖으로>, 이 시간 진행에 이현줍니다.
박소연 씨는 지난해 11월 남한에 도착한 햇내기(새내기)입니다. 무산 출신으로 선전대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30대 중반의 여성인데요. 남쪽에는 혈혈단신으로 혼자 왔습니다. 9주간의 하나원 교육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남한 생활을 시작한지 이제 5개월... 그렇지만 직접 만나보면 소연 씨와 얘기를 나눠보기 전까지는 북에서 왔는지 남한 출신인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멋쟁이입니다.
탈북자들 사이에서 하나원에서 나와 남한에 막 적응을 시작하는 1년을 '남한 나이 1살'이라고 표현하는데요. 소연 씨도 이제 막 남한 나이 한 살 먹었습니다. 배울 것도 많고 답답한 것도 많고 이해 안 되는 것도 많은 시기...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에는 자강도 출신 탈북 기자, 문성휘 씨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진행자 : 안녕하세요.
문성휘 , 박소연 : 안녕하세요.
진행자 : 오늘 첫 시간입니다.
박소연 : 안녕하세요. 저는 무산에서 온 박소연이라고 합니다. 함경도 무산 광산에서 기동 선전 예술 선동원으로 있다가 작년에 한국 왔습니다. 이제 사회에 나온 지 5달 밖에 안 됐습니다.
진행자 : 환영합니다. 탈북자들이 남한에 들어오시면 하나원에 들어가서 정착 교육을 받는데요. 요즘은 얼마나 계십니까?
문성휘 : 저희 때는 9주였는데 요즘은 모르겠네요.
박소연 : 2달 22일 있었습니다.
문성휘 : 저희 때와 비슷하네요.
진행자 : 하나원에서 나와서는 뭐하셨어요?
박소연 : 나와서 집을 받고는 1달 동안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하나 센터를 다닙니다. 남한 사회가 어떤지, 진짜 생활이 어떤지를 배우는 거죠. 한달이 지나면 한국정보화진흥원이라는 곳에서 하는 북한 이탈 주민들을 위한 컴퓨터 강습을 다녀요. 사실 남한에는 다섯 살짜리 아이들도 키보드를 두드리는데 우리는 컴퓨터란 모른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남한사람들과 함께 컴퓨터를 배울 순 없어요. 따라 못 갑니다. 그래서 탈북자들끼리 배우는데 선생님은 물론 남한 분이죠. 저는 처음에 거기에 들어갔을 때 충격을 받았던 것이 저처럼 젊은 축도 있지만 육십이 넘으신 어르신들도 많이 배우러 온단 말입니다. 저 나이에 컴퓨터를 배워서 뭘 하겠는가... 근데 그 분들 하시는 말씀이 인터넷에서 물건을 구매할 때도 그렇고 인터넷에 볼 것도 많고 컴퓨터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저는 컴퓨터라면 직업을 잡아야 하는 젊은 사람들이 배워야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충격이었어요. 여기는 배워야 살 수 있는 사회라는 말이죠.
문성휘 : 남한에는 평생 교육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북한에서 혁명가는 일생동안 공부를 해야 한다고 했는데 여기서 공부라는 건 김일성, 김정일의 어록 공부 같은 혁명 활동을 말하는 거죠. 남한과 공부라는 의미가 좀 다르죠. 저도 처음에 지금 소연 씨가 얘기한 그런 학원을 다녔는데요. 저희 때는 하나센터는 없었고 나오자마자 컴퓨터 강좌를 들으러 갔습니다.
진행자 : 일단 나오시면 제일 처음 배우시는 게 다 컴퓨터군요.
문성휘 : 그렇죠. 컴퓨터가 없으면 한 발짝도 전진할 수 없으니까요. 그런데 아닌 게 아니라 제가 학원 다닐 때도 어르신들이 꽤 많았어요. 이 분들은 남한에서 1-2년 정착해서 생활하시던 저희보다 앞서서 오신 분들이었는데 남한에서 살다보니 컴퓨터가 필요해서 다시 배우러왔다고 하더라고요.
진행자 : 소연 씨 얘기하는 것 들으니까 지금도 그런 분들이 계신 모양이네요. 진짜 남쪽에서 컴퓨터를 모르면 살기 힘들죠.
박소연 : 근데 처음 나와서 제일 당황스러웠던 것은 제 집을 받고 처음 들어갔을 때였습니다. 물론 하나원에서 전기 밥 가마도 주고 다 주긴 하지만 제 손으로 들고 들어가는 짐들 외에 집에는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처음 하나원에서 나올 때 정착금을 3백만 원 주는데요. 나오면 브로커들이 돈을 달라고 독촉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그 돈을 주고 돌아서니 수중에 돈 50만 원 남았고요. 텅 빈 방안에서 첫날 라면을 끓어 먹고 돌아서니까 집에 아무도 없고... 그제야 실감이 나더라고요. 이제 정말 나 혼자구나. 그때는 밤이 정말 싫었어요. 정신 나간 사람처럼 새벽 한두 시에 일어나서 집 아래 정자에서 멍하니 앉아있었어요. 차를 가득 세워놓은 주차장 앞에 있는 정자에 앉아서 하늘만 쳐다봤습니다. 근데 이것도 한 2달 정도면 괜찮아 지더라고요. 2달은 정말 미치게 고달팠습니다. 사는 게 고달픈 것은 아니고 너무도 외로워서 고달픈 시간이요... 그때는 너무 외로워서 아무나 우리 집 문을 좀 두드려 줬으면 바랬어요. 그런데 제가 감동을 받았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복지관에서 연락이 왔어요. 시청에서 북한 이탈 주민을 위한 간담회가 있는데 참가해 달라고요. 그 자리에 갔더니 시장님이 애로 되는 게 있으면 제기하라... 그래서 제가 이 기회에 안 하면 언제 말할 수 있으랴 싶어서 마지막에 얘기를 했어요. 제가 온 지 얼마 안 됐는데 텔레비전, 냉장고 없어도 살겠는데 컴퓨터 없이는 안 되겠다고 좀 도와달라고요. 그런데 진짜 한 주일 만에 연락이 왔어요. 그 간담회에 참석한 시청 직원분이 저에게 컴퓨터를 기증했다는 겁니다. 꼭 집어 그 여성분에게 주고 싶다고 했데요. 얼마나 기쁘고 고맙던지... 그러니까 남한에서도 많은 분들이 나를 도와주고 있다는 사실을 느낀 다음부터는 그렇게 외롭지 않았어요. 요즘은 평일에 공부하고 주말에는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해서 냉장고랑 텔레비전을 다 마련했어요. 그러고 나니까 그렇게 횡하고 들어가고 싶지 않았던 집이 이제 내 둥지라고 날만 어두우면 빨리 가고 싶다니까요. 요즘은 혼잡한 서울 시내를 걷다가도 하늘을 한번 봅니다. 내가 진짜 서울에 있구나...어떻게 어디까지 왔을까? (웃음)
어떻게 보면 남한 살이는 세간 없이 텅 빈 방이 텔레비전, 냉장고, 밥 가마로 하나하나 채워서 내 집으로 만드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태어나고 자란 그곳에서 알던 세상이 모두 뒤집히는 경험, 이제 세상 밖으로 나온 탈북자 박소연의 얘기는 다음 시간에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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