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 미안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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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남한에 도착해 올해로 남한에서 생활 5년차를 맞고 있습니다. 갖은 고생 끝에 2012년 아들도 남한으로 데려와... 지금은 엄마로, 또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은 소연 씨가 북한을 떠나 남한이라는 세상에서 보고 겪은 경험담을 전해드립니다. 남한의 신기한 세상만사를 얘기하다고 보면 떠오르는 고향의 추억들도 함께 나눠 봅니다.

INS- 정말 감사를 모르고 살았습니다. 나한테 누군가 베푼 사람이 없었고 그래서 감사라는 걸 잊고 산지 20년이 넘어 된 것 같습니다.

감사와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사실 삶이 고달프고 힘들면 살아있는 것이 감사할 일이 아니라 고통일 수 있습니다.

20년 동안 누군가에게 고맙다, 감사하다 생각해본 적 없다는 소연 씨는 지금 20년 치를 한번 받고 또 갚고 있습니다. 오늘 그 얘기 들어봅니다.

자강도 출신 문성휘 기자도 이 시간, 함께 합니다.

진행자 :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문성휘 : 안녕하세요.

박소연 : 잘 지냈습니다. 비가 와요.

진행자 : 녹음하는 오늘, 서울은 비가 꽤 옵니다.

박소연 : 북한 속담에 가을비는 할아버지 턱수염 밑에서도 긋고 간다고...

문성휘 : 그렇지도 않아요. 이번에 태풍 때문에 울산, 부산 엄청 대단하지 않았습니까? 자동차만 4천대가 침수되고 완전히 종잇장 구겨지듯 구겨져 떠내려가더라고요. 나는 근데 그걸 보고 북한 생각이 먼저 났습니다. 북한에서 이러면 이걸 어찌 복구하나...

박소연 : 북한의 한 개 지방에 4천대 차 있겠어요?

문성휘 : 아! 또 그런가요? (웃음)

진행자 : 어쨌든 이번 비가 그치면 가을이 확 깊어질 것 같습니다. 두 분 혹시 광화문 글판이라고 아십니까? 광화문 사거리 교보 생명 건물에 붙어 있는...

박소연 : 네, 지하철에서 나오다 봤습니다. 좋은 글들이 써있잖아요?

진행자 : 계절에 맞는 시 구절을 선정해 1,2줄 정도로 짧은 글을 올리는데 오늘 보니 가을 편으로 바뀌었더라고요. 이런 구절이었습니다.

이도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 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 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 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박소연 : 좋다...

진행자 : 낙엽 하나 떨어지는 것이 고마운 일이다... 낙엽은 사실 가을이면 발에 차이는 게 낙엽인데. 인생에 있어서 작은 일도 고마워하라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문성휘 : 낙엽이라는 의미가 참 서글프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하죠. 그렇지만 동시에 나와 함께하는 무엇이 있다 것에 위로가 되기도 하고...

박소연 : 저희가 어릴 때는 낙엽이랑 이런 걸 많이 밟으며 지나가고 그랬죠. 그런데 탈북하기 직전에는 거의 못 밟았던 것 같습니다. 떨어지면 다 빗자루로 쓸어가니까 아예 낙엽이 땅에 떨어져 있을 시간을 안 주더라고요. 다 가져다가 땔감으로 하죠. 생각해보니 고난의 행군 이후에는 낙엽을 아예 밟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에게 아예 그런 정서를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없죠....

진행자 : 남쪽은 가을이면 낙엽이 떨어지면 낙엽을 밟고 태우며 가을을 탄다... 이런 얘기도 하는데 북쪽과는 계절에 대한 정서가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다... 생활 때문이겠죠. 이 시 구절을 선택한 교보생명 관계자는 "때로는 낙엽 하나에도 위로를 얻듯이 주변을 돌아보며 그 속에서 소중함을 찾아보자는 의미"에서 선택했다고 설명했는데요. 뭐... 살다보면 화나고 속상한 일도 있지만 감사한 일도 많습니다.

박소연 : 생각해보면 감사라는 걸 북한에 살 때 느껴봤나 싶습니다. 어렸을 때는 밀가루 과자 한 키로 받아 앉으며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눈물을 흘리곤 했는데 그건 철 없을 때 일이고 크면서 다 사라졌죠. 그리고는 정말 감사를 모르고 살았습니다. 나한테 누군가 베푼 사람이 없었고 그래서 감사라는 걸 잊고 산지 20년이 넘어 된 것 같습니다. 그냥 살기 바빴던 거죠... 그런데 한국에 발을 디디며 고마웠고. 이제는 이런 걸 받아도 되나? 미안한 감사함이 들어요.

문성휘 : 미안하면서 감사한 게 뭔가요?

박소연 : 아, 또 아들 얘기를 하게 되네요. 이 방송에 얼굴은 안 나가지만 맨날 출연하는 공식적인 맴버인 것 같습니다. (웃음) 하지만 제 인생에 걔밖에 더 있습니까?

진행자 : 인정합니다! (웃음)

박소연 : 북한 사람들이 이 말을 들으면 뭐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운동을 하면 한국에선 돈이 좀 들어요. 자본주의 사회이지 않습니까? 사실 혼자서는 굉장히 버거웠던 부분이었어요. 한국에는 아들 하나 축구 시키려면 집을 팔아라... 이런 얘기가 있을 정도고요.

진행자 : 축구를 잘 하려면 좋은 선생님에게 수업을 받아야하는데 그 수업료가 만만치 않다고 들었어요.

박소연 : 막 1시간 훈련 받은 게 한국 돈으로 3만원, 북한 돈으로 21만원을 줘야합니다. 작은 돈이 아니죠? 제가 그게 굉장히 부담이었는데 곁에서 아들을 지켜봐주시던 분들이 소문을 냈어요. 이런 학생이 있는데 도와주자... 저는 설마 설마 했는데 진짜 후원자가 나타났습니다. 저는요, 후원이라는 건 국가가 개인에게 하는 건 줄 알았어요.

문성휘 : 무슨 소리? (웃음)

진행자 : 아, 북쪽에서도 후원이라는 말을 쓰십니까?

문성휘 : 인민군 후원...

박소연 : 그럼요. 후원이라는 말 써요. 이 애가 탈북자고 성공을 하려면 엄마 하나의 힘으로는 모자란다. 그러니까 많은 돈은 아니지만 한 달에 5만원 씩, 약 50달러 씩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6년 동안 후원한다... 이런 내용으로 후원을 체결했어요.

진행자 : 중, 고등학교 내내 후원을 해주시겠다는 얘기네요.

박소연 : 네, 그래서 매달 1일에 제 통장으로 들어와요. 거기까지도 너무 감사했어요. 제가 너무 미안하다, 감사하다 그랬더니 그 분들이 하시는 얘기가 그런 생각하지 말라. 이 애가 성공하는 걸 우리는 바라는 것이라고. 그것밖에 없다... 그러시는 거예요. 아니, 내 아들이 성공하는데 그 사람들이 왜 그렇게 행복해할까? (웃음) 지금도 풀 수 없는 수수께끼고 그 이유는 지금도 이해할 수 없지만 미안하고 고마워요.

진행자 : 후원자들이 몇 명이나 되세요?

박소연 : 지금은 3명 정도입니다. 그리고 이번에 아들이 유럽에 전지훈련을 가게 됐는데 비용이 400만원이 들어갑니다. 여비까지 합쳐서 4천 달러 정도 되는 건데요. 가는데 보태라고 그 분이 1천 달러를 지원해주셨습니다. 보태서 가라고...

진행자 : 그 분들은 원래 아시는 분들입니까?

박소연 : 아니요. 전혀 모르는 분들이었어요. 아들을 자식처럼 생각해주시는 공부방 원장 선생님 소개로 소개 받은 겁니다. 누굴 돕고 싶다, 탈북자를 돕고 싶다 평소에 얘기하셨 분에게 아들 얘기를 했고 그 분이 돕겠다 하신 거래요. 태어나 첨 본 사람들입니다. (웃음)

문성휘 : 소연 씨가 잘 몰라서 그럴 수도 있는데요. 한국의 후원 제도는 아주 잘 돼있습니다. 례하면 삼성 꿈나무 장학 재단... 이런 것이 있습니다. 그곳에 우리 아이는 이런 재능이 있고 이런 가능성이 있는데 나는 이 아이를 도와줄만한 능력이 없다... 이런 사연을 적어 보내면 그걸 받아서 검토한 뒤, 도와줘야겠다고 판단이 되면 후원을 해줍니다. 보통 삼성 꿈나무 장학 재단에서 후원하는 금액이 한 명 당 1달에 50달러 정도라고 알고 있습니다. 적지는 않은 돈이죠?

인터넷 검색창에 후원이라는 글자를 쳐서 검색해보면 수십 개의 단체가 보입니다. 가장 많은 것은 해외와 남한의 가난한 아이들을 돕는 후원 단체.

식사비를 후원하거나 병원비가 많이 들어가는 백혈병, 암, 희귀병에 걸린 아이들을 돕는 단체도 있습니다.

재해를 당한 지역을 돕거나 독거노인을 후원하거나 길거리에서 농성 중이 사람들을 돕거나 거리에 버려진 동물을 돕거나 모두 후원... 그러니까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뒤에서 돕고 있습니다.

이런 후원 단체들을 보고 있자니 두 가지 생각이 드네요. 참 도와야할 사람들이 많구나.

또 하나는 그래도 남을 돕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이렇게 많구나...

아쉽게도 북쪽 어린이들을 돕던 그 많던 단체들이 다 없어졌네요.

다음 시간에 후원 얘기는 이어가겠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