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복지’라는 말이 무슨 뜻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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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연 씨는 지난해 11월 남한에 도착한 햇내기 입니다. 무산 출신으로 선전대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30대 중반의 여성인데요. 하나원 교육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남한 생활을 시작한지 이제 5개월...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에는 남한 정착 7년차, 자강도 출신 탈북 기자 문성휘 씨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 선배님, 저는 요즘 복지관에 다닙니다. 근데 도대체 복지가 무슨 뜻입니까?

오늘 얘기 시작합니다.

진행자 : 안녕하세요.

문성휘 : 박소연 : 안녕하세요.

진행자 : 비오고 나더니 날씨가 꽤 추워졌네요.

박소연 : 그러게요. 북쪽은 아마 지금쯤이면 달구지에 소채랑 들고 압록강에 씻으러 다닐 것 같습니다. 소채 씻다가 물이 너무 차가워서 등이 정말 오싹오싹해졌는데 한국에 오니까 그 걱정은 없네요. (웃음)

진행자 : 벌써 김장철이에요?

문성휘 : 벌써가 아니라 김장이 이제 거의 끝났을 걸요?

박소연 : 그럼요. 김장이 끝날 때입니다.

문성휘 : 아마 두툼한 동화(겨울신발)들도 모두 꺼내 신었을 겁니다.

진행자 : 북쪽은 벌써 겨울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소연 씨는 한 주 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요즘도 복지관 자주 다니세요? 처음엔 복지관이라는 말이 좀 어색하셨죠?

박소연 : 네, 우리가 하나원에서 졸업하고 맨 처음에 가는 게 하나센터거든요. 처음엔 하나센터라는 기관이 따로 있는 줄 알았는데 가보니까 가양7종합 복지관... 이렇게 쓰여 있는 건물 안에 하나센터가 있더라고요. 저희는 2층에서 배우고 1층엔 아이들도 있고 어르신들도 있습니다. 근데 좀 이상하다고 생각된 게 저는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기 힘들어서 다니는 사람들인 줄 알았더니 다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있으신 분들이더라고요. 다들 너무 똑똑하고 그래보여서 제가 한번 여쭤봤어요.

진행자 : 그럼 어떤 분들이 다닌다고 생각하셨어요?

박소연 : 마땅히 일할 데가 없는 사람들이요. 어르신들 밥해주고 그런 일을 하기에 그렇게 생각했는데 제가 잘 못 알았던 거였습니다. 팀장님부터 다들 북한식으로 하면 인텔리였습니다. 정말 이 분들이 아이들 줄을 쳐서(줄을 세워서) 놀러 데리고 다니고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의 밀차도 함께 밀고 다니고 합니다. 이걸 보고 제가 사실 굉장히 놀랐는데요. 복지관이라는 곳이 탈북자뿐 아니라 남한 사람 전체를 위한 곳이구나 싶더라고요. 근데 문 기자님, 이 복지관에서 말하는 복지가 무슨 뜻이에요?

진행자 : 소연 씨는 뭐라고 생각하시는데요?

박소연 : 복복, 땅지 아닌가요? 하여튼 복을 준다... 좋은 의미에서 나온 말인 것 같습니다. (웃음)

문성휘 : 복지라는 게 지금 자본주의 세계에선 어떤 현상이 아니라 이제는 하나의 산업입니다. 북한도 고령화 사회로 변해간다고 하잖습니까? 고령화 사회, 신생아 출산에 대한 부모들의 부담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인들의 힘만으로는 모자라니까 이걸 사회적으로 분담해주는 겁니다. 개인들이 어려운 부분을 사회가 함께 책임을 지어주는 것이 복지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에서 라디오 방송을 들어보면 썩고 병든 자본주의 복지의 진실... 이러면서 복지라는 말을 깎아 내리는데 복지라는 말의 뜻을 알려 안 주고 비판만합니다. 그러다보니 저는 남한에 거지들 많다니까 그 거지들에게 밥 한술이나 떠주고 그걸 가지고 부자들이 굉장히 얼굴을 내는(생색내는) 그런 게 아니겠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여기 와보니까 복지가 그게 아니더라고요. 그리고 사회가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복지 산업이 커질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북한은 항상 그러는데요. 1995년이면 2차 5개년 계획이 끝나서 사회주의 완전 승리를 쟁취하면 우리에게 옷이 얼마나 차려지고 먹을 것은 얼마나 차려지고 전기는 얼마나 차려지고 늙은이들에게도 배려도 차려진다...

박소연 : 맞아요. 그런 소리 많이 들었죠.

문성휘 : 그런 환상을 계속 불어넣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남한에 와보니까 여긴 이미 그게 다 돼있어요.

박소연 : 북한은 말로 다 하죠.

문성휘 : 정말 북한에서 말로만 하던 게 여긴 다 돼있으니 저희들은 그런 생각도 들더라고요. 사회주의가 여기가 아닌가? 그만큼 북한이 말하는 사회적인 시책들이 여기 다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힘든 계층에 대해서는 무상 교육, 무상 치료가 실행되고 있고 우리도 복지관에 다니지만 평생 교육이라고 해서 원하면 나이에 상관없이 배울 수 있습니다. 저도 소연 씨처럼 복지관에 다니면서 컴퓨터 자격증하고 회계 자격증을 땄는데요. 회계 자격증은 사실 다들 어려워하는데 한 번에 붙어서 굉장히 뿌듯했어요. (웃음)

진행자 : 요즘 그거 사용하세요?

문성휘 : 아뇨. 장롱에 들어가 있죠. (웃음) 어쨌든 이렇게 평생 교육도 있고요. 소연 씨뿐만 아니고 북한 주민들이 이 복지에 대해서 똑바로 아셔야 합니다. 이걸 알면 북한의 제도가 얼마나 한심한지 한번 돌아볼 수 있을 겁니다.

진행자 : 소연 씨도 문 기자 말에 동의하십니까?

박소연 : 이 말이 사실이니까요. 많이 동의합니다. 복지관이 사실 우리 집 근처에 있는데요. 제가 바쁜 일이 생기거나 하다못해 전등이 끊어져도 제가 복지관 선생님을 찾습니다.

문성휘 : 아니, 그런 걸로도 물어봐요?

박소연 : 네... (웃음) 그럼 굉장히 친절하게 알려주세요. 관리소 얘기해봐라.. 그리고 이뿐 아니라 제가 어떤 공부를 해야겠다면 상담도 해주시고요. 그리고 저번엔 오라고 해서 가봤더니 어떤 분이 기부를 하셨답니다. 15만 원짜리 겨울 이불을 주더라고요. 그러니까 확실히 이 복지관이라는 게 우리가 잘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곳, 복을 주는 곳이 맞습니다! (웃음) 북한에서 지금 유행하는 일화가 하나 있는데요. 한 젊은 부부와 부모가 함께 살았데요. 이 젊은 부부는 자기들이 벌어먹고 살기 힘드니 부모들이 부담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어느 날 윗방에 사는 부모 칸(방)에 '자폭'이라는 족자를 걸었데요. 빨리 죽이라는 얘기죠. 그 다음날 부모님들이 아들 내외 칸에 '영생'이라고 쓴 족자를 걸었답니다. 영원히 살겠다는 얘기죠... (웃음) 이런 얘기가 북한 전반에 퍼져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저런 말들이 근거가 있는 얘깁니다. 북한 주민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말들이 풍문으로 도는 것이죠. 여기는 제가 보니까 60,70대 부모들이 자기 자식들에게 기대를 안 하더라고요. 왜냐... 40,50대부터 노후준비를 하고 국민연금이라는 것도 있고요. 내가 돈 벌 때 일정 정도의 돈을 내면 나중에 일을 그만 뒀을 때 돈이 나오더라고요. 그리고 자식이 없다고 해도 65세 이상부터는 복지관에서 도움도 주고... 굶어죽을 일은 없어 보였습니다. 근데 문 기자님, 저는 솔직히 제 나이도 인차 50,60세 될 것이고 그럼 나는 형제도 없고 부모도 없고 어떻게 살까 고민인데요. 이 고민이 복지관을 보면 좀 덜어져요.

문성휘 : 그런가요? 반대로 전 개인적으로는 이런 복지관이 축소돼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늙은이 돌보기 부분은 확 줄어야겠다... 무조건 자식들에게 늙은이들을 돌보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제 자식들이 이런 것만 믿으면 어떻게 합니까? (웃음) 복지가 너무 잘 돼있으면 결혼을 안 하고 혼자 사는 독신자들이 늘어나고 그렇지 않습니까...

박소연 : 아... 또 그런 것도 있겠네요.

진행자 : 지금 남쪽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데요. 어느 정도의 복지가 적정한가, 어떤 복지를 해야 하나...이런 복지 문제가 중요한 화두입니다. 소연 씨가 지금 남한 생활 6개월 밖에 안 됐죠? 지금까지 느껴본 남한의 복지는 좀 어떤 것 같습니까?

박소연 : 지금 제 심정은 과분하죠. (웃음) 사실 문 기자님 말씀이 맞습니다. 저게 정답이겠는데 저는 제 환경이 저 혼자이니까 생각이 다르죠. (웃음) 지금 복지관에 너무 만족하고 감사합니다.

진행자 : 사실 지금 탈북자들이 정착을 돕는 정책들도 모두 복지라는 큰 틀 안에서 실행되는 겁니다. 저도 이번에 소연 씨가 물어보시기에 처음으로 복지에 대한 사전적인 의미를 찾아봤는데요.

문성휘 : 복을 나눠준다... 이런 거 아닌가요?

진행자 : 행복한 삶이랍니다.

문성휘 : 아, 그런가요?

박소연 : 행복한 삶... 너무도 듣기 좋다.

진행자 : 모든 사람이 행복한 삶을 누리게 하는 게 복지다 이런 의미가 아닌가 싶습니다.

박소연 : 생각해보면요. 북한에도 복지라는 씨앗은 있습니다. 그런데 그냥 씨앗만 있고 남한은 그걸 심어서 잘 키우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그리고 제가 그 열매를 맛보고 있는 것이고요.

진행자 : 네, 소연 씨 오늘 궁금한 점이 잘 풀리셨는지 모르겠네요. 오늘 복지관과 복지에 대한 얘기해봤습니다. 두 분 말씀 감사합니다.

문성휘, 박소연 : 감사합니다.

진행자 :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이 시간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