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연 씨는 지난해 11월 남한에 도착한 햇내기 입니다. 무산 출신으로 선전대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30대 중반의 여성인데요. 하나원 교육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남한 생활을 시작한지 이제 5개월...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에는 남한 정착 7년차, 자강도 출신 탈북 기자 문성휘 씨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 선배님은 언제 남한에 와서 좋다고 느끼셨어요?
오늘 얘기 시작합니다.
박소연 : 한국에 와서 생각했던 것과 현실이 다를 때가 많잖아요? 선배님은 그래도 언제 좀 좋다, 잘 왔다, 기쁘다고 느끼셨어요?
문성휘 : 그런 때가 많았죠. 저는 처음으로 한국 분들에 대해서 고마움을 느낀 때가 우연찮은 기회에 연결된 어떤 분 때문이었는데요. 제가 한국에 온지 얼마 안 됐을 때 적십자를 통해서 불교 신자라는 분이 찾아왔어요. 이 분이 탈북자들이 사는 곳을 좀 보고 싶다고 적십자에 연락해서 저랑 연결이 됐는데요. 온 지 닷새 밖에 안 됐을 때니까 집에 정말 아무것도 없었죠. 한 바퀴 둘러보고 얘기 좀 나누고 인사하고 갔는데 저녁에 다시 오셨더라고요. 텔레비전을 하나 들고... 아... 진짜 얼마나 기쁜지. 그리고 한 며칠 있다가 그릇 세트도 가져다 줬어요. 처음에는 진짜 이 사람이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했습니다. 왜 이렇게 나한테 잘 해주나? 그런데 또 자기가 회사를 하나 운영하는데 와서 한번 보래요. 저는 큰 공장을 하는 줄 알았는데 보니까 작은 사무실이었어요. 건설 설계 사무실이었는데 저는 그 때만해도 컴퓨터 자판도 변변히 두드리지 못 할 때니까 뭘 아나요? 그래도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그 분이 인간적으로 마음이 좋은 사람이구나 하는 걸 알게 됐죠. 그냥 저에게 아무것도 바라는 것 없이 그냥 도움을 주려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리고 아마 추석 즈음으로 기억이 되는데요. 갑자기 저에게 봉투를 내미는데 안에 백만 원이 들어 있었어요.
박소연 : 진짜요?
진행자 : 적은 돈이 아닌데요?
문성휘 : 그렇죠? 근데 제가 진짜 죽일 놈이죠... 제가 정착하면서 그 분과 연락이 끊어졌어요! 자주 연락을 하고 그래야 했는데 내 생활이 꽃피기 시작하니까 그 분을 자꾸 잊게 되는 거예요. 소연 씨, 앞으로 진짜로 이렇게 한국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 이런 사람이 바로 소연 씨의 재산이에요. 저도 그 분하고 연계가 끊어진 것을 두고두고 후회하는데요. 특별히 재산이 있는 분도 아니었어요. 자동차도 수수한 걸 타고 다녔고 진짜 고마운 사람이죠.
박소연 : 진짜 순수하게 도움을 주신 분이네요.
문성휘 : 그리고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제가 '탈북난민보호운동본부'에서 일할 때인데요. 교회에 다니는 어떤 어르신이 갑가지 나한테 와서 돈 이백만원을 주면서 탈북자들을 구출하라고 주는 돈이래요. 너무 얼떨떨해서 물어봤어요. 탈북자들을 구출하라고 주는 건 좋은데 이걸 왜 주시는 거냐고... 어떤 단체에서 모으신 것이냐 아니면 개인으로 주는 것이냐, 왜 주는 거냐? 아니, 그냥 자기가 주는 거래요. 자기는 원래 한 해가 시작할 때 올해는 어떤 좋은 일을 해볼까 생각하는데 그때가 한 2007년 즈음이었는데 한창 탈북자들이 중국에서 외국 대사관에 막 뛰어 들어가고 그런 때였어요. 뉴스 보도 시간에 이런 소식이 많이 나오니까 저 사람들을 돕자 싶었다고요. 자기가 부자는 아니라서 돈을 조금 모아서 가져왔으니 꼭 좀 보태서 써달라고 했습니다. 근데 그 분에게 영수증을 써줘야겠는데 끝내 자기 이름을 알려주지 않고 그냥 갔어요. 자기 이름을 알리면 그게 무슨 후원이겠냐며 끝내 그냥 가셨어요. 저 그 때 진짜 눈물 나더라고요. 그 분 가는 뒷모습을 이렇게 보고 있자니 아, 사람이 이런 맛에 세상 사는구나. 가끔씩 아름다운 소식도 듣고 희망도 봐야 살맛이 나는구나... 소연 씨! 소연 씨도 사시다보면 진짜 자기 친척, 친구, 부모님들과 같은 그런 분들을 만나게 될 겁니다.
진행자 : 소연 씨는 그 인연을 문 기자의 말대로 꼭 잡고 놓지 마셨으면 좋겠네요. 근데 소연 씨는 사실 지금 막 정착을 시작하는 시기이고 낯선 때잖아요. 문 기자의 이런 충고가 와 닿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박소연 : 아니요. 저도 이 얘기를 하고 싶었는데요. 반 년 여기 사는 동안에 딱 한번 너무 좋았던 때가 있습니다. 제가 지하철 1호선을 타야하는데 아침, 저녁으로 얼마나 복잡한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지하철에 자리가 나면 그냥 빨리 앉아요. (웃음) 사실 북한에는 양보라는 말이 없어진지 오랩니다. 양보를 하면 자기가 굶는 사회가 됐으니까요. 그런 사회에서 살았던 저도 사실 양보라는 걸 모릅니다. (웃음) 그래서 지하철에서 자리가 나면 재깍재깍 앉고 그랬어요.
문성휘 : 맞아요. 우리 옆도 안 보고 일단 앉고 그러죠. (웃음)
박소연 : 그날도 자리가 나서 재깍 앉았는데 다음 정거장에서 일흔이 다 된 것 같은 할머니가 타셨어요. 제 앞에 서있는데 앉아있기가 좀 미안해서 자리를 양보했어요. 됐다고 괜찮다고 하시기에 거짓말을 했습니다. 한참 남았는데도 다음 정류장에서 내린다고요. 그러니까 일단 앉으셨는데 계속 내가 안 내리니까 저를 보고 하시는 말씀이 너 정말 예뻐... 그러세요. 네? 그랬더니 마음이 참 예쁘다고 하세요. 인물이 곱다했어도 그렇게 좋진 않았을 텐데 저는 그 말이 그렇게 기쁘고 좋더라고요. 사실 지금 남한 생활이 우리가 북한이나 중국에서 들어왔던 것과 다를 수 있어요. 집도 예상 밖으로 좁고 자기가 일해야 먹고 살 수 있고요. 그렇지만 경제생활이 높은 수준에 있으니 일할 곳도 많고 북한에 비하면 일하는 것도 한결 헐합니다. 썩고 나쁜 것 말고 성실한 것만 보면서 살아가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문성휘 : 그러니까 사람을 좀 긍정적으로 봐야할 거예요. 제가 처음부터 저를 도와준 사람들을 긍정적으로 봤으면 그 분들 손을 놓지 않았겠죠. 한번 나랑 연계를 가진 사람이면 그 관계를 절대 끊지 마세요.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기를 많이 낮춰야 해요. 내가 특별히 잘 한다, 잘 났다... 가끔 보면 탈북자 중에서 북한에서 굉장히 잘 살았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있는데요. 그러지 말아야합니다. 그리고 집단생활을 하라고 권하고 싶어요. 북한은 억지로 집단생활을 시키는 국가지만 남한의 집단이라는 건 자발적인 단체입니다. 예를 들면 학교 동창회, 낚시나 등산 등 취미 동호회 같은 것이요. 이 기자님, 그거 뭐죠? 왜 동호회 사람들이 갑자기 만나는 그런 거 있잖아요?
진행자 : 번개요?
문성휘 : 맞다. 번개 같은 것도 치고요. (웃음) 어디 좋다 한번 만나자... 불시에 어떤 사람이 제안하면 그 글을 보고 시간이 되는 사람들이 모이는 거죠. 우리 탈북자들은 가족이나 친척들도 다 북한에 있는데 내가 앓아누웠다... 누가 돌봐주나요? 병원은 있죠. 그러나 아프면 와서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해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러니까 소연 씨도 주변에 한번 찾아보세요. 우리는 그걸 몰라서 정말 어렵게 계단을 한 계단, 한 계단 올라왔어요. 그렇지만 소연 씨는 사다리가 아니라 날아오를 수도 있지 않습니까?
박소연 : 사실 선배님 말씀에 찔리는 구석도 많습니다. (웃음) 겸손해야 한다는 얘기는 정말 맞는 것 같고요. 선배님의 조언이 지름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문성휘 : 제 경험상, 소연 씨가 지금 6개월 됐다고 했는데 이 즈음이 가장 도와주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성들은 남자들을 많이 경계해요. 혹시 이 남자가 도와주는 척하면서 다른 생각이 있는 게 아닌가... 이건 본능적으로 경계하게 되죠. 그러나 같은 여성들이 도와주려 했을 때 내가 어떻게 행동했나, 한 번 잘 생각해보세요. 그러면 분명 아쉬운 부분이 있을 겁니다.
박소연 : 진짜 제 생활을 보시고 말씀하신 것 같네요. (웃음) 내 손을 뻗어 잡아 주려는 사람을 뿌리치지 말라는 얘기인 것 같은데 사실 저희는 쉽게 사람을 믿지 못합니다. 아니면 내가 뭐가 모라자서 너희들의 말을 듣느냐 이런 자격지심 같은 것도 있습니다. 선배님의 말씀은 그런 마음을 좀 버리고 자기를 낮출 때 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것 같은데 남한 생활을 막 시작하는 우리 탈북자들에게 모두 해당되는 얘기인 것 같습니다.
문성휘 기자는 탈북자들의 남한 생활을 중매 결혼한 부부가 적응하는 과정에 비유합니다. 서로를 잘 모르고 결혼했으니 한 동안을 상대방을 파악해야하는데 이런 기간은 충동하며 싸우기 마련이고 이런 시간이 지나 자식도 낳아 기르면서 완전한 부부가 된다는 설명입니다. 탈북자들에겐 힘들여 모은 재산과 남한에서 만든 친구, 선배, 후배 같은 인연들이 부부간의 자식과 같은 것이겠습니다. 한참 상대와 충돌하고 싸우며 알아가는 과정에 있는 소연 씨에게 선배의 충고가 도움이 됐기를 바랍니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다음 시간에 얘기 이어집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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